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보듯 너를 본다 J.H Classic 2
나태주 지음 / 지혜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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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또한 아끼지 마세요
마음속에 들어 있는 사랑스런 마음 그리운 마음
정말로 좋은 사람 생기면 준다고 아끼지 마세요
그러다 그러다가 마음의 물기 마르면 노인이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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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없는 불행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5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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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문학으로 옮겼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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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혼란 - 지성 세계를 향한 열망, 제어되지 않는 사랑의 감정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서정일 옮김 / 녹색광선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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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롤란트처럼 혼란의 도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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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겨울
아들린 디외도네 지음, 박경리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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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어둡다. 잔혹동화처럼 시작된 이야기는 주인공이 성장하면서 현실을 깨달아가듯 동화는 사라지고 공포만이 남는다. 평생을 하이에나의 눈에서, 가면에서 자유로울 수 없대도 그들은 강하다. 폭력은 아름다운 영혼을 파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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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사라지지 않는 여름 1~2 - 전2권
에밀리 M. 댄포스 지음, 송섬별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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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이 기억난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인 남자가 다음날 낯선 방에서 눈을 뜬다. 평범한 모텔 방처럼 보이지만 문은 밖에서 잠겼고 가짜 창문을 달아놓은 그곳은 누군가의 부정한 의도로 만들어진 장소였다. 당연히 탈출은 꿈꿀 수도 없다. 영문도 모른 채 자유를 강탈당한 그는 장장 십오 년의 세월동안 방안에 갇혀 감금된 이유를 찾기 위해 노트에 자신의 죄를 빼곡하게 적어나간다. 에밀리 M. 댄포스의 <사라지지 않는 여름>을 읽고서 나는 자연스레 이 영화를 떠올렸다. 물론 소설에 살벌한 범죄나 악당 따위는 등장하지 않는다. 상실의 아픔, 가슴 설레는 사랑 그리고 질병처럼 취급 되는 아이들이 사회적 편견에서 부딪히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아프면서도 희망적인 이야기다. 이 영화와 소설이 전혀 다른 장르임에도 비슷하게 느껴졌던 건 그들이 어딘가로 보내졌고 죄수처럼 억압당했다는 사실이다. 가둔 이들의 의도도 사뭇 다르다. 전자는 복수였고 후자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학대였다.

 

 

주인공 캐머런이 사랑에 빠질 때나 여느 십대 아이들처럼 스킨쉽을 할 때면 나는 왠지 설렘보다 불안감이 앞섰다. 가령 키스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길 때라든지 짝사랑하는 상대를 넋 놓고 보다가 친구에게 그 시선의 의미를 들켰을 때가 그런 순간이었다. 캐머런이 동성애자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성별이나 외모를 선택하여 태어날 수 없듯 성정체성 또한 마찬가지, 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여자끼리 키스하면 안 된다고 누가 말해준 적은 없었지만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자연히 알게 되는 그 사실 말이다. 때문에 아이들은 나쁜 짓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숨기고 거짓말을 한다. 게다가 부모님의 사고 소식을 듣던 순간의 기억(들키지 않아 안전하다고 느꼈던 생각)은 수치심과 자기혐오를 불러일으키고, 바깥세상은 넓다는 모나의 조언에 캐머런이 반사적으로 쏘아붙인 것처럼 성정체성과 부모님의 죽음은 마치 하나의 사건처럼 인식된다.

 

 

나는 덮은 성경이 매트리스 아래 바닥에 쿵 소리를 내며 떨어지게 내버려두었다. 언제나 그렇듯 TV 위 퀘이크 호수 사진 속에서는 열두 살짜리 엄마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1p.104)

 


캐머런은 추모의식을 치르듯 안방의 TV를 옮겨와 자신만의 종교로 영화보기를 선택한다. TV 위 열두 살 엄마의 시선아래 여성들의 스킨쉽 장면을 반복해 돌려보기도 한다. 캐머런에게 사랑은 부정한 것인 동시에 부정해야 하는 것이다. 죄책감에 휩싸여 아이린의 편지를 버리고 함께 어울려 놀기를 주저하면서도 영화보기를 멈추지 않았던 것은 그것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캐머런은 엄마에게 이해받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퀘이크 호수에서 살아 돌아온 열두 살 시절의 엄마처럼 지금 열두 살의 자신에게 닥친 혼란과 고통에서 스스로가 무사히 살아남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이렇듯 영화는 캐머런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 또한 언제나 당당한 태도로 레즈비언 문화를 설파하던 린지와 첫 키스를 나눈 친구 아이린, 가슴 절절한 첫사랑 콜린은 캐머런이란 한 사람의 정체성이 된다.

 

 

애덤은 여름 캠프를 마쳤거든, 그러니까 이제 애덤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거지.”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내가 말했다.

하나님의 약속에서는 우리가 자기 자신을 망각하게 만들거든.” 제인의 말이었다.

아무리 네가 리디아의 말에 반박한들 이곳에서 너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거야.” (2p.81)

 

 

오늘날 우리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거두고 그들을 받아들여야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보면 수용한다는 말은 이미 그들을 배제하는 데서 시작된 발상이다. 마치 리디아하나님의 약속에서는 치료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하는 것처럼 모순적이다. 콜린과의 관계가 알려지고 순식간에 도움과 회복이 필요한 사람으로 전락한 캐머런은 미래(학자금)를 쏟아 부으며 하나님의 약속으로 보내진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그야말로 죄수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예수의 가르침을 내세우며 아이들에게 십자가를 지우는 어른들은 치유를 명목으로 정서적 학대를 가한다. 모든 것을 오로지 성별로 구분 짓는다. 이름과 행동거지, 취미 심지어 편부모 가정에서 자란 것까지도 이른바 동성매력장애를 일으킨 원인이 된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누구보다 상황을 명확하게 인식한다. 스스로를 윙테라 칭하는 애덤과 희석되지 않은, 가장 순수한 첫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던 제인처럼, 아마도 끊임없이 사회적 편견에 상처 입고 내면의 자신과 싸웠을 아이들은 성숙하고 현명하다. 그래서 나는 어쩐지 마음이 아파온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곳의 가르침과 믿음 자체가 문제라는 거예요. 믿지 않고 의심한다면 지옥에 갈 거라는, 우릴 아는 모든 사람이 우릴 부끄러워할 거라는, 심지어 하나님마저도 우리의 영혼을 포기해버릴 거라는 말을 듣는다고요. 그리고 여기서는 마크처럼 그런 말을 진정으로 믿고 하나님은 물론 이곳의 바보 같은 체계를 진정으로 믿는 사람조차 부족하다는 취급을 받아요. 왜냐하면 우리가 바꾸고자 하는 것은 키라든지 귀 모양처럼 절대 바꿀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이곳에서 우리에게 억지로 변화를 일으키려 하면서, 우리가 변하지 못한 것은 온 힘을 다해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러니까 우리는 더러운 죄인이고, 모든 것이 우리의 잘못이라고 믿게 만들어요. 마크도 그렇게 믿은 거예요." (2p.203)

 

 

소설에서 가장 큰 마찰이 빚어지는 장면은 마크가 성경 구절을 암송하는 장면이다. 목사 아버지가 틈만 나면 상기시키던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라는 구절을 소리치며 절규에 가까운 몸짓을 보이는 마크에게 리디아는 싸구려 연극이라 칭하며 발로 밟아 무력으로 통제한다. 분노의 표출마저 가로막힌 마크는 문제를 제거하고 깨끗하게 만들려는 시도 끝에 망가진 채로 하나님의 약속을 떠난다. 캐머런의 룸메이트인 에린역시 마크와 마찬가지로 캠프의 프로그램을 가장 잘 따라오는 듯 보였던 인물이다. 어느 날 밤 충동적으로 캐머런과 섹스를 한 뒤에 에린은 말한다. 난 정말로 이런 거 그만 하고 싶어.”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이상과 현재의 자신 사이의 괴리감은 극복될 수 있을까. 무책임한 어른들의 믿음을 믿고 자라난 아이들의 앞날은 어떤 모습일까.

 

 

소설은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실제 동성애 전환치료를 실행하던 그때로부터 우리는 얼마만큼의 길을 걸어왔을까. 그녀의 소설이 미국 내 일부 학교에서 금서 취급을 받은 것을 보면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것을 통감한다. 그럼에도 이야기 속 어떤 인물도 비난하고 싶지 않다. 그들의 오만과 무지 속에는 어떠한 악의도 없기 때문이다. 릭과 리디아는 아이들을 위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할머니와 루스는 사랑보다 책임감이 더욱 컸을 것이고, 콜린의 잔혹한 말들로 가득한 편지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쓰였을 것이다. 처음에 난 캐머런이 들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무사히 학교를 졸업하고 이모와 할머니에게서, 마일스시티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다. 그러나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사실은 빙하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드러난 부분도, 드러나지 않은 부분도 모두가 하나로서 존재하는데 어떻게 원하는 부분만 없앨 수가 있단 말인가. 기특하게도 궁극에 캐머런은 친구들과 함께 탈출을 감행한다. 악당이 없는 이야기에서 스스로 악당이 되기로 결정한다. “수면 아래가 아닌 너머로자신들을 기다리는 세상으로의 탈출은 역설적이면서 고무적이다. 캐머런은 맨몸으로 촛불을 들고 불붙은 석탄을 지나 차가운 호수에서 마음의 짐을 씻어낸다. 비로소 열병과도 같던 성장통이 끝이 났다. 하지만 모두가 캐머런처럼 탈출에 성공하진 못할 것이다. 그래도 부디 타인의 시선에 너무 아파하진 않기를, 존재 자체로 배척받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계속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읽어나가겠다고 다짐한다. 나의 부족한 글이 모닥불과 배를 채워줄 음식처럼 당신에게 따뜻한 품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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