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여름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4
토베 얀손 지음, 따루 살미넨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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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위에서 불꽃이 붉은빛과 푸른빛을 번갈아 내뿜으며 활 모양으로 빛나고 있었다. 불꽃이 별처럼 둘러싼 저녁바다는 무척 아름다웠고 친근해 보였다. 거실 바닥에도 불빛이 한 줄기 내리꽂혔다.
p 62

나는 이따금 어릴 때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행위를 좋아한다. 그 자체로 위로를 받는 때가 있다. 무엇보다도 위험부담이 적다. 그래서 나는 나의 집이 생기면 가장 먼저 꾸미고 싶은 공간이 서재다. 최대한 넓고 높은 책꽂이를 사서 차곡차곡 채워나가고 싶다. 가능하다면 <미녀와 야수>에서 벨이 사다리를 타고 다니며 노래하던 것만큼 크게. 그러자면 요즈음 불성실해진 독서에 다시 불을 지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원룸에서 월세로 살고 있다. 그래서 최대한 가구를 늘리지 않고 살려고 했는데 참지 못하고 산 것이 책꽂이다. 종이 재질이지만 생각보다 튼튼해서, 빈틈없이 쌓여가는 책들을 충실히 버텨주고 있다. 미니멀리스트로 살으라고 협박해도 그렇게는 못 살 것 같다. 정말이지 책은 포기할 수가 없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부모님은 내 독서량을 맞춰주기 위해서 헌책방 골목에 가시기도 하고, 온 가족 명의를 이용하여 시립 도서관에서 일 주일에 열 권이 넘게 빌려다 주시기도 하고, 일 주일에 두 권 책이 배송되는 서비스를 받기도 했다. 웅진 북클럽은 매번 읽은 책만 와서 몇 달?만에 끊었고, 아동 도서실에서 일반 도서실로 옮겨가는 것도 고작 몇 년 만이었던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중학생 무렵에 읽은 비룡소 시리즈, 생애 첫 장편 소설이었던 해리포터 시리즈, 발칙한 상상력 때문에 낄낄대며 읽었던 로알드 달 시리즈, 그냥 왠지 마음이 따스해서 좋은 초원의 집 시리즈 등이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좋았던 건 무민 시리즈. 머리가 굵어지면서 주변 친구들이 무민을 잘 알지 못해서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어릴 때 디지몬, 포켓몬보다 무민을 더 좋아했다. 어릴 때부터 취향 겁나 마이너... 어느 순간부터 무민이 인기를 끌면서 무민덕후로서 신이 난다. 관련 굿즈도 많이 나올 뿐만 아니라, 이 책처럼 다시! 재출간되는 경우도 생겨서다.



태양은 이미 저물었지만, 지금은 6월이었고 이야기할 어둠은 없었다. 밤은 창백했고 꿈결 같았으며 마법으로 가득 차 있었다.
p 88

어린 시절의 책을 읽을 때 아무래도 가장 좋은 건, 비교적 근심 걱정이 없던 그 시절로 되돌려 준다는 것이다. 모든 서술 하나하나에서배려가 느껴진다. 유독 밤과 홀로됨과 어두움을 무서워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그래서 더욱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적어도 어린 시절에 읽는 책에서는 부정적인 감정을 접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무민 가족은 바보같을 정도로 백지같은 존재들이라서, 극장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소품실'을 사람으로 알고 배경막을 예쁜 그림쯤으로 여기며 무대를 거실 정도로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화산이 폭발해 집이 홍수로 잠겨버린 어느 날, 우연히 떠내려온 극장에 자리를 잡는다.

"이게 뭔지 맞춰 볼래?"
"작은 배요!"
무민이 이렇게 말하고 웃었다. 특별히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너무나도 행복했기 때문이었다.
p 200

물론 원작은 만화이지만, 동화로서 읽어도 좋은 무민. 이 책은 <무민가족의 한여름 대소동>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진 바 있으나 사실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원래 훌륭한 작품은 텍스트로 읽어야 가장 좋은 법이다. 사실 조금 졸림... 그리고 약간 종이로 찢어 만든듯한? 그림체라 무민 특유의 빵실함이 조금 떨어진다.

무민 가족의 이야기는 연작 소설로 혹은 만화로 볼 수 있는데, 하나같이 모험이 가득하고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진다. 흥미로운 점은 마냥 해맑은 성격의 캐릭터들만 나오지는 않는다는 것. 예를 들면, <위험한 여름>에는 미자벨이라는 캐릭터가 나오는데 그녀는 정말로 엄청나게 우울한 캐릭터다. 툭하면 울고, 자책감에 가득차 있고, 잘 삐진다. 솔직히 가끔은 나같아서 소름끼치기도 했다. ㅋㅋㅋ찔림... 어릴 때에는 몰랐지만 커서 보니 캐릭터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하는 거다. 간혹 그 점이 슬프기도 하다.

하지만 역시나 '특별히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너무나도 행복해'서 웃음짓기도 하는 무민을 보는 것이, 내게는 즐거운 일이다. 이따금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거나, 어른으로서의 삶에 지치는 밤에 한 번쯤 읽어보기를 권한다.









본 포스팅은 리뷰어스 카페를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만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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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밀함이란 타인이었던 그녀와 내가, 또는 전혀 낯설기만 했던 우리가, 서로의 막힌 벽을 허물고 마음속에 둥지를 트는 일이었다.
p 106




오랜만에 머릿속이 복잡해지지 않는 로맨스 소설을 읽었다. 처음 책을 받아들었을 때, 생각보다 책이 작아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표지가 핑크빛이라 예쁘기도 했고, 일반 책보다 조금 작은 크기라서 어딘가 여행을 가게 되었을 때 가방 안에 쏙 들어가는 크기라서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밤에 잠이 오지 않아서 펼쳐들었다가 거의 두 시간만에 금세 읽고 덮게 되었다.
첫 시작에서 호주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는 주인공을 보면서 호주의 풍경이 묘사되기를 기대했는데, 사실 호주의 풍경이 새삼 마음에 와 닿을 정도로 느껴지는 것은 아니어서 아쉽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사랑하는 연인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니까.

그냥 좋아서, 그 사람이 옆에 없으면 견딜 수 없어서, 단지 사랑해야 하기 때문에 사랑하고 싶었다.
p 107



문체나 표현들이 특별히 가슴을 울리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유독 한 문장이 공감되었다.
연애도 오랫동안 쉬고 있고,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지도 않아서인지 요즘 꽤 외로웠는데, 이제는 사랑을 받는 일보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외로워서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잠시 헷갈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 사람이 너무나도 좋아서 다시 어릴 때처럼 하루 웬종일 그 사람 생각만 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일상이 늘 무료하고 만나는 사람만 만나다보니 새로운 일이 벌어질 일도 없는데, 행동반경을 바꿔봐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여행이 가고 싶었다.
비록 주인공은 워홀을 떠난 것이지만(본인은 관광 목적이었다고는 해도) 내가 늘 속해 있고 보고 있는 광경이 아닌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어졌다.
로맨스 영화를 보거나 소설을 보면 늘 그러하듯이, 사랑에 빠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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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팽팽한 뺨에 우주의 입자가 퍼져 있다. 한 존재 안에 수렴된 시간들, 응축된 언어들이 아이의 몸에서 리듬을 입고 튕겨나온다.
p 96



파과.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흠집이 난 과실’이라고 한다. 조금 엉뚱하다고 생각했다. 주인공의 이름은 ‘조각’이고, 과일을 가져다 붙이기에는 나이가 든 노년의 여성이기에. 하지만 책장을 덮은 후에야 어렵풋이 이해가 갈 것도 같았다.

주인공 ‘조각’은 방역업자, 쉽게 말해 청부 살인업자다. 전자와 후자의 단어가 갭이 크다는 것은 알지만 어쩌면 일맥상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대개 나쁜 놈들을 처리하는 것이 업이니까 말이다. 아닐 때도 있지만.

그녀는 환갑을 넘긴 유일한 할머니 킬러라고나 할까. 친하지도 않은 새파란 후배는 그녀를 자극하고자 할머니라고 부르고, 처음 보는 젊은이들은 어머님이라고 부르기 일쑤다. 점점 늙어가고 둔해지는 몸이 불안하고, 이따금 일상적인 것을 깜빡하는 자신이 이제 퇴물인가 싶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이 맡은 임무를 깔끔하게 처리하곤 했다.

그러던 그녀가 유일하다시피 드물게 실수를 했다. 그 과정에서 혼자서는 치료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늘 그녀를 치료해주는 장 박사를 찾아가지만, 흐릿한 그녀의 시야에 비친 것은 병원에 페이닥터로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강 박사였다. 자신이 킬러라는 것을 알게 된 강을 조각은 협박하지만, 강은 이상한 사내였다. 알아서 순순히 모른척 하겠다고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목에 흉기가 들어온 상황에서도 조각의 상처를 걱정한다.

순간 조각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강의 부모가 운영하는 과일가게에 찾아가기도 하고, 우연인 척 강에게 진료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강의 아이를 만난다.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본다. 말도 안되는 나이차이지만 아무래도 조각은 강에게 사랑을 느꼈음이 분명하다.



그녀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함이 확실해지자 그의 몸 한 귀퉁이에서 약봉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한 시절과, 그것을 이루거나 부순 몇몇 장면들이 요동하며 그의 눈꺼풀 속으로 밀려들어왔다.
p 130



말이 안되는 이야기지만 조각은 나름대로 평온한 일상을 영위한다. 투우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투우는 한창 잘 나가는 에이전시의 방역업자이자 조각의 한참 어린 후배이다. 건드려봐야 아무 이득도 없는 자신을, 간헐적으로 마주칠 때마다 건드리는 투우가 조각은 희한할 따름이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 하나의 존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혼이라는 게 빠져나갔는데도 육신이 더 무거워진다는 것은.
p 292



투우는 점점 조각에게 더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 그녀의 일을 방해하더니 강의 가족에게까지 마수를 뻗친다. 조각은 자신의 감정을 간파하고 건드려오는 투우를 죽이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다. 투우를 만나러 가는 날 조각이 우연히 만나 쭉 데리고 있던 강아지 무용이 숨을 거둔다. 자신이 유일하게 사랑했던 류를 대신해 가족이었던 존재다. 조각은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 무지개다리를 건너버린 무용의 시신을 보며 허망함을 느꼈다.

투우는 조각과 결투를 하며, 자신이 기억나지 않느냐 묻는다. 두 번째 질문이었다. 조각은 기억이 난다고 하지만, 투우는 아니라고 느꼈다. 조각의 눈빛이 불안했던 탓인가. 투우는 사실 조각이 원망스러운 것도, 증오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왜 조각을 집요하게 쫓았을까. 대충 줘도 모를 약을 정성스럽게 빻아 건네던 모습 때문인가. 그래서 처음으로 누군가의 온기를 느껴서인가. 그건 오롯이 투우만이 풀어나갈 감정이었을 것이다.
분명한 건 투우의 머릿속에 있는 조각은 자신의 집 베란다에서 중간 길이의 머리를 흩날리며, 방금 자신이 머리를 관통해 죽인 남자의 아들을 향해 ‘잊어버려’라고 말한 뒤 사라진 여자라는 것이다. 알약을 삼키지 못하는 자신을 위해서 정성스레 빻고 세심하게 분류해 내밀었던 타인이라는 것이다.

이따금 사람의 인생은 기묘하게도, 순간이 영원에 가까운 세월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어이없이 짧은 영원들이 조금씩 모여 마지막에는 허탈할 정도로 목을 죄어오는 것이다. 나 또한 투우를 보면서, 조각을 보면서, 나를 장악하던 소소하기 그지없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결국 우리는 그래서 완벽해질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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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어제가 되어 부질없어진 인물과 사건의 나열들. 현재까지 여파를 미치고는 있으며 사람들은 그것을 역사라 부르지만 누군가에게는 무의미한 흐름들. 그는 과거를 명시하는 글자들을 단지 무료함으로 죽지 않기 위해서만 내려다보았다.
p 49



<위저드 베이커리> 이후로 구병모 작가의 글을 읽는 것은 몹시 오랜만이다. 특히 <아가미>의 경우 제목은 많이 들어보았지만 읽어본 적은 없어서 리커버된 것이 반가웠다.

<아가미>는 초반에서부터 호기심을 자극하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무료하고 지루한 일상을 겨우 살지만 결코 죽을 생각이 없던 여자가 위험에 처하고, ‘곤’이라는 이름을 가진 수수께끼의 청년이 사람이 별로 없는 동네의 구멍가게 겸 민박집을 지키는 모습이 나온다. 인용된 본문은 곤의 독백으로, 그는 날짜에 대한 궁금증도 없이 그저 손에 집히는 신문을 들여다보며 산다. 그냥 그저 읽을 뿐, 세상에 크게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모습은 무척 무료하면서도 구미가 당겼다.



살아줬으면 좋겠다니! 곤은 지금껏 자신이 들어본 말 중에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예쁘다’가 지금 이 말에 비하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폭포처럼 와락 깨달았다.
p 185



그저 비밀스럽기만 한 곤의 과거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투숙객 덕분에 회상되었다. 지나치게 담담한데다 혼자이고 이렇다할 관광지도 아닌 곳에 머무르는 그녀를, 곤의 사장은 자살을 하려는 사람이 아닌지 의심한다. 그럼에도 곤은 왠지 그녀가 죽으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으리라 여긴다.

사진을 찍으려는 것도 아니면서 그녀는 곤에게 동네 소개를 부탁한다. 결국은 산책이 된 안내는 둘이 더 많은 대화를 하게 해주었다.
몇 번의 대화가 오가고 나서야 그녀는 곤에게 “강하를 알죠?”로 시작하는 본론을 꺼내어 들었다.

곤은 사실 일반적 의미의 사람이 아니며, 어떻게 본다면 돌연변이인 존재이다. 그는 아주 어릴 때 강하와 그의 할아버지의 손에 거두어졌다. 강하는 너다섯 살 많은 형아답게, 아직 어린 아이답게, 그를 챙기다가도 심술을 부리곤 했다. 물고기 새끼라며 욕을 하고 호수에 밀어넣다가도, 곤을 언젠가는 보내주려 돈을 모으기도 했다. 강하의 어머니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제법 평화로운 풍경으로, 곤의 맹목적인 애정과 강하의 애증이 그럭저럭 공생하는 편이었다.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매 순간 흔들리고 기울어지는 물 위의 뗏목 같아요. 그 불안정함과 막막함이야말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방법 아닐까요.
p 194



강하의 어머니는 배우를 꿈꾸다 이용만 당하고 갈 곳이 없어 고향에 돌아온 여자다. 그녀는 이미 모든 것에 지쳤고 유일한 위로는 아름다운 환각 뿐이다. 매일 정해진 시각에 알약을 삼키고 몽롱하게 누워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하루의 일과였다.

하루 종일 집을 비우는 강하와 여자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애써 관심을 두지 않는다. 방치에 가까웠다. 그녀를 말없이 지키는 것은 곤 뿐이다. 손에 도통 잡히려 들지 않는 아름다운 물고기를 생각하며 또 약에 취했던 그녀는 어느 날 곤의 비늘을 본다.

그것은 그녀의 환각이 현신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싶은 아름다움. 그날 곤은 태어나 처음 예쁘다는 칭찬을 들었다. 늘 감추느라 전전긍긍한 삶이었으니 꽤나 달콤했을 것이었다. 곤과 그녀는 묘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미적지근하고, 그냥 지나가는 일로 치부하기에는 강렬했다. 극단적인 결핍을 겪는 사람들끼리의 이야기이니까, 아무래도 인용구에서 언급된 양가감정이 맞지 않을까 싶다. 사랑과 집착 사이 그 어딘가.



장자의 첫 장에는 이런 얘기가 있거든요. 북쪽 바다에 사는 커다란 물고기, 그 크기는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는데 그 이름을 곤이라고 한다.
(중략)
강하는 그 이름을 일상적으로 부르는 것조차 두려웠던 거예요.
p 210



어떠한 감정이었든 곤과 강하는 각자의 길을 걷게 되면서 서로를 그리워했지만 기어이 만나지는 못했다.
다만 곤은, 뜻조차 알지 못했던 제 이름이 사실은 강하가 지어주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름의 뜻에서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경외였다.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진 존재에 대한 동경.
또한 곤이라는 물고기는 결국 떠나는 것으로 되어있다는데, 강하가 곤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그 두려움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형제나 다름없이 자랐다는 애정과 곁에 두고 싶은 집착이 한데 어우러져 강하는 곤을 그토록 밀어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 양가감정은 이론적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므로 누구에게나 혼란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예전에 읽었다면 이해하지 못했을 것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아름답게 헤엄치는 곤의 모습을 상상하니 왠지 슬프면서도 아름다워서 책장을 덮기가 어찌나 아쉽던지. 우연한 기회에 아름다운 책을 접해 행복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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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나는 혼자가 돼 버렸을까.
고독의 끝이 이르는 곳은 대체 어디일까.
보이지 않는 바닥으로 계속 가라앉고 있는 나는 언젠가 사라져서 없어지진 않을까.
p 123




고독이라는 것은 사실 언제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함께 하고 있는 감정인 것 같다.
위의 인용구는 고작 초등학생이 된 남자아이가 하는 독백이다.
어떻게 보면 어린 아이가 하기에 참 부정적이고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감히 그것을 판단할 수 없겠다는 생각도 한편 들었다.
혼자라는 것은, 그러한 생각이 든다는 것은 다 큰 어른에게도 폭력적이리만치 힘든 일인데 조그만 아이가 버티기에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족이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아야 마땅할, 특히나 주변의 친구들은 이미 모두 그러고 있을 나이의 아이에게 자신을 버리고 갔던 아버지가 다시 나타나 양아버지인 척 하는 것 같다는 의심은 내내 아이를 괴롭히는 심각한 문제였을 테다.
무엇보다도 고독이라는 것에 감싸인 채 끝도 없이 침몰하는 듯한 기분을 너무나도 잘 드러냈다는 사실이 한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하게 만들었다.

 

때로 우리는 고독의 끝을 걸어갈 때도 있다.
하지만 그곳은 우리의 안식처가 아니다.
p 230




솔직히 말하자면 나의 요즘을 위해 이 책은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혼자 산 지 제법 오래된 데다 친구들은 이곳 저곳 뿔뿔이 흩어지고 누군가에게 고민을 말하는 일에 용기를 낼 수가 없기 때문에 고독을 벗삼은 지 꽤 되었다. 리뷰를 쓰는 것도 고민이 되었다. 왠지 마음이 말랑해져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늘어놓을까 걱정도 되었다. 그러나 마지막 문장을 읽는 순간, 일본 문학을 읽으면 대개 그러하듯이 평온한 기분이 되었다. 앞서 말한 '고독의 끝'에 누구나 다다를 수 있지만, 그곳은 절대 안식처가 아니라는 말.
결국은 고독의 끝에 영원히 머무르는 사람이 없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니 언제든 이겨낼 수 있다는.
우리는 필요에 의해 혼자 고독의 끝으로 향하는 일이 숱하지만, 얄궂게도 여럿이서 있어야 고독의 끝에서도 깊은 절망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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