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라틴어 원전 완역본) - 최상의 공화국 형태와 유토피아라는 새로운 섬에 관하여 현대지성 클래식 33
토머스 모어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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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는 무려 1516년에 초판이 발행되었다. 차마 헤아려보기도 까마득한 고전이다. 요즘은 철학, 인문학, 수학, 과학 등 전 분야에 능통해 시대를 초월하는 시선을 가졌던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해 몇 페이지 읽다가 졸아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고전이나 인문학 서적을 꾸역꾸역 읽고 있다. 최근에는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반쯤 읽었는데, 너무 어려워서 잠시 다른 책에도 손을 대던 찰나 <유토피아>를 운이 좋게도 읽게 되었다. 그나마 내가 읽은 고전 중에 (몇 안 되지만) 술술 넘어가는 책이었다.

'유토피아'라는 나라는 라파엘이라는 선원이 발견했다는 곳이라고 서술되고 있는데 이 말은 토머스 모어가 이 책을 저술하며 지어낸 단어다. 그리스어의 '없는(ou-)', '장소(toppos)'라는 두 단어를 결합해 만든 용어로써, '이상향'이라는 뜻을 지닌다.(두산백과 참조) 라파엘이 서술하는 유토피아라는 나라는 확실히 이상적이라고 불리울 만하다. 그에 비교되는 현실이 몇 갑절은 더 팍팍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p 39


누군가의 글을 읽을 때면 글을 쓴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어렴풋이 그려질 때가 있다. 그다지 감성적인 글도 아니건만 <유토피아>가 그랬다. 토머스 모어라는 사람은 강직하고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을 받았는데, 뒤늦게 읽어 본 작가 소개글에 에라스무스의 비슷한 말이 실려 있었다. "눈보다도 순결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었다. 영국은 과거에도 그리고 이후로도 그가 가진 천재성을 다시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애초에 그 시대에 이렇게 고도의 돌려까기(?) 책을 저술할 수 있었다는 것에 그의 후플푸프급 정의감이 돋보이기는 한다. 특히 위의 밑줄 그은 부분처럼 현재에도 적용되는 사회적 문제들을 다룬 것이 신기했다. 평신도가 하는 말도. 저 의미와 완벽하게 맞지는 않지만 우리 청년 세대가 다들 힘들어하는 것이 생각나면서 괜히 찡하기도 했다. '누구나 먹고 살 방도는 지금도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는 말은 어른 세대가 청년 세대에게 하는 무한 레퍼토리... 문제는 '먹고 살 정도'를 훨씬 뛰어 넘는 노력을 하게 만든 사회의 분위기인데, 자꾸 청년들에게 더 열심히 하라고 했다가 눈을 낮추라고 하는 둥 자신들의 파이 조각을 움켜쥐고 내어놓지 않으며 하는 첨언에 우리는 지치고 있다. 토머스 모어는 가난한 이들이 도둑질을 하는 것마저 융통성 없이 단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지만, 왠지 나는 저렇게 해석이 되었다. 나 또한 2030 청년 중 한 명이기 때문이겠지.

요즘 <자유론>을 읽다가 스스로의 무식함에 탄식하고 있었는데 <유토피아>로 고전의 즐거움을 살짝 맛본 기분이 들었다. 고전은 민음사 시리즈로 문학 작품만 읽다가 현대지성 출판사의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를 읽기 시작해 또 새로운 카테고리의 독서에 눈을 뜨게 됐다. 고전은 케케묵은 낡은 작품이 아니다. 단순히 낡은 작품에 불과하다면 숱한 출판사에서 유능한 통번역사들을 붙여 계속해서 개정판을 내겠는가. 현실이 이해되지 않을 때, 우리만 이렇게 사는 건가 의아할 때, 의외의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창구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본 포스팅은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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