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나에게 가르쳐 주지 않은 미국 제국주의에 대하여 / 하워드 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점령군이 조직적으로 전 세계의 약자들을 괴롭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미국 제국주의의 존재를 더 이상 부정할 수가 없다. 한때 미국은 적극적으로 제국주의임을 부인했으나 이제는 창피해 하기는커녕 오히려 자랑스럽게 이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내게 미국이 제국이라는 생각이 든 것은 2차 세계대전 때 내가 공군 폭격수로서 참전하고 난 후였다. 나는 전쟁의 순수성에 대해서 의심을 했지만, 내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공포를 경험한 후에도, 또한 내 자신이 유럽의 도시를 직접 폭격한 것을 되짚어 생각한 후에도, 나는 여전히 미국이 제국주의 국가라는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대영제국과 다른 유럽의 제국주의에 대해서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나도 깨닫고 있었으나, 나는 미국을 똑같은 식으로 보지는 않았었다.

 

전쟁이 끝난 후, 전역자 무상교육법(2차 대전 참전 군인에게 대학교육과 직업교육을 제공하여 사회적응을 돕는 법)에 의해 나는 대학에 진학했고 미국 역사에 대한 수업을 들었다. 교과서에는 ‘제국주의 시대’라는 장이 있었지만 미국의 제국주의 시대는 단지 몇 년 동안만 지속된 것처럼 보였다. 교실에는 ‘서부개척’이란 글자가 적힌 지도가 있었는데 이것은 서부로 향하는 대륙횡단 행진을 자연스런 현상으로 보는 것이었다. ‘루이지애나 매입’이라 불리는 거대한 국토의 합병은 비어있는 땅을 인수했다는 느낌을 줄 뿐이었다. 이 지역에는 수백의 인디언 부족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 인디언들이 말하는 ‘인종 청소’로 자신의 선조들이 이 땅에서 사라져버렸고 인디언의 땅에서 쫓겨났다는 느낌을 교과서는 전혀 주지 않았다. 또한 교실에는 ‘멕시코 합병’이란 제목을 가진 남부와 서부를 나타낸 지도도 있었다. 이것은 1846년 멕시코와 벌였던 침략전쟁을 듣기 좋게 표현한 말인데, 미국은 이 전쟁에서 멕시코 영토의 반을 빼앗았다. 이 시기에 사용되었던 ‘명백한 운명’이란 용어는 물론 곧 일반적인 용어가 되었다. 대륙을 가로지른 폭력의 행진이었다. 심지어 미국의 쿠바침공도 당연히 미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쿠바침공에 이어 곧바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필리핀에 대한 침공이 시작되었다.

 

이제 세계 제국주의는 미국의 행동기제에 딱 들어맞는다. 역사책에서 피상적으로만 다루어진 그 길고 처참했던 전쟁은 반제국주의 동맹의 탄생을 가져왔다. 수업 외에 혼자 책을 읽으면서 나는 역사의 이러한 조각들을 더 커다란 모자이크로 맞춰나갔다. 처음에는 1차 세계대전까지 10년간 완전히 수동적인 외교정책처럼 보였던 것들이 이제는 폭력적인 개입의 연속으로 드러났다. 2차 세계대전 후 내가 처음으로 미국 역사를 배웠던 바로 그때 미국은 또 하나의 제국이 되어가고 있었을 뿐 아니라 세계를 이끄는 초강대국으로 변하고 있었다.

 

핵무기를 독점하고 확대하기로 마음먹은 미국은 태평양 먼 곳에 있는 섬들을 빼앗아 원주민들을 내쫓고 이 섬들을 죽음의 원자폭탄 실험장으로 만들고 있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나는 콜롬비아 대학교 대학원에서 여전히 역사를 공부하고 있었지만 어떤 수업도 아시아에서의 미국정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때 미국이 전쟁에 개입한 이유는 북한의 남한 침략이 아니라, 공산주의가 중국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시아 대륙에서 확고한 발판을 확보하려는 미국의 욕심 때문임이 내게는 확실해 보였다.

 

몇 년이 흐른 후 베트남에서 미국의 은밀한 개입이 점점 대규모의 야만적인 군사작전으로 변해감에 따라 미국의 제국주의적 계획은 내게 더 분명해졌다. 1967년 나는 『베트남, 철수의 논리』란 책을 썼다. 그때 나는 반전운동에 깊이 연루되어 있었다. 다니엘 엘스버그가 내게 맡긴 수백 페이지의 국방부 문서를 읽었을 때, 국가안보위원회의 비밀기록이 생각났다. 그것은 미국이 동남아시아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바로 주석, 고무, 오일이라는 것이었다. 미국 역사상 반전운동이 베트남 전쟁 때처럼 거센 적은 없었다.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던 한 가지 이유는 베트남만이 위험한 게 아니라, 그렇게 작은 나라에서 벌이고 있는 야만적인 전쟁이 미국의 거대한 제국주의적 야심의 일부라는 자각 때문이었다. 베트남에서 패전하고 소련이라는 강력한 라이벌이 사라졌는데도 불구하고, 미국이 타국에 다양한 개입을 계속하는 것은 세계 각지에서 끝까지 힘을 장악하려는 미국의 절실한 욕구의 표현이다.

 

조지 부시 전대통령은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점령했을 때 상심했을까? 아니면 미국의 힘이 중동의 유전지대로 뻗어나갈 기회로 쾌재를 불렀을까? 미국의 역사, 루스벨트 대통령이 1945년 사우디의 아지즈 국왕과 맺은 계약, 그리고 1953년 CIA가 이란의 모사데그 민주 정부를 전복시킨 일 등 미국의 오일에 대한 집착으로 미루어보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자명해진다. 9.11 공식위원회가 인정한 것처럼 그 무자비한 9.11 공격은 중동지역과 그 외의 다른 지역에서 미국의 팽창주의가 불러 온 맹렬한 증오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사건 전에도 미 국방부는 미국 영토 밖에 700개 이상의 미군기지가 있음을 인정했다. 그날 이후 ‘테러리즘과의 전쟁’을 시작하면서 더 많은 기지들이 만들어지고 확대되었다.

 

내가 2차 세계대전 때 독일,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프랑스를 폭격할 때 그 행위는 파시즘으로부터 세계를 구한다는 윤리적으로 분명히 정당화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 전쟁을 제국주의자들의 전쟁이라고 동료 폭격수가 내게 말했을 때 나는 무척 놀랐었다. 그는 양쪽 다 지배와 정복의 야심을 갖고 전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의 토론은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그는 임무수행 중 폭격기와 함께 격추되어 사망했다.

 

어떤 전쟁이든지 참전하는 병사와 그 병사들을 전쟁터로 보내는 정치 지도자들의 목적은 다르다. 내가 그 전쟁에 참여한 목적은 파시즘을 쳐부수고 폭력과 군국주의, 인종주의가 없는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두 번째 대통령 취임식 연설에서 ‘자유를 이 세상에 널리 퍼뜨리는 것은 우리 시대의 소명’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그 연설을 ‘놀라운 이상주의’라고 평했다. 이 이상 더 솔직하고 노골적인 제국주의적 속셈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선한 동기와 숭고한 목적을 앞세운 ‘착한 제국주의’라는 확신으로 미 제국주의는 언제나 공화, 민주 양당의 공동작품이 되어왔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번갈아가며 제국주의를 확장하고 칭송했으며 정당화해왔다.

 

처음에는 설득력을 갖던 멋진 구호들은 곧 숨길 수 없는 두려움으로 바뀐다. 이라크의 피범벅이 된 시체들, 미군 병사의 찢겨진 사지들, 집을 버리고 떠나야만 했던 중동지역과 미국 미시시피 델타의 수백만 가족들 말이다.

 

이제는 안전을 위해 전쟁이 필요하고, 팽창이 곧 문명의 원리라 말하는 제국주의적 사고를 우리 마음에서 지워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는 우리가 세계를 살아가는 새로운 방식, 즉 군사력 대신 인간애를 확장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받아들여야 할 역사적인 순간에 도달하지 않았는가?

확장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받아들여야 할 역사적인 순간에 도달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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