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바보'가 세상의 화두가 되었다. 공동체 대신에 개인이 들어선 자리에, 여유로운 삶 대신에 성공한 삶이 들어선 자리에서 보면 '바보'들은 드물다. 식량이 부족해도 손님이 오면 모두 내놓는 시골인심에 대한 향수를 희말라야 오지의 촌장에게서 발견할 때 오는 가슴 따듯함을 우리는 그 '바보'들에게서 느낀다.

스스로 바보가 되고 싶어하기도 했고, 별명으로 바보가 붙기도 했던 김수환 추기경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우리 사회에 주는 반향은 크다. 먼 친척보다 먼 분들이지만, 수 십만에서 수백만의 조문객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은 우리 자신이 가진 순수성의 죽음때문이 아닐까. 

 


맨발이 기봉이는 달린다. 누구 보다 똑똑하지는 않지만 누구보다 진심으로 어머니를 살아하는 기봉이는 어머니의 틀니를 위해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안고 달린다. 기봉이는 남들에게 많은 일을 해주고도 아주 작은 일삯만 받는 '바보'이지만, 그렇게 계산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보다 훨씬 행복한 '바보'다.

학교를 간절히 원하지만, 자재가 준비안되 1년을 더 기다려야 함에도 촌장 알리는 느긋하다. 수 천년 동안 없던 학교가 올해가 아니라 내년에 세워져도 알라의 축복이라는 것이다. 알리에게 시간은 째깍째깍 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 자신이 할 일을 꾸준히 하면서 만들어 가는 삶들의 과정일 뿐이다.

폭탄과 학교를 선택하라면 어떤 것을 선택할 까? 폭탄은 죽음과 증오를 낳고 테러를 낳지만, 학교는 연대와 희망을 낳는다. 그렇게 당연한 것임에도 군산복합체의 경제논리에 휩싸인 국가는 진짜 바보짓인 폭탄과 군인들을 공수한다.
<희말라야 오지의 희망이야기, 세잔의 차>(다른)속의 실제 주인공 그레그 모텐슨이 이 시대의 또다른 '바보'가 아닐까 하는 느낌이다.

이익과는 멀고, 화려함과는 다르고, 물질적 풍요와는 먼 곳에서 인간의 삶의 진정한 향기가 펴 오른다.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나, 책을 읽은 사람들이 느끼는 따뜻한 감성이 각박한 경쟁적 삶에서 다시 왜곡되지 않는다면 그 향기로 인해 희망이라는 글자를 우리 지구촌 모두에 새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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