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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의 문신가 ㅣ 스토리콜렉터 73
헤더 모리스 지음, 박아람 옮김 / 북로드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아우슈비츠의 문신가 ㅣ 헤더 모리스 ㅣ박아람 옮김 ㅣ 북로드
"어떻게 여러 나라에 퍼져 있는 하나의 민족이
위협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랄레, 그 남자의 또 다른 이름은 32407이었고 테토비러(문신기술자)였다.
랄레는 슬로바키아인이다. 독일은 슬로바키아 정부에게 유대인들을 노동인력으로 요청하고 슬로바키아는 바로 유대인들을 넘겼다. 그 속에 랄레가 포함되었고 그는 아우슈비츠의 제2 수용소인 비르케나우에 수용된다. 그는 운이 좋게도 수용소에 수용되는 사람들의 왼쪽 팔목에 번호를 새기는 문신가가 되어 다른 수용인들처럼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좀 더 나은 숙소와 음식, 그리고 임금을 지급받았다. 랄레는 기타라는 여성과 연인이 되고 그녀를 노동에서 빼내 행정동에서 일할 수 있도록 힘을 쓴다. 랄레는 수용자들에게서 받은 돈과 보석 등을 이용해 외부로부터 음식이나 약 등 필요한 물품을 구해 다른 수용인들을 도와주었는데 이것이 발각되고 고문을 받게 된다.
<#아우슈비츠의문신가>는 홀로코스트 속에서 살아남은 랄레 소콜로프와 그의 아내인 기타의 이야기를 작가인 헤더 모리스가 직접 취재하고 조사하여 소설화시킨 작품이다. 12년 동안 영화 대본으로만 존재하다가 소설로 출간하게 되었는데 헤더 모리스가 랄레 소콜로프를 찾아가 그의 신뢰를 얻기까지 3년이 걸렸다고 한다. 살아있는 아유슈비츠의 생생한 경험을 지닌 이에게서 그의 이야기를 꺼내기란 쉽지 않았을 듯하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다시 떠올려야 하는 일은 당사자에게 그 고통을 다시 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악명 높기로 유명한 아유슈비츠의 수용소에 있었으니 말이다. 책에는 그들의 사진과 랄레가 비르케나우에 도착한 기록이 담긴 일지 즉 그의 팔에 새겨진 번호, 이름, 주소 등이 적힌 문서와 비르케나우의 평면도가 함께 실려있다. 서류와 평면도를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고 독일군이 유대인들을 얼마나 철저하게 관리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랄레는 사람의 팔목에 숫자를 새기는 것은 상처를 내고 아프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문신을 하는 것은 더욱 죄책감을 가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어떤 일을 하건 나치의 꼭두각시가 되는 것이며 사려깊지 않은 사람이 테토비러가 되면 많은 사람을 아프게 할 거라는 랄레의 스승의 말에 테토비러가 되기로 한다. 그후 그는 수용인들이 노동에서 훔친 현금과 보석들을 이용해 외부로부터 많은 이들에게 음식과 약 등 물품을 구해준다. 당연히 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이는 소문을 듣고 테토비러를 찾아온다.
수용소로 끊임없이 몰려드는 수용인들의 팔목에 숫자를 새기는 테토비러. 그도 결국 나치의 일을 했고 그로인해 다른 이들보다 편안한 생활을 했던 것은 어찌보면 전쟁이 끝난 후 결국 그도 나치의 꼭두각시였다는 시선에서 벗어나기는 힘들 수 있다. 결정적으로 랄레의 애인인 기타가 발진티푸스에 걸려 다 죽게 되었을 때 그녀를 살려내며 행정동으로 옮겨준 것도 랄레가 테토비러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나 기타의 행정동 동료인 실카가 수용소장의 노리개가 된 것에 대해 랄레는 굉장히 분노하지만 랄레 자신이 위험한 상황에서는 실카를 통해 수용소장의 도움을 이끌어낸다. 이것을 어떤 시각으로 봐야할지 난감했다. 장엄하게 자신의 존엄을 지키고 나치를 거부하며 죽는 것이 숭고한 것인지 아니면 자존과 존엄을 짓밟히고도 끝끝내 살아남아 독립된 자유인이 되는 것이 더 아름답고 훌륭한 선택인지는 본인의 선택일 듯하다. 랄레는 후자를 선택했고 유대인들의 손목에 문신을 새겼다. 죄책감이 컸을 그는 그의 죄책감을 사람들을 돕는 것으로 갈음했을지 모른다. 그도 총이 무섭고 고문이 무섭고 죽음이 무서웠던 청년일 뿐이었으니까.
전쟁을 겪는 여성들은 생리를 하지 않는다고 어릴적 어머니에게 들었던 기억이 있다. 수용소의 여성들은 사랑을 나누거나 유린을 당해도 임신을 하지 않았다. 전쟁 속의 시간들이 얼마나 그녀들에게 큰 스트레스와 두려움을 주는지 어슴푸레 짐작이 간다. 민족의 말살을 꾀하는 이들이 매순간 감시를 하고 눈앞에서 사람 죽이기를 너무 쉽게 행하며 매일 죽어나가는 시체를 태우는 연기를 봐야했던 수용소의 여인들은 오죽 했을까. 전쟁은 인류에겐 죄악이지만 그 전쟁을 즐기는 이들도 있으니 전쟁을 통해 인간의 양면성을 보게 된다. 홀로 코스트, 다시는 없어야 할 일이지만 잊어서는 안될 인류의 역사이다. <아우슈비츠의 문신가>는 한 청년이 온갖 죽음에 대한 공포와 절망, 분노, 역경, 사랑을 모두 경험한 홀로코스트 역경기라 할 수 있겠다. 홀로코스트 속에서만이 존재했던 문신가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짚어보는 홀로코스트 이야기 <아우슈비츠의 문신가>를 통해 새로운 홀로코스트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