미국 군정청의 여론국이 38선 이남 주민 8,45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질문 항목 중에 "귀하는 어느 것을 찬성합니까?"라는 물음이 있었는데, 이에 대한 답변 분포는 다음과 같았다.

(가) 자본주의 1,189인(14%)
(나) 사회주의 6,037인(70%)
(다) 공산주의 574인(7%)
(라) 모른다 653인(8%)
(『해방일기』 4권, 너머북스)

남한의 농지개혁은 ‘유상몰수, 유상분배’로 실시되어 북한의 ‘무상몰수, 무상분배’에 비하면 훨씬 온건한 방식이었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유재산권을 누르고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 관철되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무관심은 잔인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매우 활동적이며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무관심은 무엇보다도 추악한 권력의 남용과 탈선을 허용해주기 때문이다." 『경제적 공포』를 쓴 비비안느 포레스테의 말이다.

상징폭력은 피지배자들로 하여금 사회적 위계를 정당하거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함으로써 지배자들에게 복종하도록 이끄는 지배 기제다. 몸에 대한 물리적 폭력 행위가 그 순간의 복종을 이끌어내는 반면에, 상징폭력은 피지배자들에게서 지속적인 복종을 이끌어낸다.

나는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 언명한—사회주의자이면서 자유주의자라고 했는데, 아무튼—조국 씨가 청와대에 입성하는 것을 보며 신선함을 느꼈다.

그런데 진보를 말하는 것과 진보를 사는 것이 다르고, 사회주의를 말하는 것과 사회주의를 사는 것은 다르다. 우리는 신이 아닌 사람이므로 말과 실제 행동은 다를 수밖에 없다.

공자님은 "말은 항상 지나치고 행동은 항상 미치지 못한다" "군자는 말이 행동보다 지나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고 말씀하셨다. 누군가 말했듯이, 위선은 말과 행동을 다르게 사는 사람이 아니라 말과 행동을 다르게 살면서도 다르지 않게 산다고 말하는 사람을 일컬을 때 사용하는 말이다.

조국 씨는 SNS 활동에 무척 열심이었고 성찰이라는 말을 빈번히 사용했다. 그의 성찰은 그의 말과 행동의 간극을 조금도 줄여주지 않은 듯했다.

나에게 그는 점차 해석하기 어려운 인물로 비쳤는데, 수많은 동시대인들이 "우리가 조국이다!"라고 말하는 놀라운 상황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조국 가족은 하면 안 되는 일까지 포함하여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서 리브스가 말한 기회의 사재기에 나섰는데, 서초동에서 "우리가 정경심이다!"라고 외친 그 수많은 사람들이 "삼루에 태어나… 삼루타를 치는" "기자, 학자, 기술자, 경영자, 관료들, 이름에 박사(PhD), 의사(Dr)와 같은 알파벳이 붙는" 사람들이었을까?

<르 몽드>의 정치평론 기자 실비 코프만은 "인터넷과 사회적 관계망에서 사용되는 알고리듬은 모든 시민들을 서로 모순되는 정보와 부딪히지 않은 채 똑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지적, 미디어적 환경에 가두는 인식틀을 형성한다"고 지적했다.

조국 사태는 "서로 모순되는 정보와 부딪히지 않은 채 똑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지적, 미디어적 환경에 가두는" 게 ‘조중동’만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만나는 세계 소식을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우리는 파리지앵이다!"는 크게 보이지만 "우리는 시리아인이다!"는 거의 볼 수 없다. 하지만 국제정치에서 우리의 처지가 파리지앵보다 시리아인에 더 가깝다고 인식한다면 "우리는 시리아인이다!"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정치적 중립’이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현실이라는 말만큼이나 억압적이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라고 요구할 때, 누구 또는 무엇을 기준으로 중립을 요구하는 것인지 물을 줄 알아야 한다.

그 기준은 말할 것도 없이 권력이다. 따라서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권력의 요구에 따르라는 것으로, 그 대부분은 요령을 체득한 비겁함의 다른 이름이다. 현실적인 힘의 작용 앞에서 적절히 보신하면서 명분을 챙기는 태도에 가깝고 그것은 자유인의 대척점에 있다.

독일인들은 학생들에 대한 정치교육과 관련하여 다음 세 가지 원칙에 합의했다.

첫째, 교화 금지 - 학생들에게 지식이나 이념의 주입과 같은 강제적 교육을 금지한다,

둘째, 논쟁성 유지 - 학문과 정치에서 논쟁이 되는 것은 수업 속에서도 논쟁성을 유지해야 한다.

셋째, 이해관계 인지 -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의 정치적 상황과 이해관계에 따른 정치적 안목을 기르고,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부합하는 정치 참여 역량을 기르게 한다.

수구 세력이 질서나 안보를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이 누리는 기득권이 흔들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질서, 안보를 강조하는 지배 이념에는 사회 변화를 바라지 않거나 두려워하는 의식이 깔려 있다.

슬라보예 지젝은 말했다. "우리가 단호하게 거부해야 하는 것은 정치를 모든 긍정적인 기획을 포기하면서 단지 최악의 선택을 피하고 차악을 선택하는 것으로 전락시키는 피해의식에 가득 찬 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이다."

자유인은 언제나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가는 길이 어려운 게 아니라, 어려운 길이므로 우리가 간다."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에서 벗어나도록! 일거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묘책은 없다. 다시 강조하건대, 잡초는 없앨 수 없다. 다만 뽑을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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