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온두라스 소년의 '엄마 찾아 5만리' <엔리케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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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출신의 한 남자 아이가 화물열차 지붕위에 올라타고 멕시코를 가로질러 미국으로 가고 있다. 해마다 수천 명의 아이들이 화물열차의 지붕이나 난간에 매달려 그들의 부모를 찾으러 북쪽으로 가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엄마가 아직도 그들을 사랑하는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 - 책 속 사진 설명

<엔리케의 여정>주인공 '엔리케'도 수많은 소년들 중 하나. 엔리케가 이 화물열차 지붕위에 올라탄 것은 12년 전에 자신을 버리고 집을 떠난 엄마를 찾기 위해서다. 엔리케의 '엄마 찾아 122일간의 사투 5만 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엔리케의 엄마는 왜 떠나야만 했을까? 엔리케의 엄마 '라우데스'는 남편이 집을 떠나자 맨몸으로 두 아이를 키워야 하는 암담한 현실에 처한다. 아이들을 굶겨야 하는 날들이 늘어가자 미국으로 숨어 들것을 결심한다. 1~2년만 타국에서 고생하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매일 20시간을 일해서라도 아이들에게 돈을 보낼 수 있음이 다행스러웠지만 귀국할 목돈을 마련하지 못한 채 1년, 2년..., 목돈을 모아 돌아갈 날을 꿈꾸다가 1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이것은 엔리케의 엄마 '라우데스'만이 아닌, 남미 가난한 나라의 수많은 '싱글맘'들이 처한 암담한 현실이다.

그녀들은 미국이라는 신세계 가장 밑바닥에서 돈을 벌어 고국의 자식들과 가족들을 먹여 살렸다. '라우데스'처럼 미국으로 가는 과정에 수많은 젊은 여자들이 강간을 당하여 임신을 하게 되고, 매춘을 하거나 팔려 가는 등 집을 떠날 때보다 더 비참한 신세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사람 잡아 먹는 기차'에 올라탄 사람들




 
▲ '죽음의 열차'로 불리는 화물용 기차지붕에서 만나는 위험. 나무가지 때문에 열차에서 던져지기도 하고 눈알이 패여 나간 경우도 있다. 작가와 동행한 사진가가 화물열차 지붕위에서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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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파스테펙에서 화물열차가 잠시 정차하고 있는 동안,한 이주민 소년이 화물칸 사이를 뛰어 건너는 것을 다른 한 이주민 소년이 쳐다보고 있다.(책속 사진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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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케가 엄마를 찾아 미국으로 향하며 올라탄 화물열차 지붕위에는 온갖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강도에게 돈을 빼앗긴 뒤 열차 위에서 밀려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은 허다했고, 지쳐서 졸다가 떨어져 죽거나 다리가 절단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이민자들은 그 화물열차를 '죽음의 기차', '사람잡아 먹는 기차'라고 불렀다.

기차가 멈춤과 동시에 단속을 피하기 위해 숨는 숲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 곳곳에서 불법 이민자들을 노린 인간사냥꾼들이 눈을 번득이고 있었다. 이 사냥꾼들은 가진 것을 모두 뺏고 당국에 넘기거나 죽였다. 혹은 불구로 만들었다. 멕시코의 경찰들은 아예 강도가 되어 이민자들이 가진 것을 빼앗고 폭행하거나 죽였다. 혹은 그들의 나라로 강제 이송했다.

하지만 수많은 이민자들이 다시 이 죽음의 길에 올랐다. 엔리케도 7번이나 잡혀 강제 이송되었고 8번째 시도로 엄마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죽음의 길에는 엔리케처럼 오래전에 떠난 엄마를 찾아 나선 소년들도 있지만 미국이라는 신세계를 꿈꾸는 불법 이민자들도 많았는데, 이들은 대부분 남미의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 <엔리케의 여정> 겉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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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타임스의 리포터인 '소냐 나자리오'는 2000년 5월 멕시코 누에보라레도에서 17세의 온두라스 소년 '엔리케'를 만나게 된다. 가난한 남미 사람들의 미국으로의 불법 이주를 취재하는 것이 그녀의 목적이었다. 당시 엔리케는 자신이 5살 때 돈을 벌기 위해 미국으로 떠난 엄마를 찾기 위해 미국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가진 것은 아주 적은 푼돈과 엄마의 전화번호를 적은 종이뿐.

그녀는 2000년 5월부터 9월까지 수많은 이민자들이 목숨을 걸고 있는, '남미를 거쳐 멕시코를 횡단, 미국에 이르는 5만 리'에 해당하는 '엔리케의 여정'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녀는 엔리케처럼 죽음의 기차 지붕위에 올라타 수많은 이민자들 틈에 끼이고 그들처럼 열차가 멈추면 단속을 피해 도망치면서 멕시코 31개주 중 13개주를 종단한다.

그녀도 수많은 이민자들처럼 지붕위에서 떨어져 죽을 위기에 처한다. 또 기차가 잠깐 멈춘 사이 이민자들과 함께 단속을 피해 도망치면서 폭행과 강간의 위험에 처하거나 목격하게 된다. 즉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이민자들의 실태를 알리기 위해 '이민자들의 죽음의 여정'에 동행하며 적은 기록이다.

저자는 몇 개월 동안의 취재를 마친 뒤, 매일 누군가 자신을 성폭행하기 위해 화물열차 위를 달려오는 악몽에 시달렸다. 때문에 몇 달 간 정신과 치료를 받은 후에야 잠 잘 수 있었다고 한다. 작가가 자신의 안전도 보장받지 못한 죽음의 여정에서 엔리케와 수많은 남미 이민자들의 현실을 취재·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

너무도 처참한 불법 이민자들의 현실

저자의 취재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엔리케가 엄마를 만나 생활하는 과정이나 온두라스 등에 남겨진 가족들을 찾아 취재를 한다.

'엄마 찾아 122일간의 사투 5만 리' 끝에 만난 엄마와의 생활은 행복할까? 이국에서 그렇게도 그리워하며 안아보고 싶어 하던 아들 아니던가! 하지만 12년이라는 간극은 모자를 그리움의 관계에서 원망과 대립의 관계로 몬다. 그것이 미국 불법이민자 대부분이 처한 현실이다. 그들은 결국 원수보다 못한 관계가 되어 서로에게 상처를 남겼다.

책의 마지막은 엔리케의 아이를 낳은, 엔리케가 두고 온 엔리케의 여자 친구 이야기다. 그녀는 자신의 엄마와 엔리케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어린 아이를 가난한 가족들에게 떼놓고 엔리케와 미국이란 신세계를 향해 죽음의 여정에 오른다. 돈을 보내지 못하면 아이는 버려질 것이다. 이것이 가난한 남미 사람들의 실태다.

그 아이들은 몇 년 후 엔리케처럼 죽음을 무릅쓰고 엄마를 찾아 나선다. 그 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불구가 되고 흔적 없이 죽는다. 엔리케 모자처럼 성공하기는 어쩌다 한둘. 저자는 아이들을 떼어 놓고 불법 이주한 엄마를 찾아 나선 4만 8천여 명 아이들의 여정은 물론 되풀이 되는 중남미 빈곤, 미국 이민의 문제점과 현실까지 함께 들려준다.




 
▲ 쓰레기하치장에서 대머리수리매들과 먹을 것을 두고 싸우는 남아메리카의 가난한 아이들.엔리케의 엄마가 돈을 보내지 않으면 엔리케와 그의 누나도 이렇게 살아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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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 베라크루소의 철길가에 사는 사람들.하루에 2달러도 채 안되는 돈으로 살아갈만큼 가난하지만 자신들 보다 더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이주민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줄 만큼 아름다운 손들을 가지고 있다.(책속 사진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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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출판사는 청소년 관련 책을 주로 내고 있습니다. 2004년에 출간한<프란시스코의 나비>는 '가족의 의미를 부모와 자녀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평소 중남미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지라 국내 청소년들에게 이렇게 살아가는 지구 반대편 아이들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소냐 나자리오'와 '돈 바트레티'의 기자정신도 감동스러웠습니다.<엔리케의 여정>이 우리 아이들에게 용기와 남에 대한 배려를 생각하게 하는 그런 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책을 펴낸이 김한청 (2월 12일 통화중에서)

불법 이민자들의 현실은 처참했다. 하지만 그들을 돕는 수많은 사람들과 봉사자들이 있어 엔리케처럼 성공하기도 한다. 그들은 불법이민을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체포의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책에 붙은 어느 찬사처럼 올해 한권의 책만을 읽어야 한다면 이 책을 꼭 읽으라고 말하고 싶다.

책 속에서 만나는 6장의 사진들은 저자의 <엔리케의 여정>에 동행한 사진기자 '돈 바트레티'가 죽음을 무릅쓰고 찍은 것들로 그에게 퓰리처상의 영광을 안겨주었다.

남미 이민자들의 생생한 사투와 미국 이민의 문제점, 되풀이 되는 남미의 빈곤을 생생하게 기록한 <엔리케의 여정>은 2003년 퓰리처상 2개 부문(특집기획, 보도사진)을 수상했다. 독자들이 읽게 되는 이 책은 2003년 퓰리처상 수상 이후 저자가 2005년에 다시 만난 엔리케의 생활과 엔리케가 떠나온 온두라스까지 담았다.

책을 읽는 동안 자꾸만 잊었다. 작가가 들려주는 '엔리케와 수많은 이민자들이 처한 끔찍한 현실'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한편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상상력으로 가공된 픽션으로나 가능할 것같은 처참한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들은 2000년부터 2005년에 이르는 죽음을 건 취재의 기록이자 우리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왜 끝없이 떠나야만 할까?


덧붙이는 글 | <엔리케의 여정>(소냐 나자리오 씀, 돈 바르레티 사진)(다른. 2007년 1월.1만 900원)의 저자 소냐 나자리오(Sonia Nazario)는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하여, 1993년부터 'LA 타임지'에서 프로젝트 리포터로서, 빈곤, 마약, 이민 등과 같은 사회문제에 대한 기사를 20년 이상 써왔다. 퓰리처 상, 조지 폴크 상, 로버트 케네디 저널리즘 그랑프리 상 등 여러 권위 있는 상들을 수상했다.

사진을 찍은 돈 바트레티 (Don Bartletti)는 1983년부터 'LA 타임즈' 지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30년간 사건 현장을 종횡무진하면서 많은 사진을 찍었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에 종군하여 사진을 찍기도 했다. 2003년 퓰리처 상 및 유니세프 올해의 사진 그랑프리를 비롯, 여러 상을 수상했다.(책 안표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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