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산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222
찰스 디킨스 지음, 류경희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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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만 봤던 유명한 소설, 이제 읽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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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221
찰스 디킨스 지음, 류경희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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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즈의 작품을 도장깨기하고 있는데 위대한 유산도 당연히 읽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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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고양이 1~2 세트- 전2권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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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ㅣ 베르나르 베르베르 ㅣ 전미연 옮김 ㅣ열린책들

"우린 인간들 곁에 살면서 많이 유약해졌어. 쥐들이 먹이를 찾으려고 발버둥 치는 동안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인간들이 주는 사료나 받아먹었어. 하루하루가 투쟁의 연속인 쥐들과 달리 우리에겐 이제 적이 없어. 잘 생각해봐. 누가 고양이의 천적이야?"

"우리 입장이 한번 돼봐요. 당신들은 우리한테 음식다운 음식을 못 먹게 하죠, 성생활의 기쁨도 못 누리게 하죠. 게다가 멋대로 주인을 정해 주고 우리 이름을 정해 주고 살 곳까지 정해 주죠. 그런데 우리더러 <거만>하다고요? 우리 시중을 들어야 할 인간들한테 고양이들이 원한을 품지 않는 게 내 눈엔 이상하게 보여요."

<고양이>는 '인간과의 소통이 가능하고 인간을 이해하는 피타고라스'라는 샴고양이에 의해 깨우쳐가는 바스테트의 성장이야기다. 실험 쥐로 사용되었던 피타고라스는 인간의 실험을 이겨내고 끝까지 살아남아 탈출한 고양이며 그의 뇌에 제3의 눈이라는 USB 단자를 통해 인간의 모든 정보를 흡수한다. 그래서 인간과의 소통이 가능하다. 이런 피타고라스는 바스테트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나 정보들을 건넨다. 이로 인해 한층 성장하는 암고양이 바스테트. 인간과 소통이 가능한 고양이와 그렇지 못한 고양이들이 천적이 없어진 쥐들과의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고양이>는 인간이 바라본 고양이와 작가가 고양이의 입장에서 본 고양이와의 상반된 요소들이 잠시 생각의 기회를 준다. 우리는 동물들을 '길들인다'라는 표현을 쓴다. 동물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반복적인 학습으로 우리의 생각을 주입시킨다. 그런 면에서 동물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무조건적인 길들임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과 동물실험에 대한 부분도 안타깝게 다가오는 부분이었다. 작가는 이런 부분들을 심각하게 다루지는 않지만 이야기 속에서 충분히 인간의 이기심을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 있어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다. 작가의 말에 와닿는 부분이 있어 옮겨본다.

"추신6. 마지막으로 아주 간단한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만약 여러분보다 덩치가 다섯 배는 크고 소통도 불가능한 존재가 여러분을 마음대로 다룬다면,

문손잡이가 닿지 않는 방에 여러분을 가두고 재료를 알 수도 없는 음식을 기분 내키는 대로 준다면,

어떤 심정일까요?"

전형적인 암고양이 바스테트에게 피타고라스의 이야기는 놀랍고 믿기조차 힘들다. 그럼에도 바스테트는 피타고라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계속적인 호기심을 보인다. 먼저 요구하기도 할 정도로. 바스테트의 생각이긴 하지만 나름 바스테트도 지능적인 고양이인가 보다. 흥미롭기도 하지만 무건적으로 수용하지는 않는 모습도 보인다. 둘의 이런 정보 공유의 대화는 독자로서는 큰 재미적 요소로 다가온다. 자존심 강하고 독립적인 암고양이 바스테트의 모습이 잘 묘사되다 보니 몰입도도 높고 웃음의 포인트가 여러 곳에 있어 지루하지 않다. 피타고라스의 모습에서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는 동물이라는 설정 또한 대단히 흥미롭다. 인간의 생각을 읽는 고양이에 의해 또 다른 고양이가 인간세계에 대해 깨우쳐가는 과정도 흥미롭다. 더불어 고양이를 좋아하지도 않고 가까이할 기회도 없지만 공감되는 내용들이 많이 있다. 사람들은 흔히 개와 고양이를 비교한다. <고양이>에서는 그 비교를 정확히 집어낸다.

개의 생각 - 인간은 나를 먹여주고, 지켜주고 사랑해준다.

인간은 신이 분명하다.

고양이의 생각 - 인간은 나를 먹여주고, 지켜주고 사랑해준다.

인간에게 나는 신이 분명하다.

심각하면서도 무릎을 탁 치게하는 대목이다. 다시 심각한 대목으로 돌아가보자. 테러와의 전쟁으로 파리는 폐허가 되고 폐허가 된 파리에서 페스트가 시작된다. 쥐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인간과 고양이들은 대이동을 시작했다. 어쩌면 대멸종이 오고 인간 다음의 새로운 종이 생겨날지도 모른다는 바스테트의 걱정은 독자에게 전해진다. 천적이 없어진 쥐들이 도시를 장악하고 인간은 속수무책이다. 어떻게 할거냐는 질문을 작가가 던지는 느낌이다. 유쾌하고 즐겁게 읽어지면서도 중간중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고양이>는 인간이 끝까지 같이 갈 수 있는 존재일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은 처음이라고 얘기해야 할 듯하다. 아주 예전 <개미>를 읽다가 별로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읽기를 접었다. 이번에 만나 본 <고양이>는 암고양이 바스테트가 자유분방하면서도 독립적인 여성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해 신선했으며 유머러스해 재미있고 생각해볼 주제도 있어 <문명>과 함께 읽으면 좋을 듯하다.

『생명체와 소통을 원하는 세 살 먹은 고양이 바스테트는 인간의 주인이 고양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주인 나탈리의 집도 자기 집, 나탈리도 자신의 집사라고 생각하며 인간을 조금 낮춰보는 경향이 있지만 인간을 좋아한다. 바스테트는 나탈리가 데려온 순종 앙고라 수컷 펠릭스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서도 유혹해서 새끼 고양이를 낳는데 성공한다. 이사를 온 열 살은 먹어 보이는 수컷 샴고양이 피타고라스에게 듣는 고양이의 역사는 너무 흥미롭다. 그런데 세상이 시끄럽다. 인간의 세상은 지금 테러와 페스트로 전쟁중이다. 모두들 문단속을 하고 집 밖을 나가지 않는다. 그러나 테러로 인해 피타고라스의 집사 소피와 펠릭스가 죽고 바스테트와 피타고라스 그리고 나탈리는 테러리스트들과 쥐들로부터 도망친다. 시뉴 섬으로. 그곳으로 간 이들은 어떻게 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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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의 날의 거장 열린책들 세계문학 271
레오 페루츠 지음, 신동화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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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의 날의 거장 ㅣ레오 페루츠 ㅣ신동화 옮김 ㅣ열린책들




이런 극악무도한 일이! 아시겠습니까?
상상력이 자리한 곳은 공포가 자리한 곳이기도 합니다. 바로 그겁니다!
공포와 상상력은 분리할 수 없게 서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모든 위대한 공상가들은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자들이기도 했죠.



실내악 연주를 위해 오이겐 비슈프 댁에 모였다. 오이겐의 부인 디나, 요슈 남작, 고르스키박사, 엔지니어 졸그르푸씨 그리고 오이겐의 처남 펠릭스까지. 그런데 오이겐은 그들에게 기묘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젊은 장교의 남동생은 화가였는데 그가 자살을 했고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장교는 동생의 삶과 똑같은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면 동생이 죽은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인데 그렇게 두 달을 살던 어느 날 장교는 창문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마친 오이겐은 잠깐 자리를 비우고 권총으로 자살을 했다. 그리고 오이겐의 죽음 뒤에는 요슈 남작이 작용을 했을 거라고 오이겐의 처남인 펠릭스가 주장한다. 오이겐의 부인 디나는 요슈 남작과 사귀는 사이였는데 어느 날 아무 말 없이 요슈 남작이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고 다시 돌아왔을 때 디나는 오이겐의 처가 되어 있었다. 요슈 남작은 디나가 오이겐과 헤어지길 원했기에 이런 일을 벌인 충분한 이유가 된다는 것이 펠릭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요슈 남작은 별다른 해명을 하지 않는다. 자신은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뿐.

그리고 며칠 뒤 약국에서 일하는 조수가 다시 자살을 기도하고, 졸그르푸 씨는 연쇄살인에도 범인은 절대 요슈 남작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사건을 조사하다 그마저 사망한다. 요슈 남작은 그제서야 자신도 사건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조사하다 고르스키 박사와 펠릭스를 만나게 되고 진실과도 마주치는데.....



<#심판의거장의날>은 거의 한 번에 읽어버린 소설이다.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도 재미있지만 점점 진실에 가까워진 듯 느껴질 때의 신비함이 이 소설의 매력인듯하다. 오이겐이 죽기 직전 남긴 기묘한 이야기도 그렇지만 마치 그 기묘한 이야기를 이어가듯 오이겐이 죽고 다시 약국의 조수가, 그리고 요슈 남작은 절대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던 사건의 중심에 서서 파헤치던 엔지니어 졸그루프 씨도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런 연쇄살인이 주는 두려움, 공포, 비밀스러운 범인의 정체 등은 이 소설의 첫 장을 편 이후로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들이다. 연쇄적으로 몰아가는 죽음 뒤에는 증거조차 남기지 않는 치밀함이 있고 남겨진 이들은 범인은 '괴물'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 '괴물'은 무엇일까?



주인공 요슈 남작의 성격인 듯 보이는 태도는 뭔가 비밀스럽고 그를 몰아가는 펠릭스의 얘기를 들어보면 요슈 남작의 베일이 벗겨진 듯하다. 둘 중 누구의 편에 서야 할지 망설여지는데 엔지니어인 졸그루프 씨는 시종일관 요슈 남작이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생각과 말을 정당화시키려는 듯 사건의 중심에 서있다. 그럼에도 요슈 남작의 행동은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여행을 떠나려는 그가 책임회피를 하려는 것인가 하고 생각될 때쯤 그는 그제야 사건의 중심에 나서게 된다.


인물들의 행동 때문에 여러가지 생각으로 머리속이 복잡했다. 그러다가 점점 진실에 가까워지는 순간 이야기는 기묘하게 흐른다. 이런 기묘함 또한 매력으로 와닿는다. 재미있게 읽으면서 '이 책은 정말 서평을 잘 쓰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심판의날의거장>이 바로 서평을 잘 쓰고 싶던 책이었다. 그런데 생각은 생각일 뿐. 현실은 늘 생각과는 멀고 초라하다. 이게 나의 현재 시점이다. 이야기의 결말은 그리 맘에 들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작가의 필력이 마음에 드는 책이랄까?


레오 페루츠 작가는 <#스웨덴기사>를 쓴 작가이다. <#스웨덴기사>가 출간되었을 때 읽고 싶었으나 기회를 놓쳤는데 같은 작가였다니! 반가우면서도 진작 그의 작품을 읽지 못한 후회가 생긴다.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작가였다니. 마음이 급해진다. 빨리 스웨덴기사를 만나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심판의 날의 거장>은 작가의 전성기 때의 작품으로 출간 당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타고난 글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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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자의 딸
카리나 사인스 보르고 지음, 구유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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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자의 딸 ㅣ 카리나 사인스 보르고 ㅣ 구유 옮김 ㅣ 은행나무





p. 304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 앞길을 비춘다는 양 내 이름을 몰아내면서 공항의 통로와 중앙 홀을 지났다. 수하물 찾는 곳에 다다르자, 컨베이어 벨트가 여행 가방들을 뱉어내고 있었다. 형광등이 비추는 대기실은 내 안에 자리를 잡은 여자가 멋대로 자라나는 인큐베이터처럼 보였다. 나는 나의 어머니이자 자식이었다. 절망이 빚어낸 작품이자 은총이었다. 그날, 나는 출산했다. 이를 악물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를 낳았다. 마지막 힘주기는 내 여행 가방이었다. 나는 가방 손잡이를 잡고 출구를 향해 나아갔다. "좇같은 나라. 다시는 나를 못 볼 거다."


p. 산다는 것, 아직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기적이자 죄책감이라는 이빨로 나를 물어뜯는 기적. 생존한다는 것은 도망치는 사람과 동행하는 공포의 일부이다. 누군가 당신보다 살 가치가 있었음을 알려주겠다고, 우리가 건강할 때 무너뜨릴 틈을 노리는 해충이다.




만약 나의 조국이 나를 더 이상 조국에서 살 수 없게 만든다면, 조국이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닌 무법천지의 아수라장이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제 강점기 때 못 살겠다고 만주로 떠난 이들이 많았다. 그들이 오죽하면 '내 나라'를 버리고 떠났을까를 생각하면 질문에 대한 답이 될까? <스페인 여자의 딸>의 배경은 한참 혁명을 겪고 있던 때의 베네수엘라이다. 차베스 대통령이 집권한 20년 동안 2백만 명 이상의 국민이 나라를 떠났고 그 이후로도 지금까지 수백만 명이 더 떠났다고 한다. 저유가 시대가 도래하며 베네수엘라는 인플레이션이 상승했고 국가 통화가 하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차베스가 대통령이 되었고 그는 다음 차기 선거를 위해서만 집중했고 경제를 국가가 엄격하게 통제하다 보니 지금 베네수엘라는 국가부도 상태나 마찬가지이다. 베네수엘라 국민이 생필품을 구하려고 이웃나라인 콜롬비아 국경까지 걸어간다고 하니 참 암담한 상황이다. 나라가 안정적이면 국민은 절대 나라를 떠나지 않는다. 내 나라 내 언어로 사는 것이 가장 편한 것 아닌가? 이런 배경으로 작가는 베네수엘라의 참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같은 이름의 어머니를 잃은 아델라이다, 그녀는 그녀의 유일한 가족이 되었다. 서른여덟,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가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고 그녀가 사는 도시는 혁명의 아이들로 인해 아수라장이 되었다. 보안관 및 인물과 단체들은 국가에 헌신하는 대가로 막강한 권력과 이익을 누렸고 그 권력의 부림은 시민들에게 가해졌다. 아델라이다의 친구인 아나의 동생 산티아고는 끌려가서 온통 흰 색인 방에 갇혀 모진 매질과 고문을 당했다. 아나는 그들에게 매달 돈을 상납했지만 끝내 산티아고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누가 언제 어떻게 끌려가 매질을 당하고 죽임을 당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으며 죽임을 당하기 전에 굶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가진 것을 뺏기고 생필품을 구하려 해도 없어서 구할 수가 없으며 베네수엘라의 화폐인 볼리바르는 종이 쪼가리가 되었고 유로가 있어야만 했다.


혼자가 된 아델라이다, 밖에는 혁명의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사람들을 때리고 불을 지르기도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옆집의 화장실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아델라이다가 외출했다가 돌아오자 혁명의 아이들에게 자신의 집을 빼앗겼고 아델라이다는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었다. 옆집에는 훌리오 페랄타 아주머니, 스페인 여자의 딸이 산다. 아델라이다는 문을 열었다. 스페인 여자의 딸인 아우로라는 죽어 있었다. 탁자 위에는 우편물이 있었다. 카라카스(베네수엘라의 수도)의 스페인 영사관에서 보낸 우편물과 스페인 정부에서 연금 지급을 위해 아우로라의 어머니의 생존 증명서를 요청하는 통신물이었다. 아델라이다는 생각한다. 아우로라의 죽음이 자신의 앞길에 마련해 준 으뜸 패로 무언가 해야 한다고!




자신의 집마저 빼앗긴 아델라이다에게는 아우로라의 집 말고는 대안이 없었다. 집, 어머니와 둘이서 살던 보금자리는 그녀에게 '지금'을 버티게 해주는 마지막 보루였을지 모르나 그 보루마저 빼앗기자 그녀에게는 선택지가 없어졌다. 그러자 결론에 쉽게 도달했으며 자신이 아우로라가 되기로 한다. 이 부분부터 이야기는 날개를 달고 독자는 궁금증에 조급증이라는 바퀴를 달게 된다. 베네수엘라의 참상을 얘기하는 현재에서 그녀는 종종 과거를 회상한다.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들을 통해 그녀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과거를 스캔하고 새로이 태어나려는 걸까?


작가 카리나 사인스 보르고 또한 베네수엘라를 떠났기 때문에 자전적인 소설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고 한다. 작가는 이 소설은 허구라고 하지만 허구는 진실위에 올려지는 탑 같은 것이다. 아랫단인 진실이 튼튼해야 탑이 높이 쌓여도 중심을 잡고 서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의 아랫단 위에 잘 쌓아 올린 허구의 탑이기에 <스페인 여자의 딸>의 내용이 우리가 겪지 않았어도 공감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베네수엘라 같은 사회에서 유일하게 민주주의적인 것은 배고픔과 죽음이었다고 작가는 회상한다. 너무 슬프고 암울한 말이다. 나는 그러기에 죽은 이를 대신하려는 주인공 아델라이다를 어느새 응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기자 출신이었던 작가의 첫 장편소설인 <#스페인여자의딸>에는 표현력 좋은, 공감될 표현들이 많았다. 현실감 있게 잘 쓰여진 <#스페인여자의딸>, 오늘도 누군가의 아픔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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