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스탕스 사형수들의 마지막 편지 - 2차 세계대전 당시, 인간성과 용기를 최후까지 지켜 낸 201인의 이야기
피에로 말베치.조반니 피렐리 엮음, 임희연 옮김 / 올드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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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43년 무솔리니의 실각과 구금, 그리고 극적인 탈출과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RSI)의 수립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이는 나름 기나긴 세계2차대전사에 있어서 순간의 해프닝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의 역사를 살펴보아도 이미 전쟁의 막바지에 든 시기에다 (정작)이탈리아 또한 항복한 이후였으니, 결과적으로 그 괴뢰국의 멸망과 무솔리니의 처참한 최후를 알고 있는 '후대의 사람들'이 이 짧은 순간을 (이탈리아의 역사를) 눈여겨 본다는 것은? 정말 어지간한 역사의 탐구자가 아니라면 그리 쉽게 마주하기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근본적인 사실은 이탈리아 레지스탕스 운동이 외세에 대항한 싸움이 아니라 내부의 적인 파시즘과의 투쟁이였으며, 이는 곧 파시즘의 회신인 독일군과의 투쟁이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그 둘을 하나로 일치시켜 사력을 다해 싸웠던 것이다.

서문 24쪽

물론 그러한 이유를 더해 이탈리아의 레지스탕스는 위의 문장처럼 나름의 또 다른 의의를 지닌 특별함을 지니고 있기에, 여느 (프랑스, 오스트리아, 폴란드 등의) 다른 무장투쟁을 이해하는 것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기도 하다. 실제로 이 책에 드러나는 수 많은 사형수들의 기록은 RSI라는 괴뢰국의 (비교적) 짧은 역사의 시간 속에서 스러진 사람들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이미 이탈리아까지 진격한 연합군을 도운 혐의와 더불어, 후방교란과 테러... 그리고 단순한 독일 파시스트들의 복수심을 이유로 '형식적인 재판'과 '사형집행'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희생된 그 수많은 목숨들을 증명하는 이 기록들은 비록 오늘날 파시스트와 (많은 부분)공산주의간의 무력충돌이라는 역사적 정의의 골자, 더욱이 파르티잔 활동의 정당성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있어, 그 가치에 대해 저울질되어진 적도 있다고는 하지만, 이에 적어도 저자는 이탈리아의 공동체에 중요한 가치 (애국심 등) 그리고 오늘날 역사적으로 나치즘이 과오와 잘못됨으로 정의되어진 세상이 만들어낸 의식에 더해, 결국 그들이 보다 숭고한 의지와 믿음에 희생되어진 존재임을, 또한 그들이 비춘 희생 너머 인간 본연의 고귀함을 엿볼 수 있음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저는 이제 곧 죽습니다. -중락- 태어날 때 첫울음을 터뜨리며 어머니의 품에 안겼듯, 순결한 저의 영혼은 오늘 이후로 유골로 남아 어머니의 품에 안긴 채영원히 보호받을 것입니다.

445쪽 도메니코 과란타 -23세 법대생-

이처럼 이탈리아 파르티잔이라 뭉뚱그리는 것과는 달리, 이 수많은 편지들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당시의 민중이라 할 만하다. 수리공, 학생, 경찰, 농부, 주부, 사서, 상인, 변호사, 설계사, 군인... 그 다양한 직업과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시끔 파시스트 정권이 만들어지는 것에 저항하고, 연합군과 함께 나치 독일과 무솔리니에게 저항한 것은 분명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면, 희생을 넘어 바른 헌신의 표상으로도 정의할 수 있다.

허나 세상에는 행동하는 것보다 한발 물러서 관전하는 사람들과 침묵하는 사람들이 더욱 더 많다. 그리고 그것이 심히 비난받는 것보다 '힘의 억압과 '역사에 보편적으로 있었던 일'로 사실상 면죄부를 받음으로서, 방관자(또는 대중) 스스로가 죄가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려 한다. 이때! 적어도 당시의 역사를 살았던 사람과 또는 미래를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이미 전쟁 이후의 정의가 세워진 이 세상에서 최소한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 했던 과정이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인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닌가? 하는 감상을 받는다.

잘못된 것을 인정하는 것과 함께,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또는 발견해야 하는) 어느 것

이처럼 이 남겨진 글 속에선 그들의 거창한 대의와 확고한 이데올로기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가 않다. 도리어 남겨질 가족과 소중한 상대, 그리고 그 무엇보다 사형수와 연관된 자로서, 그들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앞날이 걱정되어 그들의 위로하는 내용이 더욱더 많다. 이때 그들은 '국가와 사회의 질서를 무너뜨린 사형수' 라는 오명속에 죽었으며, 그 죄명도 살인과 방화 등 그리 쉽사리 용서하기 힘든 큰 강력범죄가 대부분이다. 이에 적어도 그들의 명예를 되돌려주는 것은 이루 그들의 행동에 대하여 이해하고... 아니 인정해 주는 것이 유일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에 노파심으로 기록하지만 이는 단순한 정당화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이들이 이러한 유언을 적어야 한 이유, 그리고 사형수로서 처형을 각오하고 행한 행동에 있어서, 이들이 바로 당시 전쟁의 시대와 이탈리아의 미래를 가늠하고 경험하며, 이후 인간의 기본권인 '저항'을 선택한 것임을 알고 또 인정해야 마땅하다. 라는 것이 내가 이 책을 읽은 이후 받은 가장 중요한 감상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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