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은 바다로 떠났다
존 반빌 지음, 정영목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자,이제 내게 뭔가를 보여줘..."감동 받을 만반의 준비를 한 뒤 읽기 시작했다.줄리언 반즈,가즈오 이시구로등을 제치고  2005년 부커상을 탔다는 책. 허겁지겁 읽었다.뒤에서 누가 쫓아오는 사람이라도 있는 것처럼...부커상을 탔다니 분명 뭔가 있을 거였다.조금 더 있으면 나올거야,조바심을 치며 뭔가 발견하게 되길 내내 기다렸으나 단숨에 끝까지 갔다.아무것도 없었다.혹시나 책을 털어까지 봤지만 역시나였다.어쩜,고도가 끝내 나타나지 않은 것은 탁월한 설정일지 모른다.진짜로 고도가 나타났다면 모두들 실망했을지도 몰라.실망보단 허무가 맞을까?성질 더러운 관객은 속았다면서 뭔가를 던졌을 것이다. 그래도 난 성질 착해주신 독자답게 얌전하게 책을 내려 놓았다.

아내를 암으로 잃은 맥스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들은 바닷가 마을을 찾아 온다.아내를 잃은 상실감으로 죽음에 대해 집착하고 있던 그는 어린 시절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마을을 둘러 보다가,오랜동안 잊고 지냈던 사람들과 사건들을 회상하게 된다.그리고 그 의미를 곰씹어 보는데...

 좋은 책은 흔하지 않다.그래서 한번이라도 힐끗 보게 되면 놓치게 되지질 않는다.이 책도 좋은 책이라 하기에 손색은 없었다.어눌한 듯하나 군더더기 없는 유려한 문체,문장을 이끌어가는 집요함과 매서움,명상적인 말투,징징대지 않은 어른스러움,삶의 끝자락에 서서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되새겨 보는 자의 체념과 허무함.과장이나 허식,폼 잡는 자세,거만함,인생의 의미에 대해 과대포장하는 가식이 없다는 것이 눈에 뜨인다.하긴 아내의 죽음을 목격하고,자신의 죽음을 앞 둔 마당에 자신을 포장할만한 힘이 남았다면 그건 자신을 속이는 일이겠지...제목대로 마치 일렁이는 바다 속을 거니는 기분이 들었다.그의 바다는 죽음과 닮아 있어서,따뜻해 보이고 안정적인 동시에 광포한 바다는 그렇게 유혹적이었다.그럼에도,난 이 책이 별로였다.

 무엇보다 줄거리가 재미 없었다.어린 시절,눈앞에서 벌어진 이란성 쌍둥이의 자살사건(내겐 동반자살로 보였다.)극적이긴 하지만,신빙성이 없었다.그리고 주인공의 어린시절 역시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고.싸움만 해대다 이혼을 한 부부의 아들,가난을 부끄러워해 상류층을 막연히 동경하는 그에게 자동차를 타고 온 그레이스 가족들,돈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못한 그들을 보면서도 환상을 깨뜨리지 못했던 주인공은 자신의 오해로 인한 말 전달로 쌍둥이를 사지로 몰아 넣는다.오랜 시간이 지난 뒤,죽음을 목전에 둔 그가 과거를 반추하다 그 사건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는 내용.골자만 두고보면 뭔가 있을 것 같은데,책 속을 헤매다 보면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명확하고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닌 애매하게 흘리는 것이 그의 쓰는 스타일이라고나 할까.....세월이 흐르고 나면 그땐 몰라본 걸작이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걸작이라고 못하겠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처럼 아련하게 어린시절을 회상하게 하는 힘을 가졌고,<작은 것들의 신>(아룬다티 로이작)처럼 쌍둥이들이 나와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은 비슷했다.그러나 오해는 마시라.두 작품에 비하면 작품의 격은 떨어지니까.원서로 읽으면 언어의 맛이 더 해질지는 모르겠지만,존경하옵는 정영목님이 번역하신 글이다.원서를 읽는다 해도 작품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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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9-27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영목님의 번역글을 좋아하시나 봅니다. 전 가까이 뵌 적은 없지만 님이 존경하옵는 이라고 쓰신 걸 보니..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아델라이드님.^^

이네사 2007-09-27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정영목님을 좋아한다기보단 존경하죠.그렇게 번역한다는게 쉽지 않다는걸 잘 아니까요.우리나라에서 손꼽히시는 분이지 않는가 싶은데...물론 제 좁은 시야에서 내린 생각이라서 일반화하긴 그렇지만서도요.제가 원서를 읽는다해도 이 분이 번역하신 매끄러움과 서정성을 뛰어 넘기는 어려울거란 생각에서 드린 말이었어요.^^

yanghuelee 2007-09-30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정말 그래요, '정영목'님이 번역하진 주제 사라마구 책이랑 다른 분이 하신 책은 확연한 차이가 있더라구요, 역시 유명하신 분이셨군요 ^^

이네사 2007-10-04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봤네요.덧글을...차이가 나죠? 번역이라는게 능력 차이가 좀 나는 분야라서요.전 이 분이 번역하신 건 언제나 신뢰한답니다.김석희님도,공경희님이 번역하시는 책들도 마찬가지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