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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빠진 소녀
악시 오 지음, 김경미 옮김 / 이봄 / 2023년 6월
평점 :
우리나라사람이라면 '바다에 빠진 소녀'라는 제목의 이 소설을 보는 순간 바로 심청이를 떠올릴것이다. 이 책의 저자 #악시오 는 한국사와 문예창작학을 '공부'로 익힌 한국계 미국인으로 한국인과 한국 문화를 소재로 한 로맨스물과 SF 소설 작업을 이어오다 지금의 판타지 장르에 까지 이른다. 이 이야기는 미국 청소년들을 열광시킨 고전 『심청전』의 다시쓰기이다.
서양에서 바다의 신으로 포세이돈을 떠올린다면, 한국에서는 바로 용왕을 떠올릴 수있다. 토끼의 간을 구하러 온 용궁의 신하 거북이와 함께, 용왕의 제물로 바쳐졌던 심청이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아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바다의 영향을 많이 받는 바닷가 마을이 재난으로 흉흉해지자 '용왕신'이 화가 나신거라며, 용왕의 분노를 달래기 위한 제물로 마을 제일의 처녀를 바다에 바치는 풍습에서 시작한다. 그 해의 제물로 정해진 '운명'의 여인은, 심청이였지만, 그 '운명을 훔친' 미나는 '나는 나 자신의 운명을 만드는 사람이다'라는 다짐과 함께 용왕의 신부를 자처하며 심청이 대신 바다에 뛰어든다. 그리고 그곳에서 '저주'에 걸려 깊은 잠에 들어있는 '용왕'과, 그곳을 다스리는 강한 군주 '신'과 만나게 된다.
모든 고전 소설의 모티브가 그러하듯, 이 책에서도 계속해서 '운명'에 대해 언급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주풀이'도 결국 태어난 생년월일시를 두고 해석하듯, 운명은 태어날때부터 이미 어느정도 정해져 있는 것이라 믿어왔다. 그래서 '팔자'라는 말 앞에서 쉽게 무릎 꿇었다. '네 팔자가 그래'라고 말하면, '그렇구나'하고 받아들이는게 고전의 법칙이다.
하지만 현대적인 해석과 상상이 가미된 이 소설은 다르다. 이미 '선택'되고 '정해져 있는' 그 운명은 우리의 용기와 선택과 누군가를 위한 마음을 내세우면 바뀔수 있지 않을까를 내내 얘기한다. 심청만큼 아름답지도 특별하지도 않지만, 감히 그 평범함을 앞세워 바다에 대신 뛰어 들어가는 그 용기, 할머니가 전해준 은장도와 지혜, 주인공을 도와주는 조력자들과, 실패를 단언하는 방해자 앞에서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기 보다 감정과 생각에 따라 행동하며 적극적으로 운명을 '만들어 가는' 진취적인 행보를 보여준다. 더욱이 그녀에게 힘이되는 인물들 역시 저마다의 개성으로 희망을 염원하는 적극적인 '인간'들이었다.
신은 신나름대로 용왕을 지키기 위해 주인공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신념과 의지가 강한 주인공에게 곧 매력을 느끼고, 주인공 역시 누군가를 해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지키기 위한 마음에서 비롯되었음을 안 이후로는 신에게 마찬가지로 호감을 느낀다.
이렇듯 고전 『심청전』과는 달리 판타지적인 장르에 주변의 개성있는 인물들과의 연대와 용왕과의 로맨스까지, 한 평범한 소녀가 운명을 바꾸며 세상을 구하는 영웅적 모험서사이자 성장소설로 만드는 요소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 소설은 가족관계, 연인관계, 인간들의 시계와 신들의 세계를 모두 매력적으로 그려낸다. 사랑, 운명, 희생, 신념 들을 소재로 다루며 판타지 모험과 달달한 로맨스가 어우러지며 완벽하게 현대적으로 재해석 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고 자신의 길을 선택하고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면서 '운명을 쫓는 것이 아니라 운명이 날 쫓게 만드는' 이 소설은 우리에게 '너 역시도 그러길 바란다'는 주제의식을 확실히 전달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