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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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I 파트리크 쥐스킨트 I 유혜자 옮김 I 열린책들





그것이 앉아 있었던 타일 위에는

5프랑짜리 동전 크기만 한 에메랄드그린색의 똥과 문 사이로

부는 바람에 살짝 나부끼는 작은 흰색 깃털이 보였다.

조나단은 속이 몹시도 메슥거렸다. 

당장 문을 도로 닫아 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53세의 조나단 노엘, 그는 은행 경비원이다. 그는 어릴 적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라나고 급기야 부인이 결혼 4개월 만에 아이를 낳아 얼마가지 않아 과일장수와 눈이 맞아 줄행랑을 친 뒤로 사람들의 비웃음이 아니라 시선을 받는 것이 성가셨던 그는 평화롭게 살기 위해 파리로 향한다. 젊어서부터 시작한 파리의 은행 경비원. 그야말로 코딱지만한 방을 얻어 살지만 30년이 흐르도록 그는 자신의 삶의 만족을 느끼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공동화장실을 쓰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인기척이 없음을 확인하고 문을 열고 나선 조나단은 비둘기와 마주친다. 비둘기의 외모부터 움직임까지 끔찍함을 느끼는 조나단은 비둘기의 배설물과 박테리아균과 바이러스를 몰고 다닐 비둘기 때문에 급기야 짐을 싸서 호텔방을 예약한다. 출근해서도 제대로 일을 해내지 못하고 늘 정확하고 계획된 한치의 빈틈없는 일상을 살던 조나단은 이 틀어짐을 참지 못한다. 그리하여 급기야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고자 결심을 하는데...




안전한, 오로지 자신만의 공간을 비둘기에게 위협 받을까 걱정하는 조나단의 이러한 행동은 나이가 무색해 보이기도 하고 지나친 반응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둘기가 날개를 푸드덕 거리는 모습이나 비둘기의 눈을 보며 끔찍해 하고 심지어 바이러스를 옮길지도 모를 배설물이 그의 공간을 훼손하고 위험으로부터 공격받는 것으로까지 생각하는 조나단은 비둘기와의 만남으로 인해 30년 이상을 살아온 자신의 안식처를 떠난다. 또한 30년 이상을 매일같이 해 오던 단순하기 그지없는 그의 업무에 넋을 잃고 있어 그 단순하기 그지없는 일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바지까지 찢어지는 그야말로 혼돈의 하루를 보낸다. 자신의 삶이 일정 궤도에서 이탈해 노선이 틀어지는 것을 참지 못하는 인물 조나단을 통해 작가는 매사에 예리하고 섬세한 감정을 가진 인물을 그려내고 있다. 모든 것이 진지하며 변수를 인정치 않고 자기만의 것을 온전히 소유하려는 집착도 보인다.



조나단의 이러한 심리는 그가 어릴 적 갑작스럽게 맞이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자신의 든든한 보호자와 보금자리를 잃고 황망했던 어린시절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해본다.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해 상처를 입었고 사람의 신뢰를 잃어버린 그가 작게나마 마련한 자신의 공간을 위협하는 비둘기는 단순한 비둘기를 넘어 그에게 커다른 위협요소로 다가오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조나단의 모습은 점점 사회와 격리되는 현대적 인간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자신이 편안히 쉴 수 있고 근무시간 외에 모든 것을 함께 하는 보금자리가 위협받는다면 어디서 편안함을 느낄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을 조나단. 그는 더이상 자신의 삶이 의미가 없음을 깨닫고 극단적인 선택을 계획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그에게 반전이 있으니 갑작스레 찾아온 행운을 맞이하는 조나단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바로 서점을 갈 것을 추천한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심오한 작가적 의도가 엉뚱하면서도 까칠할 것 같은 조나단이라는 인물의 하루를 통해 이렇게 멋지게 표현될 수 있다는 점에 놀랍고 조나단이라는 인물을 통해 현대인의 불안과 초조감을 빗댄 것은 작가의 놀라운 필력일 것이다. <비둘기>의 도입부에 비둘기와 마주치며 비둘기를 묘사하고 그가 느끼는 끔찍함이나 감정들은 약간 스릴러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오바스런 부분이 없지 않지만 읽다보면 점점 공감되는 감정의 이입이 상당한 몰입감과 궁금증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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