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판타지 장르를 좋아해서 그런 종류의 책을 무척 많이 찾아 읽은 기억이 난다. 시립 도서관 어린이 자료실 구석에 놓인 명당 소파에서 뒹굴거리며 웅진주니어 시리즈를 탐독했다. <마루 밑 바로우어즈>, <마녀가 우글우글>, <마틸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 <꼬마 마녀> 등 유명한 외국 작가들의 책을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읽었다. 조금 더 머리가 큰 후에는 <크라바트>, <모모>, <끝없는 이야기> 등이 있는 비룡소 걸작선을 정복했다. 비밀이지만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나 본가에 가면 책장을 들춰보곤 한다. 이제는 누렇게 바랜 책일 뿐이지만, 언젠가 내 서재가 생긴다면 추억의 책들도 사다 꽂아두고 싶다.
그렇게 책을 좋아하며 많이 읽었어도 늘 마음 한 구석에 아쉬움은 있었다. 추리 소설, 스릴러 등 장르 소설을 닥치지 않고 읽어댔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 나라 작품은 별로 없다는 게 아쉬웠다. 아무래도 외국 작가들의 작품은 정서상 이해가 쉽지 않기 때문. 예를 들면, 우리 나라라면 바둑이나 장기를 두었을 상황에 <해리포터>에서는 마법사 체스를 둔다. 마법을 부리는 건 차치하고서라도 체스라는 낯선 게임이라니. 실제로 나는 체스라는 게임을 해리포터로 처음 접해 엄마를 졸라 조그만 체스 세트를 마련하기도 했다. 동생이랑 두어 번 가지고 놀다 방치해 뒀었지만.
그 갈증은 성인이 되어서도 통 풀리지는 않았다. 요즘 조금씩 해갈이 되는 건, 우리 나라도 장르 문학 작가들이 많아진다는 거다. 로맨틱 코미디가 주를 이루던 드라마 판도 점점 장르물이 대세가 되고 있다. (아싸) 그런 의미에서 <마녀의 소녀>는 몹시 현실적인 판타지였다. 언뜻 말이 안 맞지만, 지극히 한국적이라고 해야 하나? 주인공 나린의 시선을 쫓으며 상황이 흘러가는 것을 보면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현실적이다. 위에 인용한 문장은 나린이 누명을 쓰고 '마녀사냥'을 당한 뒤 누명이 벗겨진 직후의 상황인데, '아님 말고'라는 말이 소름돋을 정도로 현실적이었다. 그리고... 서평 쓰기도 참 민망하지만 1권은 아침 드라마처럼 결정적인 부분에서 툭 끊겨서 다음 권을 구해 읽어야 한다. (궁금해 미침)
계속 이년저년 하는 게 거슬리긴 했는데, 캐릭터들이 저마다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주인공 나린은 뭔가 2권에서 반전이 있을 것 같은 느낌.. 진희가 오히려 빌런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은?! 근데 1권에서는 진희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다. 판타지지만 마냥 유치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건 '마녀'라는 소재가 꽤 오묘하게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소설 곳곳에서 등장하는 염력이나 주술은 환상의 측면이고, 누명을 쓴 나린에게 밀어닥치는 원색적인 비난 즉 마녀사냥은 현실의 일면이다. 계속해서 '호루스의 눈'이 등장하는데, 예전에 재밌게 본 <꼬마마녀> 생각이 나서 발푸르기스의 밤을 검색해 봤는데 그 문양이 나오는 것을 보니 마녀와 호루스의 눈이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이 또한 2권에서 알 수 있겠지.........ㅠ
조만간 2권도 읽고 포스팅하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