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에서 말하기로 - 심리학이 놓친 여성의 삶과 목소리
캐럴 길리건 지음, 이경미 옮김 / 심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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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도 끌렸던 책이다. 전에 '여성'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가는 심리학 책을 큰 기대감을 품은 채 읽다 실망한 경험 이 있는데, 소개글을 꼼꼼히 읽어 보니 <침묵에서 말하기로>는 40년만에 재출간되는 명저라고 했다. "내 질문은 남성의 경험이 모든 인간의 경험을 대변한다는 이론에 던지는 도전장이다" 책 표지에 적힌 문장이 내 마음에 쏙 들었다. 40년 전에 이미 이런 질문을 던진 사람이 있다니. 내가 더욱 늦되게 여겨진다.

조용히 미쳐 있어서 Crazy 장녀라고 불리는 'K-장녀'의 인생을 살아왔지만 이십 대 중반이 되어서야 사회 구조의 부조리함을 똘똘 뭉친 가부장제의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다 내 탓이오를 연발하게 하던 분위기가 사실은 모두 그들 탓이었다는 것도. 그것을 발견한 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었다.




글을 쓰려면 이 천사의 목을 비틀어야 한다는 버지니아 울프의 일갈은 가짜 목소리를 침묵시켜야만 자신을 위해 말할 수 있다는 명확한 해설이었다.

독자에게 전하는 말에서 읽은 구절인데, 남은 책을 읽으면서도 종종 앞으로 되돌아가 읽게 만든 문장이었다. '가짜 목소리'라는 단어가 왠지 나를 붙들고 놔주지 않는 느낌. 여태 나를 홀린 가짜 목소리는 뭐가 있었지? 새삼 생각도 해 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미디어를 통해 쏟아지던 목소리. '여자는 예뻐야 해', '어리고 예쁠 때 쉬지 않고 연애를 해야 해', '여자는 잔말 말고 하란대로 해야 해', '여자는 궁금해하지 않아야 해', 외에도 나열하자면 수도 없이 쏟아지던 목소리. 직접적으로 뱉지 않는다해도 간접적으로나마 쏟아지던 말들이었다.

그래서 고등학생 때 가장 관심있었던 건 '대학에 가면 정말 살이 빠지는지'와 '연애를 하는지'였고 20대 후반쯤엔 듬직한 남자친구가 생겨 30대에 접어들때쯤 결혼을 하게될 줄 알았다. 집에서도 그것을 원했다. 20대 초반에 연애를 할 때에도 미디어에 홀랑 속아 있었던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지금 떠올려 보면 꽤나 바보같았던 시간이었다. 그 후에도 나는 코르셋을 열심히 조이고 그러고도 평가를 받고 더 강력한 코르셋을 스스로에게 씌웠다. 자연스레 알게된 사실은 사회가 요구하는 아름다움에는 끝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결코 나를 나로써 받아들여줄 생각이 없다는 것도.

나라도 나를 그대로 받아들여주기로 했다. 자연스레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뭔지, 내가 좋아하는 건 뭔지, 내가 싫어하는 건 뭔지를 파악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이 책의 제목처럼 침묵을 지키던 과거와 달리 소리를 낼 줄 알게 되었다. 침묵을 지켰던 건 내가 나를 믿지 못해서, 내 뿌리를 스스로 지켜주지 않아서였다. 이 책을 조금 더 빨리 알았다면 내가 조금은 더 이르게 변할 수 있었을까, 아쉽긴 했지만 적어도 내가 옳은 지표를 보고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우리는 점점 변할 것이다. 오랜 침묵을 깨고 소리내어 말할 것이고, 목소리들이 모여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기대해 본다.

본 포스팅은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심리학 #침묵에서말하기로 #캐럴길리건 #푸른숲

#페미니즘 #페미니즘도서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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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라틴어 원전 완역본) - 최상의 공화국 형태와 유토피아라는 새로운 섬에 관하여 현대지성 클래식 33
토머스 모어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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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는 무려 1516년에 초판이 발행되었다. 차마 헤아려보기도 까마득한 고전이다. 요즘은 철학, 인문학, 수학, 과학 등 전 분야에 능통해 시대를 초월하는 시선을 가졌던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해 몇 페이지 읽다가 졸아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고전이나 인문학 서적을 꾸역꾸역 읽고 있다. 최근에는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반쯤 읽었는데, 너무 어려워서 잠시 다른 책에도 손을 대던 찰나 <유토피아>를 운이 좋게도 읽게 되었다. 그나마 내가 읽은 고전 중에 (몇 안 되지만) 술술 넘어가는 책이었다.

'유토피아'라는 나라는 라파엘이라는 선원이 발견했다는 곳이라고 서술되고 있는데 이 말은 토머스 모어가 이 책을 저술하며 지어낸 단어다. 그리스어의 '없는(ou-)', '장소(toppos)'라는 두 단어를 결합해 만든 용어로써, '이상향'이라는 뜻을 지닌다.(두산백과 참조) 라파엘이 서술하는 유토피아라는 나라는 확실히 이상적이라고 불리울 만하다. 그에 비교되는 현실이 몇 갑절은 더 팍팍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p 39


누군가의 글을 읽을 때면 글을 쓴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어렴풋이 그려질 때가 있다. 그다지 감성적인 글도 아니건만 <유토피아>가 그랬다. 토머스 모어라는 사람은 강직하고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을 받았는데, 뒤늦게 읽어 본 작가 소개글에 에라스무스의 비슷한 말이 실려 있었다. "눈보다도 순결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었다. 영국은 과거에도 그리고 이후로도 그가 가진 천재성을 다시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애초에 그 시대에 이렇게 고도의 돌려까기(?) 책을 저술할 수 있었다는 것에 그의 후플푸프급 정의감이 돋보이기는 한다. 특히 위의 밑줄 그은 부분처럼 현재에도 적용되는 사회적 문제들을 다룬 것이 신기했다. 평신도가 하는 말도. 저 의미와 완벽하게 맞지는 않지만 우리 청년 세대가 다들 힘들어하는 것이 생각나면서 괜히 찡하기도 했다. '누구나 먹고 살 방도는 지금도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는 말은 어른 세대가 청년 세대에게 하는 무한 레퍼토리... 문제는 '먹고 살 정도'를 훨씬 뛰어 넘는 노력을 하게 만든 사회의 분위기인데, 자꾸 청년들에게 더 열심히 하라고 했다가 눈을 낮추라고 하는 둥 자신들의 파이 조각을 움켜쥐고 내어놓지 않으며 하는 첨언에 우리는 지치고 있다. 토머스 모어는 가난한 이들이 도둑질을 하는 것마저 융통성 없이 단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지만, 왠지 나는 저렇게 해석이 되었다. 나 또한 2030 청년 중 한 명이기 때문이겠지.

요즘 <자유론>을 읽다가 스스로의 무식함에 탄식하고 있었는데 <유토피아>로 고전의 즐거움을 살짝 맛본 기분이 들었다. 고전은 민음사 시리즈로 문학 작품만 읽다가 현대지성 출판사의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를 읽기 시작해 또 새로운 카테고리의 독서에 눈을 뜨게 됐다. 고전은 케케묵은 낡은 작품이 아니다. 단순히 낡은 작품에 불과하다면 숱한 출판사에서 유능한 통번역사들을 붙여 계속해서 개정판을 내겠는가. 현실이 이해되지 않을 때, 우리만 이렇게 사는 건가 의아할 때, 의외의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창구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본 포스팅은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유토피아 #토머스모어 #현대지성 #현대지성클래식

#고전문학 #인문고전 #인문도서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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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즈 제주 - Season1 ’21~’22 프렌즈 국내 시리즈
허준성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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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탓에 하게 된 말 중에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것이 아마도 여행 가고 싶다는 투정일 것이다. 2014년부터 친구와 여행을 다녔는데, 그 때 좋았던 기억으로 매년 한두 군데 이상은 꼭 여행을 다녔다. 나의 첫 여행은 제주도였다. 친구와 9박 10일로 다녀왔는데, 주변 사람들은 둘이 함께 떠나는 첫 여행이라고 하면 겁도 없이 장기 여행을 떠난다며 신기해했다. 우리는 신기하게 여행 타입이 잘 맞았는데, 가서 별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게 참 잘 맞았다.

그 이후 똑같은 친구와 2018년에 한 번 더 2박 3일로 제주에 갔고 그 여행을 돌아온 후 우울감을 견디다 못해 다시 그 달 말 불현듯 보름살기를 떠났다. 보름살기를 하는 동안 친구 세 명이 다녀갔다. 전 직장 직원분들도 만났다. 보름 중 오롯하게 혼자였던 건 일 주일이 조금 넘는 정도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을 혼자 해결해가면서 제법 즐겁게 보냈다. 바다를 좋아하는 나에게 훤히 트인 바다에 산책로가 놓인 제주도는 언제나 어디를 가든 꿈같은 곳이었다.

 

 

 

제주도에 다녀온 후로 한동안은 제주도 이야기를 마르고 닳도록 했다. 그만큼 좋았다. 처음으로 친구랑 떠난 여행도, 처음으로 가족 여행 아닌 여행도, 처음으로 혼자 떠난 여행도 모두 제주도였다. 혼자 보름 동안 타지에서 살아보니 연고 하나 없는 현재의 지역으로 이사오는 것도 별로 두렵지 않았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어엿한 프리랜서가 되면 종종 한 달 살기를 떠나야지 마음 먹었다.

사실 여행을 떠날 때 계획을 세세하게 잡는 편이 아니어서 책을 사서 보기까지 한 적은 없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사람들이 아직도 아날로그적으로 여행 준비를 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곳이 나오면 반가워서 하트도 그려보고 ㅋㅋㅋ 가보고 싶은 곳은 모서리를 접어 두었는데 나중엔 책을 덮고 나니까 책이 한껏 통통해진 상태였다. 하루 만에 수월하게 읽을 수 있는 정도의 양과 내용이었는데, 정말이지 간절하게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 나머지 하루 동안 무척이나 괴로웠다.

이 말을 또 해본다.

코로나 사라지면 여행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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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프렌즈제주

#여행서 #여행서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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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포 매거진 POPOPO Magazine Issue No.03
포포포 편집부 지음 / 포포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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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잡지를 읽었다.

잡지라 함은 저마다 소소하게 가진 이야기들을 모아 발행한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에는 <와와109>같은 잡지를 읽으면서 (사실 부록에 더 열광했지만) 잡다한 지식과 어설프게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웠다. 학생 때는 학교 교지편집부가 발행하는 교지를. 백일장에 참여해 상을 받게 되면 꼭 그 교지에 실렸기 때문에 늘 설레는 마음으로 펼쳐보는 책이기도 했다. 대학교에 다니면서부터는 가끔 심심하면 본부나 정문에 비치된 <대학내일>을 가져다 표지 모델이 예쁘다, 감탄하며 화보집을 보는 기분으로 들춰보기도 했다. 친구 J와 친해지고 나선 그가 좋아하는 <어라운드>를 빌려 읽은 적이 있었는데, 웬만한 단행본 두께라 신선했던 기억이 난다. 또 <대학내일>과는 달리 광고가 적고 정해진 주제에 충실한, 에디터들의 수려한 문체에도 매혹됐었다. 그 친구는 직접 독립 잡지를 발행하기도 했는데, 덕분에 고맙게도 게스트 에디터로 참여할 기회를 얻기도 했다.

어느샌가 머릿속이 복잡해 책을 열정적으로 빠져 읽지 않다보니 소설보다 잠들기 전 침대맡에서 들춰보기 용이한 에세이에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잡지 또한 어떤 면에서는 에세이를 싣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포포포 매거진>이 엄마들을 위한 책이라는 설명을 듣자 흥미가 생겼다. 처음 받아든 느낌은 일단 디자인이 무척 예쁘다는 것? '힙'했다. 내용이 궁금해서 펼쳐봤는데 단순히 기혼 여성들의 이야기만을 다룬 것은 아니고 코로나, 환경에 대한 이야기 또한 다루고 있어 최근 내가 관심을 가진 영역 모두가 포함된 책이었다.




만약 얼굴을 그리다 뭔가를 망쳤다면, 안경을 그려 넣고, 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장갑을 덧그릴지도 모르죠. 그 과정을 통해 발생한 각각의 실수는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으로 이끌었어요.

p 18 정유미, 'New start from mistakes'

위 그림을 그린 코리나 루켄이 한 말이다. 그는 한국어로는 <아름다운 실수>라고 번역된 책을 출간했다. 책이 궁금해서 찾아보니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동화책이라고 한다. 위 그림 또한 그 책의 삽화 중 하나. 고민하다가 일단 장바구니에 넣어 두었다. 완벽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 바엔 시도하지 않고 포기해버리는 내 성격에 꼭 필요한 말이다. 실수는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으로 이끈다는 말. 또한 취업 혹은 등단 준비가 길어지면서 갖은 실패에 주눅든 것 같은 내 상황에 필요한 말이기도 했다. 내가 실패한 게 아니라 나를 알아보지 못한 그들이 실수했다고 생각하면, 뻔뻔하지만 마음만은 편해진다.

다양한 '엄마'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공감하기도 했고 나의 엄마를 떠올리기도 했고 엄마가 될지도 모르는 친구들과 미래의 나를 떠올렸다. 확실한 건 그 누구보다도 '엄마'의 역할을 수행하기란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는 웬만한 엄마들에게는 훌륭하다는 수식어를 붙여주지 않는다. 그 '웬만한' 엄마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식구들의 아침밥을 차리고 외출해야 할 식구들을 배웅하고 어린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를 돌보며 하루 종일 집을 쓸고 닦고 빨래도 하고 점심 저녁도 챙겨야 하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정 주부가 아니고 맞벌이 부부일 경우에도 마찬가지.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여성이 가사를 도맡아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남성이 가사에 참여하는 행위는 '도운다'는 말로 격상되기 일쑤다. 그러니 '엄마'의 역할이란 무척 고난이도의 퀘스트임에 틀림이 없다.

또한 'Climate crisis and consciousness'라는 글을 무척 흥미롭게 읽었는데,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가며 탐독했다. 신문을 구독하려다 실패해서 정보성 글을 읽으니 무척 반가웠다. 글의 요지는, 산업 혁명으로 인해 환경 오염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졌는데 코로나로 인해 경제활동이 위축되면서 오히려 환경 오염 속도가 낮아졌으며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재앙이 닥치기 전에 우리가 조금씩이라도 실천하여 환경 오염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로웨이스트 클럽'이라는 글은 일전에 <쓰레기 제로 라이프>를 읽으며 느꼈던 감정을 적어놓은 듯한 글이었다. 우리가 당장 실천하기 힘든 제안 대신 한결 가깝게 여겨지는 방법들이 적혀 있어 도움이 됐다.

사실 어느 하나 언급할 수 없게 모든 글이 좋았고 저마다의 관점들에 공감이 됐고 많은 것을 배웠다. 직접 요리해 먹고 검소하게 사는 법을 익혀 혼자 살아갈 숱한 날들에 대비하기로 마음먹은 후로, 오히려 제로 웨이스트적인 삶이 잘 맞으리라는 걸 알게 됐다. 지금은 아직 초보 수준이지만 언젠가는 나 또한 타인들에게 행동을 전파하기 위해 글을 기고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다음 호의 주제는 무엇일지 기대가 된다. 이제 3호 나왔다고 하니 나올 때마다 사서 모아볼까, 싶다.

해당 포스팅은 카페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잡지 #포포포매거진3호 #포포포매거진

#여성주의 #코로나 #COVID19 #제로웨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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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심리의 재구성 - 연쇄살인사건 프로파일러가 들려주는
고준채 지음 / 다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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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추리 장르를 좋아했다. 동네 도서관에 가서 어린이 대상으로 나온 셜록 홈즈 시리즈에 코를 박고 읽었고, 셜록 홈즈 시리즈를 다 읽은 다음엔 애거서 크리스티, 엘러리 퀸, 아르큘 포아로 등등 숱한 작품들을 읽었다. 대부분 추리 장르를 감상할 때 범인이나 범죄 행위를 유추하며 읽지만 나는 사실 그걸 잘 못한다. 늘 아무 생각 없이 읽다가 어느 순간 밝혀지는 전말을 보고 입을 틀어막을 정도로 놀라는 편... 참고로 추리 예능도 좋아해서 <크라임 씬> 전 시즌을 다 봤는데 (혼자 그냥 다음 시즌 존버 중입니다..) 제대로 범인 맞힌 적 없음. 추리를.. 그냥.. 좋아만.. 하는 듯

언젠가는 멋드러진 추리 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성덕이 되고파 하는 마음이 있기에 범죄 심리학에도 당연히 관심이 있었다. 셜록 홈즈의 추리는 대개 프로파일링에서 기초하는 방식이므로 연쇄 살인사건 수사에 참여한 프로파일러가 쓴 책이라고 해서 더 눈길이 갔다. 셜록 홈즈처럼 저 사람의 신발에 묻은 흙은 어느 지역에만 있어, 그러니까 저 사람의 말은 틀렸어 라는 둥의 프로파일링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다.. 너무 당연한데 당연하지 않을 줄 알고 살짝 기대했었던 내 마음이..





양팔에 저울과 칼을 든 정의의 여신은 어느 편도 들지 않고 공정을 기하겠다는 의미로 두 눈을 가리고 있다. 이 정의의 여신은 응보적 정의를 지향한다. 응보적 정의에 따르면 피해자의 피해만큼 가해자에게 고통을 부여한다.

p 206


내가 졸업한 대학교에도 법학전문대학원이 있는데, 인문대와 가까운 건물이었으므로 그 앞을 숱하게 지나다녔더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다가 어느 날 문득 로스쿨 건물 앞에 덩그러니 서 있는 여성에게 눈길이 갔다. 손에 저울을 든 차가운 여인, 정의의 여신이었다. 그 때는 그냥 저울을 들었구나 하고 말았는데 또 그 다음에 우연히 봤을 땐 눈이 가려져 있어 의아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이 책을 읽고서야 알게 됐다. (머쓱) 왜 정의의 여신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나에게도 범죄 심리학을 공부해볼 적성이 있는가를 자문해 보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다 읽기까지 고민해본 결과, 내 눈에는 안대를 씌울 수 없기 때문에 불가능하는 결론을 내렸다. 평소 추리 드라마를 볼 때면 피해자 입장에서 오열마저 하고마는 내 감정적인 상태를 보았을 때, 어느 편도 들지 않는 공정함은 죽을 때까지 가질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최근에는 응보적 정의를 보완해 '회복적 정의'가 등장했다고 한다. 여기서, 회복적 정의란 '피해자와 가해자 또는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갈등, 분쟁 해결 과정에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해 피해자 또는 지역사회의 피해를 회복하고, 당사자의 관계 회복 및 지역사회의 평온을 추구하는 이념 혹은 실천방식'이라고 한다. 이 정의를 읽어만 봐도 느낌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실천 방식이라는 느낌...ㅎ 응보적 정의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에만 집중하다보니 피해자를 상대적으로 덜 중요시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고 했을 때는 그렇구나 했는데 그 보완법이라는 회복적 정의의 뜻을 알고 나니 나는 더욱 더 정의의 여신에게 경애심이 생겼다. 회복적 정의가 가능할 만한 건 (내 생각에) 정당 방위일 경우? 혹은 오랜 시간 학대받아온 피해자의 복수일 경우? 관계 회복까지 갈 필요도 없이 약간의 선처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가해자의 회복까지 염려해줘야 할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

이 책은 비교적 최근에 출판되었는데, 그래서인지 조두순이 곧 출소한다는 언급과 (도합 세 번 정도 언급됨 - 동시에 이제 더 이상 사건 이름이 피해자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N번방, 손정우에 대한 언급도 있다. 가끔 인터넷에서 보고 열받았던 조두순의 출소는 12월. N번방의 가해자들은 (참여한 사람들도 SNS의 특성상 모두, 전부, 가해자) 지지부진하게 잡히고 잡힌 사람들은 반성문을 열심히 휘갈기고 그나마도 적은 형량을 받으며 억울해하고 있으며 손정우는 미국으로 보내지 않았다. 손정우가 미국으로 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던 1인으로서, 다 잡은 범죄자를 방생해버린 모습을 보며 법이 대체 어떤 구조길래 이런 상황이 가능할까 궁금했었다. 물론 이 책에는 그렇게 감정적인 이야기는 없다. 범죄 심리에 대한 여러 이론과 프로파일링으로 수사하는 과정과 방법 등이 소개되어 있다. 거듭 생각한다. 형사나 탐정이나(이제 우리나라도 합법화가 되었으니까) 프로파일러가 내 천직이라고 욕심부리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고... 대신 나는 정의의 여신의 응보적 정의를 받들어 가상의 범죄자를 가상의 세계에서 가상의 혹독한 법으로 처단할 수 있는 펜자루를 쥐도록 하겠다.

본 포스팅은 카페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인문일반 #범죄심리의재구성 #고준채

#다른 #프로파일러 #범죄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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