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어렵다. 아무리 쉽게 풀어쓴 대중서라고 해도 철학책을 읽는 일은 늘 어렵다. 언어철학이니, 인식론이니, 과학철학이니 하는 것들은 그 이름만으로도 버겁다. 따라서 나에게 철학은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의 몫이었다. 내 몫이 아니었다. 그 무거운 짐을 내가 짊어지겠다고 자원할 까닭이 없었다. 철학과는 무관하게 살다가 가끔 누군가가 내놓은 재미있고 쉬운(?) 철학책을 읽으면 그만이었다. 철학은 일종의 심심풀이 혹은 지적 허영심을 채워줄 대상이었던 셈이다.
이 책은 철학책이다. 수많은 철학자가 등장하고, 수많은 철학적 논쟁을 다루고 있다. 당연히 쉽지 않다. 이것이 나의 잘못인가? 아니면 철학의 잘못인가? 그도 아니면 이 책을 쓴 사람의 잘못인가? 아마도 쉬운 철학만을 찾은 내 잘못일 게다. 세상에 쉬운 철학이란 것이 있기나 할까?
잘은 모르지만 철학이 처음부터 삶과 유리된 어렵고 골치아픈 학문의 영역은 아니었을 것 같다. 그 옛날, 철학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철학이던 시절이 있었을 듯 싶다. 물론 지금도 철학은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다. 성장과 분배의 문제, 자유와 평등의 문제, 경제와 환경의 문제, 법과 인권의 문제가 모두 철학의 영역이다. 철학이 다루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철학적 논점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관심이 없다. 누군가 그렇게 말하면 그런가 보다 한다. 또 누군가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 그렇지 않은가 보다 한다. 어차피 철학은 나의 일이 아니라, 그들의 일이었다.
이 책을 보니, 철학은 모든 것을 다루되 익숙하지 않은 방법으로 다루는 것 같다. 모든 것을 다루기에 철학은 버겁고, 익숙하지 않음때문에 철학은 어렵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내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에 기어이 '왜 그것이 당연한가'라고 묻고야 마는 것이 철학이었다. 그리고 왜 그것이 당연한 것인지 기어이 답을 하고야 마는 것이 또 철학이었다. 철학은 아마도 나처럼 매사가 대충대충인 사람을 용납하지 않을 것 같다.
청소년 철학소설 <드림위버>의 주인공 이안을 따라 철학여행을 하고나니 철학에 대한 호기심이 커진만큼 두려움도 커졌다. 마치 편안하고 익숙한 일상에서 떠나야 여행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까? 여행은 설레는 일이지만,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은 결단을 요구하는 것처럼 말이다. 세상이 어수선하다는 핑계로 자꾸 편한 것만 찾게 된다. 익숙하지 않은 것, 낯선 것은 귀찮고 불편해서 싫다. 그러나 이안과의 여행을 통해 깨달았다. 내가 찾는 것들, 내가 원하는 것들은 대개 익숙하지 않은 길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이제는 익숙하지 않은 길에도 눈을 돌려보려 한다.

posted by 낙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