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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여신 - 사납고 거칠고 길들여지지 않은 여자들의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외 지음, 이수영 옮김 / 현대문학 / 2024년 10월
평점 :

이따금 단편집을 읽는다. 예전에는 단편집을 읽는 일이 힘들었는데 요 몇 년 새 꽤나 적응이 되었다. 단편집의 매력은 다양한 배경의 다양한 인물을 단권으로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사람의 인생 한 조각을 훔쳐보는 기분이다. 특히 그 인물들이 어느 정도 나와 닮아 있을 때, 물렁하게 흔들리던 심지가 단단해지는 것을 느낀다. 연대감은 인간을 그렇게 만든다.
<복수의 여신>에는 여성에게 붙은 숱한 단어들을 주제로 쓴 단편이 묶여 있다. 서문에서 소개한 단어들(Virago, Siren, Wench, Hussy, Harridan 등)을 보다가 헛웃음이 나왔다. 더불어 한자를 자세히 들여다보았을 때 부정적인 단어에는 주로 '계집 녀'(일단 계집이라는 말 부터가^^) 부수를 쓴다는 게 떠올랐다. 문화권이 달라도 일맥상통하는 게 있었다. 이런 공통점을 알고 싶지는 않았지만.

가장 유쾌하게, 그리고 공감하며 읽은 단편은 'Termagant'라는 단어에서 출발한 엠마 도노휴의 [가사 고용인 노동조합]이었다. 일단 시작부터 신선했다. 신문 광고란에 실린 공개 구혼을 관심 있게 보는 주인공의 모습은 연애 프로그램을 보며 웃겨하는 내 모습같았다. (사실 연애 프로그램을 본 적은 없다... 내 취향이 아님)
부유한 독신 여성의 집에서 가사 고용인으로 일하는 주인공, 캐슬린은 테머건트라는 단어에서 주는 느낌 그대로의 여성이다. 그는 최초로 '가사 고용인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자신에게 주어지는 불합리에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그도 평범하게 적당한 남자와 약혼을 한 상태다. 그럭저럭 괜찮은 면만을 들여다 보면서.

캐슬린은 늘 '싸움꾼'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먼 과거의 시간에 사는 캐슬린은 지금의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도 목소리를 높였다가는 '드세다', '사납다', '여자같지 않다' 등의 말을 듣고 살지 않는가? 캐슬린의 고용주는 그런 캐슬린의 성정을 높이 산다. 애초에 노동조합을 만든다는 말에도 별반 다른 말을 하지 않은 점만 봐도 그렇다. 소설의 말미에는 캐슬린의 든든한 연대자이자 후원자가 된다.
약혼자에 대해 고민하는 캐슬린을 보면서(아무래도 보이는 단점들에 이 남자와 평생을 살 수 있을지 고민하는 면 또한 지금의 우리와 얼마나 비슷한가!) 정상성과 탈선 사이에서 고민하는 내 모습을 보았다. 무심코 정상성을 좇게 되는 '정상적인' 사회를 떠올린다. 나만 다르게 지내는 것이 정말 괜찮은지, 이따금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데 전사 같은 캐슬린을 보며 마음 한 구석이 든든해졌다.
다시 서문으로 돌아가 여성을 폄하하는 단어들을 훑어보았다. 여성을 폄하하는 단어는 대개 늙었거나, 방탕하거나, 남성들이 거들떠보지 않거나, 추하거나, 감정적이라는 이유에서 쓰였다. 그렇다. 고작 이런 이유다. 책을 덮으면서 나도 모르게 미소가 떠올랐다. 그 어떤 것도 내 본질을 흐트러뜨릴 단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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