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의 역사를 비추어보았을때 이에 인간의 신체와 연관지어, 보다 혁혁한 발전을 이룬 사건 등을 꼽아보자면 나는 제일 먼저 르네상스를 떠올릴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보다 현대적인 지식에 부합하는 신체와 비율 또는 인간을 중심으로 보다 세속적인 지식이 확산되고 정립되어가는 와중 예술과 건축 또는 의학에 이르는 방대한 지식의 영역을 혁신적인 가치로 변화시켜온 시대라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르네상스 이전의 중세시대에는 의학이 고대인인 히포크라테스학파의 틀에 가두어져 있고, 정신은 과거 기독교의 교리에 가두어져 있으며, 개인의 삶 또한 '원죄'의 굴레에 엮이어 그 개성 또한 말살되어졌기에, 이에 대부분의 중세는 그 시대 자체가 정체되어 있다고 보아도 크게 들리지는 않는다 생각이 될 때가 있다.
그러나 의외로 그 정체된 시대 속에서도 인간이 스스로를 꾸미고자 하는 욕망이나,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을 완전히 내놓은 일은 일어나지 않은 모양이다. 예를 들어 십자군 원정을 떠난 이후 사망한 왕의 시신을 온전히 고향으로 가져가기 위해서 부하들이 선택한 것은 왕의 시신을 삶아 뼈를 발라내는 것이였다. 물론 이는 당시 시대적 상황과 함께 신체의 부패를 효과적으로 막기 힘들다는 사실외에 결국 중세인 스스로가 뛰어난 인물 또는 성물로서의 가치를 지닌 신체를 가져갈때 뼈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처럼 삶이 아닌 죽음의 신체를 마주할때, 현대인인 독자들 또한 스스로의 종교적 믿음이나 또는 사회의 일반적인 사고방식에 의하여 그 예의 형태를 달리할 수는 있지만, 반대로 공통된 인식을 공유할 때도 있을 것이다. 허나 반대로 세계화가 진행되기 이전의 사회... 또는 광범위한 공통된 인식을 공유하기 어려운 시대에서 파생된 신체에 대한 이해는 그 시대성과 함께 그 어떠한 개성을 보여주는가를 마주하는 것도 의외로 흥미로운 일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