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자의 딸
카리나 사인스 보르고 지음, 구유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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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자의 딸 ㅣ 카리나 사인스 보르고 ㅣ 구유 옮김 ㅣ 은행나무





p. 304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 앞길을 비춘다는 양 내 이름을 몰아내면서 공항의 통로와 중앙 홀을 지났다. 수하물 찾는 곳에 다다르자, 컨베이어 벨트가 여행 가방들을 뱉어내고 있었다. 형광등이 비추는 대기실은 내 안에 자리를 잡은 여자가 멋대로 자라나는 인큐베이터처럼 보였다. 나는 나의 어머니이자 자식이었다. 절망이 빚어낸 작품이자 은총이었다. 그날, 나는 출산했다. 이를 악물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를 낳았다. 마지막 힘주기는 내 여행 가방이었다. 나는 가방 손잡이를 잡고 출구를 향해 나아갔다. "좇같은 나라. 다시는 나를 못 볼 거다."


p. 산다는 것, 아직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기적이자 죄책감이라는 이빨로 나를 물어뜯는 기적. 생존한다는 것은 도망치는 사람과 동행하는 공포의 일부이다. 누군가 당신보다 살 가치가 있었음을 알려주겠다고, 우리가 건강할 때 무너뜨릴 틈을 노리는 해충이다.




만약 나의 조국이 나를 더 이상 조국에서 살 수 없게 만든다면, 조국이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닌 무법천지의 아수라장이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제 강점기 때 못 살겠다고 만주로 떠난 이들이 많았다. 그들이 오죽하면 '내 나라'를 버리고 떠났을까를 생각하면 질문에 대한 답이 될까? <스페인 여자의 딸>의 배경은 한참 혁명을 겪고 있던 때의 베네수엘라이다. 차베스 대통령이 집권한 20년 동안 2백만 명 이상의 국민이 나라를 떠났고 그 이후로도 지금까지 수백만 명이 더 떠났다고 한다. 저유가 시대가 도래하며 베네수엘라는 인플레이션이 상승했고 국가 통화가 하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차베스가 대통령이 되었고 그는 다음 차기 선거를 위해서만 집중했고 경제를 국가가 엄격하게 통제하다 보니 지금 베네수엘라는 국가부도 상태나 마찬가지이다. 베네수엘라 국민이 생필품을 구하려고 이웃나라인 콜롬비아 국경까지 걸어간다고 하니 참 암담한 상황이다. 나라가 안정적이면 국민은 절대 나라를 떠나지 않는다. 내 나라 내 언어로 사는 것이 가장 편한 것 아닌가? 이런 배경으로 작가는 베네수엘라의 참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같은 이름의 어머니를 잃은 아델라이다, 그녀는 그녀의 유일한 가족이 되었다. 서른여덟,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가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고 그녀가 사는 도시는 혁명의 아이들로 인해 아수라장이 되었다. 보안관 및 인물과 단체들은 국가에 헌신하는 대가로 막강한 권력과 이익을 누렸고 그 권력의 부림은 시민들에게 가해졌다. 아델라이다의 친구인 아나의 동생 산티아고는 끌려가서 온통 흰 색인 방에 갇혀 모진 매질과 고문을 당했다. 아나는 그들에게 매달 돈을 상납했지만 끝내 산티아고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누가 언제 어떻게 끌려가 매질을 당하고 죽임을 당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으며 죽임을 당하기 전에 굶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가진 것을 뺏기고 생필품을 구하려 해도 없어서 구할 수가 없으며 베네수엘라의 화폐인 볼리바르는 종이 쪼가리가 되었고 유로가 있어야만 했다.


혼자가 된 아델라이다, 밖에는 혁명의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사람들을 때리고 불을 지르기도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옆집의 화장실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아델라이다가 외출했다가 돌아오자 혁명의 아이들에게 자신의 집을 빼앗겼고 아델라이다는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었다. 옆집에는 훌리오 페랄타 아주머니, 스페인 여자의 딸이 산다. 아델라이다는 문을 열었다. 스페인 여자의 딸인 아우로라는 죽어 있었다. 탁자 위에는 우편물이 있었다. 카라카스(베네수엘라의 수도)의 스페인 영사관에서 보낸 우편물과 스페인 정부에서 연금 지급을 위해 아우로라의 어머니의 생존 증명서를 요청하는 통신물이었다. 아델라이다는 생각한다. 아우로라의 죽음이 자신의 앞길에 마련해 준 으뜸 패로 무언가 해야 한다고!




자신의 집마저 빼앗긴 아델라이다에게는 아우로라의 집 말고는 대안이 없었다. 집, 어머니와 둘이서 살던 보금자리는 그녀에게 '지금'을 버티게 해주는 마지막 보루였을지 모르나 그 보루마저 빼앗기자 그녀에게는 선택지가 없어졌다. 그러자 결론에 쉽게 도달했으며 자신이 아우로라가 되기로 한다. 이 부분부터 이야기는 날개를 달고 독자는 궁금증에 조급증이라는 바퀴를 달게 된다. 베네수엘라의 참상을 얘기하는 현재에서 그녀는 종종 과거를 회상한다.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들을 통해 그녀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과거를 스캔하고 새로이 태어나려는 걸까?


작가 카리나 사인스 보르고 또한 베네수엘라를 떠났기 때문에 자전적인 소설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고 한다. 작가는 이 소설은 허구라고 하지만 허구는 진실위에 올려지는 탑 같은 것이다. 아랫단인 진실이 튼튼해야 탑이 높이 쌓여도 중심을 잡고 서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의 아랫단 위에 잘 쌓아 올린 허구의 탑이기에 <스페인 여자의 딸>의 내용이 우리가 겪지 않았어도 공감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베네수엘라 같은 사회에서 유일하게 민주주의적인 것은 배고픔과 죽음이었다고 작가는 회상한다. 너무 슬프고 암울한 말이다. 나는 그러기에 죽은 이를 대신하려는 주인공 아델라이다를 어느새 응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기자 출신이었던 작가의 첫 장편소설인 <#스페인여자의딸>에는 표현력 좋은, 공감될 표현들이 많았다. 현실감 있게 잘 쓰여진 <#스페인여자의딸>, 오늘도 누군가의 아픔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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