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의 진자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269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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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의 진자(하)ㅣ움베르토 에코ㅣ이윤기 옮김ㅣ열린책들




"진정한 비의 전수자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비밀은, 내용물이 없는 

비밀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다.
비밀이라는 것은 마땅히 그래야 원수가 고백을 강요하지 못하고,
경쟁하는 자가 빼앗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알리에와 대화를 나누는 삼총사들. 그들은 영국의 성전 기사단은 베이커판의 계획에 따라 유럽의 오의 전수자들을 규합하느라고 메이슨을 조작했다고 결론을 내린다. 한 편 비밀스러운 살론은 카소봉에게 시온 장로회의 의정서를 보여주는데 그것은 바로 세계를 장악하기 위해 먼저 세계 밑의 지하를 장악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지자기류이며 이것은 다시 성소들이 연결되어 있고 연결된 비밀은 유대인이 알고 있으며 그들의 연금술의 원리로 비밀의 돌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삼총사는 가설을 만들고 카소봉은 리아에게 처음으로 계획에 대해 털어놓는데, 리아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삼총사들의 해독결과와는 달리 어처구니없는 결론이었다. 카소봉은 리아의 가설이 설득력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인정하지 않는다. 벨보 또한 알리에에게 자신이 계획의 전모가 담긴 문서와 지도를 가지고 있는 듯 말했다가 궁지에 몰리는데 ...



드디어 길고 긴 성전 기사단에 대한 부활의 이야기가 끝이 났다. 오컬트에 관한 이야기라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우며 조마조마했던 순간들과 놀라운 순간들이 공존했던 시간이었다. 같은 문서를 봐도 다르게 해석되는 의미의 다양성이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생각의 차이라고 해야할까? 어쨌든 비의니, 오의니 하는 단어부터 신비하게 다가온 오컬트 문학으로의 입성이 꽤나 어려웠다. 문을 두드리기도 망설였지만 오컬트의 문을 여는 것은 단단한 철문같기도 하고 암호를 말해야만 열리는 도적의 금고처럼 어렵게 문이 열리고 맞이한 이야기들은 서로간의 연결도 어려웠지만 워낙 많은 정보들은 머리속에 안착하기가 힘들었다.



이 이야기를 내가 어떻게 소화해야하나라는 의문이 가장 큰 과제였던 듯하다. 학자로서 천여 권의 책을 읽고 써낸 책을 내가 모두 흡수하기에는 너무 어렵기도 하고 방대해서 이야기의 주제만을 붙들기로 했다. 아주 두꺼운 분량(상중하 1,192 page)은 아니지만 내용상으로는 아주 긴 시간의 역사를 지나온 느낌이다. 사람들은 종교나 토테미즘이 가진 신비로움에 대해 궁금해 하고 힘의 위력에 기대를 건다. 결국 그 비밀을 가진 이가 권력의 왕좌에 오르게 되고 왕좌의 다툼이 시작된다. 인간은 어디서건 욕심을 가지게 되니까 말이다. 그 왕좌를 먼저 선점하기 위해 누구는 모든 걸 알아야 하고 누구는 비밀을 흐려놓기도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푸코의진자>속 삼총사가 가설을 세워가며 만들어가는 이야기의 줄기가 바로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겠다 싶다.


미스터리의 가장 큰 묘미가 반전이 아닐까 싶은데 사실 <푸코의 진자> 속 반전은 없는 듯하다. 처음부터 작가는 벨보가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고 벨보의 뒤를 이어 카소봉 또한 쫓길 운명이다라는 분위기에서 시작한다. 단지 우리는 주인공인 카소봉에게는 행운이 따르기를 바랄 뿐이지. 오컬트를 소재로 하다보니 상당히 신비하고 비밀스러운 미스터리는 기존의 미스터리보다 비밀스러움이 좀 더 가미되는 듯하다. 중간에 리아의 밀지에 대한 해석은 생각보다 너무 어처구니없음에 허를 찔린 듯함과 동시에 마음을 놔버리는 방심의 자세로 돌아가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한 템포 쉬어가라는 작가의 배려인지. 또한 삼총사의 가설을 보다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등장한다. 이름으로 추적하는것인데 데카르트의 라틴어 이름 레나투스 카르테시우스의 두문자가 R.C인데 고딕마술을 찬양한 이가 르네 드 샤토 브리앙, 베이컨 시대에 <성전으로 통하는 계단>을 쓴 이가 리처드 크래쇼 라고 하다 갑자기 탐정 소설가 레이먼드 챈들러가 등장한다. 레이먼드 챈들러는 하드보일드 탐정소설가이다. 갑자기 이 부분에서는 작가의 비약이 너무 심한거 아닌가 싶어 웃음이 나왔다.


이외에도 매력이 더 있을 듯하다. 온갖 종파,계열, 학파의 이름은 전부 등장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것, 그리고 움베르토 에코의 책을 읽어냈다는 자부심을 꼽고 싶다. 아마 당분간 움베르토의 다른 책은 조금 거리를 두겠지만 다른 책을 도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조금은 떨쳐낸 듯하다. 미스터리인데 소재가 오컬트라면 단연 <푸코의 진자>를 추천하겠다. 다만 어려움은 감수하고 봐야하지만 신비스러움과 힘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갈구와 갈증에 대해 만끽하고 싶다면 기꺼이 푸코의 진자를 읽어야하지 않을까? 물론 인간의 어리석음 또한 같이 얻게 되는 보너스도 챙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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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의 문신가 스토리콜렉터 73
헤더 모리스 지음, 박아람 옮김 / 북로드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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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의 문신가 ㅣ 헤더 모리스 ㅣ박아람 옮김 ㅣ 북로드





"어떻게 여러 나라에 퍼져 있는 하나의 민족이 

위협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랄레, 그 남자의 또 다른 이름은 32407이었고 테토비러(문신기술자)였다.

랄레는 슬로바키아인이다. 독일은 슬로바키아 정부에게 유대인들을 노동인력으로 요청하고 슬로바키아는 바로 유대인들을 넘겼다. 그 속에 랄레가 포함되었고 그는 아우슈비츠의 제2 수용소인 비르케나우에 수용된다. 그는 운이 좋게도 수용소에 수용되는 사람들의 왼쪽 팔목에 번호를 새기는 문신가가 되어 다른 수용인들처럼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좀 더 나은 숙소와 음식, 그리고 임금을 지급받았다. 랄레는 기타라는 여성과 연인이 되고 그녀를 노동에서 빼내 행정동에서 일할 수 있도록 힘을 쓴다. 랄레는 수용자들에게서 받은 돈과 보석 등을 이용해 외부로부터 음식이나 약 등 필요한 물품을 구해 다른 수용인들을 도와주었는데 이것이 발각되고 고문을 받게 된다.




<#아우슈비츠의문신가>는 홀로코스트 속에서 살아남은 랄레 소콜로프와 그의 아내인 기타의 이야기를 작가인 헤더 모리스가 직접 취재하고 조사하여 소설화시킨 작품이다. 12년 동안 영화 대본으로만 존재하다가 소설로 출간하게 되었는데 헤더 모리스가 랄레 소콜로프를 찾아가 그의 신뢰를 얻기까지 3년이 걸렸다고 한다. 살아있는 아유슈비츠의 생생한 경험을 지닌 이에게서 그의 이야기를 꺼내기란 쉽지 않았을 듯하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다시 떠올려야 하는 일은 당사자에게 그 고통을 다시 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악명 높기로 유명한 아유슈비츠의 수용소에 있었으니 말이다. 책에는 그들의 사진과 랄레가 비르케나우에 도착한 기록이 담긴 일지 즉 그의 팔에 새겨진 번호, 이름, 주소 등이 적힌 문서와 비르케나우의 평면도가 함께 실려있다. 서류와 평면도를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고 독일군이 유대인들을 얼마나 철저하게 관리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랄레는 사람의 팔목에 숫자를 새기는 것은 상처를 내고 아프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문신을 하는 것은 더욱 죄책감을 가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어떤 일을 하건 나치의 꼭두각시가 되는 것이며 사려깊지 않은 사람이 테토비러가 되면 많은 사람을 아프게 할 거라는 랄레의 스승의 말에 테토비러가 되기로 한다. 그후 그는 수용인들이 노동에서 훔친 현금과 보석들을 이용해 외부로부터 많은 이들에게 음식과 약 등 물품을 구해준다. 당연히 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이는 소문을 듣고 테토비러를 찾아온다.



수용소로 끊임없이 몰려드는 수용인들의 팔목에 숫자를 새기는 테토비러. 그도 결국 나치의 일을 했고 그로인해 다른 이들보다 편안한 생활을 했던 것은 어찌보면 전쟁이 끝난 후 결국 그도 나치의 꼭두각시였다는 시선에서 벗어나기는 힘들 수 있다. 결정적으로 랄레의 애인인 기타가 발진티푸스에 걸려 다 죽게 되었을 때 그녀를 살려내며 행정동으로 옮겨준 것도 랄레가 테토비러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나 기타의 행정동 동료인 실카가 수용소장의 노리개가 된 것에 대해 랄레는 굉장히 분노하지만 랄레 자신이 위험한 상황에서는 실카를 통해 수용소장의 도움을 이끌어낸다. 이것을 어떤 시각으로 봐야할지 난감했다. 장엄하게 자신의 존엄을 지키고 나치를 거부하며 죽는 것이 숭고한 것인지 아니면 자존과 존엄을 짓밟히고도 끝끝내 살아남아 독립된 자유인이 되는 것이 더 아름답고 훌륭한 선택인지는 본인의 선택일 듯하다. 랄레는 후자를 선택했고 유대인들의 손목에 문신을 새겼다. 죄책감이 컸을 그는 그의 죄책감을 사람들을 돕는 것으로 갈음했을지 모른다. 그도 총이 무섭고 고문이 무섭고 죽음이 무서웠던 청년일 뿐이었으니까.



전쟁을 겪는 여성들은 생리를 하지 않는다고 어릴적 어머니에게 들었던 기억이 있다. 수용소의 여성들은 사랑을 나누거나 유린을 당해도 임신을 하지 않았다. 전쟁 속의 시간들이 얼마나 그녀들에게 큰 스트레스와 두려움을 주는지 어슴푸레 짐작이 간다. 민족의 말살을 꾀하는 이들이 매순간 감시를 하고 눈앞에서 사람 죽이기를 너무 쉽게 행하며 매일 죽어나가는 시체를 태우는 연기를 봐야했던 수용소의 여인들은 오죽 했을까. 전쟁은 인류에겐 죄악이지만 그 전쟁을 즐기는 이들도 있으니 전쟁을 통해 인간의 양면성을 보게 된다. 홀로 코스트, 다시는 없어야 할 일이지만 잊어서는 안될 인류의 역사이다. <아우슈비츠의 문신가>는 한 청년이 온갖 죽음에 대한 공포와 절망, 분노, 역경, 사랑을 모두 경험한 홀로코스트 역경기라 할 수 있겠다. 홀로코스트 속에서만이 존재했던 문신가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짚어보는 홀로코스트 이야기 <아우슈비츠의 문신가>를 통해 새로운 홀로코스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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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2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 문학사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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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2 ㅣ 이민진 ㅣ 이미정 옮김 ㅣ 문학사상





솔로몬은 일본으로 귀화한 조선인들을 알고 있었고, 그것도 납득할 수 있는한 가지 방법이었지만 지금은 그렇게도 하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는 일본으로 귀화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남한 여권을 갖고 사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솔로몬은 귀화하는 방법을 배제할 수 없었다. (p 368)




전쟁이 끝나고 다시 요코하마로 돌아온 가족들. 선자는 설탕과자를 팔아 돈을 모아 조선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모자수는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고로 아저씨 밑에서 파친코 일을 배우게 되고 하루키의 매장에서 일하는 유미와 결혼해 솔로몬을 낳는다. 공부를 열심히 한 노아는 결국 와세다 대학에 입학하고 한수의 도움으로 학비와 용돈 그리고 집을 구하게 된다. 하지만 노아의 여자친구로부터 한수가 야쿠자이며 노아와 똑같이 닮았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은 노아는 대학을 그만두고 집을 떠난다. 선자는 한수에게 노아를 찾아달라 부탁할 요량으로 그를 찾아가지만 끝내 그를 만나지 못하고 시간은 속절없이 흐른다.




1권에서는 1대 훈이와 양진, 2대 선자와 한수 그리고 이삭의 얘기였다면 2권에서는 3대 노아와 모자수, 4대 솔로몬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남편이 되어주겠다는 남자의 마음 하나를 믿고 건너 간 일본에서는 조선인이라는 신분때문에 항상 조심했고 전쟁 중이어서 물자를 구할 수 없어 고향으로 돌아갈 여비를 마련하고자 애쓰지만 쉽지 않았다. 자신의 인생은 없고 그저 남편을 보살피고 아이들을 키우는 선자는 천상 조선의 어머니였다. 이런 그녀에게 노아는 희망이자 살아갈 힘이 되었지만 노아는 일본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일본어에 익숙하고 일본 문화에 젖어 든 노아는 조선에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그는 일본인이 되려고 했다. 마치 스파이가 적군에 침입해 그들과 교감을 나누다 결국 적군화되는 것처럼 노아는 어릴 적부터 일본인이 되려는 비밀을 혼자 간직했다.



선자는 언젠가 조선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한수나 노아같은 사람들은 돌아가기를 원치않는다. 그것은 조선에서 환영을 받긴 하지만 일본인 취급을 받기 때문이었다. 그러느니 일본에서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2권의 소제목이 조국(MOTHERLAND)이었다. 2권에는 조선의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은 조국을 그리워할 뿐이다. 1대부터 4대가 모두 일본에 거주하는 선자네 가족은 어느 순간 조선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조선인으로서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살아간다. 이런 불편함에도 일본을 떠나지 못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안타깝기만 하다.



모자수는 파친코 매장에서 성실히 일해 파친코 사장이 되고 대학을 그만두고 집을 떠난 노아도 결국 파친코 매장에서 일하게 된다. 운명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인생은 도박과 같은 것이라고들 생각한다. 그런데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16세기에 기독교인들은 금융업을 터부시했고 유대인은 기독교인들이 하지 않는 직업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다른 기회는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마치 유대인들처럼 일본에서 조선인들이 파친코를 운영하는 것은 다른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었을 듯하다. 먹고 살아야 하는 조선인들에게는 마지막 기회이지만 그 기회 때문에 일본인들은 더욱 조선인들을 기피하지 않았을까 싶다. 야쿠자와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고 정상적인 직업으로 인정받을 수 없으므로 불안하고 퇴폐적인 파친코를 운영하는 조선인들은 같은 조선인들도 꺼려했을 듯하다.



1.5세대 이민자로 살아온 작가 이민진은 자신이 겪은 정체성의 혼란이나 문화적 괴리감을 파친코에 투영하고 있는 듯하다. 세대가 내려갈수록 후손들은 조국에 대한 갈망은 줄어든다.  태어나고 자란 곳이 타국이지만 그들에게 고향이기 때문이다. 조선인의 핏줄이지만 마치 일본인과 조선인의 중간 어디쯤의 정체성을 지니고 살아가는 후손들의 심리를 잘 반영하고 장장 80년에 걸친 한 가족사를 통해 이민자들의 고충을 알 수 있었던 #파친코는 이민자 뿐아니라 현대 일본 사회의 병폐도 함께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속도감 있고 흡입력을 지닌 작가가 제2의 제인 오스틴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 한국적인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그녀의 또 다른 작품을 만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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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쪼가리 자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1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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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쪼가리자작 ㅣ 이탈로 칼비노 ㅣ 이현경옮김 ㅣ 민음사





"왜냐하면 당신에게는 다른 반쪽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성에서 사는 자작, 즉 사악한 자작은 반쪽짜리예요.

그리고 당신은 그 나머지 반쪽이에요.

사람들은 전쟁터에서 그게 없어져 버렸다고 믿었지요.

그런데 이제는 그 반쪽이 돌아온 거예요. 바로 착한 반쪽이에요!"




테랄바의 메다르도 자작은 투르크인들과 전쟁 중인 기독교도들의 병영에 합류했다. 전쟁터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전쟁이 아니어도 페스트로 사람들이 죽어나갔고 기독교도들의 군인들은 오합지졸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제 막 청년이 된 메다르도 자작처럼 용감한 군인들과 함께 투르크인들의 진영으로 파고든 자작은 대포를 보았는데 사용할 줄도 모르면서 덤벼들었다가 대포에 맞았고 깨어나보니 그는 한쪽 팔과 다리가 없었고 몸통이 없으며 눈도 코도 입도 반만 지닌 반쪼가리가 되어 있었다.


고향에 돌아온 반쪼가리 자작은 마을 사람들에게 악행을 저지른다. 모든 것을 반쪼가리로 만들고 사람을 시켜 사람을 죽이는 기계를 만들게 하고 사람들의 집에 불을 질러 죽이기도 한다. 자신을 길러준 유모를 문둥병 마을로 쫓아버리고 악행을 서슴지 않는데 한 편 마을에는 이 반쪽가리 자작이 선행을 베푸는 일화들이 떠돌아다닌다. 반쪼가리 자작은 악행의 아이콘인데 어째서 이런 선행의 이야기들이 떠도는 걸까?




현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가 이탈로 칼비노는 현실 고발적 참여문학을 지향하다가 점차 동화적이며 환상적인 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그때 쓴 작품들이 바로 #반쪽가리자작과 #나무위의남자, #존재하지않는기사이다. 보통 이탈로 칼비노의 3부작으로 표현하는데 추후 이탈로 칼비노는 마술적 사실주의로 전환하여 글을 쓰게 된다. 마술적 사실주의... 어디서 들어봤는데? 바로 #아우라를 쓴 카를로스 푸엔테스도 마술적 사실주의를 지향한 작가이다. #아우라를 읽었을 당시 내가 제대로 책을 이해한 건지 이해하지 못한 건지 굉장히 헷갈리는 환상적인 느낌이었는데 이탈로 칼비노도 마술적 사실주의를 지향한 작가라니, 뭔가 하나 또 배운 느낌이다. 나무위의 남작은 읽다가 말았는데 재도전해야겠다. 그의 작품들은 거의 상을 받았다. 책을 쓰는 족족 상을 받으니 현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가답다.



#반쪼가리자작은 자작의 조카가 들려주는 이야기 형식인데 조카, 즉 소년의 눈으로 본 악과 선의 충돌, 그리고 그 악과 선을 대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소년의 시선으로 풀어간다. 사람이 반쪼가리가 되어서도 살 수 있으며 분리되었던 나머지 반쪼가리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꽤나 동화적이다. 이런 반쪼가리 자작 이외에도 쾌락을 추구하는 문둥병 환자들이나 반쪼가리 자작에 의해 살인에 쓰일 기계를 만드는 일에 최선인 장인, 자신들의 이익에만 급급한 위그노들을 소년의 시선으로 들려주는데 그저 소년은 들려주기만 하지 판단은 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꽤나 사실적이고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동화적으로 그린다.



#반쪼가리 자작은 자신의 한쪽은 악행의 아이콘, 한쪽은 선행의 아이콘으로 자신 안의 악과 선이 충돌하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자기가 자기 자신과 싸우는 것이다. 자신을 둘로 쪼개어 나눈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인간 내면에는 악과 선이 있는데 둘이 떨어져서는 온전하지 못하고 함께 할 때 조화를 이룬다는 느낌도 든다. 악을 행하는 반쪼가리 자작을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기피한다. 그가 저지르는 악행은 끔찍하고 그의 악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선을 행하는 반쪼가리 자작도 사람들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그의 선행으로 많은 이들이 웃음을 찾았지만 극단적인 선도 악과 함께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작가의 발상이 참 흥미롭고 재미있다. 완독은 못했지만 #나무위의남작 또한 재미있는 이야기였으며 작가가 동화적 세계를 추구할 당시의 3부작이 꽤나 흥미롭고 신선한다는 느낌이다. 두께도 얇은 편이라 부담 없이 도전해 볼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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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중세 파블리오 선집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장 보델 외 지음, 김찬자 외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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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중세의 풍자 모음집이라, 상당히 흥미가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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