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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그녀들의 도시 - 독서 여행자 곽아람의 문학 기행
곽아람 지음 / 아트북스 / 2025년 8월
평점 :
본 포스팅은 리뷰어스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나는 어릴 때 제법 상상력이 뛰어난 아이였다. 그 이유의 팔할 이상은 당연히 게걸스럽게 탐독하던 무수한 책들 덕분이리라. 맞벌이인 부모님 슬하에서 자랐고, 조부모님의 손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구수한 된장국에 반찬투정도 별로 하지 않고 밥 한 공기를 싹 비우고 나면 대개 자유시간이었다. 감시할 엄마가 없는 자유! 그 시간이 도래하면 동생은 대개 애니메이션을 보았고, 나는 대개의 경우 정신없이 읽다 중단해둔 책을 집어들었다. 별명이 '문학소년'이었다던 아빠와 우리의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엄마는 내 손에 책이 마를 일이 없게끔 노력했다. 헌책방 거리에 가서 차 트렁크 가득 헌책 꾸러미를 사오고, 일 주일에 두 권씩 배송되는 아동도서 배달 서비스를 주문하고, 시립도서관에 온 가족의 대출증을 오남용해가며 스무 권 가량의 책을 빌려왔다. 헌책은 차근차근 읽은 책 책장으로 향했고, 아동도서 배달 서비스는 완독한 책이 오는 경우가 잦아져 취소했고, 시립도서관에서 연체되는 일은 없었다.
내가 가장 처음으로 읽은 장편소설은 <해리포터>였다. 내 또래들은 대개 그랬을 거라고 감히 추측한다. 그 책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당연히 재미가 1순위였지만, 그보다도 상상력을 자극하는 해리포터 세계관의 모든 요소들이 대단한 자극이 됐다. 머릿속에서 빗자루를 타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호그와트 학생들을 헤치고 들어가면 저 구석에서 벽에 머리를 박는 도비를 말리는 해리포터가, 2층 계단에서 한껏 꾸민 차림으로 사뿐사뿐 내려오는 헤르미온느가, 소망의 거울을 꿈꾸는 표정으로 들여다보며 중얼거리는 론이 있었다. <해리포터> 영화가 차근차근 개봉하면서 내가 상상하던 이미지는 흐려졌지만, 그 이후로도 책 속의 인물들에 상상하는 것이 무척 즐거웠다. 나는 망상을 즐기는 아이가 됐다.

나와 흡사한 아이, '빨간 머리 앤'을 그래서 좋아했다. <빨간 머리 앤> 시리즈는 비록 완독하지 못했으나(3권 정도에서 멈춘 기억이 있다. 성인이 된 지금 다시 도전할 계획) <키다리 아저씨>는 출판사 별로 찾아 읽었고, <작은 아씨들>이나 <안네의 일기>,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 등 스테디 셀러이자 당차고 똘똘한 소녀들이 주인공인 책을 자주 읽었다. 섬세하게 묘사되는 그들의 생활이 마치 지금의 브이로그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고 즐거웠다. 하물며 <안네의 일기> 속 안네마저도.(어렸고, 홀로코스트를 잘 몰랐기에 어쩌면 가능했을지도)
<초원의 집> 시리즈나 <클로디아의 비밀>도 기억에 남는 책 중 하나인데, 가장 큰 이유는 잘 알지도 못하는 공간을 최대한 적극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한껏 펼쳐주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와 그녀들의 도시> 속 저자가 프린스에드워드 아일랜드에 도착했다는 묘사에서 심장이 절로 뛰었다. 매슈의 마차에서 꿈을 꾸는 듯한 눈으로 앤이 종알거리던 바로 그 길, 바로 그 호수, 바로 그 나무를 보았다고 했다. 와! 나는 나도 모르게 탄성을 뱉었다.
길고 긴 세월이 지나자 나는 더이상 상상력을 찾아보기 어려운 어른이 되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가 그랬듯이 책 속에 묘사된 지역에 방문하게 된다면, 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 듯했던 발칙한 상상력이 다시 고개를 빼꼼 내밀지는 않을까?
'나의 문학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저자를 따라하듯, 나도 내가 사랑하는 책에서 묘사하는 거리와 공원과 해변을 거닐어보고 싶다. 아니, 거닐어볼 계획이다.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