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문화 이야기 - 전근대부터 현대까지 빠짐없이 둘러보는
신종대 지음 / 글로벌콘텐츠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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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이웃국가 '일본' 이에 지정학적으로 가까운 나라인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도, 오래전부터 일본의 문화와 사고... 즉 일본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해 왔다. 때문에 위와 같은 책과 출판의 영역에서는 흔히 최신의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었고, 그것은 크게 인문학적 눈높이(또는 학문적 접근)을 만족시키는 것을 넘어서 관광과 같은 실질적인 교류를 보조하는 등의 살아있는 정보로서 기능했다.

예를 들어 오늘날 대한민국 또한 유행과 쓰는 말 심지어는 삶의 방식에 있어서도 세대간의 차이점이 존재하듯이 해당 일본사회 또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보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또 새로운 문화와 사고방식을 만들어 갈 것이 분명하다. 때문에 문화는 때때로 시시각각 변화해가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데... 다만 의외로 이 책은 문화의 고유성 또는 전통의 계승과 일본인으로서의 국민성과 같은 보다 보편적인 지식을 분석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기에, 이에 나름대로 앞서 언급한 일본인의 원형 또는 변화의 배경을 살펴보는 것에는 크게 유익할 것이라 생각된다.

일본은 전통과 현대문명이 공전한다고 한다(...) 고유의 사고방식이나 행동패턴, 전통문화가 곳곳에 살아 숨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10쪽 일본적인 것과 에도시대

그도 그럴것이 현대의 일본문화는 크게 일본의 역사와 비교하여 보았을때, 비교적 짧고 급격한 변화 속에서 진행시켜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일본인의 삶 가운데는 분명 최신의 현대문명의 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반대로 사람과 문화 내면의 사고방식 등을 살펴보게 되면, 의외로 과거 전통적 가치관을 계승하고 받아들여진 것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실질적으로 그러한 현상을 만들고, 또 영유하는 것은 지금의 일본이 가진 특징에 불과하다. 그러나 더 나아가 그러한 특징을 발전시켜 세계에 드러내고, 또 일본문화를 전파하며 보다 친숙하고도 독자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은 보다 다른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세계 속의 일본 또는 일본이 지닌 '자포니즘' '만화 왕국' 문화의 강대국' 이라는 인식이 확산된 사실의 이면에는 단순히 그 문화를 전파하려는 노력만이 아니라, 이전 전통과 사고방식을 계승하는 와중 보다 그 표현을 변화하거나, 또는 그 노하우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에 있어 그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대중화'를 이룬 것이 컸다.

요즘 일본에서는 쿨 재팬이라는 말을 쉽게 접할 수 있다 (...) 정부는 외국인들에게 일본문화를 알리고 (...) 정부 주도의 '국가 브랜드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165쪽 대중문화의 과거와 현재

이에 대중화를 성공시킨 분야에서 일본이 강점을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과거 일본 문화가 만들고 소비하고 또는 발전시켜 이룬 나름의 기술적 노하우와 (이전부터 존재한) 친숙함이 세계화에 있어서도 강점으로 발현 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생각된다. 이 책에서 보여지는 내용과 같이 일본의 그림과 만화, 애니메이션이 단순히 애들용에서 벗어나 전연령 모두의 즐길거리로 자리잡게 된 그 이면에는 의외로 출판 인쇄물의 발전과 함께 에도시대부터 자리잡아 온 '우키요에' (판화) 의 문화 등의 확산과 변화 또한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의외로 역사는 알게 모르게 해당 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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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의 뿌리 - 조선시대부터 대한민국까지, 현대 한국군의 기원을 찾다
김세진 지음 / 호밀밭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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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대한민국 군대의 역사를 드러내려 한다. 그러나 엄연히 대한민국은 1950년 10월1일을 기점으로 국군의 날을 기념하고 있기에, 이에 단순하게 생각하면 국군은 지금까지 대략73주년의 역사를 이어 나아가고 있는 군사조직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나아가 국군이 한반도의 어느 역사... 또는 역사적 사명을 계승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결국 그 해답은 개인 각각의 역사적 의식 등에 의하여 크게 변화한다. 예를 들어 책 속의 주장에 따르자면 최근 정부를 중심으로 주장되어지는 대한민국 군대의 정체성은 독립군에 기인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대한민국의 군대가 독립군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의 자주성과 국방의 의의(또는 대의)를 상징하는 가치관 등을 평가할때, 대한민국의 군대는 과거 독립군이 지녔던 가치 등을 계승하는 존재이다. 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군대의 정체성을 일방적으로 재단할 때 어떠한 일이 발생하여 어떤 위험성을 갖는지도 살펴보았습니다. 군대의 뿌리를 특정 진영논리에 따라 규정하고 반복 학습 하면(...) 자기 정체성과 명분에 매몰되어 있을 때, 한반도는 (...) 식민지배와 분단 등을 겪어야 했습니다.

여는 말

때문에 저자는 단순히 국군이 가질 '역사적 정통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닌, 국군이 오늘날까지 어떠한 환경의 영향을 받게 되었는지, 또는 오늘날까지 국군이 추구하는 방향성이 어떠한 가치관에서 발현되는가에 대한 보다 다방면의 원인을 발견하는 것에 그 의의를 두려고 하는 모습이 보인다.

다만 오늘날에는 그 환경을 정의하는데 있어서, 보다 편향되어진 눈높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이 된다. 물론 정부의 입장에서 매우 다양한 국민의 역사 의식(그로 인한 갈등) 을 봉합하는데 나름의 보편성을 추구하려 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고 해도, 다만 그 지나친 대의외 정의 등에 기댄 한반도의 역사가 결국 그에 반대되는 세력을 비도덕적인 세력, 또는 악으로 (매우 쉽게) 구분하는 단점이 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역사라는 것이 그 결과를 추구한 상대 뿐만이 아니라, 초래한 스스로 또한 면죄부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결국 보다 명확한 해답을 추구하는 것은 반대로 역사의 본질에서 벗어난 인식을 줄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나름의 설득력을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이 된다.

이에 안타깝게도 그 변화를 주도한 (역사 속) 환경의 이면에는 타국에 의하여 유린되어진 한반도의 역사가 드러난다. 특히 과거 독립군 또한 이미 대한제국이 일본제국에 의하여 병합되었기에, 엄연히 생각해보면 온전한 국가의 군대로서 기능하지 못했고, 또 군대로서 인식하기에도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국가와 국민을 지키야 한다는 의의를 더해 더 나아가 근현대사에 있어서 한반도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는데 그 뜻을 두고 대의를 행한 군사조직이라는 점에 있어서, 역사 속의 조선과 대한제국에 이어 대한민국의 국군으로 이어지는 '어떠한 연결점'을 발견하려는 '다방면의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미친다.

다만 저자는 단순히 그 숭고한 의의와 행동만이 아닌, 앞서 나라를 빼앗기고, 군대로서 온전히 존재하지 못했던 사실이 무엇때문에 일어나게 되었는가에 대한 보다 현실적인 역사적 인식과 반성 또한 필요하다는 것을 재차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어느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정해놓은 답만 외우도록 강요한다. (...) 한국군의 뿌리는 무엇일까? 역사는 말한다. "한국군의 뿌리는 다양하다"고.

274쪽

그렇기에 과거 대한제국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또 그것을 되찾는 와중에서 타국의 힘에 좌절되거나 외면받는 창피하고 잔혹한 역사를 통하여, 결국 당시 국제사회가 지닌 냉정함 을 마주하는 동시에,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정의와 윤리적 가치관 또한 그 스스로가 지키고 주장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없다면, 모두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한번쯤 되돌아보고 또 경계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이 책이 지닌 가장 중요한 내용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 감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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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와 육군 - 제2차 세계대전을 주도한 일본 제국주의의 몸통
호사카 마사야스 지음, 정선태 옮김 / 글항아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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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의 진행과 결과에 대한 역사에 더하여, 이른바 태평양전쟁사에 있어서 그 주된 역활로서 주목받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분명 그것은 (일본제국에 있어서도) 해군이 아닌가 한다. 실제로 육중한 군함과 항모가 가져다주는 존재감에 더하여, 무엇보다 전쟁의 흐름을 좌우한 중요한 전투의 모습 등을 생각해보아도 역시나 그 주인공은 바다를 주름잡았던 군대의 모습이 먼저 떠오르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저자는 굳이 태평양전쟁중의 육군의 모습에 주목했고, 특히 전후까지 생존한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 '전장을 직접 마주한' 생생한 기억을 통해 이미 세상에 알려진 일본군의 잔혹함 또는 비이성적인 모습 등이 과연 어떠한 계기로 발현되었는가에 대한 나름의 진단을 내리고 있다. 결국 저자는 전쟁을 통해 발견 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비참한 모습을 통하여 스스로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싶었던 것이다.

각설하고 태평양전쟁의 발발과 흐름 가운데서, 육군이 보여주는 모습은 말 그대로 '육탄'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게 된다. 그야말로 당시 일본제국군은 근현대의 가치관 아래 정립된 가장 기본적인 군사적 지원 또는 가치관의 세례를 받지 못한 존재였다. 물론 군인으로서 승리를 추구하는 자세와 헌신은 나름 미덕으로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결과적으로 일본제국과 그 군대가 과거의 승리의 방식을 고수하고 또 보편화하여 끝끝내 병사 하나하나가 탄환처럼 소모되는 현상을 개선하지 못하며 종전을 맞이했다는 점이다.

왜 일본에서는 구체적인 검증도 하지 않고 저 전쟁을 부정해버린 것일까? (...) 설령 역사적 보편성이라는 게 없다 하더라도, 그 어떤 역사적 사명감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온 나라가 들고일어나 싸웠던 것이리라. 여기에 포함된 오류를 정확하게 역사에 새겨넣어 둘 필요가 있다.

434쪽 / 진주만 공격은 무엇을 의미했는가

물론 그러한 현상을 진단하며, 제기된 주장은 셀 수 없이 다양하다. 아니... 애초부터 국가 스스로가 부족한 자원과 기술의 발전을 꾀하기 위하여 외교적 접근과 상호 무역이라는 선택지를 떠나, 전쟁을 통한 식민지의 확대, 또는 경제적 이익을 위한 전략.전술적인 군사적 행동을 일으켰다는 것 자체가 현대적 감각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비이성적인 행위로 보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앞서 언급한 비이성의 후유증은 전쟁의 진행과정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비추어진다. 예를 들어 일본군의 '반자이 공격'과 '카미카제' 등은 단순히 당시 일본군의 절박한 상황과 희생정신의 발현이 아니라, 단순히 전쟁에 필요한 물자와 수송력을 만족스럽게 제공해주지 못한 수뇌부가 그 책임을 수 많은 병사들에게 돌려 희생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1944년 가을 이후 참모본부의 대응을 보면 (...)병사가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따위는 고려되지 않았다(...) 이 말을 듣고서야 참모본부의 내실에 관한 기본적인 문헌조차 찾아볼 수 없는 이유가 납득되었고, 병사들이 뭘 먹고 살았는지에 대한 변변한 보고서 하나 남아 있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고 느껴졌다.

658~660 / 쇼와 육군의 흥망

그렇기에 냉정하게 판단해보면 일본제국의 패전은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니... 역사적으로 일본제국은 패전을 통하여 연합국의 지배를 받았고, 그 결과 자의와 타의의 경계를 알 수 없는 '전후처리'의 과정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과정 속에서,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책임을 온전히 짊어졌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면, 그 대답은 부정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때 일본 국내의 문제점은 어떠한 것이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전쟁을 겪으면서 생존한 수 많은 병사들이 남긴 전쟁에 대한 후회와 반성의 기록들은 어째서 '미화'의 단어 속에서 외면받고 변질되는 것인가?

쇼와 육군이 남긴 많은 잘못을 한시라도 빨리 청산하는 것은 (...) 그것은 정치 자세나 사상의 건전한 발로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역사적 도의의 도달점이기도 하다.

1005쪽 / 남겨진 '전후 보상' 문제를 주시하며

이에 저자가 주목한 것은 단순히 국가와 군대의 폭주만이 아니다. 그에 더하여 전쟁 이후 '전후 처리'의 과정 있어서도 군인이 끝끝내 (개인적인) 용기와 희생의 보답을 받지 못한 것이 그 무엇보다 나라에 큰 후유증을 남기지 않았나 한다. 실제로 오늘날 수 많은 논란과 갈등의 원인은 과거의 잘못을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더더욱 그 문제의 이면에는 군인이였던 자들 스스로가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했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의 입장과 그 오랜 기억이 점차 잊혀지거나 미화되어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기억을 바탕으로 생존자들의 목소리와 그 모임(단체)의 성격이 변질되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또 이를 국가의 빚이라 주장하여 '정치세력'으로서의 입지를 다진 결과는... 그야말로 오늘날 우경화 속에서 비추어지는 일본의 모습 그대로다.

때문에 저자가 주장하는 진정한 의미의 청산, 그리고 전후의 시대를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쇼와시대의 제국군의 모습 그대로를 들여다보고, 또 이를 비판하기 위한 (올바른)현대적 가치를 내면에 세울 필요가 있다. 이에 단순히 일본제국군의 무능이 그저 '계란으로 바위를 친 어리석음'이라 생각된다면... 한번 그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라도 한번쯤 이 책을 접해보기를 바란다.

이에 나는 이 내용을 통하여 우경화 속의 그림자... 그야말로 전쟁의 미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이전 이후 세대들이 각각 어떠한 것을 추구하고 있는가에 대한 나름의 이해를 할 수 있는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이는 전쟁의 기억과 참상을 이해하는 잣대가 서로 다름으로서, 생겨나는 오해... 그리고 무엇보다 군인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이를 오롯이 마주하지 않았던 일본제국과 그 속의 군인들 마저 어떤 의미에서 (서로) 진정한 화해?를 하지 못한 탓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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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타의 딸들 - 사라 처칠, 애나 루스벨트, 캐슬린 해리먼의 이야기
캐서린 그레이스 카츠 지음, 허승철 옮김 / 책과함께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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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 그러나 이미 연합국의 승리가 당연시되어 점차 전후 세력구도에 대한 관심과 조정의 필요성을 모두가 인정하고 있었던 과정 속에서 얄타 회담은 성사되었다. 그러나 전쟁사에 있어서, 얄타회담이 가지는 의미는 분명 다른 수 많은 회담과 사건에 비교하여 그다지 비중은 떨어진다. 그도 그럴것이 전쟁을 마치지 많은 시기에 열린 회담이였을 뿐만이 아니라, 당시 국가와 국가 사이에 타협과 약속으로 제시되었던 원칙조차도 (대부분) 정작 전쟁이 끝난 이후 모두 휴지조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전후 처리의 실질적인 영향은 과거의 약속보다는 당시 점령군 사이의 힘과 정치적 입장 등이 훨씬 더 큰 힘을 발휘하고야 말았다.

그럼에도 처칠과 루즈벨트 스탈린과 같은 역사 속 연합국의 최고의 수장과 수뇌들이 모여 향후 '세계의 질서'를 논했다는 상징성은 분명 당시에도 커다란 사건이였을 것이 분명하다. 때문에 소위 얄타회담을 성공리에 마칠 수 있게 음과 양으로 노력했던 사람들은 분명 그 역활을 다 했다는 부분에 있어서, 크게 인정받아야 마땅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존재는 역사속의 그림자에 가려져 세세히 알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다만 이 책은 그나마 주인공이 아닌 부외자, 즉 역사의 주류와는 다른 존재들을 통하여, 당시 회담의 또 다른 모습을 비추는 렌즈로 활용하고 있다. 그야말로 수장들의 딸들을 비추어 그들이 겪은 경험 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보고 느낀 전쟁의 참상에 이르기까지... 의외로 전쟁의 논리와 정치적 입장에서 벗어난 (비교적) 자유로운 감상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보다 새로운 시각에서 역사적 사건을 들여다 보게 한다.

만일 엄마가 아침7시 반에 이곳의 침실 복도를 본다면, 세 명의 원수가 물 한 양동이를 얻으려고 줄 서 있는 광경을 볼 수 있을 거에요. 어떤 원수는 물을 받아 오지 못하기도 해요.

187쪽 1945년 2월5일

물론 이들은 국가의 수장과 그 관련자의 가족으로서 특별한 대우를 받았지만, 그 뿐이다. 적어도 회담과 (저마다의)국가와 정치에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또 그러한 정보에 다가갈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여성이 있었다면 그것은 처칠의 딸이자 항공 소대장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군인' 사라 처칠 올리버 뿐일 것이다.

이처럼 적어도 얄타회담이 진행되는 그 장소에서, 여성만이 아닌 스스로의 자주성을 지켜 그 존재를 드러낸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러나 그 때문에 국빈의 관계자로서, 그리고 특히 국가수장과 밀접한 가족이라는 역활 속에서 대접받으며 생활한 '소련의 땅?'는 분명 전쟁의 만들어낸 비극과 불편함 그리고 인간으로서 감히 마주하기 힘든 야만의 면모를 그들에게 생생히 전해주었다.

스몰렌스크에서 캐슬린과 기자단은 독일인이 생각하기에도 긴 직함을 가진 안내인의 안내를 받았다. 그의 직함은 '독일 파시스트들의 포로가 된 폴란드 장교들을 총살한 상황을 확정하고 조사하는 특별위원회의 서기였다. (중략) '소련 측의 본격적인 쇼'가 이제 시작된 것이였다.

219쪽

때문에 얄타의 딸들은 작게는 빈대와 벼룩의 공격 뿐만이 아니라, 크게는 각 국가의 대의와 '정치 쇼'를 마주하여, 나름의 감상들 개인적으로 남겼다. 물론 가족에게 보내는 사적인 편지와 아버지와 딸 사이에 나눈 개인적인 대화와 기록이 역사의 큰 틀을 만들어내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오늘날 역사의 다양한 면면을 살피고자 하는 역사의 가치관과 그 변화에 발맞추어 바라보게 된다면, 분명 이 내용들은 단순히 부외자의 기록만이 아닌, 보다 다른 가치과 눈높이를 가진 또 하나의 역사에 대한 기록으로서, 마주 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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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마코스 윤리학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2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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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세상에 '인간이 동물과 다른 무언가가 있다' 라고 한다면 그것은 크게 지성의 유무에서 판가름날 것이 분명하다 생각이 된다. 이때 위의 윤리라 함은 그러한 지성을 상징하는 가장 큰 근본이자, 심지어 동서양의 지형적 한계를 벗어나, 기원전 오랜 가치관이라는 시간의 한계까지 뛰어넘는 보다 포괄적인 개념을 품고 있는데... 이때 이 책은 그 주제를 통틀어 "인간에게 있어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가" 를 정리하고 있다.

그러나 흔히 동양의 윤리 이른바 유고적 가치관에 기댄 윤리의 모습은 '인간이 마땅히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인간으로서 경계하거나 계승해야 하는 가치관에 대한 것' 쉽게 말해 선악으로 분류되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정의이기에, 분명 위의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윤리의 정의와는 그 범위가 다른 부분이 있다. 허나 어디까지나 인간의 삶에서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그리고 마땅히 인간이 가지는 감정과 욕구 그리고 그 감정에 의한 행동 등이 사회 전반에 있어 그 개인들을 어떠한 존재로 만드는가? 에 대한 폭 넓은 정의는 곧 앞서 언급한 인간의 본질에 대한 사고에서 시작되는 것이기도 하기에, 이에 결과적으로 니코마코스 윤리학 또한 (오늘날) 세상의 상식과 비교하여 큰 거리감은 느껴지지 않는 밀접한 윤리적 정의를 드러내고 있다고 보여진다.

미덕은 이성적 선택을 바른 것으로 만들지만, 그 선택을 실현하기 위해 행해야 하는 것을 주관하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 다른 능력이다.

242쪽 지적미덕

각설하고 인간이 스스로 좋은 것을 추구하려 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개인적 만족 뿐만이 아닌 또 다른 만족과 행복을 충족하는 가치관과 그 능력이 뒤따라야 마땅하다. 이때 책 속에는 그러한 조건을 충족하는 것을 나열할때 좋은 것과 나쁜것... 더 나아가 인간이 최종적으로 좋은 것을 추구하고자 할 때 감내하는 고통과 인내, 즉 일반적으로 나쁜 것이라 할 수 있는 과정까지 좋은 것으로서 정의해야 마땅한 것인가? 에 대한 그 수 많은 관계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내리고 있다.

이때 세상에서의 인간의 (일반적인) 삶부터 시작하여, 고대 그리스의 영웅들과 그 신화에 이르는 모든 '인간으로서의 가치'가운데서 가장 올바르면서도 또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과연 어떠한 것이 있는가? 이에 세상은 헌신,실천, 사랑 등 여러 단어를 표현하고 있지만, 결국 그것은 개인 스스로의 현실과 가치관 그리고 능력에 비추어 올바르게 추구해야 할 것이다.

지성을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을 (중략) 철학적 지혜를 지닌 사람이 신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으리라는 것도 분명하고, 그런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409쪽 즐거움과 행복

때문에 이 책은 인간이 막연하게 생각해 본 감정과 올바름에 대한 정의를 확인해 줄 나름의 '백과사전'으로서 크게 쓸모가 있을 것이라는 감상이 든다. 이때 인간은 감정을 어떠한 환경 속에서 표현하는가, 그리고 그 표현이 본인 스스로에게 솔직한 것과 달리, 사회적 평가와 함께 대외적으로 어떠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가? 더 나아가 인간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끝없는 탐구와 성찰로 단련되어 컨트롤되는 '지적 행복'은 그 어떠한 가치를 발하는가?... 이에 위의 질문 뿐만이 아닌, 보다 인간의 특별한 내적 탐구에 흥미가 있다고 한다면, 나는 분명 이 고전을 감히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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