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니로 게임]이라는 소설을 읽은 다음 곧바로 내 손에 도착한 책이 이 책이다. 운명같은 공교로움이다. 같은 레바논 이야기라니. [드니로 게임]은 기독교 민병대원의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이 책은 이스라엘군으로 레바논에 갔던 '나'의 이야기다. 이 에니메이션을 보고 싶었지만, 극장에 갈 시간이 여의치가 않아 책으로라도 만나게 된 것을 감사했다. 물론, 책을 본 후에는 더욱 에니가 보고 싶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옛 친구 보아즈와 술집에 들른 나(아리)는 반복되는 보아즈의 악몽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된다. 사건을 겪은지 20년이 지난 후 느닷없이 찾아온 악몽은 2년 동안 매일 밤 26마리의 사나운 개가 나타나는 꿈이었다. 보아즈는 어느 마을에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를 찾기 위해 들어갔다가 개 짖는 소리 때문에 테러리스트들이 도망갈까봐 개를 쏘아죽이게 된다. 딱 26마리. 꿈 이야기에 이어 레바논 전쟁 당시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당시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되고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옛 동료들을 찾아 나서게 된다. 비밀을 밝혀 낼수록 기억들은 선명하게 떠오르기 시작한다. 맙소사! 책에서는 사진으로 보여주어 함께 실감하도록 도와준다. 톡 쏘는 듯이 느껴지는 사실적인 그림체는 책에 집중하게 했다.

위에서 손가락으로 때로는 말로 지시만 내리는 사람들은 전쟁 속의 일을 대단하게 느끼지 않을 것이다. 마치 게임하듯 장기 두듯이 이 엄청난 일을 만들어 낼테니까. 하지만, 그 속에 있던 사람들은 공격하는 사람이나 공격당하는 사람이나 상처 입지 않았겠냐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공격당하는 사람들이 잃은 것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겠지만 말이다. 누군가가 이스라엘의 책임 회피용 에니메이션이라고 써 놓은 것을 보았었다. 하지만, 이 에니를 만든 사람이 국가적 임무를 띄고 이 에니를 만든 것이 아니고 한 사람의 개인이 이 엄청난 사태에 대해서 책임 회피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잘못을 이런식으로라도 밝히고, 작전에 투입된 개인들의 아픔을 이야기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우리의 더러운 내전에 대해서 심도있게 이야기 하지 않아서 같은 남쪽 땅에 살면서도 매일 같이 이념전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계속되는 전쟁 이야기에 내 머리속이 전쟁판이다. 전쟁. 정말 겪고 싶지 않다는 생각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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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화약고라 불리는 팔레스타인. '화약고 중동'의 핵심문제는 비단 중동뿐만 아니라, 국제정세에도 항시 불안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여러 지역을 포함하며, 대체로 서쪽의 지중해에서 동쪽의 요르단강까지 그리고 북쪽으로는 이스라엘과 레바논 국경지대, 남쪽으로는 가자지구에 이르는 지역을 말한다. 팔레스타인의 역사는 곧 난민사다. 강대국의 힘의 논리에 따라 이스라엘이 세워지는 바람에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집을 잃고 난민이 됐다.

1982년 9월 16일 벌어진 팔랑헤딩 민병대의 소행으로 알려진 이스라엘 전쟁과 관련해 오랫 동안 많은 사람들의 일상과 일생을 짓눌러 왔던 전쟁의 참화가 한 인간의 기억상실이라는 소재로 정체를 나타내고 있는 영화다. 1980년대 초반 이스라엘과 레바논 전쟁에 참여한 당시의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것이다. 자신과 같이 복무했던, 또는 복무했다고 주장하는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동료의 기억을 쫓아 자신의 기억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팔랑헤당 민병대들이 3,000명의 팔레스타인인을 그토록 잔인하게 살해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분명한것은 이 학살의 배후에는 이스라엘군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주목할 부분은 살인군대가 난민촌으로 들어가 피의 학살을 벌이는 동안에 이스라엘 군대는 명령에 따라 난민촌 주위를 탱크로 봉쇄하고 밤새도록 조명탄을 쏘아올리며 학살을 도운 사실이다. 


이 영화의 장르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다. 아리 폴만 감독은 학살의 현장에 있었던 자신의 기억을 찾는 얘기의 영화화를 위해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라는 독특한 형식을 도입한다. 이스라엘 출신인 아리 폴만 감독은 친구와 얘기하던 도중 자신이 경험했던 과거가 뭉텅, 날아가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끝에서 아리 폴만 감독은 스스로가 잊고 싶었던 가슴 아픈 진실과 마주대하게 된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당시의 잔인하게 죽어간 희생자들의 사진과 이들의 죽음에 절규하는 노인의 사진을 만날 수 있다. 애니로 진행되던 내용이 갑자기 사진으로 바꼈을때 느끼게 되는 사실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현실적인 느낌이 더해지던 순간이었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스라엘 지역을 일컫는 지명에는 가나안, 이스라엘, 유대, 팔레스타인, 등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은 이름들이 많기도 하다, 이 명칭의 근원처럼 이스라엘 전쟁의 근원도 제대로 파악할려면 이스라엘 국가가 탄생하는 시기가 아니라 모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어쩌면 인류 역사가 지속되는 날까지 전쟁이 끝나지 않을 지역이 있다면 바로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150명 이상이 사망하는 큰 인명 손실을 보는 등 양측의 분쟁은 당분간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휴전상태지만 이 전쟁의 끝은 양육강식의 원리가 철저하게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피비린내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우리나라의 현대사에서 벌어졌던 사건과도 많이 닮아있음에 서글픔이 더욱 느껴졌다.



posted by 아련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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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 영화를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특히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느니, 무슨 상 후보로 올랐느니 하는 수식어가 붙은 영화도 그리 흥미를 두지 않는다. 그런데도 개인적으로 유독 스필버그 감독의 『쉰들러 리스트』만은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내가 내 스스로 유대인 홀로코스트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영화였기에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유대인 게토를 청소(?)하는 장면에서 울려 퍼지는 바흐의 피아노곡은 참혹한 학살의 이미지와 묘한 대비를 이루며 기억 속에 오랜 시간 각인돼 있었다. 캄캄한 밤공기를 가르는 처참한 비명과 반복적인 총소리 그리고 피아노곡이 만들어 내는 비현실적인 무대는 인간 내면에 흐르고 있는 학살의 공포를 그대로 보여주는 장(場)이었다. 2차 대전이 만든 살육의 무대 그것이 바로 유대인 홀로코스트였던 것이다.

 레바논. 베이루트 서부. 1982년 9월 16일. 사브라와 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촌.


 다시 학살의 무대가 세워졌다. 나치를 대신한 팔랑헤당 민병대와 이스라엘군, 유대인의 자리엔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그 주인공이었다. 이번엔 바시르라는 인물이 원인을 제공하고 바시르와 왈츠를 추던 이스라엘의 묵인아래 참담하고 야만적인 학살의 축제가 벌어진 것이다. 팔레스타인 저항세력은 모두 떠나고 난민촌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아이들과 부녀자 그리고 노인들이었다. 아무런 저항수단이 없는 이들을 향한 무자비한 폭력의 장(場)은 이스라엘과 바시르의 왈츠를 배경으로 베이루트 서부에서 무대에 올려진 것이다.


 20년 전 학살의 현장에 섰던 아리가 끔찍했던 그 날의 기억을 잊어버린 이유는 무엇이고, 그가 기억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 이유는 또 무엇이었을까? 『바시르와 왈츠를』은 주인공 아리를 통해 팔레스타인 난민학살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망각과 침묵의 방관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저지르는 야만적인 학살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현재에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럴 때 마다 사람들은 학살을 규탄하고 숭고한 인간애를 이야기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망각의 늪에서 침묵하게 된다. 아니 기억자체에서 지워버리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래서 야만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팔랑헤당 민병대가 학살을 자행하는 동안 조명탄을 쏘아 올렸던 아리는 과연 학살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얼마 전 폭격 속에서 죽어간 가자의 아이들에 대해 우리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일까? 1980년 광주에서 벌어진 야만의 무대에서 우린 아무런 교훈도 얻을 수 없는 것일까? 작품 해설에서 김재명 기자가 언급했듯이 우리나라에서는 『바시르와 왈츠』를 과 같은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질 수는 없는 걸까? 그래서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피로 얼룩진 학살의 과거를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없는 걸까?


 잃어버린 학살의 기억을 되찾았음이 학살을 방조한 책임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그리고 반복되는 야만의 고리를 끊어내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것, 인간이라면 누구나 전쟁과 학살에 대하여 인간 본연의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갑자기 작은 손 하나가 내 눈에 들어왔어요. 소년의 손인지, 소녀의 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돌무더기에서 삐쭉 튀어나와 있었어요. 그리고 다시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이 보였어요. 아니 그것은 먼지에 뒤덮인 곱슬머리를 한 사람의 머리였어요. 손 하나와 머리 하나. 그 소녀는 내 딸 또래였어요. 내 딸도 그 소녀처럼 곱슬머리였거든요.” ---------- p.117

posted by jjolp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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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사회를 유지하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부인하고 싶지만 사실이다.

타인을 죽이고 재물을 강탈한 사람은 법의 심판을 받거나 평생 도망치거나 둘 중 하나를 골라야한다. 그런 사회는 안정된 사회다.  

법은 사회구성원을 구속하기도 하고 보호하기도 한다. 법이 가끔 바뀌지만 큰 틀은 변하지 않는 이유는 모두가 그 안에 있어야 보호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도 그런 법이 존재하는가? 

유엔이 그런 구속력을 가지고 있는가? 

국제사회에는 법이 없다. 있더라도 구속력이 약하다. 국제사회는 약육강식의 사회이고 정글이라고 보는 게 맞을 듯싶다.  

세상에는 조금만 찾아보면 돈이 보이고 기름이 있는 곳이 있다. 주인이 없는 곳도 있고 주인이 있지만 뺏어도 크게 뭐라 할 사람이 없는 곳도 있다. 크게 뭐라해도 무시할 수 있다. 내겐 힘이 있다. 자,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언젠가 박찬욱 감독이 한 영화평에 이렇게 쓴 적이 있다. 

"다 가질 수 있는 자가 절반에 만족하길 바랄 수 밖에 없다."  




국제사회에서는 이런 순진한 믿음을 바랄 수 밖에 없다. 아직까지는. 

예전 중고등학교 때를 생각해도 반에서 싸움 잘하는 친구가 조용하고 착한 성격이면 1년 동안은 반 전체가 별 잡음없이 지낼 수 있었다. 아닌 경우는 그 반대이고.  

버락 오바마가 미국의 새 대통령이 되었다. 

이번에 우리반에서 싸움을 가장 잘하는 그 친구가 좋은 성격이길 바란다. 그 수 밖에 없다. 아직까지는. 

그 싸움 잘하는 친구는 다른 불량한 친구가 나를 괴롭힐 때 가끔 도와주기도 한다. 돈 좀 받고. 

법이 만능은 아니지만 '약자보호법'이란 이름으로 어느정도 보호하려는 시늉은 한다(고 믿고 싶다.)

국제사회에도 구속력 있는 법이 필요하다. 다만 그런 법을 만들 때,나라 간의 합의가 이루어졌을 때 그게 이유가 되어 또 다시 피를 부르게 되는 건 아닐지 걱정이다. 

약자를 위한 곳은 없다.


posted by 선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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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이사'의 경험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쓰라린 추억이 많을게다. 자기집. 혹은 가족  누군가의 이름으로 된 집이 있다면 더 이상 해마다 오르는 월세,전세 걱정과 집을 구하러 거리를 나다니는 설움을 겪지 않아도 될 터이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집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어떠한지는 고향집을 떠나 객지에 나와 생활하는 모두가 한 번 이상은 경험해 보았으리라. 그만큼 '이사'라는 말이 우리에게 주는 추억은 신산스럽고 심란하다. 물론 나 역시 그러하다.
 
 아버지는 평생을 당신의 이름으로 집 한채 갖지 못하셨다. 한때 형편이 좋았던 시절에는 조금 더 큰 집을 사리라 미뤄두었고 결국엔 일도 집도 다 멀어져버렸다. 그 아버지의 아들과 가족들 역시 더 말해 무엇하리오. 이런 모습은 70,80년대를 지나온 4,50대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모습이리라. 한 해, 길면 두 해 살다가 다른 집을 찾아 이사를 가고 그 이사가는 집은 전보다 어딘가 부족한 곳이고…. 
 
 그렇게 중학교 1학년부터 시작된 우리 가족의 이사도 어머님이 돌아가시던 대학교 2학년, 단칸방 생활에서 밑바닥의 정점을 찍더니 그러고도 두어 차례 더 '짐쌈'과 '떠남'이 있었고 그리고도 몇 년이 훌쩍 더 지나고 나서야 우리는 '우리집'이라는 곳에 안착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기억난다. 10년전 여름, 처음 이사온 목욕탕에서 샤워기에서 흐르는 찬물에 몸을 씻고 -이것도 처음!- 거실 마루에 큰 大자로 누웠을 때, 그 때는 정말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이제는 옮겨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이제는 우리 집에서 - 비록 갚아야할 융자금이 있더라도 - 착실히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 그 기분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부자였다. 
 



Ⅱ.
 [프란시스코의 나비] 라는 책을 읽는다. 오래전 니코스 카찬차키스의 [성 프란치스코](지금 확인하여보니 [성자 프란체스코 1,2]로 바뀌었다.)를 감동적으로 만난 기억이 있어 [나비]가 그 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와 관련이 있는 줄 알고 선뜻 손에 든 책이었다.
 
 하지만 이 책, [나비]에는 나비가 되는 꿈을 꾸지만 현실은 누구못지 않게 팍팍한 아이, 프란시스코=판치토네 가족의 불법 이주민 가족史가 담겨있다. 계절을 따라 옮겨다니며 봄(5~8월)에는 딸기 수확, 여름(8~10월)에는 포도 수확, 겨울(11~1월 말)에는 목화 수확을 하며 근근히 살아가는 불법 이주민 가족의 삶에서 행복이란게 가능할까? 기쁨이란 게 무엇인지 알 수나 있을까?
 
 남북전쟁시절 흑인노예들의 일을 대신하며 막사 같은 집에서 살아가는 3D업종 종사자, 지금 우리네 현실 속의 조선족, 동남아에서 넘어온 외국인 노동자들 같은 역할을 판치토네 가족 같은 불법 이민자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 꿈과 인권이 이뤄지는 나라 미국에서…. 그리고 그들의 삶은 아니나 다를까 짐작하는 것 그 이상 비참하다. 
 
 약간 상해서 버린 채소나 과일들을 찾아오면 엄마는 썩은 부위를 칼로 잘라내고 정육점에서 얻어 온 뼈와 썪어서 수프를 만들어주셨다. 엄마는 정육점 아저씨에게 개에게 먹이려고 한다고 거짓말을 하셨다. 하지만 정육점 아저씨는 그 뼈를 우리 가족들이 먹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엄마가 정육점에 갈 때마다 아저씨는 뼈에 고기 살점이 점점 더 많이 붙어 있는 것을 주셨다. (93)
 
 악다구니 같은 생활 속에서도 주인공 아이 프란시스코=판치토는 누에가 나비가 되는 꿈을 놓지 않는다. 엄마와 아빠도 가능하면 못배운 한을 물려주지 않기 위하여 아이를 학교에 보낸다. 비록 몇 개월 뒤면 다른 곳으로 쫓기듯 옮겨가지만 그래도 그들은 꿈과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오늘은 그냥 이것으로 저녁을 때워야겠구나. 도저히 저녁식사에 신경 쓸 기운이 없단다." 엄마는 미안해하시며 말씀하셨다. "괜찮아요,엄마." 나는 콩이 든 냄비를 불에 얹으면서 말했다.  (68)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주인공의 밝음이다. 지치고 좌절하고 치일만도 한데 위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주어진 세상을 담담히 받아들일 뿐 투정하거나 포기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그의 곁에는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있기 때문이리라. 힘들어도 먹을게 적어 주릴지라도 아빠와 엄마, 형과 동생이 있음으로 프란시스코는 언젠가는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은 것이리라.
 
 그리고 그가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그네들보다 어렵고 힘들어도 사람이 갖추어야할 자존심은 결코 꺽지 않는 그런 이들도 있기에 아이는 더 굳건하게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자랄 수 있는 것이다. 중간에서 자신들을 착취하는 관리자가 또 다른 이들의 착취의 도구로써 이용하려고 하자 함께 일하던 누군가는 쫓겨날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 상황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보다 아이에게 더 좋은 교육이 어디 있으랴?
 
 "그 자식이 내 돈을 뺏을 수도 있고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옳지 않은 일을 강제로 시킬 수는 없어. 인간의 존엄성을 함부로 무시할 수는 없는 거라고. 절대 그래서는 안 되는 거야." (153)
 
 그렇다.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선을 끝끝내 지켜내는 일은 힘이든만큼 값어치가 있는 일임에 틀림없다. 이 책의 처음부터 프란시스코의 아버지가 양심을 속이면 안된다고 못을 박는 이야기가 등장하는 까닭도 그러하리라. 그리고 끝내는 이민국에 적발되어 끌려가는 가족들의 모습으로 이야기는 막을 내리지만 그들은 쉬 포기할 사람들이 아니기에 다시 일어서 돌아올 것임을 믿게된다. - 그리고 실제 주인공은 돌아와 마침내는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후일담>에 등장한다.!>
 
 마땅히 박수 칠고 기뻐할 일이다. 그나마 살던 집에 불이나서 모든 걸 잃어버렸을 때에도 엄마는 이야기한다. '너의 마음속에서, 너의 기억 속에서 잊지 않는다면 어떠한 것도 결코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고.' 이 힘이 그들을 버팅기게하는 희망의 뿌리가 되는 믿음이리라.
 
 "그래, 네 수첩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고 있다면 그건 결코 잃어버린 것이 아니란다." (181)
 
Ⅲ.
 문득 아시시의 성자, 프란치스코가 꿈꾸었던 세상은 어떤 것이었을까를 생각해본다. 그에게 있어 '가난은 구원의 특별한 방법이며, 겸손의 근원이며, 모든 완전함의 뿌리이며, 결실은 보이지 않으나 풍성한 밭에 감추어진 보물과 같은 것이었다'고 하는데 그 가난으로 인하여 더욱 풍성해지는 삶이 있음을 무조건 믿어야만 하는걸까?
 
 하지만 그는 예수처럼 살다간 성인이고 우리는 평범한 속인일 뿐. 가난 그 자체를 통하여 희망을 발견하고 하루를 견뎌나가는 것은, 우리에게 힘겹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리하여 나는 아무 것도 아니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었든 '나비 프란시스코'의 성공담을 믿으며 지지를 보낼 뿐이다. 우리가 걸어가는 세상에는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이 거리에 있을 것이고 우리가 항상 <나그네나 순례자>처럼 살 수는 없어도, 그들곁으로 조금이라도 다가서는 그런 삶을 살아야하리라 다짐해본다. 조그마한 목소리로, 손내밀며, 함께 가자고......
 
2009. 3. 10. 새벽, 아직도 이사는 계속됩니다.
 
들풀처럼
 
*2009-074-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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