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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말로 시작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살다보면 드물게, 서로 다른 톱니바퀴가 딱 맞아떨어지듯 특별한 순간을 경험하게 되는데 저 또한 그런 경험을 했다는 진부한 표현을 하는 수밖에요. 몇 해 전부터 당신의 글은 내 책장에 잠들어있었고 올 초 우연한 계기로 조금씩 읽어나가게 된 것이 어느덧 한해를 가득 채웠습니다. 그렇게 천천히 스며든 글은 제 삶에 잔잔하지만 멈추지 않을 파동을 일으켰지요. 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지만 저의 서툰 글 솜씨로는 제대로 표현할 수 없기에 그 모든 말들을 니콜 크라우스의 소설로 대신해보려 해요. 왜냐하면 이렇게 편지를 쓸 결심을 하게 된 것이 모두 그녀의 소설 덕분이거든요.

 

먼저 소개할 책은 니콜 크라우스를 세상에 알린 대표작 <사랑의 역사>입니다. 혹여나 제목 때문에 당신이 흥미를 잃을성싶어 서둘러 덧붙이자면,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지독한 외로움과 상실을 맞닥뜨린 사람들이고 사랑보다는 역사에 방점이 찍히는, 남겨진 이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최근 몇 해 사이에 사랑에 대한 저의 생각은 크게 바뀌었고 그로인해 까마득한 어린 시절과 지금의 저에게 있어 가장 변화된 점을 꼽아보자면, 언제까지고 저는 혼자일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는 거예요. 그래서일까요, ‘레오폴드 거스키라는 인물이 평생을 온몸으로 감당해낸 외로움의 통증이 저에게까지 전해진 듯 마음 한켠이 저릿한 것은. 어쩌면 그 좁은 방안을 가득 메운 고독함이 제게 당신을 떠올리게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는 유대인이고 고향을 덮친 죽음을 피해 달아난 유령이에요. 기차표 사는 법을 모르지만 추방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언제나 그를 옭아매기에 누구에게 묻지도 못 한 채 떠나는 기차들 뒤로 우두커니 서있던 시절도 있었지요. 그렇게 자신을 지우며 살았던 그가 죽음의 문턱이 가까워오자 세상에 반발하듯 온몸으로 소리칩니다. 불쾌한 행동을 서슴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괴롭게 해서 진상과 혐오의 대상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죠. 돌아갈 곳도, 사랑하는 여인도, 자식도 잃은 남자가 자신의 마지막 길만은 외롭고 싶지 않았던 거예요.

 

크라우스의 소설엔 항상 작가가 등장하는데 <사랑의 역사> 속 잊힌 책 사랑의 역사가 인물들을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듯이 편지 또한 하나의 중요한 수단이 됩니다. 편지가 발신인의 손을 떠나면 과거의 산물이 되듯 거스키에게 중요했던 사람들은 전부 과거 안에서 살아 숨 쉬죠. 현실의 모든 그리움과 외로움은 결국 거스키 혼자의 몫으로 남아요. 여기서 저는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를 철저하게 홀로이게 만든, 사랑이란 게 정말 무엇일까요. 찰나의 기억으로 평생을 살게 하는 그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아이 같은 질문을 한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저에게나 당신께도 영원한 물음으로 남을 테지만요. 어쨌거나 그들은 열심히 나아갑니다. 연인이 좋아한 책을 이해하고자 새로운 언어에 뛰어들고, 슬퍼하는 동생을 위해 어린 누나는 상상력을 동원해 모험가 아버지를 탄생시켜요. 그리고 오직 당신만을 보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함께했던 시간보다 훨씬 긴 세월을 홀로 살아가죠. 한 줄기 희망마저 잃고 죽음을 기다리던 마지막 순간 거스키는 소녀 앨마로 하여금 자신의 사랑의 역사를 증명 받게 됩니다. 사랑의 역사가 원작자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을 돌며 또 다른 사랑의 역사를 만들고 있었던 거죠.

 

오직 연인 앨마를 위해 글을 썼던 거스키는 전 생애에 걸쳐 단 두 권의 책을 남깁니다. 그중 책과 동명의 소설은 살짝이나마 그 내용을 엿볼 수 있지만 아들 아이작에게 남긴 책은 베일에 가려져 있어요. 지척에 두고도 다가설 수 없었던 아버지의 심정을 크라우스의 다음 소설 <위대한 집>에서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물탱크에 갇힌 상어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탱크에는 무수한 전극이 연결되어 있는데 이 때문에 상어는 고통으로 신음하지만 벗어나는 방법을 알지 못해요. 그 전선을 타고 사람들이 꾸는 악몽이 쉴 틈 없이 넘어옵니다. 어느 작가가 그랬지요,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고. 그렇다면 같은 고통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떨까요. 그들의 불행도 제각각일까요? 크라우스가 들려주는 유대인의 역사, 전쟁의 상흔은 <위대한 집>에 등장하는 많은 등장인물들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립니다.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아이들과 남자들은 아내를 잃고 어머니를 잃습니다. 저는 이 얽히고설킨 이야기 속에서 집이란 공간을 모성애로, 아버지는 삶 그 자체로 받아들였어요. 역사적으로 핍박받고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유대인들에게 위대한 집으로 돌아갈 길은 결국 기억뿐이거든요. 그래서 남겨진 남자들이 세계를 떠돌 수밖에 없는 운명을 살았던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여인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삶을 살아내기 위해 악몽 같은 기억들이 경계선 너머로 넘어올 수 없게하기 위해 자기 안의 방에 들어가 스스로 견고한 벽을 세운 여인들 말이에요.

 

그중에서도 저는 네이다라는 인물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낍니다. 가장 어리석고 이기적이지만 어찌보면 지혜로운 인물이기도 하지요. 여기서 책상은 고통의 유산으로 상징되는데 그녀는 이 책상을 쫓아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책상의 이전 소유주를 닮은 청년을 만나 한낮의 달콤한 허상에 잠겨요. 청년의 얼굴에 스친 고통을 자신이 깨끗이 닦아줄 수 있다고 믿죠. 하지만 그녀는 엄마가 아니에요. 유일하게 엄마가 되기를 거부한 인물이고 그러한 모성애는 그녀에게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비록 책상을 오래 소유했지만 진정으로 가질 수는 없었지요. 모호하게 끝나는 이 이야기의 끝은 영원히 알 수 없지만 저는 소설 말미에 네이다가 일으킨 사고가 그녀의 고해를 이끌어냈고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처럼 낙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고통의 파동이 유산을 통해 전해 내려왔듯 그녀가 일으킨 충돌이 그 고리를 끊어내는 첫 파동이 되기를, 사람들의 악몽에서 상어를 구출해내고, 아버지와 아이들이 서로를 용서했기를 바라면서 말이죠. 마지막으로 한 가지, 제가 이 책을 통해 배운 것이 있다면 굳게 잠긴 서랍은 열어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짜로 찾고자 하는 진실은 거기에 없을 테니까요.

 

<위대한 집>이 벽을 쌓은 채 살아간 여인들의 삶을 보여주었다면 <어두운 숲>은 그 벽을 허무는 자기 해체의 여정을 따라갑니다. 크라우스는 우리가 성장하면서 정형화된 관습에 둘러싸여 세상을 보는 방식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해요.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다시 되찾기 위해서는 자신의 근원을 향해 거꾸로 가는 회귀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크라우스는 니콜이라는 자신과 분신인 인물의 입을 빌려 글쓰기에 대한 회의를 드러냅니다. “애초에 자유로움의 행위로 시작했던 것이 또다른 형태의 결박이 되었다고 말이죠. 현실에서 나를 결박하고 주저하게 만드는 것들을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이러한 뒤늦은 질문은 우리 스스로 끌어내야 하는 물음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결국 삶을 산다는 것은 결박당하는 일이고 그것을 깨뜨리는 것 또한 우리 스스로의 몫이 아닐까요. 흥미롭게도 크라우스는 이 소설에서 프란츠 카프카의 숨겨진 삶을 직조해냅니다. “진정으로 살았던 적 없는 사람, 자신이 문학의 비현실 속에 존재하고 이 세상에는 주소지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었던 그를 크라우스가 문학 속에서 새로운 삶을 살도록 생명을 불어넣은 거죠. 그 안에서 니콜은 이끌리듯 카프카가 남긴 삶의 궤도를 따라 돕니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모든 것을 버린 남자와 방황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간 니콜, 그들은 과연 무사히 어두운 숲을 빠져나왔을까요? 결국 답을 알기 위해선 계속 나아가는 것만이 방법이겠지요.

 

이로써 하고 싶은 말은 모두 마쳤습니다. 인물들의 바닥을 가늠할 수 없는 고독에서, 스쳐간 페소아란 이름에서, 니콜이 자신의 불안을 향유한 사막 한 가운데서 저는 당신의 말들을 떠올렸어요. 잔잔한 수면 위로 떨어진 돌처럼 강력해서 언제까지고 멈추지 않을 기세였죠. 그러니 소아르스, 먼 미래의 누군가가 당신의 글로 인해 버거웠던 영혼의 무게를 한 꺼풀 덜어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궁극엔 그 모든 고뇌에도 불구하고 저 또한 일상의 거리에서 사라진 한 사람일 뿐일 테니까요. 부디 나의 편지가 당신에게 작은 기쁨이 되기를 바라며.

 


202012월의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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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12-16 09: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니콜 크라우스 재개정판이 나온
다음에 <사랑의 역사>와 <어두운 숲>
을 샀습니다.

네 그리고 <사랑의 역사>는 읽다
말았네요.

이제 중고서점에 나왔더라구요. 아이구
억울하다.

이제 <위대한 집>을 살라구요.

2020-12-16 19:35   좋아요 0 | URL
오 그러셨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어두운 숲이 가장 어렵더라구요ㅎㅎ
레삭매냐님의 사랑의 역사 재도전을 응원합니다!
서재 들러주셔서 감사해요^^

scott 2020-12-25 0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쥬님,내년 4월에 니콜에 새 단편집 출간예정(일정이 바뀜 ㅋㅋ하드커버가 11월20일에 출간되었네요 제목이 To Bea Man이래요.)
니콜에 작품 좋아하는 1人이
쥬님 서재방에 트리 한그루 놓고 가여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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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erry ☆ Christma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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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erry ..:+ +:.. Christma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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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메리 크리스마스 ^.~

2020-12-25 00:16   좋아요 1 | URL
어머나 이런 선물 같은 댓글!!ㅠㅠ
트리가 넘 눈부셔서 눙물이 나네요.. ㅠㅠㅎㅎ
단편집 소식까지 넘넘 감사해요!
좋은 꿈 꾸시고 즐거운 성탄절 보내세요 스콧님^^

scott 2020-12-25 0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심해서 눈팅만 ^@@^ 오조오억년 ㅋㅋ 쥬님 즐쿰 ^.~

scott 2020-12-31 1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쥬님 2021년 새해 좋은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복주머니 하나 놓고 가여 ㅋㅋ

해피뉴이어 !

\-----/
/~~~~~\ 2021년
| 福마뉘ㅣ
\______/

2020-12-31 14:57   좋아요 1 | URL
댓글요정 스콧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09년 퓰리처상 수상작 <올리브 키터리지>의 후속작 <다시, 올리브>가 16일 출간된다.

퓰리처상이라는 근사한 타이틀 덕분에 내 책장에 안착한 <올리브 키터리지>가 나의 게으름으로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했는데 <다시, 올리브>의 프리뷰단 모집글을 발견했다.

안 읽은 책을 뒷면부터 들추는 기분이라 스포 당하는 기분으로 자연스레 신청 버튼으로 손이 움직였다. (..?)

아무튼 대충 그런 마음가짐으로 단편 엄마 없는 아이를 읽어나갔더랬다.

남편과 사별한 뒤 혼자 살고 있는 주인공 올리브 그리고 아들 내외와 손주들의 방문.

여느 평범한 가족들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자꾸만 삐끗하고 어딘가 날이 서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읽다보니 아무래도 화자인 올리브에게 더 마음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들 크리스토퍼와 며느리 앤과 낯설고 무뚝뚝한 아이들이 나에게도 달갑게 느껴지진 않았으니까.

그렇게 불편한 기분으로, 빨리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읽다가 마지막장에 가서 예기치 못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앞선 모든 상황들이 비로소 이해가 됐다. 아마도 부모와 자식 양쪽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일 것이다. 요상스럽게도 올리브가 자신의 실패를 인지하는 장면에서는 빨리 앞선 이야기를 찾아 읽고 싶어서 마음이 간질거렸다. 아마도 그때엔 처음 만나는 올리브에게 남다른 동질감을 느낄 것 같다.

 

올리브 키터리지는 HBO에서 사부작사부작 4부작 드라마로도 제작되었으니 원작을 먼저 읽고 드라마를 찾아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딴 얘기지만 앤이 가슴을 내놓고 모유수유하는 장면에 올리브가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니 왜 미드 오피스가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혹시 이 대사 아는 분 계시나요?

메레디스, 유어 붑 이즈 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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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11-11 14: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요!! ㅋ

2020-11-11 16:11   좋아요 0 | URL
오! 찌찌뽕..ㅋㅋㅋ

비연 2020-11-11 15: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드라마 킵 해놓고 있다가 책 다시 보고 봐야지 했는데 ˝다시 올리브˝가 나온 거죠. 두 책다 읽고 드라마 읽어야지~

2020-11-11 16:13   좋아요 1 | URL
저도요저도요~ 드라마도 평이 좋더라구요~^^

라로 2020-11-12 13:24   좋아요 1 | URL
드라마 아주 좋았어요!! 강추
 

메이브 빈치의 소설집 <체스트넛 스트리트> 서른일곱 편의 단편 중 돌리의 어머니를 읽었다.

영화 속에나 등장할 것 같은 아름답고 만인에게 사려 깊은 어머니를 둔 돌리는 종종 열등감과 자기비하에 빠진다.

완벽한 어머니와 그렇지 못한 딸을 두고 이러쿵 저러쿵 하는 주변인의 시선과 말들 속에서도 성장의 터널을 지나는

열여섯의 돌리는 사실 크게 유별나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짧은 단편이 다 끝나기 전에 두 사람 사이에 큰 충돌을 예감했던 나로서는 완전히 헛다리를 짚었다.

영화고 독서고 자극적인 것만을 좇다보니 뭐든 다 그렇게 보게 된다.

아무튼 대단한 반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신간의 결말을 말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므로.

그저 뜻하지 않게 한 소녀의 성장통이 현명하게 끝이 났음을 보았다고 해야겠다.

의외의 결말이 참 마음에 들어서 메이브 빈치의 글이 궁금해졌다.

따뜻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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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의 신>으로 화려한 데뷔를 한 작가 아룬다티 로이가

20년만에 신작 <지복의 성자>를 발표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도 소설은 낯선 영역이라 신작을 읽기 전에

조금이라도 덜 헤매고자 데뷔작부터 찾아 읽었습니다.

첫 소설을 발표했을 당시 작가는 어떤 사회적 이슈를 담은 것이 아닌

하나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지만,

 인도 사회에 뿌리깊게 박힌 신분 제도와 관습은

너무도 이질적이고 공포스럽게 다가왔습니다.

경험이 아니고서는 탄생할 수 없는 문장들은 아름답고도 공허합니다.



<지복의 성자> 역시 초반부에서 벌써 풍겨옵니다.

아련하고 슬픈.. 우리나라 한의 정서와 비슷하달까요?



개동생도 궁금한 지복의 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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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고행이다, 라고 일찍이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누군가 말했다. 생채기를 만드는 칼바람을 고스란히 견디며 한고비, 한고비 고통의 순간을 넘다보면 어느덧 마음은 세월이 남긴 흔적들로 어지럽다. 반기는 이 하나 없는데도 바지런히 찾아드는 거대한 삶의 일부, 오로지 홀로 감내해야만 하는 그 필연적 존재 앞에서 당신은 잘 견뎌내고 있는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길을 오늘도 묵묵히 걸었을 당신에게 안부를 전하려 한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내가 속속들이 알고 있는 무수한 인물들, 방대한 세계 속에서 한줌의 이야기를 추리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미리 밝혀두는 바이다. 또한 허구와 진실, 현실성과 비현실성 이런 것들은 기실 나에게 있어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므로, 나는 당신이 불필요한 것들은 제쳐두고 이야기의 핵심에 다가서기를 간절히 바란다.

 

타인의 슬픔과 고통으로 점철된 신철규 시인의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에는 한 편의 짧은 소설처럼 강렬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어둡고 축축한 골목에서 절박하게 자신의 그림자를 도려내는 남자와 그 기이한 광경을 연민과 두려움이란 양가적 감정으로 지켜보는 화자. 시인이 눌러쓴 활자에 묻어난 그리움 때문일까, 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익숙한 장면을 떠올린다. 자신을 드리운 그림자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은 사람들의 얼굴과 그들이 집요하게 자신을 도려낼 때 그저 발가락 끝으로 땅을 있는 힘껏 누르고서 지켜만 보던 한없이 무력했던 나의 모습. 어찌할 수 없단 걸 잘 알면서도 자꾸만 애석한 물음이 비집고 나온다. 우리가 슬픔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면 슬픔의 양은 줄어들까 커질까. 생일잔치에 초대받지 못해 "지구만큼 슬펐다"고 표현한 아이의 순수와 속물적 세상이 충돌하며 "한입 베어 문 사과"는 눈물처럼 "입안에 짠맛이 돈다." 생명체의 눈은 은하계의 행성과 닮아있고 무수한 행성 중 하나인 "지구의 속은 눈물로 가득 차 있"기에 슬플 수밖에 없는 운명일 테다. 하여 그 속에서 숨을 쉬는 당신은 아프지 아니할 수 없다. 뜨겁게 차오른 눈물이 차갑게 흐르듯 미처 해주지 못한 말들은 온기를 잃고, 소리 없는 활자의 세계는 고요히 당신을 바라볼 뿐이다.

 

한때 파릇파릇한 생명의 힘을 자랑하던 사람들은 어쩌다 곪아버렸나. 여기에는 쉽게 간과되지만 절대적으로 기억해야 하는 진실이 있다. 대게의 사실은 새빨갛게 따끔거리는 상처가 아닌 딱딱하게 덮여 아문 줄 알았던 흉터에서 비롯된다는 것. 고통이 사람을 성숙케 한다는 말은 얼마나 무책임한가. 상처가 아프지 않을 만큼 굳은살이 박인 마음일지라도 입김 하나로 사그라지는 것이 또 사람 마음 아니던가. 누군가는 고통을 자양분 삼고 일어서지만 누군가는 영원히 그 굴레에 갇힌다. 책장을 한참 앞으로 넘겨 유년시절로 돌아가 보자.

 

다비드 그로스만의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도발레는 순수했던 시절이 빗어낸 죄책감으로 평생을 뒤집힌 세계에서 살아온 인물이다. 작은 클럽에서 한껏 과장된 표정과 몸짓으로 무장한 채 가짜 웃음을 파는 그는 오랜 세월을 돌고 돌아 비로소 마음의 짐을 내려놓기 위해 이름 모를 관객들 앞에서 속죄한다. 온갖 폭력에 노출된 환경 속에서도 물구나무를 서며 굳건히 엄마와 자신을 지키려했던 아이는 계산기를 두드리고 영악한 마음을 품었던 그 찰나의 순간에서 영원히 성장하지 못한다. 도발레가 작고 마른 몸을 의자에 파묻고 우유를 들이키는 장면은 그가 지나온 삶을 압축해 보여준다. 본래 한 인간이 품은 고통이란 그런 게 아니겠는가. 남이 보기에 티끌 같은 것일지라도 그것을 이고 사는 자는 그 무게에 평생을 짓눌리기도 하는 법이다.

 

배수아의 <뱀과 물> 속 소녀들은 어떠한가. "나는 갈라진 땅에서 솟아난 것처럼 트럭 앞에 서 있었다."는 이 소설집의 첫 문장은 ''라는 존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 아이들, 버림받고 방치되고 유린당한 소녀들의 근간을 보여준다. 태어나는 것이 아닌 땅에서 불쑥 솟아난 것과도 같은 그들의 존재는 그렇기에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울타리가 없는 아이들은 한 곳에 머물 이유가 없고, 모두들 저마다의 목적을 갖고 길을 떠나지만 여정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더욱 깊숙이 침잠한다. 스스로를 파괴하고 죽음을 갈망하면서도 고통의 근원을 마주하길 거부하던 길라가 백조가 토한 자신의 태아를 씹어 먹는 장면은 두려움과 광기에 사로잡혀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의 모습과 일체하며 더욱 극대화된다. 죽음까지 주인에게 종속된 스키타이족 말들의 운명처럼, 무력할 수밖에 없는 소녀들은 멈춘 시간 속에 갇힌 채 멈출 줄 모르고 돌아가는 대관람차와 같이 끊임없이 고통 받는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에게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겠다. 당신의 고통을 함부로 가늠하고 재단하지 않겠다. 대관람차를 멈추고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라 거짓된 손을 내밀지 않겠다. 다만 한 가지, 당신이 멈추지 않고 책장을 넘겨주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우리는 별에서 와서 별로 간다. 삶은 낯선 곳으로 향하는 여행일 뿐이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 지하묘지 p.96>

 

이곳에 부흐하임의 이야기를 끌고 온 것에 대해 다른 오해는 없으리라. 그곳이야말로 진정한 책들의 도시이자 삶과 문학이 일치하는곳이므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작가 발터 뫼어스가 들려주는 <꿈꾸는 책들의 도시>가 내 이야기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매우 적절하다는 것을 당신도 곧 이해하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이 책으로 시작해 책으로 끝나는 곳, 책들의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부흐하임은 언뜻 자유로운 시장 경제 체계에 기초한 듯 보이지만 안타깝게도 모종의 세력에 의해 움직인다. 자신들의 잇속을 위해 악마 같은 짓도 서슴지 않는 그들은 글쓰기에 천부적 재능을 가졌다는 이유로 를 괴물로 만들었다. 그렇다. 끔찍한 연금술로 탄생한 호문콜로스 그림자 제왕.’ 그러나 난데없는 어둠의 봉착 앞에 그의 의연한 태도는 놀랍다. 글쓰기로 인해 지독하게 외로운 삶을 살았고 자신의 존재까지 잃어버렸음에도 그는 결코 자신이기를 멈추지 않는다.

 

책이 되어버린 작가는 선한 이들을 위해 피 흘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책 사냥꾼들에 맞서 지하 묘지를 지키며 글쓰기를 열망하는 자에게는 아낌없이 오름의 비법을 전수한다. 비록 단 한줄기의 햇살도 허락되지 않는 삶이라 한들 기꺼이 저버릴 이유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이해하려 할수록 도무지 알 수 없어지는 게 삶이라면 우리는 지구별의 여행자로서 낯선 곳에서 또 다른 낯선 곳으로 머물다 가면 그뿐이다. 그리움과 회한을 짊어지고 살아가도 좋다. 고통스러운 시절로부터 달아나려는 몸부림이 번번이 출발점으로 돌아온대도 괜찮다.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나아가는 것, 삶이 있는 이유는 오로지 그것뿐이다.

 

아마 당신의 무의식은 난관에 빠진 주인공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생각할 것이다. 모든 이야기에는 끝이 있고 사건은 마무리되게 마련인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고통의 순간은 또 다른 순간으로 흘러간다. 고로 중요한 것은 마지막 장이다. 당신의 이야기가 얼마나 깊은 수렁에 빠졌는지, 어떤 식의 결말을 맞았는지의 문제가 아니다. 삶은 고행이라지만 그렇게 나를 닦아가는 여정엔 고통 외에도 무수한 순간들이 존재하고 그 모든 것이 더해져 비로소 삶은 순환한다. 살을 에던 바람이 어느 순간 산들바람이 되듯이 계절처럼 돌고 돌아 이야기의 끝에 다다르기를, 개개인에게 주어진 고유한 삶을 마지막 장까지 온전히 살아내기를. 당신에게 꼭 말해주고 싶었다. 고요한 외침에 지나지 않는 나의 글이 그곳에 가 닿기를 바라며. 나는 책이자 삶이고, 또 다른 당신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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