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모두의 미래를 짓다 - 건축 너머의 세계를 향한 치열한 질문과 성찰 서가명강 시리즈 17
김광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인이 원하는 공간, 또는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공간... 이에 그것을 거주지이자 도시라는 개념으로 확장하여 생각한다면 분명 저마다 충족해야 할 조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건축가와 도시설계자들은 분명 건축이라는 공통의 영역에 속해 있지만, 정작 그들 스스로가 추구해야 할 것은 저마다 처한 환경과 한계, 그리고 그 무엇을 대상으로 하는가에 따라 큰 차이점을 드러내게 된다.

그렇기에 이 책은 크게 보면 건축이라는 틀로 바라본 사회학, 아니... 저자의 사회학에 가까운 정의를 다룬것이라 이해하면 좋을 것이라는 감상이 든다. 그야말로 고대부터 시작된 건축이라는 행위와 개념이 현대에 이르러 어떠한 형태로 변화하고 있는가. 그리고 단순히 거주와 공동체의 집합지에서 문화와 문명의 중심지인 폴리스의 개념... 그리고 더 나아가 지나친 집중(수도권 사회)를 인식하고 결국 그 극복을 위하여 건축이 어떠한 역활을 담당해야 하는가에 이르기까지. 이제 건축은 그저 웅장하고 상징적이며, 그저 튼튼한 공간을 배열하고 쌓아올리는 것이 아니라, 점차 변화하고 진보하는 사회의 바구니로서 그 토대를 제공해야 하는 큰 역활을 수행하여야 마땅하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이 아닌가 한다.

욕망은 필요보다 먼저 나타나 새로운 필요를 낳는다. -중략- 건축도 마찬가지로 바라고 원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57쪽

실제로 대한민국 사회에 있어서도 건축이 미치는 영향력이란 거대하고 또 강력하다. 예를 들어 그저 단순한 부동산에서 출발하여 아파트의 프리미엄 전쟁, 더욱이 저마다 살아가는 아파트에서조차도 그 동.층에 이르는 차이에서 드러나는 갈등에 이르기까지 분명 이는 현대사회에서 심화된 현상이자, 각 개인주의가 확립되면서 만들어낸 사회문제라 인식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는 어느 사회의 (부정적인) 단면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부추키거나 방관한 주체로서 새롭게 성찰하고, 또 이를 극복하기 위한 혁신의 주체 또한 '현대의 건축'이 짊어져야 하는 조건이 되어야 마땅하다는 인식등이 주장되고 또 실행되려 한다는 것은? 분명 이는 건축이 가지는 보다 궁극적인 (개념의) 진보라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이처럼 필요성과 인식 그리고 실행은 과거와는 다른 문명의 모습, 즉 현대의 건축물은 첨단의 기술과 미적 감각... 그리고 서로 어우러져 만들어간 조화와 배려의 가장 상징적인 결과물이라 할 만하다. 이제 건축은 국민의 통제수단이나, 극단적인 실용의 영역에 속한 개념이 아니다. 최근 전통적인 미술관을 재단장 하는 것이나, 발전소나 장례식장 주변의 환경을 정돈하여, 시민들의 휴양지로 제공하는 것과 같이, 이에 건축은 목적과 성과만을 쫒는 것에서 벗어나, 보다 새로운 역활을 수행해야 하는 필요성이 주문되어진다. 이때 그러한 현상에 만들어갈 새로운 미래의 모습, 그리고 공동체와 개인의 인식과 사고방식... 그리고 생활상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이에 저자는 그 방대한 질문과 기대에 대하여 나름의 긍정적인 주장을 펴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지스탕스 사형수들의 마지막 편지 - 2차 세계대전 당시, 인간성과 용기를 최후까지 지켜 낸 201인의 이야기
피에로 말베치.조반니 피렐리 엮음, 임희연 옮김 / 올드벤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43년 무솔리니의 실각과 구금, 그리고 극적인 탈출과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RSI)의 수립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이는 나름 기나긴 세계2차대전사에 있어서 순간의 해프닝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의 역사를 살펴보아도 이미 전쟁의 막바지에 든 시기에다 (정작)이탈리아 또한 항복한 이후였으니, 결과적으로 그 괴뢰국의 멸망과 무솔리니의 처참한 최후를 알고 있는 '후대의 사람들'이 이 짧은 순간을 (이탈리아의 역사를) 눈여겨 본다는 것은? 정말 어지간한 역사의 탐구자가 아니라면 그리 쉽게 마주하기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근본적인 사실은 이탈리아 레지스탕스 운동이 외세에 대항한 싸움이 아니라 내부의 적인 파시즘과의 투쟁이였으며, 이는 곧 파시즘의 회신인 독일군과의 투쟁이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그 둘을 하나로 일치시켜 사력을 다해 싸웠던 것이다.

서문 24쪽

물론 그러한 이유를 더해 이탈리아의 레지스탕스는 위의 문장처럼 나름의 또 다른 의의를 지닌 특별함을 지니고 있기에, 여느 (프랑스, 오스트리아, 폴란드 등의) 다른 무장투쟁을 이해하는 것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기도 하다. 실제로 이 책에 드러나는 수 많은 사형수들의 기록은 RSI라는 괴뢰국의 (비교적) 짧은 역사의 시간 속에서 스러진 사람들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이미 이탈리아까지 진격한 연합군을 도운 혐의와 더불어, 후방교란과 테러... 그리고 단순한 독일 파시스트들의 복수심을 이유로 '형식적인 재판'과 '사형집행'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희생된 그 수많은 목숨들을 증명하는 이 기록들은 비록 오늘날 파시스트와 (많은 부분)공산주의간의 무력충돌이라는 역사적 정의의 골자, 더욱이 파르티잔 활동의 정당성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있어, 그 가치에 대해 저울질되어진 적도 있다고는 하지만, 이에 적어도 저자는 이탈리아의 공동체에 중요한 가치 (애국심 등) 그리고 오늘날 역사적으로 나치즘이 과오와 잘못됨으로 정의되어진 세상이 만들어낸 의식에 더해, 결국 그들이 보다 숭고한 의지와 믿음에 희생되어진 존재임을, 또한 그들이 비춘 희생 너머 인간 본연의 고귀함을 엿볼 수 있음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저는 이제 곧 죽습니다. -중락- 태어날 때 첫울음을 터뜨리며 어머니의 품에 안겼듯, 순결한 저의 영혼은 오늘 이후로 유골로 남아 어머니의 품에 안긴 채영원히 보호받을 것입니다.

445쪽 도메니코 과란타 -23세 법대생-

이처럼 이탈리아 파르티잔이라 뭉뚱그리는 것과는 달리, 이 수많은 편지들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당시의 민중이라 할 만하다. 수리공, 학생, 경찰, 농부, 주부, 사서, 상인, 변호사, 설계사, 군인... 그 다양한 직업과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시끔 파시스트 정권이 만들어지는 것에 저항하고, 연합군과 함께 나치 독일과 무솔리니에게 저항한 것은 분명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면, 희생을 넘어 바른 헌신의 표상으로도 정의할 수 있다.

허나 세상에는 행동하는 것보다 한발 물러서 관전하는 사람들과 침묵하는 사람들이 더욱 더 많다. 그리고 그것이 심히 비난받는 것보다 '힘의 억압과 '역사에 보편적으로 있었던 일'로 사실상 면죄부를 받음으로서, 방관자(또는 대중) 스스로가 죄가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려 한다. 이때! 적어도 당시의 역사를 살았던 사람과 또는 미래를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이미 전쟁 이후의 정의가 세워진 이 세상에서 최소한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 했던 과정이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인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닌가? 하는 감상을 받는다.

잘못된 것을 인정하는 것과 함께,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또는 발견해야 하는) 어느 것

이처럼 이 남겨진 글 속에선 그들의 거창한 대의와 확고한 이데올로기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가 않다. 도리어 남겨질 가족과 소중한 상대, 그리고 그 무엇보다 사형수와 연관된 자로서, 그들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앞날이 걱정되어 그들의 위로하는 내용이 더욱더 많다. 이때 그들은 '국가와 사회의 질서를 무너뜨린 사형수' 라는 오명속에 죽었으며, 그 죄명도 살인과 방화 등 그리 쉽사리 용서하기 힘든 큰 강력범죄가 대부분이다. 이에 적어도 그들의 명예를 되돌려주는 것은 이루 그들의 행동에 대하여 이해하고... 아니 인정해 주는 것이 유일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에 노파심으로 기록하지만 이는 단순한 정당화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이들이 이러한 유언을 적어야 한 이유, 그리고 사형수로서 처형을 각오하고 행한 행동에 있어서, 이들이 바로 당시 전쟁의 시대와 이탈리아의 미래를 가늠하고 경험하며, 이후 인간의 기본권인 '저항'을 선택한 것임을 알고 또 인정해야 마땅하다. 라는 것이 내가 이 책을 읽은 이후 받은 가장 중요한 감상 중 하나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틴어 격언집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잘난 척 인문학
김대웅.임경민 지음 / 노마드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양세계에서 라틴어가 가지는 지위는 어떠한가?' '그리고 한자 문화권인 동양에서의 한문과 비교하여 그 둘(한문과 라틴어)의 공통점과 또 차이점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가?' 안타깝게도 이 책은 (완독 이후 문득 떠오른) 그러한 위의 두 질문에 대한 가장 핵심적인 해답을 내놓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궁금증을 뒤로하고 중세의 '아다지아'(에라스뮈스 저) 즉 중세의 격언집이라는 본래의 가치와 더불어, 옛 사람들의 지혜... 흔히 고대와 중세 사이 소위 르네상스 시대를 매개로 한 학문의 변용과 확장의 과정에 대한 '공부 의지' 를 지니고 있다라고 한다면? 이에 이 책은 그 나름의 내용을 빌어 단순히 학문적 가치에 대한 것 뿐만이 아니라, 과거 고대.중세인이 가지고 있던 광범위한 인식 (세계관과 삶의 지혜 등) 을 접하게 하는 가장 매력적인 길로 독자를 안내 할 것이라는 감상을 가진다.

그러므로 고전.고대의 지혜를 발휘하여 자기의 주장을 펴는 능력이 학문적으로나 심지어 정치적 담론의 중요한 부분이였던 기대에 출간된 에라스뮈스의 '아다지아'가 당시에 가장 인기 있는 책들 중 하나였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서문 6쪽

물론 그 공부를 위해서 우선되어야 할 것이 '라틴어를 배우는 것' 이였다면? 정작 나 스스로부터 나가떨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에서 우선적으로 드러나는 내용은 아다지아에 기록된 격언과 함께 역자 나름의 해설 등이며, 이에 결국 독자 또한 그 무엇보다 해당 단어속에 녹아든 뜻과 (문장의)역사성을 발견하고 학습하는데 크게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태양의 빛은 모든 곳을 비춘다.

solum ommium lumen 솔룸 옴니움 루멘

실제로 먼 미래에 해당하는 '현대사회' 에 있어서도 이 책 속의 많은 격언들은 사회과 교육의 영역 구석구석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아니! 생각해보면 이는 단순히 아다지아를 원문으로 파생된 격언이 아닌, 오래도록 인류가 축척해 온 격언에 대한 것, 또는 옛 지혜에 대한 것을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라틴어로 그리고 출판물로서 보급하고 전파 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한 것 일지도 모른다. 이에 예를 들어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오롯이 (라틴어의) 발음과 뜻(또는 개념)을 온존한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통용되는 전통적인 속담과 이 아다지아에 수록된 격언에서 보여지는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하여 논하고자 한다면, 결국 이를 마주한 나의 감상은 '다른 문자와 발음과는 달리,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지혜는 의외로 공통적이라는 것'이였다.

"빈통은 쉽게 구른다" 이에 한국의 속담으로는 어떠한 것이 있는가? (빈 수레가 요란하다?) 그리고 그 둘을 비교하여 그것이 상징하는 바는 과연 크게 다르다할 수 있는가. 결국 속된 말 이기는하지만 옛 지혜라고 해봐야 '모두가 뻔한 이야기' 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 이처럼 오늘날의 현대인들 또한 오래도록 교육과 경험 등을 통하여 깨우친 진리들을 알고 있기에... 이에 결과적으로 이 책은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것에서 벗어나,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한 (서양세계에서의) 과거를 더듬어가는 과정을 즐기는 것에도 그 (나름) 의미가 있다고도 생각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사를 바꾼 21인의 위험한 뇌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고나가야 마사아키 지음, 서수지 옮김, 박경수 외 감수 / 사람과나무사이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매우 당연한 것이기는 하지만, 세상에는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라는 말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오늘날까지 발전한 의학의 상식에 비추어보게 된다면, 역시나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수 많은 인물들이 보여준 증상과 그것을 마주한 사람들이 생각한 의식이란 때론 매우 흥미로운 것이라 독자를 이끌지만? 반면 해당 인물들의 인생과 역사적 의의에 대하여서는 그 대부분에 있어서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는 감상을 남기에 하기 충분하다 여긴다.

유럽역사에서는 '막시밀리안'이라는 이름을 가진 왕, 귀족이 자주 등장한다. -중략- 이는 '크다', '거대하다' 라는 의미로 '존귀하고 거대한 황제', 혹은 '대귀족' 의 뉘양스를 담고 있다.

47쪽

그러나 이야기를 이끌어가기에 앞서, 먼저 저자가 역사학자가 아닌 의학 전문가의 지위에 있다는 것을 언급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때문에 이 책은 분명 세계사에 활약한 수 많은 인물들이 존재하지만, 최종적으로 그들의 행동과 선택 가운데서 '질병'이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서는 역시나 이 내용 전체를 온전하게 신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 '성녀 '잔다르크를 이야기 할 때, 그녀가 주장한 '신비 체험' 등을 병리학적인 영역에서 생각한다면? 분명 충분히 저자와 같은 결론에 도달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프랑스사 뿐만이 아닌 세계사의 보편적인 지위에 있어서 그녀가 '측두엽뇌전증'을 앓고 있었다는 주장은 여느 결국 여느 가설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후 연구가 진행되고, 또 역사학자들과 대중들 모두의 역사적 합의가 마무리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날에 있어서, 이 내용 모든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를 표하는 것은 그리 적절하지는 않다. 그저 저자의 의도와 같이 역사에 흥미를 가지고, 또 그 역사를 마주할 원동력을 얻는데 이 책이 쓰여진다면...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나름의 의의를 훌륭히 수행한 것이다.

'그가 과연 이 중요한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149쪽 루스벨트 대통령을 평가한 찰스 월슨 모란의 회고록 중

각설하고 고대의 근친혼과 유전적 특징과 같은 어려가지 연관성으로 인하여 발현되는 것에 있어서, 분명 그 대표적인 것은 외모에 두드러지는 특성이 제일이겠지만 역시나 이 책의 주제에 비추어 생각해본다면 '내면의 문제' 즉 유전과 질병 사이에서의 인과관계와 그 질병을 통해 고통받은 지도자와 그 지배 시스템이 가진 특징과 한계에 더 주목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이전 전통적인 왕조에서의 보여지 군주의 모습과, 이후 권력이 세습되지 않는 지도자의 모습... 그 차이점과 달리 묘하게 공통적인 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이 책은 그 핵심에 '병든 뇌'에서의 연결점을 꼽으려 한다. 특히 발광과, 무기력증, 그리고 남다른 통증에 고통받는 와중에서도 권력과 의무가 주어진 존재가 반대로 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선택을 하도록 강요받게 되었을 때, 이에 역사는 그 현상에서 대부분 국가와 사람 모두에게 있어서 안타까운 결과를 만들어 내었다.

물론 오늘날에도 치매와 같은 뇌의 질병은 무서운 것이다. 더욱이 그 발병의 이유도 또 효과적인 치료방법에 대해서도 의학은 꾸준히 그 해답에 도달하려고하지만 역시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묘연하기만 하다. 그러나 적어도 과거 사람들과는 달리, 현대의 사회 시스템은 (나름) 대의명분에 가려 지도자와 국민 모두가 고통받는 것을 지양한다. 또한 고통받는 개인을 마주하는 시선에 있어서도 이전과 같은 무지와 무관심과는 달리, 여지껏 축척해온 지식과 안전장치를 통한다는 것에 있어서도 확실히 역사의 흐름에 있어 '현대'는 과거 여느 시대와 비교해 진보해 있다고 생각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금길
레이너 윈 지음, 우진하 옮김 / 쌤앤파커스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흔히 사람의 삶 가운데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책... 그리고 더 나아가 (개인 등의)불행을 마주하며, 절망과 약물 등 쉽게 무너져 내릴수 있는 선택과는 반대의 길을 걸어간 '실화'를 담은 책은 솔직히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몇번이고 접했던 기억이 있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2015년 영화로 개봉되었던 (실화) 와일드도 그러하고, 또 관광지로도 유명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가는 순례자들의 모습 또한 분명 '개인' 스스로의 난관에 해답을 찾는 방황과 치유의 과정이라 여겨도 그리 틀린것이 아니리라 생각되어진다.

나는 잠시 경외심이 들 정도였다. 불과 두어 달 전만 해도 내가 붙잡아주지 않으면 외투 같은 것도 혼자 제대로 입지 못하던 사내가 속옷바람으로 바닷가 위에 서서 제대로 접히지도 않은 텐트를 머리 위에 둘러매고, 배낭은 등에 짊어지고는 내게 달리라 말하고 있었다.

10쪽

그러나 흔히 개인의 내면, 스스로의 강함을 위한 참선과 담금질?이 주된 이야기였던 에세이와는 다르게, 이 책은 또하나의 주제인 너와 우리에 대한 나름의 시선이 돋보이는 것 같다. 각설하고 파산이라는 생애 최대의 고비를 마신 중년부부가 선택한 1000킬로의 여행길에서, 이에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선택의 주제는 다름아닌 '희망'이라는 단어로 압축되어진다.

또한 그 희망은 앞으로의 미래를 살아갈 에너지의 충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하나 더 추가하자면 오랜세월 부부로서 살아온 인연에도 불구하고, 새삼 서로의 또 다른 면면을 발견함으로서 느끼는 신선함, 그리고 비로소 나와 너라는 다른 사람이 뜻을 모아 하나의 열정을 피워냈다는 성취감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여행이 가져온 순기능을 통하여 저자는 결코 그 여행의 시간이 헛된 것이 아님을 주장 할 뿐만이 아니라, 다른 타인이 엿보아도 충분한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자랑 할 만한 시련였다 회상한다.

때문에 책 속의 주인공들은 외롭고 고독한 시련이 아닌, 갈등와 해소 가운데서 서로가 이해하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여행을 계속하며, 더군다나 영국의 해안길은 미국의 광활한 사막이나, 산길과는 다른 '사람의 모습'이 쉽게 드러난다. 실제로 저자는 해안길에서 영국 특유의 무뚝뚝하지만 정과 인정이 많았던 사람들과 더불어, 반대로 외딴 부랑자로 여겨 경계와 불쾌감을 내비친 사람들의 모습까지도 겪고 또 감내해야 했다.

재대로 된 사람들이 대로변에서 그렇게 누워 있을리가 있나. 무슨 부랑자나 뭐 그런거야?

406쪽

이에 당시 영국의 사회분위기에서 '이방인'이 받아야 했던 경계와 혐오... 그리고 이후 다시 개인과 사회인의 반열에 들어서 미래를 걸어가기까지의 각오와 다짐에 이르기까지. 그 좁고도 냉정한 곳, 그러나 잠시나마 온정이 스치는 그것이 바로 저자의 삶 가운데서의 '우리의 세계'였음을 마주하며, 이에 나 또한 나름의 리얼한 글 가운데서 이 불완전함의 면면을 접한 것 같은 감상을 받았다.

그렇기에 나는 흔히 개인이 방황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이 사회의 굴레를 벗어나게 될때, 그리고 보다 스스로의 내면의 강함과 희망이 시험받게 될 때 힘이 되어주는 주체가 좀더 '인간의 이해'가 되어가는 사회가 왔으면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정작 스스로의 의지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보다 고독을 씹으며 성장하는 것과는 다르게, 어떠한 지지대가 되어주는 것 또한 그들의 자존감과 방황을 덜어줄 가장 강력한 우군이 되어줄 수 있다. 나는 그리 생각하기도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