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드림 팀 (The Dream Team) - 보이지 않는 것들과의 공조
김지오 지음 / 바른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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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살고 싶어서 산 세상이 아니었다고, 재욱은 생각한다. 살아야 하기 때문에 살았던 것뿐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들이 할 수 있는 건 살다가 죽거나 아님 살기 싫어 죽거나. 태어난 것이 내 선택이 아니었듯 죽음 역시 내 선택이 아니라는 생각에 아직 죽을 기회를 갖지 못한 것뿐이라고. 그래서 오늘도 꾸역꾸역 살아 내고 있다고.

p 138

오컬트 장르를 좋아해서 한 눈에 흥미를 느낀 책이었다. 거기다 추리물도 좋아해서 추리물+오컬트물?! 이건 읽어야 해, 했다. 읽으면서 뭔가 시나리오 같은 느낌을 받아서 이 책 영화화되겠다! 했는데 실제로 작가님이 쓰신 시나리오를 소설책으로 내셨다고.

<더 드림 팀>은 이승의 형사와 저승의 형사가 힘을 합쳐 두 세계를 오가는 범인을 검거하는 내용이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계는 2세계, 천국이라고 흔히 부르는 곳은 1세계, 그 외에도 3세계와 4세계가 있는데 세계관이 탄탄해서 책을 덮고 나서는 후속작이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읽으면서 영화같다는 느낌을 받아서인지 주인공 캐릭터들을 보며 떠오르는 배우들이 있었는데 호오옥시 영화화됐을 때 그 배우들이 역할을 맡는다면 참 기쁘겠다. 뭐~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ㅎㅎ

첫 파트에서부터 상당히 영문 모를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나중엔 다 알게 되겠지 하면서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재욱에게 동화되는 것을 느낀다. 재욱은 심 선생의 아들로, 쉽게 말하자면 무당의 아들이다. 그로 인해 어릴 때부터 온갖 손가락질과 괴롭힘을 견뎌야 했던 고난 많은 주인공이다. 심 선생은 야구에 재능이 있고 열정도 가졌던 재욱에게 너는 남의 손모가지 꺾어야 오래 산다는 수수께끼의 말을 하고, 불의의 사건으로 인해 야구를 접은 재욱이 형사일을 하게 되자 무척 기뻐한다. 어느 날은 얌전해 보이지만 고생 깨나 하며 자란 것 같은 여인을 데리고 와 재욱의 짝이라고 통보한다. 재욱은 자신의 인생이 자신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에는 이골이 날 대로 난 상태. 그가 지수를 받아들이지 않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어느 정도로 재욱이 지긋지긋해하냐면, 위 인용문이 재욱의 성격을 가장 잘 대변해준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과연 그런가.

'내'가 존재한다는 것. 그 존재가 나라는 걸 인지할 수 있다는 것. 그게 그렇게도 소중한 것일까.

p 214

생의 의미를 궁금해하면서도 거부하던 재욱은 수수께끼의 사건을 1세계의 형사들과 공조로 조사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변화한다. 지수와의 관계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더 이상의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말을 아낀다. 아무튼, 이 책은 관조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사는 게 뭔 의미가 있냐, 다 됐다, 하면서 소주 한 잔 따라 쓴 줄도 모르고 벌컥벌컥 들이키는 어르신 같다가도 후반부에 다다르면 어느새 푸근하게 웃으며 내 고민을 들어주는 어르신의 얼굴을 한다. 요즘 마음이 궁핍했는지 희한하게 '삶은 소중해~'라는 흔하다면 흔한 메시지가 느껴져서 위로를 받았다.

물론, 그냥 숨쉰다고 다 소중한 건 아니고, 너무 괴로워지지 않을만큼만 적당히 의미를 찾아헤매는 것이 삶일 것이다.

- 해당 포스팅은 바른북스 출판사의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더드림팀 #김지오 #바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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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장 아이패드 드로잉 - 일러스트레이터 보담의 디지털 감성 드로잉 클래스
보담(김보람) 지음 / 비타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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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순식간에 지나간 행복한 순간이나 가끔 꺼내 보고 싶은 날이 있어요.

저는 그런 기억을 더 오랫동안 간직하기 위해 그림을 그려요.

...

그림에 정답은 없어요.

내가 좋아하는, 나의 취향으로 가득한 그림을 그리는 것.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느린 행복 사이에서, 보담

사실 나는 예전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내가 '똥손'이라는 건 알았지만 무언가 손으로 하는 것을 잘 하고 싶다는 열망은 늘 가지고 있었다. 다른 건 끈기로 한다 쳐도 그림만큼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미술학원을 다니기에는 부끄러운 수준이고, 그렇게까지 전문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다이어리를 쓸 때 간단한 그림 몇 개 그려 넣을 정도면 됐다. 최근에는 웹툰 스쿨을 다녔는데 중도 포기한 가장 큰 이유는 내 수준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배우기 때문이었다. 웹툰을 하나 완결내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수업이었는데 그 말을 들은 순간부터 한참을 고민했다. 몇 주에 걸쳐 고민해도 뭘 그리고 싶은지,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뭘 그리려고 하든 내 실력이 발목을 잡으리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와중에 이 책을 알게된 건 아주 잘된 일이었다. 전에 다음에서 연재하시던 <옥탑빵>을 너무 잘 보았는데 그 작가님 책이라고 해서 흥미가 갔다. 그래서 아이패드도 없는데 덥썩 읽게 됐다.

왠지 손그림으로라도 따라 그려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다를까 정작 책을 받고 난 뒤에 며칠은 손도 대지 않았다. 해보지 못한 것을, 결과가 뻔한 것을 시도하는 것에는 늘 젬병이었다. 서문이나 한 번 볼까 했는데 작가님의 그림처럼 따뜻한 여는 글이 용기를 심어 주었다.


일단 집에 있던 노트를 꺼내 연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결과는............(숙연)

어려운 그림도 아닌데 상당히 비뚤어진 그림을 보자니 웃겼다. 혹시나 해서 색연필도 꺼내 왔다.


나름 그럴듯해진 그림.

모카포트.. 써본 적은 없지만 한 번 써보고 싶은 도구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럴듯하게 그려져서 작가님 말씀대로 완성도가 높아보이게 하려고 나뭇잎을 그렸는데...

ㅎ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래도 나름 희망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도전한 행잉 식물은 제법! 그럴 듯.

만족스러워서 이만큼만 하고 멈추었다. 지금은 노트에 색연필로 서툴게 끄적거리는 것에 불과하지만 언젠가는 ? 아이패드를 구입해 책에 있는 그림을 연습하고, 조금 실력이 늘어나면 손이 가는대로 나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다. 그리고 또 언젠가는 그것으로 문구를 제작해보고 싶기도 하다. 내가 요즘 가장 빠져있는 취미가 다이어리 꾸미기이기 때문에 내가 만든 제품으로 다이어리를 꾸미는 것도 무척 보람있는 일이 될 것 같다.

집에만 있다 보니 할 수 있는 일이 적어졌지만 또 반대로 하지 않거나 못하던 일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긍정적인 변화인 것 같다.



해당 포스팅은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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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허밍버드 클래식 M 4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윤도중 옮김 / 허밍버드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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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친구야, 약속한다. 내 처신을 고쳐 가겠다. 운명이 우리에게 던져 주는 작은 불행을 지금까지는 항상 곱씹었지만,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 현재를 즐기고 과거는 지나간 것으로 돌려 버리겠다.

p8-9

베르테르는 어릴 때도 만난 적이 있는 청년이다. 초등학생 때 어린이 대상으로 출판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 땐 이 사람 참.. 예민하네.. 하면서 (지가 그렇게 자랄 줄은 모르고) 꾸벅꾸벅 졸며 읽은 기억이 난다. 결말이 충격적이라 이 책 만큼은 어릴 때 읽었다는 사실이 뇌리에 선명하게 남았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며 언젠가 이 궁핍한 생명도 끝이 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릴 때부터 알게 되지만 그 시기는 저마다 다르다. 나에게는 베르테르가 그것을 알려준 인생 선배였다. 베르테르는 인간의 삶은 끝이 있으며 종종 누군가는 아직 때가 되지 않아도 자진해서 끝맺음을 짓기도 한다는 걸 알려주었다. 그 때 알았다. 결코 되돌릴 수 없고 슬픈 일은 이 세상의 건너편으로 돌아가게 되는 일이라는 것을.

허밍버드 출판사에서 새로 완역본이 나왔다기에 궁금했는데 받아본 책은 생각보다 얇고 조그마했다. 어릴 때 지루하게 읽은 기억이 있어서 두께가 꽤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베르테르의 편지는 꽤나 적은 편이었다. 그는 가장 처음 수록된 편지에서 위와 같이 말했다. 다시 힘을 내서 현재를 살아보겠다고. 아마 그의 우울증은 생각보다 오래, 지독했던 모양이다. 그는 과거를 계속 생각하고 돌이킬 수 없는 것을 후회하고 그리워한 것이 틀림없다. 대부분의 인간은 과거를 추억하고 그리워하기 때문에. 그리고 과거를 꿈결처럼 걸으며 살 때 지독한 무력감과 우울감이 찾아온다. 우리는 어찌 되었든 현재에 발을 딛고 살아야 하며 눈은 가깝든 멀든 미래를 향해 고정되어 있어야 그냥 남들 사는 만큼이라도 살 수 있다. 결국 과거가 아름다운 이유는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 또한 그것을 깨달은 건 얼마 되지 않아서 한동안은 과거를 그리워하고 허우적대며 살았다. '그 때 참 좋았지'가 아니라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무척 고통스러워했다. 베르테르처럼 사랑에 온 마음을 바치는 편이라서 사랑이 끝날 때마다 속앓이를 하며 숱한 가정법을 사용했다. 영화 <라라랜드>의 마지막 5분이 사람들의 눈물을 쏙 빼놓았듯이, 우리는 수도 없이 많은 순간을 떠올리며 '만약'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짓는다. 비로소 내 캐비닛 속에 든 펜시브를 미련 없이 버리게 된 지금은 무척 평온하고 홀가분하다. 과거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할 때에만 떠올린다. 그 정도로도 충분하니까.




나도 취해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나를 사로잡은 격정은 광기와 별로 다르지 않았지. 그러나 나는 이 두 가지 다 후회하지 않아. 왜냐하면 예로부터 뭔가 위대한 일,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성취해 낸 비범한 인물 모두가 취한 사람, 미친 사람으로 매도되었다는 사실을 내 나름으로 알아차렸기 때문이지.

p82

베르테르는 어쩌면 인프피가 아닐까? 읽으면서 한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인프피라서 무척 공감되었기 때문에....는 mbti 과몰입자의 tmi..ㅎ 아무튼 중후반부에 다다를수록 베르테르는 이 시대에서 적응하기에 무척 고되었을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하위 귀족 정도인 것 같은데, 무척 중간의 사람이었다고나 할까. 고위 귀족들만 모이는 파티에서는 무시를 당하고 일반 백성들은 그를 귀하신 분이라고 부르며 어려워한다. 그나마 농촌에 지내며 만난 농부들과는 금세 어우러져 지냈지만, 베르테르는 도성에서 일을 하게 되었을 때 고위 귀족들을 경멸하게 된다. 이 사실만 봐도 신분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던 당시 사회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는 도시에 가 일을 하기 전 시골에 머무를 때 로테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 그가 도시로 떠난 이유도 이 여인이었다. 어머니를 여의고 어린 동생들을 위해 어머니 역할을 도맡아하는 로테에게 사랑을 느낀 베르테르는 그에 대한 타오르는 마음을 절절하게 편지에 적는다. 매일같이 그를 보러 가 베르테르에게 달려드는 어린 동생들을 로테와 함께 안아주고 이야기를 들려주며 제법 평화로운 나날을 보낸다. 그러다 로테에게 약혼자, 알베르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하자 베르테르의 평온은 깨질 수밖에 없는 곤경에 처한다. 세 사람은 서로의 감정을 알고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만(솔직히 이해 안 됨) 알베르트와 베르테르의 의견 차이로 인해 관계가 틀어진다. 이성적인 알베르트와 감성적인 베르테르의 창과 방패 급 대결은 결국 냉전으로 끝을 맺는데, 개인적으로는 베르테르의 손을 들어주고 싶었다. 대화의 내용은 대개 베르테르의 공감 능력과 동정심을 알베르트가 이성적이지 못하다고 비웃는 흐름이었기 때문이다. 공감 능력은 지능의 문제라고 굳게 믿는 사람으로서, 알베르트가 얄미웠다.

로테는 베르테르를 사랑했을까, 알베르트를 사랑했을까? 알베르트와 있을 때면 온유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유지할 수 있었고 (고인이 된 어머니와의 추억도 공유할 수 있었다) 베르테르와 있을 때면 감정적 교류와 데일 듯 뜨거운 애정을 듬뿍 받을 수 있었다. 현재 로맨스 장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메인 남주와 서브 남주의 치열한 대결구도 같은 느낌도 나고. 그렇게 생각하면 고전이지만 지금도 널리 읽힐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든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고전을 읽고 나면 왠지 모를 충만감이 느껴진다. 단박에 읽히지 않는 글을 기어이 읽어냈다는 성취감과 시대를 아우르는 통찰이 반갑다. 이 때나 지금이나 사는 게 참 고민이구나, 싶고 뜻밖에도 먼 옛날의 사람에게 위로를 받는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문득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다시 읽고 싶었고, 도서관 날짜에 맞추느라 미처 다 읽지 못한 헤르만 헤세의 <밤의 사색>, 또 철학 서적이 읽고 싶었다. 삶의 의미를 너무 깊이 고민하다간 모든 것을 내려둔 채 베르테르같은 선택을 하고 싶어지지만 적당한 사유는 과거에 머무르고 싶어 머뭇거리는 걸음을 앞으로 내딛게 하는 밑거름이 되리라고 오늘도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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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역사 - 말과 글에 관한 궁금증을 풀다
데이비드 크리스털 지음, 서순승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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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언어로 바보짓을 한다. 갓난아기 앞에서가 대표적인 경우다. 그렇다면 어떻게 언어로 바보짓을 할까?

아기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p 9

꽤 오래 글을 쓴다고 뽀작대서 그런지 책 읽는 이미지가 생겨서(?) 주변에서는 내가 어느 정도 상식을 탄탄히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니다. 어릴 때부터 소설을 좋아해서 장르 안 가리고 읽은 덕에 (그 와중에도 공백기가 있어서.. 꾸준히 읽은 것도 아님) 아주 조금씩 대충 무슨 말이구나 하고 눈치챌 정도의 귀동냥 정보만 조금 있다. 옛날엔 친구들이 잡학다식하다고 한 적도 있다. 이사하고 난 뒤 티빙으로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두고 밥을 먹는 게 습관이 되었는데 그 중에는 '알쓸신잡'도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전공한 분야에 대해 막힘없이 술술 이야기하고 그 와중에 더 응용한 이야기를 나누는 잡학박사님들을 보며 정말 오랜만에 학구열을 느꼈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긴 했는데 내가 뭔가를 줄줄이 설명할 수 있나? 생각해보니 딱히 없는 것 같아 머쓱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교양 서적을 읽고 지식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솔직히 읽는 족족 뇌를 스쳐가기만 하는 정보들을 보니 한 번 읽어서는 안 될 것 같지만... 그런 면에서 이번에 읽은 책은 생각보다 작가의 유쾌한 문체로 인해 그리 어렵게 다가오지 않았다. 특히 책의 첫마디를 보면, 언어의 역사를 설명한다는 책이 '우리는 종종 언어로 바보짓을 한다'고 하다니. 어떻게 흥미를 끄는지 아주 잘 아는 작가라고 생각했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전자 혁명 부분이었다.

일단 삽화가 정말 혁명적이다. 의자에서 뒤로 나자빠지게 생긴 일러스트를 보니 웃겨서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이 챕터를 읽다 보니 문득 내가 전자 혁명에 잘 적응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세대는 완벽하게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사이에 놓여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름 양 쪽을 겪어 본 세대인 것이다. 수업시간에 친구의 손과 손을 거쳐 오가던 쪽지를 떠올려 보자. 대부분의 내용은 '이번 시간 끝나고 매점 콜?' 정도였다고는 해도, 대화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고 (특히 선생님한테 걸려서 벌 받을 확률 높음) 문장 구조가 웬만큼 지켜지는 상태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반면 요즘 같은 경우, 선생님 눈을 피해 카카오톡 메신저를 보낼 경우 즉각적인 대화가 가능할 뿐 아니라 몇 개의 청크(언어 학습자가 한꺼번에 하나의 단위처럼 배울 수 있는 단어들의 덩어리)를 활용한다. 우린 점점 대면하지 않은 상태로 대면한 것에 가장 가까운 대화를 구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영화 콘택트에서도 '언어'라는 것이 인간의 삶에, 의식 체계에, 문화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를 서사한 바가 있는데 이 책을 읽고도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언어 속에는 많은 약속과 체계가 녹아들어 있는 셈이다. 그러니 한 번쯤 언어를 공부해본다는 건, 결국 우리 자신을 공부하고 이해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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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소녀 1
김종일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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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개심으로 번뜩이던 시선들은 줄었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그 무심한 얼굴들이 드러낸 네 글자의 심리가 절로 와 닿았다. 아, 님, 말, 고.

p 238

어릴 때부터 판타지 장르를 좋아해서 그런 종류의 책을 무척 많이 찾아 읽은 기억이 난다. 시립 도서관 어린이 자료실 구석에 놓인 명당 소파에서 뒹굴거리며 웅진주니어 시리즈를 탐독했다. <마루 밑 바로우어즈>, <마녀가 우글우글>, <마틸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 <꼬마 마녀> 등 유명한 외국 작가들의 책을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읽었다. 조금 더 머리가 큰 후에는 <크라바트>, <모모>, <끝없는 이야기> 등이 있는 비룡소 걸작선을 정복했다. 비밀이지만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나 본가에 가면 책장을 들춰보곤 한다. 이제는 누렇게 바랜 책일 뿐이지만, 언젠가 내 서재가 생긴다면 추억의 책들도 사다 꽂아두고 싶다.

그렇게 책을 좋아하며 많이 읽었어도 늘 마음 한 구석에 아쉬움은 있었다. 추리 소설, 스릴러 등 장르 소설을 닥치지 않고 읽어댔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 나라 작품은 별로 없다는 게 아쉬웠다. 아무래도 외국 작가들의 작품은 정서상 이해가 쉽지 않기 때문. 예를 들면, 우리 나라라면 바둑이나 장기를 두었을 상황에 <해리포터>에서는 마법사 체스를 둔다. 마법을 부리는 건 차치하고서라도 체스라는 낯선 게임이라니. 실제로 나는 체스라는 게임을 해리포터로 처음 접해 엄마를 졸라 조그만 체스 세트를 마련하기도 했다. 동생이랑 두어 번 가지고 놀다 방치해 뒀었지만.

그 갈증은 성인이 되어서도 통 풀리지는 않았다. 요즘 조금씩 해갈이 되는 건, 우리 나라도 장르 문학 작가들이 많아진다는 거다. 로맨틱 코미디가 주를 이루던 드라마 판도 점점 장르물이 대세가 되고 있다. (아싸) 그런 의미에서 <마녀의 소녀>는 몹시 현실적인 판타지였다. 언뜻 말이 안 맞지만, 지극히 한국적이라고 해야 하나? 주인공 나린의 시선을 쫓으며 상황이 흘러가는 것을 보면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현실적이다. 위에 인용한 문장은 나린이 누명을 쓰고 '마녀사냥'을 당한 뒤 누명이 벗겨진 직후의 상황인데, '아님 말고'라는 말이 소름돋을 정도로 현실적이었다. 그리고... 서평 쓰기도 참 민망하지만 1권은 아침 드라마처럼 결정적인 부분에서 툭 끊겨서 다음 권을 구해 읽어야 한다. (궁금해 미침)

계속 이년저년 하는 게 거슬리긴 했는데, 캐릭터들이 저마다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주인공 나린은 뭔가 2권에서 반전이 있을 것 같은 느낌.. 진희가 오히려 빌런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은?! 근데 1권에서는 진희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다. 판타지지만 마냥 유치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건 '마녀'라는 소재가 꽤 오묘하게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소설 곳곳에서 등장하는 염력이나 주술은 환상의 측면이고, 누명을 쓴 나린에게 밀어닥치는 원색적인 비난 즉 마녀사냥은 현실의 일면이다. 계속해서 '호루스의 눈'이 등장하는데, 예전에 재밌게 본 <꼬마마녀> 생각이 나서 발푸르기스의 밤을 검색해 봤는데 그 문양이 나오는 것을 보니 마녀와 호루스의 눈이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이 또한 2권에서 알 수 있겠지.........ㅠ

조만간 2권도 읽고 포스팅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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