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 과학윤리와 과학자윤리로 보는 우리나라의 과학 문제

황우석 스캔들은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밝혀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지식의 대융합>의 저자 이인식 씨에 의하면 참여정부 시절 국내 유명한 과학자들이 비밀리에 스웨덴까지 갔다.
황우석 박사를 노벨생물학상에 수여해달라고 로비를 하기 위해 정부가 지원하는 대규모 로비단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사실은 황우석 스캔들 이후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 그들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과학자들이며 보통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사실에 대해서 아무도 고백하는 사람이 없다. 과학의 영광은 앞다퉈 보도하고 밝히지만, 어두운 면은 스스로를 가리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철학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자 자신'의 문제다.


▲ 토머스 쿤은 시대흐름에 따라 과학의 성과가 쌓이는 사고방식에 대해서 거부했다.  


이것은 과학의 바깥의 모습이다. 그 내용으로 들어가면 과학의 실체에 대해서 알 수 있다.
단적으로 말해 우리는 과학과 진리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뉴턴의 의론과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모두 과학에 속하지만 둘 다 진리일 수는 없으며 오히려 둘 가 거짓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이것은 칼 포퍼의 말이다.
과학자들은충분한 실험이 언제 충분할지 객관적으로 결정한다지만, 그것은 단지 '객관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주관주의적 결정일 뿐이다. 실험결과가 축적되고 성과가 쌓일 수록 우리의 과학이 발전된다는 착각은 토머스쿤에 의해서 거부된다.
토머스쿤은 이론과 자료가 축적되면서 진보한다는 개념을 거부하고 과학 발전의 평화적 시기는 폭력적인 지식 혁명에 의해서 종결될 막간극에 불과하다고 했다. 축적적 사고가 아니라 비축적적 사고이며, 패러다임이 교체할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패러다임은 그 시대의 관습과 사고방식을 지배하는 흐름이기 때문에 쉽게 교체되지 않는다. 교양이 있고 지적이며, 과학적 지식이 있는 사람일수록 가장 성공한 사람들일수록 가장 근본적인 선입견을 바꾸지 못하기 때문이다.

간단히 이야기했지만, 황우석 문제는 우리에게 과학의 윤리와 과학자의 윤리라는 두 질문을 동시에 던져준다.
황우석 연구실에서는 그 흔한 실험노트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았다. 그리고 불리한 정보는 철저히 차단시킴으로써 스스로 과학자의 윤리를 저버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결국 과학에 대한 일반 대중 저변이 발전해야만 과학이 발전할 수 있다. 하나만 덧붙이자면, 우리나라의 과학 저널리즘은 '제로'(0)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계의 내부고발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 위 내용은 <드림위버>(다른출판사) 제3장 <과학> 편과 이인식 선생의 르네21강연 내용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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