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최진영 외 지음, 곽기영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푸른 숨결이 가득한 지구를 꿈꾸는 엮은이들의 숨결을 모은 단편 소설집, 창비교육의 00하는 소설 시리즈, 숨쉬는 소설이 출간되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책의 성격을 보여주는 문장 한 줄.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

지구의 내장 속에 플라스틱이 있다.

숨 쉬는 소설 中







청년의 삶을 주제로 했던 땀흘리는 소설, 세대별 사랑에 대한 주제를 이야기 한 가슴 뛰는 소설에 이어, 자연 혹은 사회적 재난을 주제로 한 소설에 이어, 푸른 숨결과 생태 감수성이 가득한 지구 환경을 생각하는 소설집 『숨 쉬는 소설』

이 소설집은 바로 이전 '재난(팬데믹)'을 주제로 한 소설과 연결성이 짙다. 자연 환경의 파괴와 환경에 대한 불감증은 곧 우리 사회에 재난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기억하는 소설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제대로 숨쉬며 온전한 생명과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하고 아름다운 지구의 숨결을 꿈꾸며 펼쳐지는 8편의 단편 소설은 다음과 같다.

최진영 ㆍ 돌담

김기창 ㆍ 약속의 땅

김중혁 ㆍ 심심풀이로 앨버트로스

김애란 ㆍ 노찬성과 에반

임솔아 ㆍ 신체 적출물

이상욱 ㆍ 어느 시인의 죽음

조시현 ㆍ 어스

배명훈 ㆍ 조개를 읽어요

이 소설들은 각기 다른 상황을 설정한 상상력을 재치있게 보여준다.

생명, 안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해법을 제안한다기 보다 생각을 넓히고 고민을 짚어내는 것은 이 전의 소설들의 목적과 같다.

생태와 환경문제가 인간의 삶에 깊숙히 가닿을때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 작가들의 상상력으로 빚어진 이 이야기에 대해 책에서 짧게 소개하고 있는 요약은 다음과 같다.

ㆍ 돌담 :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독성 화학 물질을 쓰는 인간들의 갈등

ㆍ 약속의 땅 : 선택할 수 없는 범위에서 일어난 변화로 생존위기에 몰린 북극생명들

ㆍ 심심풀이로 앨버트로스 : 썩는것과 썩지 않는 것의 경계를 배회하며 내장 속에 플라스틱을 들여놓고 사는 지구인

ㆍ 노찬성과 에반 : 곁에 둔 생명을 제대로 반려로 대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

ㆍ 신체 적출물 : 인간의 몸이 지닌 가치 성찰

ㆍ 어느 시인의 죽음 : 다른 종족을 식량화하는 육식문화와 약육강식의 시스템 비판

ㆍ 어스 : 인간의 몸이 산업쓰레기로 분류되어 지구로부터 거부당하는 미래

ㆍ 조개를 읽어요 : 광활한 상상력으로 파도 하나까지 기억하는 조개

그리고 각 이야기들에 귀여운 일러스트가 삽입되어있어 이야기에 컬러를 더해준다.


제일 처음에 펼쳐지는 돌담 이야기는, 우리가 뉴스에서 봐왔던 기업윤리와 생활 속에 침투된 환경문제와 관련된 이야기로 이를 우리의 이웃과 나의 직업으로 가깝게 가져옴으로써 직접적인 체험을 하는 것 처럼 느껴지게 한다. 주인공의 고민이 곧 나의 고민으로 받아들여지고, 이는 곧 앞으로의 환경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성찰을 가져다준다.

제일 첫 이야기라 그런지 제일 집중해서 읽었는데, 뭔가 한구절 한마디가 다 인상깊어서 상당히 신경을 많이 쓴 소설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마음이 허전하니까 담을 쌓은거라고 했다.

담을 다 쌓고 난 다음에는 익숙해 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이것저것 섞여서 본래 마음에 가까워 지는 거지. 숨 쉬는 소설, 돌담 中

나쁜 짓이 아니라 사업 수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난 괜찮잖아. 아프지 않잖아.

몸에 쌓이겠지. 언젠가는 아프겠지.

..나를 병들게 하는게 어디 환경 호르몬 뿐인가?

그렇다. 당장 죽지는 않을 것이다. 병들 뿐이다.

세상에는 이렇게 나쁜게 널렸는데. 나쁜걸 서로 조금씩 나누면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데

숨 쉬는 소설, 돌담 中


저는 당당하게 일하고 싶은 겁니다.

숨 쉬는 소설, 돌담 中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괜찮겠지, 아직은 괜찮겠지, 기만하는 수법에 익숙해져버린 형편없는 어른.

숨 쉬는 소설, 돌담 中

앞서 소개된 재난을 주제로 한 『기억하는 소설』과 상당히 유사한 부분이다.

괜찮겠지, 지금은 아니겠지,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되지 않으니 덮어두자 (다음 사람이, 혹은 누군가가 해결해 주겠지, 그게 내가 아닐 뿐)하는 안일한 마음, 혹은 일이 발생하더라도 내 일이 아니니 곧 잊어버리는 마음.

그것이 사회적 재난(환경 문제)이 되어 결국 나와 내 가까운 이웃을 아프게 한다는 것을 망각하면서 지내는 삶 이야기를 잘 담아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네가 낳은 아이들, 그 아이들이 낳은 아이들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 때 얼음이 녹을거야. 숨 쉬는 소설, 약속의 땅 中

언젠가는, 이라며 지금은 아닐꺼라는 안일함.


쓰레기(잘못된 데이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제대로 된 결과물을 얻을 수 없다).

쓰레기를 넣었기 때문에 더 많은 쓰레기가 생겨난 것이다. 자신 역시 이제 곧 지구의 쓰레기가 될 확률이 높았다. 숨쉬는 소설, 심심풀이로 앨버트로스 中

생각해 보면 (인간은) 일회용이긴 하지.

부활이나 내세 같은게 없다는 거지.

죽으면 끝나는 거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으니까.

숨쉬는 소설, 심심풀이로 앨버트로스 中

잘못된 데이터(경각심과 반성 없는 태도)의 지속이니, 더욱더 나빠질 수 밖에 없는 지구에서 정작 일회용은 무엇이고 쓰레기는 무엇으로 남게 될 것인지 생각해 보게 하는 소설


할며니, 용서가 뭐야?

없었던 일로 하자는 거야? 아님, 잊어 달라는 거야?

-

그냥 한 번 봐 달라는 거야.

숨 쉬는 이야기, 노찬성과 에반 中

인간들은 자연스럽게 용서라는 말을 떠올리고 나서야 지구와 그들의 관계를 되짚어 보았다. 당연한 기대. 당연한 믿음.

늘 이번만-, 다음에는-, 을 달고 사는 우리에게 일침을 날리는 소설.


'무서움'도 욕망의 일종이었다.

손해 비용을 치르지 않으려는 욕망

'애원'도 욕망의 일종이었다.

각자의 애원은 각자의 것을 지키려는 욕망

애원은 각자의 내부에서만 공명할 것이다.

숨 쉬는 소설, 신체 적출물 中

미래를, 다음에 올 것을 생각해야 했다.

매번, 쉴틈없이, 생활을 애썼고 비참해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너와 '함께' 살아가게 될 '미래'였기 때문에, 정말이지 열심히 했어.

숨 쉬는 이야기, 어스 이야기 中

한편 한편의 이야기들에 깃들여져 있는 환경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상상력들이 매우 흥미진진했다. 마냥 뉴스속 이야기도 아닌 것이, 마냥 SF소설도 아닌 것이, 이것은 어쩌면 정말로 내 바로 옆에서 일어 날지도 모르는 우리의 삶(생활)과 지구의 이야기.


인간들은 아주 많은 기회를 그냥 흘러보냈음을 깨달았다. 미래에 대해 말하고 상상할 수 있었던 모든 순간이 전부 기회의 순간이기도 했다는 것을

숨 쉬는 소설 책 표지 中

다시 지구를 숨 쉬게 하고 싶은 당신과 나눌 여덟가지 이야기,『 숨 쉬는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억하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강영숙 외 지음, 이혜연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책을 관통하는 문장 한 줄.


망각했으므로,

세월이 가도 무엇하나 구하지 못했구나

기억하는 소설 中

청년의 삶을 주제로 했던 땀흘리는 소설, 세대별 사랑에 대한 주제를 이야기 한 가슴뛰는 소설에 이어, 자연 혹은 사회적 재난을 주제로 한 소설집『 기억하는 소설』

재난이 일상이 되어 버린 재난의 시대(팬데믹)에 우리의 안전하고 행복한 내일을 고민하는 시간을 선사하는 8편의 단편 소설은 다음과 같다.

강영숙 ㆍ 재해지역투어버스

김숨 ㆍ 구덩이

임성순 ㆍ 몰:mall:沒

최은영 ㆍ 미카엘라

조해진 ㆍ 하나의 숨

강화길 ㆍ 방

박민규 ㆍ 슬(膝)

최진영 ㆍ 어느 날(feat. 돌멩이)

이 소설들은 재난 속 일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 이는 소설 속 주인공만의 재난이 아닌, 우리 모두의 재난으로 느끼게 하는 "재난의 당사자성"을 경험하게 해준다. 경험 그대로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이러한 무비판적인 상황속에서는 스스로가 피해자가 되고 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재난을 통해 무언가 배우지 못한다면 다음, 다음 재난의 연속으로 이어지고만다는 것을. 그러지 않기위해서, 적어도 재난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재난을 더욱더 기억해야 한다.


반복되는 재난을 겪으면서도 왜 우리 사회는 나아지지 않을까요?

기억하는 소설 中

기억은 세상을 바꾸는 토대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꾸 망각한다.

그러므로 소설은 잊을만 하면 잊지말라고 계속 이야기를 해주는 역할을 해내야한다. 그렇게 오늘을 잊지않음으로써 더 오래 지속될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것. 그 역할을 하기 위한 책이 바로 『 기억하는 소설』이다.


소설 선택의 기준, 소설의 나열 순서, 이 책의 영향력(현실에 대한 실망과 절망을 주게될 것인가 새로운 질문을 던저 사회적 안정망이 작동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줄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두는데 소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ㆍ 재해지역투어버스

미국 뉴올리언즈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후일담으로 자연재해가 사회적 재난으로 확장되는 보편적 재해 모습을 담고 있다.

ㆍ 구덩이

자연재해인지 인간이 낸 사회적 재난인지 알수없는 동물 전염병에 대한 얘기로 모르는척 덮으려 할수록 여러문제가 나타나는 임시방편식 대응방식을 비판적으로 담고 있다.

ㆍ 몰:mall:沒

침몰의 몰, 망각했으므로 다시 반복되는 비극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ㆍ 미카엘라

피해자들에 대한 이해와 감정을 기억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메세지를 담고 있다.

ㆍ 하나의 숨

개인적 사고가 아닌 사회적 약자인 실습생의 죽음으로 산업재해도 재난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반복되는 사회적 문제를 담고 있다.

ㆍ 방

태안 앞바다의 원유유출,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폭발 등의 사건 복구에 투입되는 힘없고 약한 사람들, 즉 재난 복구 과정에서 영웅심에 의해서가 아닌 희생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ㆍ 슬(膝)

코끼리(다쓰러져가는 국가, 공동체)를 개인이 이길 수 없다. 국가 도움 없이 개인(어쩔 수 없이 남겨진 소외된 자)의 힘만으로 재난을 극복해 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ㆍ 어느 날(feat. 돌멩이)

운석으로 지구가 멸망한 이야기로 광기속의 디스토피아, 혼란속의 인간애(휴머니즘)를 다루며 피할 수 없는 재난을 함께 극복하는 인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21.6.13일 반영되었던 알쓸범잡에서는 사회적 재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바로 8개월을 두고 반복적으로 벌어졌던 성수대교 붕괴와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사건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안전불감증에 대한 이야기, 그럼에도 반복되는 것에 있어 기억해야 할 의무(이들의 희생을 기리는 '위령탑'에 대한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이 소설과의 연결성을 느꼈다.



굉장히 많은 사상자를 내는 사건이 하나 있을 때, 같은 이유로 작은 규모의 사건이 29건 있고, 아주 경미한 사건이 300건 발생한다.


우리 사회 깊숙이 있던 안전불감증, 위험한걸 알지만, 어떤일이 벌어질것 같지만, 오늘은 아니겠지, 나와는 상관없겠지. 라는 안일한 사람들의 시선과, 재난과 관련된 하인리히 법칙(1:29:300의 법칙)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히 인상깊다. 모든 사고들은 당시로서는 작을 수 있는 이거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생각들이 차곡차곡 쌓인 것소 잃고 외양간을 고쳐야겠다는 말만 하고 고치지 않고 있는 병든 사회.


우리가 잊는다면,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

망각했으므로 반복해서 누군가를 희생한다면 그 얼마나 슬픈일인가. 그 누군가가 아닌 우리 모두는 기억해야 한다, #기억하는소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경숙 작가의 11년만의 신작 #아버지에게갔었어 를 받아 읽어보게 되었다.


"아버지, 저 아버지에 대한 글을 쓰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나에 대해 쓸일이 뭐가있어...내가 무엇을 했다고"

"그런말 마셔요, 아버지가 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어. 그저, 살아냈을 뿐이야.."


1933년생, J시에서 태어나고 살아낸, 아버지에게 간 딸의 이야기.


(1) 책 표지 이야기, 포르투갈 리스본의 사진

당연히 일러스트일거라고 생각했던 책 표지는 사진이였다.

포르투갈의 리스본의 한 집과 초원과 하늘이 어울어진 진짜 사진.

어딘가 그립고, 어쩐지 푸르르고, 한없이 자유롭고 싶으면서도 오롯이 지키고 있는 모습이 어딘가 아버지를 닮았다.

이 사진을 보는 순간, 이거다, 싶었다고 한다. 한 평생, 일생을 집을 떠나지 못하고 집(가정)을 지키고 살아온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의 표지로는, 집 뒤의 넓은 하늘의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이 사진이 제격이라고 생각했다고.

(2) 책 제목 이야기, 딸이 아버지에게 간 내용을 그대로 적은 제목

제목은 뜻 그대로 딸이 아버지에게 가게된 내용이라 처음부터 이 제목을 쓸 생각이었다고 한다.

책에서 작가의 말에도 적혀있지만, 『엄마를 부탁해』를 집필한 뒤에 그러면 아빠에 대한 이야기도 쓸 생각이 있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고 한다. 그럴 생각이 없었지만 어느샌가 결국 쓰게된 이야기.

『엄마를 부탁해』라는 글을 쓸 당시, 어머니라고 적던 글이 잘 풀리지 않자, 엄마라는 단어로 쓰기 시작하니 이야기가 잘 풀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만큼 모두에게 엄마라는 단어는 애틋하고 친근한 느낌으로 다가온다고.

그런데 왜 이번에는 아빠가 아닌 아버지일까. 일단 신경숙 작가 본인이 아버지에게 아빠라고 불러본적이 없었다고 한다. 엄마에 비해 아빠에게 느끼는 어떤 본능적인 거리감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지 않다고. '엄마'라는 단어처럼 오히려 '아버지'라는 단어가 훨씬 더 익숙하고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엄마를 잃어버린지 일주일째다' 로 시작해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 로 끝나는 엄마에 대한 소설

'아버지가 울었어'로 시작해

'살어 냈어야, 용케도 너희들 덕분에 살아 냈어야'로 끝나는 아버지에 대한 소설.

둘은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 하면서도 결국 결이 같다. 우리는 그들을 모른다.

엄마라는 존재는 가장 만만한 존재이다. 속상한 마음을 어디에 둘 지 모를때 쉽게 응석부리기 쉽고, 안풀리는 것들에 대해 쏟아부으며 화풀이 같은 짜증을 쏟아내기 쉽다. 그리고 늘 엄마는 엄마다.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함부로 전부일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엄마는 가여운 사람도 아니고 내가 다 알고 있는 존재도 아니고 늘 그곳에 있어줄 수 있는 존재도 아니다.

'엄마를 잃어버린 다음에야 너는 엄마의 이야기가 너의 내부에 무진장 쌓여 있음을 새삼스럽게 실감했다. 끊임없이 반복되던 엄마의 일상, 엄마가 곁에 있었을땐 깊이 생각하지 않은 엄마의 사소하고 어느 땐 보잘 것없는 것 같이 여기기도 한 엄마의 말들이 너의 마음속으로 해일을 일으키며 되살아났다. ( 『엄마를 부탁해』 273p)'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한 세계 자체였다. ( 『엄마를 부탁해』 275p)'

그녀가 죽었을때, 사람들은 그녀를 땅 속에 묻었다.

꽃이 자라고 나비가 그 위를 날아간다.

체중이 가벼운 그녀는 땅을 거의 누르지도 않았다.

그녀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얼ㄹ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그녀, 나의 어머니 ( 『아버지에게 갔었어』 126p)'

아버지라는 존재는 곤경에 처했을때 가장 먼저 떠오리는 얼굴이다. 곁에 계시지 않아도 늘 영향을 주는 존재로 '아버지, 나 좀 구해주세요.' 라는 말과 함께 든든하게 의지하며 곁에 머물러 있는 존재이서도 서로에게 감정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존재이다. '계속 다른 곳이나 바라보며 못 들을 척 하는' 나와, '보고싶다'는 말을 '너 본지 오래다'라고 소리치는 앵무새로 알게하고, 어딘가 쭈구리고 앉아 혼자 감정을 추스리는 모습을 보게되고, 몇가지의 왜곡된 정보들을 토대로 자신만의 서툰 자식 사랑을 보여주는 '아버지'의 모습을 알게된다.

살아가는 일의 얼마간은 왜곡과 오해들로 이루어졌다. 왜곡되고 오해할 수 있었기에 건너 올 수 있는 순간들도 있었을 것이다. ( 『아버지에게 갔었어』 62p)

나와 내 형제들이 이 집에서 묵게 될게 될 때마다 피로한 몸을 눕히고 잠에 들었던 방에 아버지가 있었다. ( 『아버지에게 갔었어』 72p)

"사는 일이 꼭 앞으로 나아가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돌아보고 뒤가 더 좋았으믄 거기로 돌아가도 되는 일이제"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치매 검사를 받으러 갔던 아버지. "붙들고 있지 말어라. 어디에도 고이지 않게 흘러가게 둬라. 내가 정신이 없어지먼 이 말을 안해준 것도 잊어버릴 것이라.." ( 『아버지에게 갔었어』 92p)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믄 그거는 하믄서 살라고 하는 것뿐여" ( 『아버지에게 갔었어』 142p)'

"너는 언지나 근사해따. 나는 아버지가 되어서 너의 힘이 돼지지 모타고 니 어깨만 무겁게 했지마는 너는 언지나 근사해따 너는 언지나 그래와떤 거처럼 니 자리에서 성실히 니 할 일을 해낼 거슬 나는 익히 안다, 나는 더 바랄거시 없다, 하늘 아래 니가 건강하면 그것으로 되었따, 아버지가" ( 『아버지에게 갔었어』 170p)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의 말 속에 깃든 아버지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개념적인 아버지, 아버지는 이러해야 한다는 무게를 짊어지고 사는 모습만을 알고 있던 딸이 아버지에게 가까이 가게 되면서 아버지의 나이 든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게 되는 이야기다.

나는 아버지를 한 번도 개별적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아버지를 농부로, 전쟁을 겪은 세대로, 소를 기르는 사람으로 뭉뚱그려서 생각하는 버릇이 들어서 아버지 '개인'에 대해서는 정확히 아는게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 『아버지에게 갔었어』 197p)

아버지를 전혀 모르겠다는 기분이 들자 등을 기대고 있는 현관 문이 차갑게 느껴지고 생각지도 ㅁ소한 외로움이 밀려왔다. ( 『아버지에게 갔었어』 238p)

그렇게 개념적이고 보편적인 아버지의 허물이 벗겨지고 아버지 개인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때문에 이 책은 그가 이렇 모습으로 자라왔겠구나, 그도 이런 생각을 했겠구나, 누군가로 누군가에게 남는 존재구나 라는 생각들을 '이제야' 하게 되면서, 늘 부모에 대해서는 '너무 늦게 이해하게 되는 마음'에 대해 한번 쯤 생각하게 하는 소설, 엄마를 부탁해, 그리고 아버지에게 갔었어.

(3) 누군가에게 있을법한 고향, J시

작가의 고향이 정읍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당연히 J시를 보며 정읍을 떠올린다.

누구나 연고지가 있고 지내온 어린시절의 배경이 되는 곳이 있다. 그 곳을 특정 장소로 지칭헤서 묘사하기보다 자기만의 고향을 꺼낼 수 있도록 J시로 묘사했다.

누구에게나 푸르렀던 시절, 살아가며 푸른 잎을 남겨놓는 것, 그리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푸르른 작별. 이는 아버지와 고향 모두에게 해당된다.

(4) '보편적이고 아름답고 한국적이고 힘이 센 이야기' 라는 서평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라는 것은 늘 해오던 말이기도 하다. 이 책은 나의 아버지인것 같지만 모두의 아버지를 담고 있고 개인적인 서사를 담고 있는 것 같지만 결국 한국의 역사가 담긴 책이 되었다.

아버지 뿐만이 아니다. 주변 인물들의 묘사도 마찬가지이다. 직접 만났거나 아니면 주변에 있을 법한 인물의 표현은 필히 경험에 근거할 것이고 이를 소설로 풀어내었다는 것은 그들을 녹여낸 관찰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모든 인물들에게 애착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은 '박무릉'이라고 했다. 아버지 이야기 속에 아버지가 되지 못했던 사람이기에 이 이야기가 아버지만의 이야기는 아니게 될 수 있었다고.

(5) 4장에 실린 인터뷰 형식, 단편모음집 느낌의 그에 대해 말하기.

총 5장으로 구성된 글에서 4장만 따로 읽어도 한편의 단편 소설을 읽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3인칭 거리두기로 딸이 아닌 다른 시선으로 묘사된 아버지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제 3자들은 아버지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담는다는 것은 내가 어떤 존재인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나에게는 항상 아버지이나 그 역시 아들이자, 누군가에게는 친구이며, 한국의 역사를 체험하며 자라온 세대로 그 세대별 여러 아버지들을 담는 형식이 흥미롭다.

이런 마음들을 겪는거 보면 저도 아버지가 되어가는 중인가 봅니다.

( 『아버지에게 갔었어』 337p)

딸이 라는 한정적 시선이 아닌, 다른 시선으로 다각도로 아버지에 대해서 알게 된다는 것은 앞서 말했던 개념적 아버지에서 개인적 아버지로 바뀌어 그려지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아버지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나, 누구에게 들은 아버지인가, 내가 본 아버지의 모습이 아버지의 전부는 맞나, 아버지의 우는 모습은 본적이 있나, 어떤 친구들과 어떤 세대를 보냈나, 전부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이다.

삶에는 기습이 있다. 살아가는 시간 속엔 기습이 있지.

기습으로만 이루어진 인생도 있어.

왜 이런일이 내게 생기나 하늘에다 대고 땅에다 대고 가슴을 뜯어보이며 막말로 외치고 싶은데 말문이 막혀 한마디도 내뱉을 수도 없는..

그래도 살아내는게 인간 아닌가.. ( 『아버지에게 갔었어』 323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체스트넛 스트리트
메이브 빈치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행복한날은 없어요. 하루하루 행복하지 않아요. 불평하는게 아니에요. 그냥 그렇다고요." 


덤덤하게 자신의 심경을 이야기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행복해야 하는 인생'을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나는 행복하지 않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틀린 일일까. 


생각해 볼 일이다. 


"그들은 정말 친구일까?"


관계에 있어 어딜가나 존재감이 있고,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걸까. 그들의 이름과 어떤 생일파티에 모두 초대받으며 어떤 생일을 보냈는지 꼭 알아야 하는 걸까. 그렇지 못한다면 틀린일일까. 


이것 또한 생각해 볼 일이다. 


주인공 돌리는 열 여섯살의 생일을 앞두고 들뜬 엄마 앞에서 그날이라고 해서 꼭 행복한 날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꼭 생일이 행복한 기억으로 꼭 남아 있어야 하는 걸까? 엄마는 자신의 열여섯살의 생일의 사소한 기억이 행복하게 오래 남아있으므로, 자녀역시 그러길 바랬다. 


"네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 그리고 다른 애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줘"


라는 엄마의 말에 나온 대답이 첫 대답이다. 


"행복한 날이 아닐거예요."


이때 '늘 무슨 말을 하면 될지 알았고, 그 말을 하는'어머니가 안심시켜주는 말을 파도처럼 밀어붙이지 않고, 그저 어깨를 토닥이며 '그래 일상이 늘 행복할 순 없어, 이런날도 있고 저런날도 있지, 시간이 흐른뒤에 행복했다고 느끼는 날도 있어. 네 지금의 생각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라고 말했다면 돌리는 스스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그것 또한 모르는 일이다. 


"다른사람들을 기분 좋게 해주는 일은, 행복하게 해주는 일은 뭐든 다해요?"


"응, 그런것 같은데. 나는 그걸 일찍부터 터득했어. 

다른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해주면 인생을 헤쳐나가기가 한결 수월해지지."


"하지만 그건 자신이 느끼는 것에 솔직하지 않다는 거잖아요."


"늘 그렇진 않아. 안그래."


이 대화를 통해 돌리는 깨닫는다. 
나는 저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엄마의 생각이 틀린 것도 아니다. 
아아, 엄마의 길과 나의 길은 다르구나. 



그날은 언젠가 그자리에 돌리가 성장한 하루로 남을 것이다.
길은 여러가지라는 사실, 어머니의 방식은 하나의 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날로. 
반드시 옳은 길일 필요는 없다. 클린 길도 결코 아니다. 
그저 앞에 놓인 많은 길 중 하나일 뿐인 것이다. 
메이브 빈치 <체스트넛 스트리트> 중, 돌리의 어머니


저 사람은 항상 옳은 길로 가고 있고 내가 가야 할 길도 그 하나의 길일리 없다. 

틀린 길도 없고 수많은 길 중에 하나를 갈 뿐이다.


이소설의 느낌은 부드럽거나 따뜻하거나 하는 단편적인 표현으로는 조금 부족하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이렇게 느꼈다면 그것이 맞고, 저렇게 보았다면 그것도 맞다라는 표현이 소설의 몇몇 인물을 통해서 이입되기도 하고 반감되기도 하면서 종합적이고 입체적으로 그려진다는 것은 신기한 경험이다. 한마디로 복잡한 관계가 복잡한 스트릿처럼 펼쳐져 있으니 이 소설은 체스트넛 스트리트 그 자체이다.


사람과 사람관계도 이들처럼 유연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좋을텐데, 

결코 원하는대로 흘러가지 않지만, 그 흐르는 방향이 틀린 방향은 아니라는 것을.  




* 문학동네 메이브 빈치의 신간소설 『체스트넛 스트리트』의 돌리의 어머니를 읽고 쓴 서평이자 기대평이다. 


"행복한날은 없어요. 하루하루 행복하지 않아요. 불평하는게 아니에요. 그냥 그렇다고요."

길은 여러가지라는 사실, 어머니의 방식은 하나의 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날로.
반드시 옳은 길일 필요는 없다. 클린 길도 결코 아니다.
그저 앞에 놓인 많은 길 중 하나일 뿐인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브라스 꾸바스의 사후 회고록 창비세계문학 20
마샤두 지 아시스 지음, 박원복 옮김 / 창비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가장 빛나는 별’ 마샤두 지 아시스 작품 국내 첫 번역본.

'브라질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며 세계문학을 논하는 자리에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작가'라고 소개되는 마샤두 지 아시스는 사실 처음으로 접하는 작가였다.

글 속에는 여러 정치가, 역사가들과의 친분이나 서구 고전들(드 메스트르는 방을, 가헤뜨는 자신의 고향을, 그리고 스턴은 타인의 고향을 여행하는 등 이들 모두는 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는 표현 외 고전 작품들의 영향을 다수 볼 수 있다)과도 명맥이 닿아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스탈당의 독재시절부터 갓 독립한 브라질의 정치적 상황(노예해방(1888)과 공화정으로의 전환(1889)) 등 당대 사회현실(남녀문제, 노비와 정계 등 폭넓은 사회계층의 문제)들이 녹아 있다. 이 점이 바로 이 책이 세계적 수준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유라고 한다.

19세기와 20세기의 두 세기의 생활양식이 엉켜 있는 모습이 사실적으로 다루면서도 (역시 문학은 사회의 반영이니까) 감정적인 고뇌와 정신착란의 감정들 (그러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담기 마련이니까)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는 책,

『브라스 꾸바스의 사후 회고록』 이다.




사실 어릴적 『젊은 베르테르의 죽음』이라는 책을 접한 이래,

죽음에 관한 책, 특히 자살에 관한 글이라면 관심있게 읽어왔던 것 같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계속 죽음으로 가고 있어.' 라는 아이러니한 문장에 열광하면서, 만화책이나 소설 등에의 대사에서 이와 관련된 문장들이 나올 때면 관심있게 지켜봤다. 현실이라기보다 다소 열병이나 환상같은 느낌으로.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내 눈에 띄었던 것은 '회고록'이라는 말 앞에 붙은 '사후'라는 단어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책의 서문에 나와 있는 글귀처럼, " 『브라스 꾸바스의 사후 회고록』 이 소설인가?"

질문에 이 책에 몇몇 사람에게는 '예', 이면서도

몇몇 사람들에게는 '아니오'라는 대답이 나오기도 했다는 이 책에 대해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산만한 작품이오. 아마도 삶을 두루 여행한 사람인,

나 '브라스 꾸바스'가 자유형식을 취했는지, 염세주의의 투정을 집어넣었는지

나 자신도 모르오."

이미 죽은 사람의 작품이니, 그러면서도

『브라스 꾸바스』를 『나』 라고 표현했으니 정말 소설이자 소설이 아닐 수 있겠다.

자전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다른 자전소설과 달리 (세속적 의무와 책임에서 벗어난) 저승에서 (세속적 의무와 책임 속에 살았던)이승의 삶을 회고하는 책이라니.

난 이 작품을 우울의 잉크를 묻힌, 소란스럽고 밝은 펜대로 썼다.

『브라스 꾸바스의 사후 회고록』 마샤두 지 아시스

나는 책의 초반에 나오는 이러한 표현에 박수를 치며 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적당히 삐뚤어져있고 적당히 진지한, 익살과 허무가 잘 섞인 이런 문체, 환영한다.


사망한 뒤에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한다는건,

죽음(死)뒤에 다시 삶(生)을 살아보는 것.

글은, 총 160장(章, 번호메김)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첫번째 번호는 사후 회고록에 걸맞게 '죽음'에서 시작한다.

1. 저자의 죽음

1805.10.20일에 탄생하여 1869년 8월 어느 금요일 오후 2시, 가뚱비 별장에서 향년 64세의 나이에 결핵으로 사망한다.

독신이였고, 300 꽁두의 재산을 소유했었으며, 11명의 친구가 있었다.

1. 저자의 죽음, 작가가 된 고인

흥미로운 시작이며, 사후 회고록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끔 만든다.

화자인 브라스 꾸바스는 자신이 1869년 64세로 사망했다고 말하고 있는데, 작가 마샤두 지 아시스의 삶은 1839년-1908년으로 작가의 죽음보다 100년(한 세대) 앞선 인물이다. (그래서 인지 책 속에 '세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중학교때였나, 도덕시간에 수행평가로 이러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주제는 '미래 설계'였지만 이미 다 이룬뒤에 과거를 반추하며 써보는 '자서전' 내지는 '회고록'의 형식이였다.

그때 나와 친구들은 자신이 어떠한 업적을 남기는 것 보다,

어떠한 형태로 죽느냐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해 봤던 것 같다.

병사냐, 자연사냐, 사고사냐, 안락사냐 등등.

죽음을 선택할 순 없지만 마지막을 상상해 본다는 것은 살아있음을 돌아보게 만드므로, 살아있는 도중에 to do list/bucket list를 만들게 하므로, 그렇게 일상을 의미있고 소중하게 만들기에 그 시기에 이러한 생각들을 공유하는건 의미있는 일이었다. 그것이 실제적 현실로 다가온다는건 다른 문제지만.

그는 죽음의 순간을 이렇게 회고한다.

'내 죽음은 그다지 드라마 틱한 것이 아니었다'

'죽음의 오케스트라는 겉으로 보기보다 훨씬 덜 슬펐다.'

'의식이 빠져나간 나는 육체적, 정신적 부동상태에 접어들었다.

육체는 나무, 돌, 진흙, 그리고 전혀 아무것도 아닌것이 되어버렸다.'

『브라스 꾸바스의 사후 회고록』 마샤두 지 아시스

2. (브라스 꾸바스) 고약.

브라스 꾸바스는 자신의 사인이 실은 고약'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가

'나는 이제 저승에 있으므로 모든 것을 밝힐 수 있다.

나에게 주된 영향을 끼친, 마침내 약상자에 씌어질 다음과 같은 세단어'

라며 야심차게 발명한 이 고약',

"인류의 우울을 완화시키는 숭고한 의약품"- 브라스 꾸바스의 고약.

이 고약이, [명사]로 쓰이는 '주로 헐거나 곪은 데에 붙이는 끈끈한 약'을 말하는지,

[형용사]로 쓰이는 '흉하거나 험상궂다. 성미나 언행 따위가 사납다'는 뜻을 말하는지 잘 모르겠으나, 그는 그 고약에 대해

'우울증의 꽃보다 덜 노란색이면서 전혀 병적이지 않은 꽃'이라며

'명성애 대한 사랑'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사랑이라고 표현했지만 그의 삶을 돌아보건데 아마도 사랑(인류애)이라기 보다 갈망(명예욕)이지 않았을까 싶다.

3~160.부정적인 것에 이르기 까지.

1, 2장을 시작으로 그렇게, 족보 (18세기 다미어웅꾸바스를 시조로 서류를 위조하여 귀족이 된다), 그날(탄생일), 가족소개,를 시작으로 일생의 중요한 사건, 학교생활, 포로생활, 첫사랑 (내 젊음의 첫 감동) 엄마의 죽음, 아빠의 죽음 , 불륜, 사업실패, 주변인들의 죽음 등의 자신의 일대기와 주요 사건들을 서술에 담는다는 것은 전형적인 회고록의 형식을 갖춘다.

그러면서도 강박관념(강박을 갖기 보다 스스로 되묻는 자가 되길) 정신착란, 부도덕한 생각 등등 신념, 생각, 철학, 고정관념 등에 대해 이야기 하며 자신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놓치지 않는다.

그의 회고(책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독신의 삶으로 결핵으로 사망한 뒤에 자신의 겪었던 정신착란의 증상들을 고백하며 탄생부터의 연대기를 쭈욱 서술한다. 1805년 브라스 꾸바스는 히우지자네이루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장난꾸러기였던 어린 시절의 일대기와 첫사랑(마르셀라)에게 선물을 하느냐 아버지의 재산은 물론 대출까지 손을 대어 강제로 유학을 가게 된 청소년기, 대학생활과 어머니의 사망으로 고향으로 돌아온 청년기, 아버지의 연방하원 의원제안과 결혼제안(비르질리아)을 받아들였으나 의외의 인물(네비스)에 의해 출세와 결혼 모두 실패한 일화, 사교모임에서 결혼할 뻔 한 그녀를 다시 만나 불륜, 동거, 권태기, 이별을 겪은 일화, 어릴 적 친구(보르바)가 설파하는 ‘후마니티즘’의 철학적 대화, 장관직과 신문 창간의 실패, 새로운 여성과의 사랑(냥놀로)과 죽음, 이전 사랑(비르질리아)의 남편의 죽음, 옛 친구(보르바)의 치매와 죽음을 거치며 그렇게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어떤 피조물에게도 내 불행을 유산으로 물려주지 않았다”라는 유언을 남긴 죽음에 까지 다시 이르게 된다.



이름만 부르고 끝난다던가,

제곧내(제목이 곧 내용)로 끝난다던가,

몇줄의 문장으로 끝난다던가 하는 니맘대로인 회고록.

연설문장이라던가 묘비명만 소개함으로써

오히려 강렬한 전달력을 주기도 한다.


재미있는건, 그가 '위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였으므로,

아주 '감정적인 서술'이라는 점이 인상깊다.

그가 처음 '산만한 작품'이라고 경고하긴 했지만,

그 자체가 들쑥날쑥한 인간이기에 현재의 감정들을 일종의 믿을 수 없는 착각이나 일시적인 경련으로 보듯 서술하는 장면 묘사들은 역시 그가 죽어서 쓴 글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앞서 얘기했던 '염세주의적인 투정' 때문일까.

문장력이 참으로 엉뚱하면서도 매력적이다.

나를 믿어라. 가장 덜 나쁜일은 추억하는 것이다.

현재의 행복을 믿어선 안된다.

세월이 흘러 경련이 멈추면 진정한 행복을 즐길 수 있다.

너는 이제 무엇을 더 원하나?

『브라스 꾸바스의 사후 회고록』 마샤두 지 아시스

'이 세상을 떠날 준비가 된 나' 라지만 늘 '현재가 과거를 몰아내는 현실의 압도'에서 살아가고, '애벌레'이자 '숭고한 멍청이'로서 '그저 사는 것'에 대한 삶의 철학이 숨어 들어 있다. 시간엔 흘러간 순간이 아니라 다가올 순간이 중요한 법이다. 삶의 재앙과 기쁨, 삶의 영광과 비참함을 더 번식시키는 사랑, 쇠약, 욕망, 분노, 질투, 야망, 배고픔, 공허와 우울, 부와 사랑… 이 세기의 삶을 삼키며 살아가고, 죽음을 맞이하고, 다른것처럼 소멸하지만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 그러한 삶을 맞이하는 그의 자세에 주목할만하다.

재미있고 한번 경험해볼 만하죠.

아마 단조롭겠지만 해볼 만 해요. 재미있을 겁니다.

『브라스 꾸바스의 사후 회고록』 마샤두 지 아시스

망자의 경멸적인 시선이라고는 하지만 그의 삶을 그저 그렇게 계속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언제나 다가올 순간이 흘러갈 순간보다 중요하다.

강하고, 기쁘고, 죽고, 소멸하고 흐른다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