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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11월
평점 :
만약 시간여행이 존재한다면 딱 이렇지 않을까.
특수한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지극히 현실적이며, 슈퍼파워 따윈 존재하지 않는 평범하고도 비범한 이야기.
한 남자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존 F. 케네디를 살리려 과거의 세상으로 가면서 벌어지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이 소설은 두 권 분량으로, 옆에서 함께 상황을 헤쳐나가 듯 느리고 섬세한 호흡을 자랑한다.
"나는 원래 눈물이 없었다" 과거형으로 시작하는 이 문장은 많은 의미를 함축한다. 2011년 현재 '제이크 에핑'으로서의 삶은 아마도 많은 현대인들이 그렇듯 감정적 결핍 상태였을 것이다. 마치 어떤 과정을 거치 듯 직업을 갖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도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결핍된 그런 상태말이다. 부모님의 죽음에도, 아내의 알콜중독과 외도로 인해 파경을 맞은 결혼생활에도 그는 울지 않았다. 그런 그가 1958년의 과거로 건너가 '조지 앰버슨'으로 지낸 것은 겨우 5년이지만, 그는 이제 그 곳을 고향이라 말한다. 과거로 건너가서도 그는 교사일을 하는데, 눈을 반짝이며 수업에 임하는 아이들을 보며 행복감을 느낀다.
본격적으로 발달되기 이전의 시대,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없이 대하고, 모두가 지금보다 더 순수함을 간직했던 때.. 무조건적인 예찬은 아니다. 스티븐 킹도 말했듯 그런 시대에도 극심한 인종차별과 같이 어두운 면은 존재하니까. 이건 아마도 만국공통이겠지만, 지금보단 옛날이 더 살기 좋았다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지 않던가. 아마 나 또한 분명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면 지금 이 시간을 그리워 할 날이 올 테니까. 어쩌면 이건 시대적인 일이라기보다 과거의 향수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는 자신이 태어나기도 한참 전인 과거에서 진짜 고향이라 부를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좋은 사람들을 알게 됐고, 진짜 사랑도 찾았다. 하지만 그는 과거의 사람이 아니었고, 반드시 해야 할 막중한 임무도 있었다. 루트비어를 마시는 아주 작은 일부터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살인을 하는 일까지 과거의 세상에서 그렇게 그는 순간순간 아주 수많은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 날개짓이 모여 변화를 원치않는 과거가 화음을 깨뜨리는 조지 앰버슨에게 저항한다.
이 책은 과거를 바꾸려는 한 남자의 장장 5년동안의 기록이다. 처음엔 다소 지루한 감이 있지만 63년 11월 22일, 역사적인 그 날이 가까워오면 책장 넘어가는 속도가 빨라지는데, 그렇다고 어설프게 속독을 했다가는 눈이 팽글팽글 돌아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비유와 묘사가 많은데 원문이 어떤진 모르겠지만 이것을 그대로 번역한 느낌이라 글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다소 여유를 갖고 차근차근 읽는게 좋을 듯 싶다. 또한 책을 읽기전에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에 대해 정보를 숙지한다면 좀 더 흥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라는 개념이 불분명해지고 과거와 미래의 경계가 흐릿해지니, 막연하게 앞을 향해 나아가는 게 전부인 줄만 알았던 삶을 멈추고 돌아보게 된다. 58년 9월 9월에 멈춰진 그 곳. 그리고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 나도 내 삶을 찾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