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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1 - 4月-6月 ㅣ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평점 :
< 20대에 하루키에 빠지지 않으면 바보고, 30대에도 하루키에 빠져 있으면 바보다>라는 말을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겠다. 출처가 어디었던지 간에, 언젠가 그 말을 듣고는 그런가 머리를 갸우뚱했는데 이 책을 보니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건 아무리 좋게 보려해도 이 책이 좋아지지 않았는데, 그게 나이탓이지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바보가 아니라는 말은 아니고, 정색을 하고 읽자니 매력적인 구석을 못 찾았다는 의미다. 이런 책을 재밌게 읽으려면 나사 하나는 빼놓고 읽어야 실감이 나련만, 이미 삶의 경험이 많다보니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조잡한 환상 소설을 읽기엔 내가 나이가 너무 많이 들었구나 싶었고, 육순의 나이에도 이런 글을 정색하고 써대는 하루키는 참 대단한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필에선 그렇게도 공감가는 문장을 양산해 내시는 분이, 정작 본인의 주 종목인 소설에서 공감가는 문장을 못 만들어 낸다는건 좀 어이없지 않는가? 아,물론 다른 사람들은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거 안다. 의미심장하게 내 뱉어진 "당신의 하늘에는 몇 개의 달이 떠 있습니까?" 라든지 " 겉모습에 속지 마셔요, 현실이라건 언제나 단 하나 뿐입니다." "육체야말로 인간의 신전이다." 조지 오웰의 1984년의 빅 브라더스의 대주자격인 리틀 피플의 등장, 아오마메가 집착해 듣는 바람에 그녀가 등장하는 곳엔 울려 퍼지는 "신포니에타" 난독증의 천재 소녀 후카오리가 좋아한다는 마태 수난곡, 읽는 것만으로도 침이 고이게 하는 요리들, 무엇보다 1984년의 조어 바꿈인 1Q84까지...열광하는 사람이 많다는거 잘 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내겐 별로 와 닿지 않았다. 그보단 별 의미없는 것들을 근사하게 포장하는데 하루키만큼 천재적인 사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뿐이다. 그만큼 글을 잘 쓴다는 의미일텐데, 그 잘 쓰는 문장력을 가지고 이런 대중소설밖엔 못 쓴다니 실망이었다. 물론 본인이나 다른 독자들에겐 안타까울 상황이 전혀 아니겠지만서도... " 이봐. 친구, 이건 소설이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구, 그냥 읽고 재밌으면 되지 않나? 내가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닌데 그렇게 정색할 건 없잖아?" 하루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맞다. 이건 그냥 소설이다. 심각할 것 전혀 없다. 그냥 심심풀이로 읽곤 망각속으로 던져 버리면 된다. 그래도 난 아마 기대를 한 것 같다. 하루키의 이름값이 있으니 읽을 만한 소설이 나와줄 거라는, 더군다나 10년만에 내 놓은 소설이었으니 말이다. 덧붙여 항변을 해보자면 " 저기, 하루키상, 이 건 재미도 없었다구요!"다. 조잡한 것도 유치한 것도 참을 수 있지만 재미없는건 못 참는다. 내 독서 취향 아시지 않는가?
줄거리는 뭐, 길게 쓰려면 한없이 늘어질테니 최대한 간단히 줄여 보도록 하겠다. TV수신료 징수원인 아버지에게 일요일마다 수금에 끌려 다녔던 덴고와 사이비종교집단의 부모를 가진 아오마메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던 열살 무렵 서로에게 끌린다. 좋아한다는 말도 못한 채 손 한번 꽉 잡아보아 보는 것이 애정표현의 끝이었던 둘은 서로가 상대를 잊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채 서로를 그리워 한다. 소설가가 되려 했지만 지금은 고작 고스트 라이터인 덴고와 여자를 폭행하는 질 나쁜 남자를 다른 세상으로 이사 보내 버리는 일을 맡고 있는 킬러 아오마메, 한마디로 사회적으로는 성공했다고 볼 수없는 일을 하고 있던 둘은 <공기 번데기> 라는 책을 들고 나타난 난독증 환자 후카에리와 그녀의 아버지를 통해 서로에게 다가가게 된다. 리틀 피플이라는 상대를 통제하는 어떤 존재로부터 도망친 후카에리와 그녀가 도망치면서 남기고간 도터와의 교접으로 교단의 교주가 되버린 그녀의 아버지, 바람 피우던 엄마에 대한 기억으로 아버지가 생부가 아닌게 아닐까 의심하는 덴고, 덴고에 대한 아련한 사랑으로 다른 사람에 대한 진정한 애정은 멀리한 채 하룻밤 섹스에만 몰두하는 아오마메... 그렇게 종교와 섹스와 자신을 학대하는 사람들과 요리과 음악과 역사와 살인과 폭력이 두 편에 걸쳐 난무하는 가운데, 진정한 사랑을 위해 아모마메는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심하는게 되니, 과연 덴고와 아오마메의 서로를 향한 진정한 사랑은 이뤄질 수 있을 것인가? 결론은 다음편에...
이 책에 대한 칭찬은 다른 리뷰어들이 넘치도록 했으니 난 맘에 안 든 것만 쓰기로 하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의문이던 것은 소설의 기승전결이 있다면 기승만 보여주고 끝을 맺는 황당함이었다. 다음 편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면 소설적인 실수인걸까 싶었는데 어제 뉴스에 보니 하루키는 다음 편을 이미 쓰고 있다고 한다. 그럼 그렇지... 그렇다면 적어도 끝이 그런 것이 이해가 간다. 전쟁을 막 시작을 해놓곤 달을 보는 것이 마지막이라는건 마무리론 영 어색했다. 다음에 이어질 것이 있다면 수긍이 되는 장면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피곤에 절어 서둘러 끝을 낸 불성실한 작가라는 말을 들었어야 했을 것이다. 아니면 길이 조절에 실패했거나...어쨌거나 그 의문에 대한 것은 후편을 쓰는 중이시라니 해결 됐고.
언젠가 하루키의 수필을 읽으면서 이 사람은 아이를 낳아 길러본 적도 없고, 심지어는 갓난 아기를 얼러 재워 본 적도 없는 사람이겠단 추측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때론 자라지 않은 청년 같다는 느낌을 준다. 20대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 난 사랑을 관념으로만 본다는 것을 들겠다.--쉽게 말해 환상에 산다는 뜻이다. -- 그런 사랑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것은 우리가 사랑을 일상에 대입해 봤을 때 시작된다. 사랑은 관념이 아니고, 일상이라는 것을, 하여 가장 건강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일상을 나누는 사랑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야말로 성숙의 한 단계라고 난 생각한다. 다른 독자들이 가장 부러워한 이 소설의 주인공들의 사랑을 보자. 그 둘은 열 살때 만나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 불우한 가정, 어른답지 않은 부모를 둔 불행의 그늘을 서로에게서 읽은 둘은 평생 서로를 그리워하며 사랑한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사랑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육체적인 것으로만 한정하면서도 서로를 찾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사랑이 깨지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관념적인 사랑이나마 머리속에 간직하는게 나았던 것이다. 어떤 사람이 보기엔 그것이 대단한 사랑으로 비춰질 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보기엔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어떻게 육체와 사랑이 그렇게 철저히 분리될 수 있나? 하루키가 남자라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할 지는 모르겠으나, 그건 육체에 대해서도 사랑에 대해서도 모욕이다. 모욕에 앞서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부족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의 두뇌가 그렇게 작동하면 얼마나 좋겠나 만은 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설을 위한 단순화를 위해 그렇게 터프한 성격의 주인공이 등장해야 했는지 모르지만, 그래서인지 이 소설속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한결같이 현실성이 떨어져 보였다. 매 맞는 아내들은 자살로 생을 끝맺고, 섹스는 꼴리는 대로 아무나와 하면 되는 것이며, 아버지와의 근친상간이 횡횡하는...그들의 인생엔 삶이란게 없다. 자극적인가? 맞다. 오로지 자극적이다. 나름대로 수긍이 되는 이유가 있긴 했지만 어쩐지 작가의 의도가 다분히 숨겨져있는 설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독자들의 심성을 자극할 것. 도발적이면 도발적일수록 좋음이라는 단서를 달아서...그런거 외엔 독자의 주목을 끌만한게 그렇게 없단 말인가 싶어 섭섭한 마음 금할 길 없었다. 우리 그것말고도 재밌다고 생각하는거 엄청 많은데 말이다.
이 책을 보면서 동경 지하철 사건이 하루키에게 미친 여파가 꽤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옴 진리교의 아사하라 교주였던가? 그 사건에 대해 하루키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집착 수준일 줄은 몰랐다. 10년에 걸쳐 쓴 소설의 주 무대가 사이비 컬트 종교 집단이라니...달리보면 그건 그 10년동안 일본에 그렇게 관심을 끄는 사건이 없었다는 말도 된다. 언젠가 일본 작가들이 우리나라 작가들을 부러워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전쟁에 분단에 이데올로기 싸움에 독재에 민주화에 영호남 패 가르기 등등 워낙 사건 사고가 많은지라 작가로썬 쓸만한 재료가 무궁무진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치고 박고 싸우고 네가 옳으니 아니야 넌 틀리니 하다보니 아무래도 치열하게 상황을 주시하게 되고, 공론을 거치다보니 어떤 것이 인간적인가? 휴머니티적 심성이 저절로 발달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보면 불행이 때론 결과적으로 100% 나쁘기만 한 건 아니지 싶다. 적어도 넓게 보는 시야를 틔워 줄 수고 있고, 삶에 대해 나태하기 힘들며, 무엇보다 휴머니즘이라는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게 되니 말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하루키가 노벨상을 타지 못한다면 그건 전적으로 일본에서 태어나서라고. 저런 재능을 가지고 우리나라나 이스라엘에 태어났다면 그는 40대에 이미 노벨상을 타고도 남았을지 모른다고 말이다. 홀로 달리기를 하면서 자신에게 적당히 게으를 시간을 주지 않는 사람이라는건 알겠는데, 아마도 너무 오래 홀로 달린 모양이지 싶다. 우린 홀로 사는 사람들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런면에서 그의 책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내겐 좀 의외다. 재미가 있어서? 책 장이 잘 넘어가서? 단지 그런 이유로? 오~~~ 사랑 타령을 할 생각이면 말을 꺼내지 마라. 삶을 공유할 생각이 전혀 없는 관념만의 그리움이 사랑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이미 안다. 솔직히 덴고를 위해 죽겠다는 아오마메를 보곤 웃고 말았다. 뭐야. 이건, 메트릭스의 네오도 아니고 말이지. 네오는 적어도 멋있기라도 하지...
그럼에도 도입부의 고속도로 사건이 매우 호소력있었다는 점만은 인정하고 넘어가야겠다. 그때의 박진감과 신선함을 이어나갔더라면 참 좋았으련만, 한 200페이지 넘어가면서 집중이 흐트러지길래 그때부터 아예 기대를 접고 봤더니 편하더라. 그나저나 다음편을 쓰고 계시다고? 에고, 다음편이 나올땐 또 얼마나 호들갑을 떨런지...벌써부터 아득해진다. 신빙성 넘쳐나던(?) 리틀 피플이랑 꼭 싸울 필요는 없다고 누가 덴고와 아모마메에게 전해주면 좋겠다. 그냥 걍 무시하면 없어질지 모르니 그 방법을 쓰면 어떻겠느냐고 말이다. 물론 안 먹혀 들어가겠지?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달리면서 리틀피플과 어떻게 싸워야 할지 고민하고 계실 하루키님에게 박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