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포포 매거진 POPOPO Magazine No.03 - IN IT TOGETHER
포포포 편집부 지음 / 포포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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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잡지를 읽었다.

잡지라 함은 저마다 소소하게 가진 이야기들을 모아 발행한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에는 <와와109>같은 잡지를 읽으면서 (사실 부록에 더 열광했지만) 잡다한 지식과 어설프게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웠다. 학생 때는 학교 교지편집부가 발행하는 교지를. 백일장에 참여해 상을 받게 되면 꼭 그 교지에 실렸기 때문에 늘 설레는 마음으로 펼쳐보는 책이기도 했다. 대학교에 다니면서부터는 가끔 심심하면 본부나 정문에 비치된 <대학내일>을 가져다 표지 모델이 예쁘다, 감탄하며 화보집을 보는 기분으로 들춰보기도 했다. 친구 J와 친해지고 나선 그가 좋아하는 <어라운드>를 빌려 읽은 적이 있었는데, 웬만한 단행본 두께라 신선했던 기억이 난다. 또 <대학내일>과는 달리 광고가 적고 정해진 주제에 충실한, 에디터들의 수려한 문체에도 매혹됐었다. 그 친구는 직접 독립 잡지를 발행하기도 했는데, 덕분에 고맙게도 게스트 에디터로 참여할 기회를 얻기도 했다.

어느샌가 머릿속이 복잡해 책을 열정적으로 빠져 읽지 않다보니 소설보다 잠들기 전 침대맡에서 들춰보기 용이한 에세이에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잡지 또한 어떤 면에서는 에세이를 싣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포포포 매거진>이 엄마들을 위한 책이라는 설명을 듣자 흥미가 생겼다. 처음 받아든 느낌은 일단 디자인이 무척 예쁘다는 것? '힙'했다. 내용이 궁금해서 펼쳐봤는데 단순히 기혼 여성들의 이야기만을 다룬 것은 아니고 코로나, 환경에 대한 이야기 또한 다루고 있어 최근 내가 관심을 가진 영역 모두가 포함된 책이었다.




만약 얼굴을 그리다 뭔가를 망쳤다면, 안경을 그려 넣고, 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장갑을 덧그릴지도 모르죠. 그 과정을 통해 발생한 각각의 실수는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으로 이끌었어요.

p 18 정유미, 'New start from mistakes'

위 그림을 그린 코리나 루켄이 한 말이다. 그는 한국어로는 <아름다운 실수>라고 번역된 책을 출간했다. 책이 궁금해서 찾아보니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동화책이라고 한다. 위 그림 또한 그 책의 삽화 중 하나. 고민하다가 일단 장바구니에 넣어 두었다. 완벽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 바엔 시도하지 않고 포기해버리는 내 성격에 꼭 필요한 말이다. 실수는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으로 이끈다는 말. 또한 취업 혹은 등단 준비가 길어지면서 갖은 실패에 주눅든 것 같은 내 상황에 필요한 말이기도 했다. 내가 실패한 게 아니라 나를 알아보지 못한 그들이 실수했다고 생각하면, 뻔뻔하지만 마음만은 편해진다.

다양한 '엄마'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공감하기도 했고 나의 엄마를 떠올리기도 했고 엄마가 될지도 모르는 친구들과 미래의 나를 떠올렸다. 확실한 건 그 누구보다도 '엄마'의 역할을 수행하기란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는 웬만한 엄마들에게는 훌륭하다는 수식어를 붙여주지 않는다. 그 '웬만한' 엄마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식구들의 아침밥을 차리고 외출해야 할 식구들을 배웅하고 어린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를 돌보며 하루 종일 집을 쓸고 닦고 빨래도 하고 점심 저녁도 챙겨야 하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정 주부가 아니고 맞벌이 부부일 경우에도 마찬가지.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여성이 가사를 도맡아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남성이 가사에 참여하는 행위는 '도운다'는 말로 격상되기 일쑤다. 그러니 '엄마'의 역할이란 무척 고난이도의 퀘스트임에 틀림이 없다.

또한 'Climate crisis and consciousness'라는 글을 무척 흥미롭게 읽었는데,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가며 탐독했다. 신문을 구독하려다 실패해서 정보성 글을 읽으니 무척 반가웠다. 글의 요지는, 산업 혁명으로 인해 환경 오염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졌는데 코로나로 인해 경제활동이 위축되면서 오히려 환경 오염 속도가 낮아졌으며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재앙이 닥치기 전에 우리가 조금씩이라도 실천하여 환경 오염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로웨이스트 클럽'이라는 글은 일전에 <쓰레기 제로 라이프>를 읽으며 느꼈던 감정을 적어놓은 듯한 글이었다. 우리가 당장 실천하기 힘든 제안 대신 한결 가깝게 여겨지는 방법들이 적혀 있어 도움이 됐다.

사실 어느 하나 언급할 수 없게 모든 글이 좋았고 저마다의 관점들에 공감이 됐고 많은 것을 배웠다. 직접 요리해 먹고 검소하게 사는 법을 익혀 혼자 살아갈 숱한 날들에 대비하기로 마음먹은 후로, 오히려 제로 웨이스트적인 삶이 잘 맞으리라는 걸 알게 됐다. 지금은 아직 초보 수준이지만 언젠가는 나 또한 타인들에게 행동을 전파하기 위해 글을 기고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다음 호의 주제는 무엇일지 기대가 된다. 이제 3호 나왔다고 하니 나올 때마다 사서 모아볼까, 싶다.

해당 포스팅은 카페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잡지 #포포포매거진3호 #포포포매거진

#여성주의 #코로나 #COVID19 #제로웨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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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
안바다 지음 / 푸른숲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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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쩍 여행 욕구(?)에 시달리고 있다. 잠깐 장을 보러 나가거나 볼 일이 있어 나갈 때면 지금 타고 있는 버스를 타고 최대한 멀리 떠나는 상상을 한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선선하고 햇빛은 많이 누그러져서 가냘파진 상상력을 마음껏 펼치기에 좋은 계절이 되었다. 지금 이 계절에 갈 곳이라면 경주나 강릉. 조금 더 쌀쌀해지면 대천이나 통영에 가고 싶다. 원래는 귀차니즘이 심해서 여행을 그리 즐기지 않았었는데, 어느 순간 내게 중요한 힐링 수단이 됐다. 어쩔 수 없이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나에게, 이 책은 당연히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우리가 아무래도 당분간 여행을 못 갈 것 같으니 (기약도 없으니) 그동안은 한 번도 제대로 눈길을 준 적이 없는 집으로 떠나보자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이론대로라면 내 집을 보살피며 살펴보는 것도 일종의 여행이라고 볼 수 있겠다, 싶었다.




음식을 먹는 이가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우리는 그 번거로운 일을 한다.

p 116



이 책은 현관, 거실, 의자, 침대(침실), 전등, 화장실, 주방, 창고, 서재, 거울, 냉장고, 발코니 순으로 집을 '일주'한다. 일반적으로 '집' 했을 때 떠올리는 사물과 공간을 모두 경유한 셈이다. 나는 침대에 편안히 늘어진 채 작가의 안내에 따라 이동했다. 비록 내 집은 고작 8평의 침실 겸 거실 겸 주방 겸 창고와 화장실, 베란다가 딸린 원룸이지만 나중에 살게 될 집이 기대가 됐다. 언젠가 정말 '내 집'이 될 집. 내 손으로 속속들이 꾸미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들이고, 내키지 않는 건 가차없이 발도 못 붙일 유일한 공간. 그리고 이 책 덕분에 나는 그 집을 일찍부터 구상할테고 현실이 되었을 때 그 안에서 많은 사유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주방 파트에서 요리하는 것에 대한 문장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요즘, 아니 이 집에 오면서부터 무엇이든 직접 해먹어보려고 부단히 애를 쓰는 중인데 특히 요즘 대자연의 섭리와 함께 아주, 아주, 잘 챙겨 먹는 와중에 되려 몸이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전에 혼자 살 때는 주방이 너무 협소한 것도 있었지만 마음도 스스로를 돌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먹는 것을 무척 소홀히 했었다. 하루에 한 끼 정도 배달시켜 먹거나 나가서 사 먹거나. 한 끼만 먹는대도 오히려 돈은 더 썼다. 3-4년 정도를 혼자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 기간은 나 스스로를 대하는 것에 있어서는 살았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다. 무기력증은 나날이 심해졌고 잠깐 집 앞에 나갔다 오는 것도 힘들었다. 뭔가 해야지, 열정이 타올라도 금세 꺼지기 일쑤였다. 지금도 그리 열정적인 건 아니지만 그땐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로 게을렀으니까.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먹이기 위해 신선한 재료를 고르고 최선의 방법을 찾아 기어이 완성한 결과물을 입에 넣으면, 특히 그 결과물이 갈수록 더 발전한다면, 가슴 한 구석이 뭉클해지고 왠지 내가 한 뼘은 더 성장한 기분이 든다. 그래선지 요즘은 정신 상태가 무척 건강해졌음을 느낀다. 내가 나를 잘 챙기고 있으니 외부에서 충격이 와도 대수롭지 않게 튕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달까.

처음으로 혼자 떠났다가 돌아온 여행에서 나는 처음으로 스스로를 되돌아보았다. 여행 덕에 그럴 힘을 겨우 얻어서 변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운이 좋게 새로운 집에 들어오게 되었고 지금은 적어도 전처럼은 살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이 공간은 내가 어떤 역할이든 수행할 필요가 없는 자유로운 곳이다. 스스로를 해치지 않는다면 뭐든 하고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공간. 요즘 청소가 밀렸다. 작가처럼 나는 내 집을 진지하게 탐구하고 여행하면서 하나 하나 닦고 빛을 내 보아야겠다.

본 포스팅은 카페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에세이 #나와당신의작은공항 #안바다

#푸른숲 #에세이추천 #여행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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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심리의 재구성 - 연쇄살인사건 프로파일러가 들려주는
고준채 지음 / 다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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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추리 장르를 좋아했다. 동네 도서관에 가서 어린이 대상으로 나온 셜록 홈즈 시리즈에 코를 박고 읽었고, 셜록 홈즈 시리즈를 다 읽은 다음엔 애거서 크리스티, 엘러리 퀸, 아르큘 포아로 등등 숱한 작품들을 읽었다. 대부분 추리 장르를 감상할 때 범인이나 범죄 행위를 유추하며 읽지만 나는 사실 그걸 잘 못한다. 늘 아무 생각 없이 읽다가 어느 순간 밝혀지는 전말을 보고 입을 틀어막을 정도로 놀라는 편... 참고로 추리 예능도 좋아해서 <크라임 씬> 전 시즌을 다 봤는데 (혼자 그냥 다음 시즌 존버 중입니다..) 제대로 범인 맞힌 적 없음. 추리를.. 그냥.. 좋아만.. 하는 듯

언젠가는 멋드러진 추리 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성덕이 되고파 하는 마음이 있기에 범죄 심리학에도 당연히 관심이 있었다. 셜록 홈즈의 추리는 대개 프로파일링에서 기초하는 방식이므로 연쇄 살인사건 수사에 참여한 프로파일러가 쓴 책이라고 해서 더 눈길이 갔다. 셜록 홈즈처럼 저 사람의 신발에 묻은 흙은 어느 지역에만 있어, 그러니까 저 사람의 말은 틀렸어 라는 둥의 프로파일링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다.. 너무 당연한데 당연하지 않을 줄 알고 살짝 기대했었던 내 마음이..





양팔에 저울과 칼을 든 정의의 여신은 어느 편도 들지 않고 공정을 기하겠다는 의미로 두 눈을 가리고 있다. 이 정의의 여신은 응보적 정의를 지향한다. 응보적 정의에 따르면 피해자의 피해만큼 가해자에게 고통을 부여한다.

p 206


내가 졸업한 대학교에도 법학전문대학원이 있는데, 인문대와 가까운 건물이었으므로 그 앞을 숱하게 지나다녔더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다가 어느 날 문득 로스쿨 건물 앞에 덩그러니 서 있는 여성에게 눈길이 갔다. 손에 저울을 든 차가운 여인, 정의의 여신이었다. 그 때는 그냥 저울을 들었구나 하고 말았는데 또 그 다음에 우연히 봤을 땐 눈이 가려져 있어 의아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이 책을 읽고서야 알게 됐다. (머쓱) 왜 정의의 여신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나에게도 범죄 심리학을 공부해볼 적성이 있는가를 자문해 보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다 읽기까지 고민해본 결과, 내 눈에는 안대를 씌울 수 없기 때문에 불가능하는 결론을 내렸다. 평소 추리 드라마를 볼 때면 피해자 입장에서 오열마저 하고마는 내 감정적인 상태를 보았을 때, 어느 편도 들지 않는 공정함은 죽을 때까지 가질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최근에는 응보적 정의를 보완해 '회복적 정의'가 등장했다고 한다. 여기서, 회복적 정의란 '피해자와 가해자 또는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갈등, 분쟁 해결 과정에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해 피해자 또는 지역사회의 피해를 회복하고, 당사자의 관계 회복 및 지역사회의 평온을 추구하는 이념 혹은 실천방식'이라고 한다. 이 정의를 읽어만 봐도 느낌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실천 방식이라는 느낌...ㅎ 응보적 정의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에만 집중하다보니 피해자를 상대적으로 덜 중요시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고 했을 때는 그렇구나 했는데 그 보완법이라는 회복적 정의의 뜻을 알고 나니 나는 더욱 더 정의의 여신에게 경애심이 생겼다. 회복적 정의가 가능할 만한 건 (내 생각에) 정당 방위일 경우? 혹은 오랜 시간 학대받아온 피해자의 복수일 경우? 관계 회복까지 갈 필요도 없이 약간의 선처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가해자의 회복까지 염려해줘야 할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

이 책은 비교적 최근에 출판되었는데, 그래서인지 조두순이 곧 출소한다는 언급과 (도합 세 번 정도 언급됨 - 동시에 이제 더 이상 사건 이름이 피해자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N번방, 손정우에 대한 언급도 있다. 가끔 인터넷에서 보고 열받았던 조두순의 출소는 12월. N번방의 가해자들은 (참여한 사람들도 SNS의 특성상 모두, 전부, 가해자) 지지부진하게 잡히고 잡힌 사람들은 반성문을 열심히 휘갈기고 그나마도 적은 형량을 받으며 억울해하고 있으며 손정우는 미국으로 보내지 않았다. 손정우가 미국으로 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던 1인으로서, 다 잡은 범죄자를 방생해버린 모습을 보며 법이 대체 어떤 구조길래 이런 상황이 가능할까 궁금했었다. 물론 이 책에는 그렇게 감정적인 이야기는 없다. 범죄 심리에 대한 여러 이론과 프로파일링으로 수사하는 과정과 방법 등이 소개되어 있다. 거듭 생각한다. 형사나 탐정이나(이제 우리나라도 합법화가 되었으니까) 프로파일러가 내 천직이라고 욕심부리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고... 대신 나는 정의의 여신의 응보적 정의를 받들어 가상의 범죄자를 가상의 세계에서 가상의 혹독한 법으로 처단할 수 있는 펜자루를 쥐도록 하겠다.

본 포스팅은 카페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인문일반 #범죄심리의재구성 #고준채

#다른 #프로파일러 #범죄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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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모양의 마음
설재인 지음 / 시공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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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른들은 아이의 상처를 오해나 거짓말이라고만 생각할까? 그런 어른에게 하루하루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아이의 삶은 얼마나 비참하고 절망적인가? 자기 생의 첫 어른이자 가장 큰 어른에게 상처받은 아이는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에서 치료받아야 하나?

p 142

처음에는 쉬이 눈이 가는 책이 아니었다. 그러다 작가 이름이 어딘가 익숙해서 보니 전에 블로그&인스타 친구이자 리딩 나잇 멤버인 숑님이 언급한 바 있는 분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 호기심이 이끌어 읽게 된 책.

문체도 좋았고, 재미도 있어서 며칠 밤을 쪼개 자기 전 시간에 술술 읽었지만 읽고 난 후 입 안이 약간 씁쓸해지는 책이었다. 상미와 유주, 진영의 삶이 어그러지다 물 흐르듯 엮이는 일련의 과정들이 정서적 피로감을 부르기도 했다. 어쨌든 외면해서는 안 될 이야기를 읽는 기분. 언제나처럼 힘이 없는 어른이라는 것에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 그런 기분. 그래도 작가님이 또 책을 내신다면 읽을 것 같다. 그만큼 흡인력도 좋고 캐릭터에 대한 따스한 시선도 좋고 사랑에 대한 새로운 정의도 마음에 쏙 들었다.



연필로 누운 채 밑줄을 긋느라 한껏 삐뚤빼뚤해졌지만 저 문장에 깊이 공감했다. 내가 사과를 남발하지 않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일할 땐 제외..) 워낙 말을 하는 걸 좋아해서 (심지어 혼잣말도 많이 하는 편) 말실수가 잦은 편인데, 그 때마다 집에 가는 길에 당사자에게 연락을 취해 사과를 할 때가 있었다. 상대는 잊고 있었거나 떨떠름해 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결국 나는 내 마음이 편하자고 사과를 남발했던 셈이었다.

상미와 유주, 진영은 가깝고도 먼 가족에게 상처를 받았다. 가족들은 사과하려 하지 않는다.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관계라는 안일함에서 나오는 무신경함, 그 안에서 어린 아이들은 상처를 받는다. 흐른 시간 때문에 먼저 어른이 되어버린 진영도 예외는 아니다. 진영은 자신이 어른이 맞는가, 괜히 아이들에게 다가간 건 아닌가, 고민하는 '어른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하지만 나는 되려 그야말로 어른이 아닌가 생각했다. 서투르고 어설프더라도 사랑을 줄 줄 아는 어른. 적어도 비겁한 사과는 하지 않는 어른. 문제가 생겼을 때 무작정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 진영의 태도가 무척 인상 깊이 남았다.

가끔 책을 덮고 나서 여운이 진득하게 남을 때가 있다. <82년생 김지영>이 그랬고, <종의 기원>이 그랬다. 공통점은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무척 세심하다는 것이었다. 주인공들의 생각에 빠져들어 그들처럼 생각하며 이야기를 쫓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을 덮고 있었고 그로 인해 묘한 아쉬움과 안도감으로 몇 시간을 취해 있는 것이었다. 이 책이 그랬다. 상미와 유주와 진영이 어떻게 될지 궁금했고, 동시에 그들에게 있었던 문제들을 더이상 간접적으로 접하지 않아도 돼서 내심 안도감이 들었다. 그래도 괜히 한 번씩 안부를 묻고 싶은 친구들처럼, 그 세 명의 아른한 얼굴이 허공을 떠돌았다. 나는 그들이 잘 지내길 바란다. 어른들에게 받은 상처를 잘 다독이면서 진짜 사랑을 나누면서 어느 날 문득 평온한 어른이 되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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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국소설 #소설추천

#설재인 #세모양의마음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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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숨고 싶을 때, 강릉
박시연 지음 / 난설헌출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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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덕에(?)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한 게 벌써 반 년이 넘었다. 그 동안 친구들과 했던 여름 휴가도 취소하고, 혼자 훌쩍 떠나려던 보름 살기도 취소했다. 사주에 물이 별로 없어서인지 물이 있는 풍경을 무척 좋아하는데, 특히 가만히 앉아 호수의 반짝이는 윤슬을 바라본다던지 바닷가에 앉아 하염없이 밀려들어오는 파도를 보며 문득 떠오르는 음악을 듣는 행위를 좋아한다. 그래서 올해가 시작될 때 세운 계획 중 하나가 9월쯤 바다가 보이는 곳(제주나 강릉)으로 떠나 보름간 지내다 생일을 혼자 조용히 보낸 다음 유유히 돌아오는 것이었는데, 보시다시피 안 됐다. 그래서 요즘 계속 유튜브로 누군가의 예전 여행 영상들을 찾아보면서 대리만족을 했다. 하지만 좁은 방 한 칸에 갇혀 있다보니 만족은 안 되고 질투만 난다. 하물며 예전의 나한테까지 질투가 날 지경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친한 친구 J와 벌써 두 차례나 간 전적이 있는 도시. 갈 때마다 감자려인숙이라는 지금은 없는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러 처음 보는 사람들과 술도 한 잔 기울이고, 바다가 훤히 보이는 카페에 앉아 저녁에 있을 영화제를 기다리며 수다도 떨었다. 태어나 처음 가 본 영화제가 열리는 도시. 내게 있어 강릉은 그런 곳이었다. 소담한 초등학교 운동장에 스크린이 걸리고, 스크린 뒤편으로 기차가 지나가며 쏟아질 듯 밤하늘을 잔뜩 수놓은 별이 보였다. 사람들은 빈 의자를 용케 찾아 앉거나 은박지 소재의 돗자리에 앉는다. 가장자리에선 자원봉사자들이 비지땀을 흘리며 모기를 쫓는 풀을 태우고, 어떠한 기준으로 (아마도 텀블벅 펀딩인 듯 함) 선정되는 VIP석의 사람들은 모기장 아래서 유유자적하다. 2년 전 다시 가 본 영화제는 이제 더 이상 소담한 규모가 아니라 다시 가지 않을 것 같긴 하지만, 곱고 두려운 동해 바다를 보려면 강릉만큼 좋은 도시가 있을까 싶다.

작가는 강릉을 고향으로 두었으나 세계 곳곳을 돌며 생활하다 30대가 되어 강릉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곤 자신의 고향을 찍고, 상냥한 지도 같은 안내서를 혹은 한 편의 일기를 출간했다. 전에 바닷마을에서 자란 소년의 이야기를 모교 신문에 연재하면서 바닷가에서 자란다는 건 어떤 걸까, 어렴풋이 상상해본 적은 있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의 이야기를 살짝 엿본 기분이 들기도 했다. 코로나만 마무리되면 보자, 굳센 마음으로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여행의 기회를 이 책을 참고해서 알차게 다녀올 생각을 하니 기대가 되기도. 이 책을 읽고 나니 내게 여유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한달살이를 떠나고 싶은 도시는 강릉이 되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을 고향으로 삼기로 했으니, 나도 언젠가는 이런 책을 쓸 수 있기를 덧붙여 바라 본다.

본 포스팅은 카페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에세이 #여행에세이

#꽁공숨고싶을때강릉 #박시연 #난설헌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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