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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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작가의 11년만의 신작 #아버지에게갔었어 를 받아 읽어보게 되었다.


"아버지, 저 아버지에 대한 글을 쓰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나에 대해 쓸일이 뭐가있어...내가 무엇을 했다고"

"그런말 마셔요, 아버지가 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어. 그저, 살아냈을 뿐이야.."


1933년생, J시에서 태어나고 살아낸, 아버지에게 간 딸의 이야기.


(1) 책 표지 이야기, 포르투갈 리스본의 사진

당연히 일러스트일거라고 생각했던 책 표지는 사진이였다.

포르투갈의 리스본의 한 집과 초원과 하늘이 어울어진 진짜 사진.

어딘가 그립고, 어쩐지 푸르르고, 한없이 자유롭고 싶으면서도 오롯이 지키고 있는 모습이 어딘가 아버지를 닮았다.

이 사진을 보는 순간, 이거다, 싶었다고 한다. 한 평생, 일생을 집을 떠나지 못하고 집(가정)을 지키고 살아온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의 표지로는, 집 뒤의 넓은 하늘의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이 사진이 제격이라고 생각했다고.

(2) 책 제목 이야기, 딸이 아버지에게 간 내용을 그대로 적은 제목

제목은 뜻 그대로 딸이 아버지에게 가게된 내용이라 처음부터 이 제목을 쓸 생각이었다고 한다.

책에서 작가의 말에도 적혀있지만, 『엄마를 부탁해』를 집필한 뒤에 그러면 아빠에 대한 이야기도 쓸 생각이 있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고 한다. 그럴 생각이 없었지만 어느샌가 결국 쓰게된 이야기.

『엄마를 부탁해』라는 글을 쓸 당시, 어머니라고 적던 글이 잘 풀리지 않자, 엄마라는 단어로 쓰기 시작하니 이야기가 잘 풀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만큼 모두에게 엄마라는 단어는 애틋하고 친근한 느낌으로 다가온다고.

그런데 왜 이번에는 아빠가 아닌 아버지일까. 일단 신경숙 작가 본인이 아버지에게 아빠라고 불러본적이 없었다고 한다. 엄마에 비해 아빠에게 느끼는 어떤 본능적인 거리감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지 않다고. '엄마'라는 단어처럼 오히려 '아버지'라는 단어가 훨씬 더 익숙하고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엄마를 잃어버린지 일주일째다' 로 시작해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 로 끝나는 엄마에 대한 소설

'아버지가 울었어'로 시작해

'살어 냈어야, 용케도 너희들 덕분에 살아 냈어야'로 끝나는 아버지에 대한 소설.

둘은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 하면서도 결국 결이 같다. 우리는 그들을 모른다.

엄마라는 존재는 가장 만만한 존재이다. 속상한 마음을 어디에 둘 지 모를때 쉽게 응석부리기 쉽고, 안풀리는 것들에 대해 쏟아부으며 화풀이 같은 짜증을 쏟아내기 쉽다. 그리고 늘 엄마는 엄마다.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함부로 전부일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엄마는 가여운 사람도 아니고 내가 다 알고 있는 존재도 아니고 늘 그곳에 있어줄 수 있는 존재도 아니다.

'엄마를 잃어버린 다음에야 너는 엄마의 이야기가 너의 내부에 무진장 쌓여 있음을 새삼스럽게 실감했다. 끊임없이 반복되던 엄마의 일상, 엄마가 곁에 있었을땐 깊이 생각하지 않은 엄마의 사소하고 어느 땐 보잘 것없는 것 같이 여기기도 한 엄마의 말들이 너의 마음속으로 해일을 일으키며 되살아났다. ( 『엄마를 부탁해』 273p)'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한 세계 자체였다. ( 『엄마를 부탁해』 275p)'

그녀가 죽었을때, 사람들은 그녀를 땅 속에 묻었다.

꽃이 자라고 나비가 그 위를 날아간다.

체중이 가벼운 그녀는 땅을 거의 누르지도 않았다.

그녀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얼ㄹ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그녀, 나의 어머니 ( 『아버지에게 갔었어』 126p)'

아버지라는 존재는 곤경에 처했을때 가장 먼저 떠오리는 얼굴이다. 곁에 계시지 않아도 늘 영향을 주는 존재로 '아버지, 나 좀 구해주세요.' 라는 말과 함께 든든하게 의지하며 곁에 머물러 있는 존재이서도 서로에게 감정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존재이다. '계속 다른 곳이나 바라보며 못 들을 척 하는' 나와, '보고싶다'는 말을 '너 본지 오래다'라고 소리치는 앵무새로 알게하고, 어딘가 쭈구리고 앉아 혼자 감정을 추스리는 모습을 보게되고, 몇가지의 왜곡된 정보들을 토대로 자신만의 서툰 자식 사랑을 보여주는 '아버지'의 모습을 알게된다.

살아가는 일의 얼마간은 왜곡과 오해들로 이루어졌다. 왜곡되고 오해할 수 있었기에 건너 올 수 있는 순간들도 있었을 것이다. ( 『아버지에게 갔었어』 62p)

나와 내 형제들이 이 집에서 묵게 될게 될 때마다 피로한 몸을 눕히고 잠에 들었던 방에 아버지가 있었다. ( 『아버지에게 갔었어』 72p)

"사는 일이 꼭 앞으로 나아가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돌아보고 뒤가 더 좋았으믄 거기로 돌아가도 되는 일이제"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치매 검사를 받으러 갔던 아버지. "붙들고 있지 말어라. 어디에도 고이지 않게 흘러가게 둬라. 내가 정신이 없어지먼 이 말을 안해준 것도 잊어버릴 것이라.." ( 『아버지에게 갔었어』 92p)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믄 그거는 하믄서 살라고 하는 것뿐여" ( 『아버지에게 갔었어』 142p)'

"너는 언지나 근사해따. 나는 아버지가 되어서 너의 힘이 돼지지 모타고 니 어깨만 무겁게 했지마는 너는 언지나 근사해따 너는 언지나 그래와떤 거처럼 니 자리에서 성실히 니 할 일을 해낼 거슬 나는 익히 안다, 나는 더 바랄거시 없다, 하늘 아래 니가 건강하면 그것으로 되었따, 아버지가" ( 『아버지에게 갔었어』 170p)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의 말 속에 깃든 아버지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개념적인 아버지, 아버지는 이러해야 한다는 무게를 짊어지고 사는 모습만을 알고 있던 딸이 아버지에게 가까이 가게 되면서 아버지의 나이 든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게 되는 이야기다.

나는 아버지를 한 번도 개별적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아버지를 농부로, 전쟁을 겪은 세대로, 소를 기르는 사람으로 뭉뚱그려서 생각하는 버릇이 들어서 아버지 '개인'에 대해서는 정확히 아는게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 『아버지에게 갔었어』 197p)

아버지를 전혀 모르겠다는 기분이 들자 등을 기대고 있는 현관 문이 차갑게 느껴지고 생각지도 ㅁ소한 외로움이 밀려왔다. ( 『아버지에게 갔었어』 238p)

그렇게 개념적이고 보편적인 아버지의 허물이 벗겨지고 아버지 개인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때문에 이 책은 그가 이렇 모습으로 자라왔겠구나, 그도 이런 생각을 했겠구나, 누군가로 누군가에게 남는 존재구나 라는 생각들을 '이제야' 하게 되면서, 늘 부모에 대해서는 '너무 늦게 이해하게 되는 마음'에 대해 한번 쯤 생각하게 하는 소설, 엄마를 부탁해, 그리고 아버지에게 갔었어.

(3) 누군가에게 있을법한 고향, J시

작가의 고향이 정읍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당연히 J시를 보며 정읍을 떠올린다.

누구나 연고지가 있고 지내온 어린시절의 배경이 되는 곳이 있다. 그 곳을 특정 장소로 지칭헤서 묘사하기보다 자기만의 고향을 꺼낼 수 있도록 J시로 묘사했다.

누구에게나 푸르렀던 시절, 살아가며 푸른 잎을 남겨놓는 것, 그리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푸르른 작별. 이는 아버지와 고향 모두에게 해당된다.

(4) '보편적이고 아름답고 한국적이고 힘이 센 이야기' 라는 서평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라는 것은 늘 해오던 말이기도 하다. 이 책은 나의 아버지인것 같지만 모두의 아버지를 담고 있고 개인적인 서사를 담고 있는 것 같지만 결국 한국의 역사가 담긴 책이 되었다.

아버지 뿐만이 아니다. 주변 인물들의 묘사도 마찬가지이다. 직접 만났거나 아니면 주변에 있을 법한 인물의 표현은 필히 경험에 근거할 것이고 이를 소설로 풀어내었다는 것은 그들을 녹여낸 관찰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모든 인물들에게 애착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은 '박무릉'이라고 했다. 아버지 이야기 속에 아버지가 되지 못했던 사람이기에 이 이야기가 아버지만의 이야기는 아니게 될 수 있었다고.

(5) 4장에 실린 인터뷰 형식, 단편모음집 느낌의 그에 대해 말하기.

총 5장으로 구성된 글에서 4장만 따로 읽어도 한편의 단편 소설을 읽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3인칭 거리두기로 딸이 아닌 다른 시선으로 묘사된 아버지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제 3자들은 아버지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담는다는 것은 내가 어떤 존재인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나에게는 항상 아버지이나 그 역시 아들이자, 누군가에게는 친구이며, 한국의 역사를 체험하며 자라온 세대로 그 세대별 여러 아버지들을 담는 형식이 흥미롭다.

이런 마음들을 겪는거 보면 저도 아버지가 되어가는 중인가 봅니다.

( 『아버지에게 갔었어』 337p)

딸이 라는 한정적 시선이 아닌, 다른 시선으로 다각도로 아버지에 대해서 알게 된다는 것은 앞서 말했던 개념적 아버지에서 개인적 아버지로 바뀌어 그려지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아버지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나, 누구에게 들은 아버지인가, 내가 본 아버지의 모습이 아버지의 전부는 맞나, 아버지의 우는 모습은 본적이 있나, 어떤 친구들과 어떤 세대를 보냈나, 전부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이다.

삶에는 기습이 있다. 살아가는 시간 속엔 기습이 있지.

기습으로만 이루어진 인생도 있어.

왜 이런일이 내게 생기나 하늘에다 대고 땅에다 대고 가슴을 뜯어보이며 막말로 외치고 싶은데 말문이 막혀 한마디도 내뱉을 수도 없는..

그래도 살아내는게 인간 아닌가.. ( 『아버지에게 갔었어』 32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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