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바타 야스나리 - 설국에서 만난 극한의 허무 클래식 클라우드 10
허연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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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바타 야스나리 ㅣ 허연 ㅣ 클래식 클라우드(아르떼)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설국의 유명한 첫 문장이다. <설국>을 읽고 아쉬운 마음에 클래식 클라우드 허연의 <가와바타 야스나리> 편을 보게 되었다. 내가 본 설국은 아쉬움이 많은 책이었는데 허연이 본 <설국과> 그 작가에 대한 해설서 같은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에서는 <설국>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어느 작가의 한 작품을 이해할 때에는 그 시대적 배경이나 작가의 생애를 들여다 보지 않을 수 없다. 문학은 작가가 살아갔던 시대적 배경이 투영되고 작가가 태어나고 자라온 환경이 작가의 성격이나 문학에 영향을 줬을 것이므로. 다시 말해 어렸을 적의 체험이나 기억들, 성장배경은 작가가 써 내려갈 문학의 밑그림이 되는 것이니까.




가와바타 야스나리 역시 자신의 삶이 <설국>과 그의 다른 작품에 녹아져있다. 나는 <설국>만을 읽었지만 <이즈의 무희>, <뼈 추리기>, <스승의 관을 어깨에 메고>, <초혼제 일경> 등 여러 작품이 있는데 이 작품들 모두 그의 자전적 이야기들이 녹아져있다. 두 살과 세 살에 걸쳐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15살에 유일한 혈육인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신 다음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고아가 된다. 어릴 적 할아버지와 둘이 살면서 그가 보았던 할아버지의 모습은 늘 앉아서 동쪽을 바라보는 모습이었다고 하니 유년시절 어른들의 사랑과 보호를 받으며 살아야할 소년은 외로움과 고독이 친구가 되었을 듯하다. 또한 모두가 돌아가는 인생의 허무함이 그의 문학에 그대로 투영이 되었다.




교토를 사랑했던 그는 <고도>라는 소설을 통해 교토의 이야기를 썼고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고도>는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너무나 '일본적인'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때에 '아름다운 일본의 나'라는 제목의 수상 소감문을 읽는다. 일본인의 정서와 일본의 선불교사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를 접한 서양인들은 굉장히 감탄했다고 한다. 대단한 애국심과 자국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나는 작가라 생각된다.






"결국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이야기하면 

설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설국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먼 길을 돌아간다."






역시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대표하는 작품은 <설국>이겠다. 허연조차 위의 말처럼 설국에 대해 먼저 설명하고 있다. 소설 곳곳에서 느껴지는 허무감, 아름다운 문장들 그러나 일본인들의 애매한 정서와 그것들의 표현법이 <설국>을 읽고 난 후에 내게 남겨진 것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제목에서 느껴지듯 펑펑 내리고 쌓이는 눈의 고장, 설국 그자체만이 덩그라니 남았다.

감당하지 못할 만큼 쌓이는 눈, 그러나 언젠가는 녹아져버릴 눈덩이들 속에 갇혀 사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시마무라는 거의 무위도식하는 사람으로 어떠한 것에도 열정이나 집착, 의미를 두지 않는 캐릭터로 그의 시선들이 허무감과 헛수고로 비춰져서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읽고 난 후에는 허무감이 어깨까지 차오른다. 그의 평생에 걸친 '허무'라는 단어는 그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하다.






"나는 작품을 통해 죽음을 미화하고 

인간과 자연과 허무 사이의 조화를 추구했다."






<설국>을 읽으면서 왜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하나도 드러나 있지 않지?라는 의문을 가졌었다. 당시는 한국으로 보자면 일제강점기였고 일본으로 보자면 한참 전쟁 중이었다. 왜 시대적 배경이 드러나지 않았을까? 허연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웬만해서는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성격은 그의 작품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의 작품에는 어떠한 시대적 배경도, 옮고 그름도, 선도 악도, 승자도 패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해설을 읽고 나서야 시대적 배경뿐만이 아니라 <설국>에서의 시마무라의 행동이 이해가 된다. 설국의 마지막 부분에서 요코가 2층에서 떨어져 죽고 은하수가 몸으로 흘러든다는 식의 표현이 있는데 은하수가 내 몸으로 흘러든다는 것은 어떤 느낌을 표현하는 것일까?허연은 이것을 물아일체라고 해설하고 있다. 아름다운 표현이었지만 잘 이해되지 않는 문장이었다. 자연과 내가 일체가 된다.....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일까? 그 당시의 느끼는 감정이 '허무'였던 것이고 물아일체를 통해 허무를 표현한 것일까? 허연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은 읽는 소설이 아니라 사색하는 소설이라고 한다, 즉 깨달아야 하는 소설이라고.... 무척 어렵게 느껴진다.





스웨덴 왕립학술원이 밝힌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수상 이유는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자연과 인간의 운명이 지닌 유한한 아름다움을 우수 어린 회화적 언어로 묘사했다."와 "동양과 서양의 정신적 가교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이유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만 두 번째 이유는 나로선 납득이 어렵다. 아시아에서도 일본의 정서는 독특한 '애매함'으로 유명하다. 이런 애매함이 서양인에게 제대로 전달이 되었을지도 의문이지만 정신적 가교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 이유이다. 어쩌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없는 아쉬움의 발로일까?





대단히 일본스러운 <설국>, 허연의 해설로 조금은 다가간 느낌이지만 역시 '일본스러움'을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인가부다. 훌륭한 해설에도 <설국>의 시마무라를 이해하기에는 우리에게 큰 장벽이 있나보다. 내가 눈의 고장으로 들어가야 하려나부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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