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지지율 80%의 대통령
대통령 취임 사상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인다면 소심하고 의심 많은 시민은 일방주의가 되지 않을까 우려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인들 중에 오바마가 일방주의 정치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는 하버드 로 스쿨에서 법률비평 편집장을 할 때도,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을 할 때도 정적들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정적들을 요직에 앉히거나 존중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편을 많이 만들었다.
오바마니아는 2002년의 노사모와 유사하게 보일 수 있다. 온라인이 강했으며, 아래에서부터 세력을 형성했다. 하지만 오바마는 왠지 노무현과는 다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품게 한다. <만화 미국사>를 보지 않았더라면 이것이 막연한 상상에 그쳤겠지만, 하워드 진의 책을 읽고 오바마는 다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가 외친 통합이라는 말이 힘을 얻는 이유는 그의 피가 매우 많은 인종들에게서 받은 것이기 때문이며, 그가 한미FTA에 대해서 노동자의 문제를 이유로 반대를 한 것에 신뢰가 가는 것은 미국의 국익도 국익이지만 평생 노동자와 함께 살아온 것 때문이다.
오바마의 정신적 계보 - 흑인 민권운동의 두 거목
▲ 영화 말콤X의 한 장면
오바마에게는 2명의 선구자가 있는데 흑인 민권의 상징인 마틴루터 킹과 다소 과격한 흑인 민족주의를 표방한 말콤 X다. 말콤 엑스는 비폭력적 흑인 인권을 주장한 마틴 루서 킹 2세와 달리 흑인들의 현실과 분노를 그대로 뱉어낸 연설로 흑인 인권운동에서 명성을 쌓는다. 그는 마틴 루서 킹 2세를 '흑인의 탈을 쓴 백인'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이를 통해 볼 때 오바마의 정신적 계보는 마틴 루터 킹으로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오바마는 다양한 인종이 결합돼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주기 적격이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정체성의 혼란에 시달려야 했다. 외조부모의 집에 머무르던 당시 오바마는 인종문제로 정체성 갈등을 겪었다. 농구에 미쳤고 술과 담배, 마약에도 손을 댔다. 어두운 경험은 말콤 엑스 등 대부분의 흑인 지도자들이 겪는 통과의례인 듯하다. 맬컴 엑스도 당시 하류층 흑인들과 마찬가지로 힘겨운 생활과 함께 범죄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21세에 그는 강도죄로 투옥되었으며, 옥중에서 이슬람 신앙에 귀의하게 된다.
오바마의 당선 때문에 나는 <말콤 엑스>라는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다.
오바마를 이해하는 두 가지 키워드, 노동운동과 반전운동
미국의 역사적인 노동운동 사건을 꼽으라면 풀먼 파업을 들 수 있는데 악덕자본이 백인 노동자들을 인디언이나 흑인처럼 천대하던 지역이 바로 풀먼 신도시였다. 유진 빅터 뎁스는 미국철도노동조합의 젊은 지도자로 활약했는데 1893년 경제불황과 공황기에 미국 철도노동조합을 결성했고, 1894년 풀먼사 노동자들과 함께 파업을 주도했다. 풀먼 노동자의 외침이 우리의 실정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1893년 5월에서 9월 사이에 우리의 임금을 다섯 차례나 삭감했습니다. 그래도 집세는 그대로입니다. 그는 고용주로서 우리에게 돈을 지급해놓고 집주인으로서 그 돈을 다시 가져가 버립니다."
▲ 1893년 풀먼사 파업 당시 사람의 논물로 목욕을 하는 해골들의 춤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한 세기 뒤 이 현상은 '바닥을 향한 경주(국가나 기업 간의 과다경쟁이 빈곤층을 만든다는 이론)이라고 달리 부르게 되었고, 월마트의 사업모델이 되기도 했다. (만화 미국사, 32쪽)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전쟁을 크게 그리고 빈번히 일으키는 나라이며, 전쟁을 비즈니스로 다룰 줄 아는 몇 안 되는 국가다. 그야말로 '전쟁전문국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쟁전문국가'는 그 반대의 방면으로도 트이게 된다. 미국은 대표적인 '반전운동'의 국가이기도 하다.
호전이라는 것은 국가주의와 상업주의가 묻어 있다. 인간은 전쟁이라는 상황 속으로 몸을 가린다. 하지만 전쟁 앞에 맨몸을 드러낸 것이 바로 반전이다. 반전은 전쟁의 참상과 전쟁에 발가벗겨진 인간을 그대로 드러낸다. 전쟁만큼 인권이 유린되는 상황은 없으니까. 오바마가 이라크에서 발을 빼기는 어렵겠지만, 오바마에게 있어서 이라크에서 발을 빼기보다 더 어려운 일은 전쟁을 비즈니스로 삼거나, 전쟁을 일상화하는 일이다. 오바마의 반전메시지가 얼마나 넓게 확산될지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