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셸비 반 펠트 지음, 신솔잎 옮김 / 미디어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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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어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주변이 어둑해지고,

수조 앞 유리벽에 굉장히 아름답고도 복잡한 지문 그림들이 남는다.

한번씩 이 그림들을 한참 들여다 보며 연구한다.

각각의 그림이 모두 다르다. 지문은 고유한 형태를 지닌 열쇠와 같다.

나는 지금껏 본 그림들을 다 기억하고 있다.

나는 내 수조를 들여다본 모든 인간의 얼굴을 기억한다.

유리에 남긴 지문만으로 정확히 누가 내 수조를 만졌는지 안다.

듣고자 한다면 무엇이든 들을 수 있다.

보고자 한다면 내눈은 더 없이 정밀해진다.

셀비 반 펠트,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中


문어의 수명은 약 1460일(4년)이다. 수조에 '감금'되어 수명을 세고 있는 마셀러스와 누구도 꼼꼼하게 청소하리라 기대하지 않지만 늘 최선을 다하는 일흔살의 야간 청소부 할머니 토바.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은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인간에 의해 수조에 갖힌 거대 태평양 문어와 청소하는 할머니의 종을 뛰어넘는 유대감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은 동물들을 우리나 수조에 가두고 묶어두지만, 인간 역시 실체없는 어딘가에 갖혀 있고 무언가에 얽매여 있는건 마찬가지이다. 우리 모두는 외롭고 고립되에 있다는 공통점이 있기에 반대로 누군가에게 언제든 기대고 연대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 책의 간단한 줄거리는 이렇다. 토바는 수족관을 탈출하는 모험을 즐기던 마셀레스가 곤경에 처했을때 구해준적이 있었고, 마셀레스는 토바가 잃어버렸던 열쇠를 돌려주며 그녀의 상실에 위로를 전했다. 그는 그녀를 은둔속에 가두고 한동한 삶을 지배한 슬픔이 그녀를 더 끔찍한 곳으로 이끌게 될까 늘 노심초사해 했다. 그녀 역시 늙은 문어의 야밤의 여행에 행여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했다. 그렇게 마음이 가닿았기 때문일까, 토바는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문어를 제일 먼저 떠올렸다. '현실적'인 토바는 수조 속 생물과 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에게 위로 받았고, 그를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토바의 부상으로 대신 일하게 된 새로운 청년 청소부 '캐머런'에게 그와 친구가 되는 법을 알려주기로 한다.


"뜻밖의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다"


라는 말로 설득하며 마음을 여는법과 기다려 주는 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똑똑한 우리의 자이언트 문어는, 청년과 할머니사이의 관계를 확신했다. 그렇게 감금1341일째,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It won't be long now)라는 농담을 들으며 웃지 못하는 문어이지만 피할수 없는 자신의 끝을 예감하며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똑똑한 문어 마셀러스를 보면서 '문어'에 대해서 찾아봤다.

마셀러스의 모험심 많은 성격, 사람을 기억하고 구분하는 능력, 심장이 세개라는 혼잣말, 단독 수족관 생활, 야행성으로 밤에 수족관을 탈출하여 이리저리 돌아다닐 수 있는 지능과 문제해결능력 등 모든 것이 문어의 일반적인 특징에 해당했다.

작가의 완전한 상상이 아니라 문어에 대한 기본적인 연구에서 비롯된 픽션이였던 것이다. 아시아권에서는 문어는 식재료 정도였지만, 미국이나 유럽쪽에서는 영리하고 꺼려지는 동물로 크라켄 등의 괴물로 묘사되며 잘 먹지 않았다는 정보도 놀라웠다. 그래서 더욱이 문어에 대한 상상력은 더 커질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생애 주기별로 인간을 봤지만

그들은 부인할 여지 없이 언제나 인간 모습 그대로였다.

성장하며 몸집이 커지고,

삶의 끝에 가까워지며 다시 작아지는 경우는 있을지언정

네개의 팔다리와 스무개의 손발가락, 머리 앞쪽에 달린 두개의 눈은 변함없다.

인간이 부모에게 의존하는 기간은 대단히 길다.

신체적으로 자립해나가도

기이하게도 그들은 사소한 일로 엄마나 아빠를 부른다.

어린 인간은 분명 바다에서 혹독한 실패를 맛보게 될것이다.

셀비 반 펠트,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中


수족관에서 사는 마셀러스는 낮에는 인간을 구경하고 밤에는 자신만의 모험을 즐긴다. 그가 보는 많은 사람들은 부모와 자식, 연인, 친구 등 다양한 군중의 모습으로 나타날것이다. '단독 생활을 하는 육식동물'인 탓에 '다른 문어'들과도 접점도 없는 문어는 부모 자식 세대 간의 접점도 없다고 한다. 수컷은 교미 후 죽거나 암컷에게 잡아먹히고, 암컷은 산란 후 내내 알만 품다가 죽는다. 따라서 모든 문어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홀로서야 하기에 부모와의 교류는 커녕 부모의 얼굴도 모르는 것이다. 문어의 생애와 특징을 알고 글귀를 다시 읽으면 인간의 혹독한 '실패'를 상상하며 하찮게 대하는 시선이 아닌, 어쩌면 한가득 안고 있는 '궁금함'이 서려있는지도 모른다. 마셀러스 입장에서는 '의존'이 강한 인간의 모습은 마냥 신기하면서도 한심해 보였다기 보다, 어쩌면 '의문'과 함께 부러움의 마음이 자리잡아있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외롭다.

내 비밀을 나눌 누군가가 있다면 외로움이 덜해질지도 모른다.

비밀은 어디에나 있다.

어떤 인간들은 비밀로 가득차있다.

최악의 의사소통 능력, 그것이 인간이란 종의 특징인 듯 하다.

청어조차 자신이 속한 무리가 어느방향으로 가는지 알며

그에 따라 헤엄쳐 나가는데

왜 인간은 무엇을 원하는지 서로에게 속 시원히 말하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수백만개의 단어를 사용할 수 없는걸까?

셀비 반 펠트,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中


바다 속에 깊숙한 곳곳에 숨어 있는 비밀들은 바다는 잘 품어주고 있다. 바다가 품고 있는 비밀들과 어울어진 해양 생물이여서 일까, 문어의 눈에는 다른 의미에서 비밀을 많이 품고 있는 인간이 그저 신기하다. 그는 그 비밀을 나눌 누군가 없어서 외로운데 인간은 비밀을 만들어 숨기면서 스스로를 외롭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해 질 수 있는데 쓸 수 있는 수십개의 단어들을, 거짓말을 하기 위해 사용하는 최악의 의사소통을 지녔다고 말하는 이 풍자적인 멘트는 인간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이 드러나는 듯도 보였다.


정말 행복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말하는 것이 진짜 행복이 아닐 수도 있지만,

내 지식으로 나는 '만족감'과 비슷한 무언가를 경험한다.

좀더 정확히 말하지만 '고통의 일시적인 감소'다.

아, (모르는게 복이야라는 말따위의)'무지'로 '행복'을 얻는 인간이란!

동물의 왕국에 무지는(상어의 존재를 모르는 청어같이)곧 '위험'을 의미한다.

하지만 인간도 무지로 인해 '상처'를 받는다.

본인들은 모르겠지만 내눈에는 보인다.

매일 경험하는 일이다.

셀비 반 펠트,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中


그렇게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마셀러스는 '행복'에 대해 논한다.

마셀러스는 '차라리 비극이 짧은 간격으로 연이어 닥치면 먼저 맞닥뜨린 날것같은 고통을 유용하게 활용해 한번에 상황을 끝낼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들, 남편, 오빠의 상실을 연이어 겪은 토바가 행복하기를 누구보다 바라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상실함으로써 겪는 절망의 깊이에는 끝이 있다'는 것을 토바 역시 알고 있었다. 스마트 쿠키 마셀러스는 친구 토바의 슬픔을 안다. 그 상실에 위로도 건낸다. 토바와 마셀러스는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두사람의 닮지 않은 외로움과 상실(맞이한 상실과 다가올 상실)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껏 기회를 몇번이나 제공했는지 삶이 기록하고 있다면 밀린 기회들이 아주 많이 쌓여있을 인간들은 기회를 놓치고, 실수를 미화하고, 외로움을 자처하고, 솔직하지 못할뿐더러, 무지로 인해 상처받는 안쓰러운 존재다.

동물의 눈에서도 뻔히 보이는 것들을 우리는 많이 놓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어가 주인공이 되어 인간과 교감하는 이야기가 신선했다.

마셀러스가 화자가 되어 말하는 부분은 오만한것 같으면서도 유쾌하고, 결국 유대감과 '정'을 보여주었기에 읽는 독자 역시도 '정'이 간다.

진심으로 모두 행복해졌으면 바라는 힘이 있다.

책 표지에 나와있는 '상실이라는 주제안에서 우리의 외로움이 다른 존재와 이어졌을때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케빈 윌슨의 서평에 크게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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