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빠진 소녀
악시 오 지음, 김경미 옮김 / 이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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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사람이라면 '바다에 빠진 소녀'라는 제목의 이 소설을 보는 순간 바로 심청이를 떠올릴것이다. 이 책의 저자 #악시오 는 한국사와 문예창작학을 '공부'로 익힌 한국계 미국인으로 한국인과 한국 문화를 소재로 한 로맨스물과 SF 소설 작업을 이어오다 지금의 판타지 장르에 까지 이른다. 이 이야기는 미국 청소년들을 열광시킨 고전 『심청전』의 다시쓰기이다. 

서양에서 바다의 신으로 포세이돈을 떠올린다면, 한국에서는 바로 용왕을 떠올릴 수있다. 토끼의 간을 구하러 온 용궁의 신하 거북이와 함께, 용왕의 제물로 바쳐졌던 심청이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아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바다의 영향을 많이 받는 바닷가 마을이 재난으로 흉흉해지자 '용왕신'이 화가 나신거라며, 용왕의 분노를 달래기 위한 제물로 마을 제일의 처녀를 바다에 바치는 풍습에서 시작한다. 그 해의 제물로 정해진 '운명'의 여인은, 심청이였지만, 그 '운명을 훔친' 미나는 '나는 나 자신의 운명을 만드는 사람이다'라는 다짐과 함께 용왕의 신부를 자처하며 심청이 대신 바다에 뛰어든다. 그리고 그곳에서 '저주'에 걸려 깊은 잠에 들어있는 '용왕'과, 그곳을 다스리는 강한 군주 '신'과 만나게 된다.  

모든 고전 소설의 모티브가 그러하듯, 이 책에서도 계속해서 '운명'에 대해 언급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주풀이'도 결국 태어난 생년월일시를 두고 해석하듯, 운명은 태어날때부터 이미 어느정도 정해져 있는 것이라 믿어왔다. 그래서 '팔자'라는 말 앞에서 쉽게 무릎 꿇었다. '네 팔자가 그래'라고 말하면, '그렇구나'하고 받아들이는게 고전의 법칙이다. 

하지만 현대적인 해석과 상상이 가미된 이 소설은 다르다. 이미 '선택'되고 '정해져 있는' 그 운명은 우리의 용기와 선택과 누군가를 위한 마음을 내세우면 바뀔수 있지 않을까를 내내 얘기한다. 심청만큼 아름답지도 특별하지도 않지만, 감히 그 평범함을 앞세워 바다에 대신 뛰어 들어가는 그 용기, 할머니가 전해준 은장도와 지혜, 주인공을 도와주는 조력자들과, 실패를 단언하는 방해자 앞에서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기 보다 감정과 생각에 따라 행동하며 적극적으로 운명을 '만들어 가는' 진취적인 행보를 보여준다. 더욱이 그녀에게 힘이되는 인물들 역시 저마다의 개성으로 희망을 염원하는 적극적인 '인간'들이었다. 

신은 신나름대로 용왕을 지키기 위해 주인공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신념과 의지가 강한 주인공에게 곧 매력을 느끼고, 주인공 역시 누군가를 해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지키기 위한 마음에서 비롯되었음을 안 이후로는 신에게 마찬가지로 호감을 느낀다. 

이렇듯 고전 『심청전』과는 달리 판타지적인 장르에 주변의 개성있는 인물들과의 연대와 용왕과의 로맨스까지, 한 평범한 소녀가 운명을 바꾸며 세상을 구하는 영웅적 모험서사이자 성장소설로 만드는 요소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 소설은 가족관계, 연인관계, 인간들의 시계와 신들의 세계를 모두 매력적으로 그려낸다.  사랑, 운명, 희생, 신념 들을 소재로 다루며 판타지 모험과 달달한 로맨스가 어우러지며 완벽하게 현대적으로 재해석 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고 자신의 길을 선택하고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면서 '운명을 쫓는 것이 아니라 운명이 날 쫓게 만드는' 이 소설은 우리에게 '너 역시도 그러길 바란다'는 주제의식을 확실히 전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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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셸비 반 펠트 지음, 신솔잎 옮김 / 미디어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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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어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주변이 어둑해지고,

수조 앞 유리벽에 굉장히 아름답고도 복잡한 지문 그림들이 남는다.

한번씩 이 그림들을 한참 들여다 보며 연구한다.

각각의 그림이 모두 다르다. 지문은 고유한 형태를 지닌 열쇠와 같다.

나는 지금껏 본 그림들을 다 기억하고 있다.

나는 내 수조를 들여다본 모든 인간의 얼굴을 기억한다.

유리에 남긴 지문만으로 정확히 누가 내 수조를 만졌는지 안다.

듣고자 한다면 무엇이든 들을 수 있다.

보고자 한다면 내눈은 더 없이 정밀해진다.

셀비 반 펠트,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中


문어의 수명은 약 1460일(4년)이다. 수조에 '감금'되어 수명을 세고 있는 마셀러스와 누구도 꼼꼼하게 청소하리라 기대하지 않지만 늘 최선을 다하는 일흔살의 야간 청소부 할머니 토바.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은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인간에 의해 수조에 갖힌 거대 태평양 문어와 청소하는 할머니의 종을 뛰어넘는 유대감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은 동물들을 우리나 수조에 가두고 묶어두지만, 인간 역시 실체없는 어딘가에 갖혀 있고 무언가에 얽매여 있는건 마찬가지이다. 우리 모두는 외롭고 고립되에 있다는 공통점이 있기에 반대로 누군가에게 언제든 기대고 연대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 책의 간단한 줄거리는 이렇다. 토바는 수족관을 탈출하는 모험을 즐기던 마셀레스가 곤경에 처했을때 구해준적이 있었고, 마셀레스는 토바가 잃어버렸던 열쇠를 돌려주며 그녀의 상실에 위로를 전했다. 그는 그녀를 은둔속에 가두고 한동한 삶을 지배한 슬픔이 그녀를 더 끔찍한 곳으로 이끌게 될까 늘 노심초사해 했다. 그녀 역시 늙은 문어의 야밤의 여행에 행여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했다. 그렇게 마음이 가닿았기 때문일까, 토바는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문어를 제일 먼저 떠올렸다. '현실적'인 토바는 수조 속 생물과 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에게 위로 받았고, 그를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토바의 부상으로 대신 일하게 된 새로운 청년 청소부 '캐머런'에게 그와 친구가 되는 법을 알려주기로 한다.


"뜻밖의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다"


라는 말로 설득하며 마음을 여는법과 기다려 주는 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똑똑한 우리의 자이언트 문어는, 청년과 할머니사이의 관계를 확신했다. 그렇게 감금1341일째,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It won't be long now)라는 농담을 들으며 웃지 못하는 문어이지만 피할수 없는 자신의 끝을 예감하며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똑똑한 문어 마셀러스를 보면서 '문어'에 대해서 찾아봤다.

마셀러스의 모험심 많은 성격, 사람을 기억하고 구분하는 능력, 심장이 세개라는 혼잣말, 단독 수족관 생활, 야행성으로 밤에 수족관을 탈출하여 이리저리 돌아다닐 수 있는 지능과 문제해결능력 등 모든 것이 문어의 일반적인 특징에 해당했다.

작가의 완전한 상상이 아니라 문어에 대한 기본적인 연구에서 비롯된 픽션이였던 것이다. 아시아권에서는 문어는 식재료 정도였지만, 미국이나 유럽쪽에서는 영리하고 꺼려지는 동물로 크라켄 등의 괴물로 묘사되며 잘 먹지 않았다는 정보도 놀라웠다. 그래서 더욱이 문어에 대한 상상력은 더 커질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생애 주기별로 인간을 봤지만

그들은 부인할 여지 없이 언제나 인간 모습 그대로였다.

성장하며 몸집이 커지고,

삶의 끝에 가까워지며 다시 작아지는 경우는 있을지언정

네개의 팔다리와 스무개의 손발가락, 머리 앞쪽에 달린 두개의 눈은 변함없다.

인간이 부모에게 의존하는 기간은 대단히 길다.

신체적으로 자립해나가도

기이하게도 그들은 사소한 일로 엄마나 아빠를 부른다.

어린 인간은 분명 바다에서 혹독한 실패를 맛보게 될것이다.

셀비 반 펠트,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中


수족관에서 사는 마셀러스는 낮에는 인간을 구경하고 밤에는 자신만의 모험을 즐긴다. 그가 보는 많은 사람들은 부모와 자식, 연인, 친구 등 다양한 군중의 모습으로 나타날것이다. '단독 생활을 하는 육식동물'인 탓에 '다른 문어'들과도 접점도 없는 문어는 부모 자식 세대 간의 접점도 없다고 한다. 수컷은 교미 후 죽거나 암컷에게 잡아먹히고, 암컷은 산란 후 내내 알만 품다가 죽는다. 따라서 모든 문어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홀로서야 하기에 부모와의 교류는 커녕 부모의 얼굴도 모르는 것이다. 문어의 생애와 특징을 알고 글귀를 다시 읽으면 인간의 혹독한 '실패'를 상상하며 하찮게 대하는 시선이 아닌, 어쩌면 한가득 안고 있는 '궁금함'이 서려있는지도 모른다. 마셀러스 입장에서는 '의존'이 강한 인간의 모습은 마냥 신기하면서도 한심해 보였다기 보다, 어쩌면 '의문'과 함께 부러움의 마음이 자리잡아있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외롭다.

내 비밀을 나눌 누군가가 있다면 외로움이 덜해질지도 모른다.

비밀은 어디에나 있다.

어떤 인간들은 비밀로 가득차있다.

최악의 의사소통 능력, 그것이 인간이란 종의 특징인 듯 하다.

청어조차 자신이 속한 무리가 어느방향으로 가는지 알며

그에 따라 헤엄쳐 나가는데

왜 인간은 무엇을 원하는지 서로에게 속 시원히 말하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수백만개의 단어를 사용할 수 없는걸까?

셀비 반 펠트,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中


바다 속에 깊숙한 곳곳에 숨어 있는 비밀들은 바다는 잘 품어주고 있다. 바다가 품고 있는 비밀들과 어울어진 해양 생물이여서 일까, 문어의 눈에는 다른 의미에서 비밀을 많이 품고 있는 인간이 그저 신기하다. 그는 그 비밀을 나눌 누군가 없어서 외로운데 인간은 비밀을 만들어 숨기면서 스스로를 외롭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해 질 수 있는데 쓸 수 있는 수십개의 단어들을, 거짓말을 하기 위해 사용하는 최악의 의사소통을 지녔다고 말하는 이 풍자적인 멘트는 인간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이 드러나는 듯도 보였다.


정말 행복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말하는 것이 진짜 행복이 아닐 수도 있지만,

내 지식으로 나는 '만족감'과 비슷한 무언가를 경험한다.

좀더 정확히 말하지만 '고통의 일시적인 감소'다.

아, (모르는게 복이야라는 말따위의)'무지'로 '행복'을 얻는 인간이란!

동물의 왕국에 무지는(상어의 존재를 모르는 청어같이)곧 '위험'을 의미한다.

하지만 인간도 무지로 인해 '상처'를 받는다.

본인들은 모르겠지만 내눈에는 보인다.

매일 경험하는 일이다.

셀비 반 펠트,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中


그렇게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마셀러스는 '행복'에 대해 논한다.

마셀러스는 '차라리 비극이 짧은 간격으로 연이어 닥치면 먼저 맞닥뜨린 날것같은 고통을 유용하게 활용해 한번에 상황을 끝낼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들, 남편, 오빠의 상실을 연이어 겪은 토바가 행복하기를 누구보다 바라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상실함으로써 겪는 절망의 깊이에는 끝이 있다'는 것을 토바 역시 알고 있었다. 스마트 쿠키 마셀러스는 친구 토바의 슬픔을 안다. 그 상실에 위로도 건낸다. 토바와 마셀러스는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두사람의 닮지 않은 외로움과 상실(맞이한 상실과 다가올 상실)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껏 기회를 몇번이나 제공했는지 삶이 기록하고 있다면 밀린 기회들이 아주 많이 쌓여있을 인간들은 기회를 놓치고, 실수를 미화하고, 외로움을 자처하고, 솔직하지 못할뿐더러, 무지로 인해 상처받는 안쓰러운 존재다.

동물의 눈에서도 뻔히 보이는 것들을 우리는 많이 놓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어가 주인공이 되어 인간과 교감하는 이야기가 신선했다.

마셀러스가 화자가 되어 말하는 부분은 오만한것 같으면서도 유쾌하고, 결국 유대감과 '정'을 보여주었기에 읽는 독자 역시도 '정'이 간다.

진심으로 모두 행복해졌으면 바라는 힘이 있다.

책 표지에 나와있는 '상실이라는 주제안에서 우리의 외로움이 다른 존재와 이어졌을때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케빈 윌슨의 서평에 크게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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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소녀들의 숲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미디어창비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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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간략한 줄거리는 1426년 '조선'의 '제주도', 고려시대부터 이어져온 '공녀 제도'를 배경으로 사라진 13명의 소녀들을 수사하다 실종된 아버지의 뒤를 잇는 '민자매'의 수사 이야기이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가 남긴 60권의 수사 일지를 들고 제주도로 온 '민환이', 서로 떨어져 지내며 공통점이 없어 소원한 사이였던 동생 '민매월'의 도움을 받고, 아버지가 끝내 풀지 못했던 13명의 소녀들에 대한 미해결 사건에 대한 수사를 이어 진행하면서 문제를 해결해가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그동안의 상처를 치유하며 끝내 끈끈한 가족의 연대를 보여주는 서사를 담고 있다. 또한 증언이 모으던 과정에서 복선, 가희, 채원 등 공녀 제도의 대상이 되는 또래 소녀들과 연대하면서 이것이 각각의 개인사가 아닌 우리의 아픈 역사와 관련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는 자매를 응원하며 이 사건 자체를 기억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고 페이지를 덮게된다.


공녀제도가 어린 소녀들을 대상으로 했었기에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 역시 '10대' 로 설정 하였으며, 실제 아버지의 고향이였던 '제주'를 배경으로 자신 역시 아버지를 그리고 애정하는 마음으로 소설을 썼다고 한다. 본래 주인공은 한명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시작했으나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서 여동생의 도움을 많이 받게된 작가가, 자신이 이렇게 가족의 도움을 받았던것 처럼 책의 주인공 역시 혼자가 아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를 만들고 싶어서 자매로 설정을 바꾸었다고 한다. 역사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아버지, 그리고 자매의 이야기가 주가되는 가족애에 대한 이야기가 되기도 하면서 이 책은 외국과 한국 모두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를 충족시켰다.


이곳에 오려고 천 리나 되는 바다를 건넜습니다.

그러니 어떤 답이라도 찾아야겠습니다.

공녀 제도가 남아있는 조선, 집안에 여자 아이가 있는 것을 숨기거나 빨리 결혼시키는 수 밖에 없었다. 혼사길을 앞두고 있던 민환이의 삶도 별다를게 없었다. 그대로 한양에 있었다면 그 시대에 부여된 뻔한 역할을 수행하며 뻔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아버지'와 '동생' 이 두가지만 보고 제주로 왔다.

그시대의 소녀가 스스로 어떠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 타지로 움직였다는 것만으로도 서사는 시작된다.


그리고 이야기에 마지막 부분에 민환이는 이런 질문을 받는다.

'평범한 여인들은 혼사길을 앞두고 도망쳐 천리나 되는 바닷길을 건너지 않지.

분명 이번 수수께끼도 혼자 힘으로 풀 수 있을거요. 이곳에서 답을 찾을지도 모르지.'

'답'을 찾기위해 움직였고 원하는 '삶'에 대한 질문을 듣게된다. 그리고 다시 '답'을 찾아야 한다. 조선 시대에 갖힌 여인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대한 탐구적인 질문으로 끝나는 이 부분이 좋았다. 시대를 거슬러 삶을 '살아 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역사' 가 되는 것이라는 메세지를 준다.

역사는 기억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쉽게 사라지는 것은 역사를 '사건의 나열'로만 볼 뿐, 역사 속에서 살아 숨쉬었던 '인물들의 삶'을 떠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3개의 키워드로 소개할 수 있다.

첫째는 아버지, 둘째는 연대, 셋째는 성향이다.


공녀제도는 '강대국과의 마찰을 피하려는 나라, 출세를 꿈꾸는 관리, 자기딸만 보호하려는 아버지', '희생양이 되는 어리고 힘없는 약한 여자들'의 비참한 운명을 담고 있다. 이 소설에서는 그 중 찢어지는 마음으로 딸을 보내야 하는 부모인 '아버지'의 모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설 속에 나오는 '아버지'들은 다 각각의 부정을 보여준다. 그것이 삐뚤어지거나 못난 부정애로 보여진다 할지라도 그들은 '널 위한 거야' 라는 말로 그들의 딸을 지키려고 애쓴다.

그러나 공녀제도라는 것은 그 땅에 있는 모든 딸들에게 적용되는 제도였기에 '내'딸을 지키는 일이 또 '다른' 누군가의 딸의 '희생'과 관련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나일 수도 있다'가 될 것이냐 '나만 아니면 돼'가 될것인가 하는 이 딜레마 속에서 남겨진 쪽도 선택된 쪽도 모두 '희생'이라는 말 아래에 묶이게 되는 결과에 처하고 만다.


책의 원제목은 <The Forest of Stolen Girls>이다. '빼앗긴' 소녀들.

그러나 번역가의 힘으로 (이 책은 진짜 옮긴이가 신의 한수) 이 '희생 당한'으로 끝나는 게 아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라진'소녀들로 바뀌게 되었다.

"사라진 아이들의 이름을 다 기억하세요?"

"그럼, 지금도 계속 생각나는걸."

그래서 이 장면이 참 좋았다. '사라진' 소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며 그들을 기억해줌으로써 결코 '빼앗긴' 것이 아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소녀로 남겨두는 장면이.

뿐만 아니다. '여자로 태어난 게 저주가 된' 시대 속에서 이 소설에 나오는 십대 소녀들은 각각의 사연, 믿음, 소망을 가지고 순응하는 삶이 아닌 현실을 정면 돌파하고 마주하려는 삶의 자세를 보여준다. 민자매를 비롯하여 증언을 들으러 가면서 만난 사건과 관련 있는 복선, 애라, 가희, 채원 등의 소녀들은 성별, 신분, 나이, 소문 등의 사회적 제약들에 굴하지 않고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저항하는 개성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저항이란 이름으로 연대하는 여인들을 보면서 가부장제 세상 아래 한계를 두지 않으며 저마다의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면서도 서로를 구원하는 성장 스토리를 만날 수 있다.

사이가 나빠서가 아니다.

그저 우리 둘 사이에 공통점이 없을 뿐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두 자매의 다른 성향을 묘사했던 부분이었다.

이부분은 자매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적용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었다.

관계에 있어 사이좋게 지내지 못했던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공통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던 이 문장이 좋았다.

우리가 서로를 교집합으로 여기고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그 '공통점'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매월을 행동하는 사람으로, 환이는 생각하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두 자매의 가장 다른 성향을 잘 드러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길을 잃었을때, 혹은 모르는 길 앞에 놓였을때의 각자의 해석방식이 돋보이는 숲에서 장면이었다.

'증거'와 '증빙', '원칙'을 중요시 여기며 "지도는 따라가라고 존재하는 거야"라고 말하며 생각하고 판단한 후에 행동하는 환이가 있다.

반면 "지도는 길을 잃었을때 참고하라고 확인하는 거기 때문에 책이나 지도에 코를 박고만 있어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라며 일단 실천하고 행동하고 보는 매월이 있다.

때문에 환이는 사건의 실마리들을 쫓으며 '만약'이라는 가능성을 두고 그것이 '증명'되느냐에 초점을 두며 하나씩 제거하고 채우며 사건을 수사한다면 매월은 그때그때 당면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순간에 맞는 판단으로 헤쳐나가며 사건을 수사한다.

막다른 길 앞에 섰을때, 두사람의 반응도 재미있다.

'길이 막혔다. 어떻게 할 것인가' 하며 사고하는 언니 앞에서, '이쪽 길이 막혔으면 다른 길이 있을 테니 찾아보면 된다' 라며 곧장 움직이는 동생이 있다.

이런 두사람의 성향 차이를 마주할때마다, 나는 어느쪽이지를 계속해서 생각하게 했다. 나라면, 나라면, 이런 생각들로 민자매와 함께 사건을 해결해 나가듯이.

그리고 서로는 스스로 답을 찾지 못하고 망설이게 되었을때, '내가 너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는 곧 두사람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공통점'을 찾아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것이 바로 연대이자 관계를 맺는 방식인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실수를 되돌릴 수 있을까? 죄를 씻을 수 있나?”

소설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아버지의 수사일지는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되면서도 소설에서 독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은연중 드러내기도 한다.

-숲이 나를 지켜본다. 잊지 않는 눈으로 매섭고도 고요하게.(32p)

-신중하게 보고 신중하게 생각해라. 증거를 정확하게 해석해야 한다.(61p)

-사건의 정확한 과정을 구성하는데 증언은 반드시 필요하다. 증언만으로 수사의 허점을 메워야 하는 경우도 많다.(78 p)

-너무 가까이에 있는 것을 관찰하다보면 길을 잃는다. 멀리서 주변을 살피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보일 것이다.(191p)

-사소한 정보에 집중하거라. 반복되는 형태를 찾는거다.(330p)

-모든 증언, 모든 소문, 모든 의심,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입수해야 한다. (331p)

-모순과 불일치, 그 두가지에는 반드시 의문을 품어야 한다.(341p)


사건의 끝에서 우리는 사건을 해결했다는 통쾌감만을 느낄 수는 없다.

'희생'과 '구원'의 의미에 대해서,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각자의 견해를 정리하면서 마무리 지을 뿐이다.

그 시절의 배경 뿐만이 아니라 그 속에서 연대하고 저항해왔던 인물들이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세대를 초월한 이세대와 그세대와의 연결고리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집으로 가야지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연대의 끝은 또다른 연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잊지 않는 눈으로 매섭고도 고요하게' 이 말을 우리는 가슴에 새길 것이다. 그렇게 기억할 것이다. 그 시절의 아픈 역사와, 그 시절을 살아낸 우리의 소녀들을.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낼 우리들을. '매섭고도 고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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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타일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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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을 포함한 7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는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그 중에는 「크리스마스에는」이라는 소설도 실려있다. 이 소설에 영감받아 다시금 스위치에서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연작소설로 연재하며 다시금 「크리스마스에는」으로 마무리되는 김금희 작가의 신작 『크리스마스타일』

아픔과 이별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인물들의 치유, 화해, 성장의 이야기를 아주 잘 이끌어가는 작가이기에 이 책에서도 과거의 회상과 현재의 나를 연결하며 결국 화해하는 과정을 따뜻하고 산뜻하게 보여준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사용하는 방식인 옴니버스 에피소드 구성형식으로 일곱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각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다. 전편에서 나온 인물의 이름이 다음편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그 다음편에서는 주변부로 등장하면서 "아, 그친구가 누나였구나, 아 이친구가 그 전남친이구나. 아 그때 그사람이 이사람 선배구나." 하면서. 시점이 바뀌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시점이 바뀌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관점이 바뀌면 세상이 달리보이듯이.


모두의 겨울이 다르듯이, 각자가 완성한 크리스마스의 풍경들이 다르겠지만, '크리스마스 타일처럼 이어붙인 우리들의 마음'만은 그 각자의 이유로 가치있게 사랑받길 원한다는 작가의 말을 새겨본다.



세상은 내키는 대로 낙서해도 되는 백지장이 아니지만

이미 낙서된 부분들을 하얗게 지우거나 덮을수도 없다.


다른 사람에게 나를 일일이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내가 그러고 싶다면, 나를 알리고 싶다면 반대로 일일이 설명해도 된다.


대게 살아가면서 얻는 교훈들은 실천되지 않기에 우린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누군가에겐 상처로, 누군가에게 추억으로 남아가고 있다.

그 누구도 '상한 사람'으로 곁에 있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살면서 많은 것들을 애도하면서 보냈다.

그것은 시절일 수도 있고 사람일수도 있고 과거의 나일수도 있다.

누군가와 함께 보냈던 시절이 반짝였다 한들 다시 한데 모아 반짝이게 할 순 없고,

그 중 많은 이들도 떠나버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잃어버린 사람들을 또 다른 사람으로는 채울 수 없었다.


크리스마스는 어떤 용서도 구원도 수거도 필요하지 않은

그저 흔한 날중에 하루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크리스마스는,

더욱이 눈내리는 크리스마스는

모두가 모두의 행복을 비는 박애주의의 날이다.


이 겨울에 맞는 '크리스마스'라는 주제이지만, 비단 우리가 채우고 맞춰가야 할 타일이 '크리스마스 타일' 뿐이겠는가. "어떤 용서도, 구원도, 수거도 필요하지 않은 그저 흔한 날" 중에 하나일지라도 일년 내내 쌓아온 일상의 타일들이 한 해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기에 더 꿋꿋하고 힘차게 채워질 뿐이다.

내리는 새햐얀 눈은 소복히 쌓이며 세상을 환히 밝히는 듯 보여주지만 곧 녹아 사라지는 것처럼, 그 시절을 보내며 상처를 주기도 하고 추억을 남기기도 한 우리의 함께도 영원하지 못하고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흩날리고 쌓였던 그 눈과 한사람의 자리는 새로운 사람이 똑같이 채워줄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저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하기를 비는 박애주의자처럼 매년 따뜻하고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바라며 'I'm dreaming of a white chistmas'와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를 외친다.

진심으로. 여느때와 같은 일상이지만 늘 수고해왔고 애써왔던 당신에게 그 어떤것들과 화해하고 잠시라도 구원이 되길 바라며.

그리고 올해도 어김없이, 모두가 미리 Merry Christmas하길 바란다.

이 계절에 너무나 맞는 소설 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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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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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이런 젠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의 시작은 매우 강렬하다. 신경숙이 ’엄마를 잃어버린지 일주일 째다‘ 로 엄마의 이야기를 알렸던 것처럼, 정지아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했다. 아버지는 지리산과 백운산을 누볐던 ‘전직 빨치산’으로 20년 감옥살이 뒤에 고향에 터를 잡은 아버지는 그 뒤로도 자본주의 한국에서 평생을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사회주의자로 살았다. 아버지는 평소처럼 아버지는 민중의 발걸음으로 한걸음 내디뎠지만 다만 거기, 무심하게, 하필이면 거기, 전봇대가 서 있었고 아버지는 그렇게 가족의 곁을 떠나게 되었다.

이 책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의 3일의 시간을 담고 있다. 조문실에서 맞이한 조문객들을 통해 아버지의 인간관계를 말하고 아버지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아버지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해방 이후의 한국의 70년 현대사를 덩달아 훑게 된다. 전라남도 구례의 짙은 사투리로 주고받는 대화들은 정겹지만 서글프고, 웃기지만 안쓰럽다. 선택할 수 없었던 아버지였기에 원치않게 평생을 ‘사회주의자의 딸’로 평행선을 그리며 살아왔다고 생각해오던 딸은 아버지를 어떻게 이해하고 기억해야 할까. 장례식장에서 딸은 아버지의 사람들을 만나며 이를 정리해본다.


영정사진 앞에서 딸은 말한다.

영정 속 아버지를 봤다.

'영정' 속이라는 말이 이제 다시 실물로 볼 수 없다는 실감을 불러 일으켜

나는 잠시 감상에 젖었다.

사회주의자가 아닌 아버지를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나는 아버지를 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中

장례식의 초반이었다.

그리고 여러사람들을 만나며 사흘의 장례식이 끝나던 날이 온다.

영정 속 아버지가, 이틀 내 봤던, 아까도 봤던 영정 속 아버지가

전과 달리 그립던 어떤 날들처럼 친밀하게 느껴졌다.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밀했던 어린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中

영정사진 앞에서 아버지의 죽음과 부재를 실감하지만 결국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은 다시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부활' 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추억으로 회자된 기억속에서는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겠다고.

'그러니까 죽음은, 끝이 아니구나.' 라고 딸은 생각한다.

자신과는 너무 달라 '수평선'을 걷는 아버지라고 생각했는데 '같은 결'을 가진 아버지라고 딸은 생각하게 된다.

그저, '내가 몰랐을 뿐이다.'라며 '사회주의'의 아버지에서 벗어나게 된 딸.

그리고 아버지 역시 마침내, 유물론에서 벗어나 한 줌의 재가 되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아버지의 '삶'으로부터의 '해방'이었고, 딸이 '이해'하고 있던 아버지에서의 '해방'이었다.


해방은 벗어난다는 것이고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자유 이후의 삶이 더 중요하다.


따라서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는 소설 제목에서의 '해방'의 의미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빨치산으로 살았던 아버지의 '해방 이후의 이야기'라는 삶의 족적을 쫓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러한 삶에서 이제 해방되었다는 이야기 이기도 하다.

또한 딸이 그간 지니고 있던 아버지의 모습(이미지)로부터의 벗어나(해방) 아버지를 보내드리는(역시 해방) 이야기 일 수도 있다. 즉, 그동안 아버지의 '일부'만 '알고 있던' 자신의 아버지에서 '해방'되어 '모르고 있던' 아버지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버지를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웃지 못할 사연들을 풀어내며 내가 알던 아버지가 아버지의 ‘일부’였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빨갱이’ 형 때문에 집안이 망했다고 생각하는 작은아버지는 죽은 아버지와 화해할 수 있을까. ‘소학교 동창’이라 둘도 없는 친구로 지냈던 시계방 박선생은 아버지가 죽은 뒤에도 정치적 지향 차이로 계속 투닥일까. ‘담배친구’인 열일곱살의 샛노란 염색머리의 소녀는 죽은 아버지와도 여전히 허물없는 사이로 남게 될 수 있을까. ‘아버지의 아들’을 자처하는 사람들과 끝내 친구가 되지 못한 사람들은 아버지를 어떤 마음으로 보내게 될까.


누구와도 허물없으면서도 사상으로 대립하고 그러면서도 사람들을 감화 시키는 웃긴 아버지. 그리고 나를 믿고 사랑했던 아버지. 아버지의 인연들을 만나고 그 에피소드들 속의 몰랐던 아버지도 함께 만났다.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했다고 해서 아버지를 ‘이해’한다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이념과 갈등속에서 많은 오해가 있었고 오해받기도 했다. ‘아버지의 동반자’였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딸’이었던 ‘나’는 아버지의 유골을 손에 쥔 채 한참 울었던 딸은 유물론을 외치던 아버지를, 홍길동 처럼 사방팔방 다니며 사람과 어울리던 아버지를, 가장 아버지 다운 방식으로 보내기로 한다. 바람에, 황톳물인 강물에, 이곳 저곳 좋은 곳에 아버지를 보내어 아버지에게도 내게도 새 길이 열리기를 바라며. 


아버지의 유골을 손에 쥔 채 나는 울었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이상한 인연들이 말없이 내 곁을 지켰다.

그들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져 나를 감쌌다.

오래 손에 쥐고 있었던 탓인지 유골이 차츰 따스해졌다.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도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아버지의 해방일지』 中


마지막에 이 대목에서 마음이 먹먹해 지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의 '아버지'라는 그저 그 말 만으로도. 코끝이 시큰해 진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으나 실수투성이의 삶은 돌이킬수록 잘 산 것 같지 않다. 부끄럽지만 통렬히 반성하면서 살아왔고 행복도 아름다움도 성장도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야만 거기 있는 것도 아니었다는걸 이제 안다.


그건 니 사정이제, 라는 말을 자주 하며 '그놈의 사정'이야기를 자주 내뱉던 아버지.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라며 아버지의 입버릇 같았던 말을 되새겨보면 그 속에는 그놈의 사정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늘 뒷받침 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를 받아들이고 보니 기본적으로 이해와 용서, 화해와 화합을 중요시 하는 사람이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 단어 속에서 나는 사람 냄새를 이제는 맡을 수 있다. 그러고 나니 좀처럼 아름다워 보이지 않던 세상이 이리 아름답다. 

아버지가 그랬듯, 딸도, 그리고 그 시대의 딸들인 우리도, 계속해서 사람 냄새 넘치는 곳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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