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테르는 어쩌면 인프피가 아닐까? 읽으면서 한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인프피라서 무척 공감되었기 때문에....는 mbti 과몰입자의 tmi..ㅎ 아무튼 중후반부에 다다를수록 베르테르는 이 시대에서 적응하기에 무척 고되었을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하위 귀족 정도인 것 같은데, 무척 중간의 사람이었다고나 할까. 고위 귀족들만 모이는 파티에서는 무시를 당하고 일반 백성들은 그를 귀하신 분이라고 부르며 어려워한다. 그나마 농촌에 지내며 만난 농부들과는 금세 어우러져 지냈지만, 베르테르는 도성에서 일을 하게 되었을 때 고위 귀족들을 경멸하게 된다. 이 사실만 봐도 신분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던 당시 사회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는 도시에 가 일을 하기 전 시골에 머무를 때 로테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 그가 도시로 떠난 이유도 이 여인이었다. 어머니를 여의고 어린 동생들을 위해 어머니 역할을 도맡아하는 로테에게 사랑을 느낀 베르테르는 그에 대한 타오르는 마음을 절절하게 편지에 적는다. 매일같이 그를 보러 가 베르테르에게 달려드는 어린 동생들을 로테와 함께 안아주고 이야기를 들려주며 제법 평화로운 나날을 보낸다. 그러다 로테에게 약혼자, 알베르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하자 베르테르의 평온은 깨질 수밖에 없는 곤경에 처한다. 세 사람은 서로의 감정을 알고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만(솔직히 이해 안 됨) 알베르트와 베르테르의 의견 차이로 인해 관계가 틀어진다. 이성적인 알베르트와 감성적인 베르테르의 창과 방패 급 대결은 결국 냉전으로 끝을 맺는데, 개인적으로는 베르테르의 손을 들어주고 싶었다. 대화의 내용은 대개 베르테르의 공감 능력과 동정심을 알베르트가 이성적이지 못하다고 비웃는 흐름이었기 때문이다. 공감 능력은 지능의 문제라고 굳게 믿는 사람으로서, 알베르트가 얄미웠다.
로테는 베르테르를 사랑했을까, 알베르트를 사랑했을까? 알베르트와 있을 때면 온유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유지할 수 있었고 (고인이 된 어머니와의 추억도 공유할 수 있었다) 베르테르와 있을 때면 감정적 교류와 데일 듯 뜨거운 애정을 듬뿍 받을 수 있었다. 현재 로맨스 장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메인 남주와 서브 남주의 치열한 대결구도 같은 느낌도 나고. 그렇게 생각하면 고전이지만 지금도 널리 읽힐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든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고전을 읽고 나면 왠지 모를 충만감이 느껴진다. 단박에 읽히지 않는 글을 기어이 읽어냈다는 성취감과 시대를 아우르는 통찰이 반갑다. 이 때나 지금이나 사는 게 참 고민이구나, 싶고 뜻밖에도 먼 옛날의 사람에게 위로를 받는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문득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다시 읽고 싶었고, 도서관 날짜에 맞추느라 미처 다 읽지 못한 헤르만 헤세의 <밤의 사색>, 또 철학 서적이 읽고 싶었다. 삶의 의미를 너무 깊이 고민하다간 모든 것을 내려둔 채 베르테르같은 선택을 하고 싶어지지만 적당한 사유는 과거에 머무르고 싶어 머뭇거리는 걸음을 앞으로 내딛게 하는 밑거름이 되리라고 오늘도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