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상상력을 자극하는 판타지 소설이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추리소설은 언제나 많은 이들에게 환영받는 장르이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그 수 많은 이야기들의 감동보다 때로는 삶이 녹아든 200자 원고지 서너장 분량의 짧은 글들이 내 삶을 뒤흔드는 경우도 분명 존재한다. 아마도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들을 나보다 조금 더 먼저 겪은 인생의 선배들이 들려주는 교훈같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일들에서 찾을 수 있는 희망을 좀 더 일찍 깨닫게 해주는 도움을 주기도 하기 때문에 더욱 절절하고 더욱 마음에 와닿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래서 바람이 선선한 이 계절은 다른 계절보다 차분한 마음으로 조용히 읊조리듯 들려주는 다른이들의 이야기를 즐기기 위해 에세이집을 더욱 찾게 되는 지도 모르겠다.

 

스스로의 삶을 기적처럼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샘터에서 오랜 시간 짧막한 글들을 연재해온 장영희 교수의 에세이집이다. 어린시절 소아마비를 앓고, 다리가 불편한 1급 장애인, 그러나 국내 굴지의 대학에서 수 많은 학생들을 가르쳐온 존경받는 교수이기도 한 그녀는 2009년 5월 암투병중에 생을 마무리 하였다. 일생을 목발에 의지해 남들보다 힘겨운 걸음을 걷고, 생의 마지막에는 고통스러운 암이라는 병까지 얻어야 했던 그녀의 삶은 그 누가 보더라도 너무도 힘겨운 삶이었을테다. 한걸음 떼는것 조차 쉽지 않은 삶을 이기고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녀의 인내와 노력은 얼마나 대단했을 것이다. 보통사람들이라면 힘겨움을 먼저 떠올릴 것만 같은 그녀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이 작은 책 한권,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세상을 웃으며 바라보는 그녀의 기적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그러나 생각만큼 어둡거나 힘에 겹지 않다. 아니 오히려 유쾌하고 즐거우며, 신이 나고 미소짓게 한다. 과연 이 글을 쓴 사람이 평생을 목발에 의지해 살아가며 힘겨운 병마와 싸웠던 사람일까에 대해 의심하게 할만큼, 어쩌면 전혀 생각나지도 않을만큼 즐겁다. 또 누구나 한번쯤 했을 법한 고민과,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까지 고스란히 고백처럼 엮여 있는 이 책은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라는 제목보다는 살아가고 있는 기적이라는 느낌이 더 크다고나 할까? 어쩌면 삶이 기적 같았으나 그 삶을 너무도 평범하게 받아들이는 그녀의 여유로움이 그녀가 책을 통해 타인에게 전하고픈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는 이야기들, 그리고 기적이 있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삶자체가 기적이라고 말해주는 그녀의 이야기는 짧지만 긴 시간을 아련하고도 강렬하게 기억에 남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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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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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물과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곳,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매년 휴가를 위해 발걸음하고 많은 영화들의 배경이 되었으며, 저 유명한 화가 폴 고갱이 사랑했던 곳 타히티. 타히티는 이름만으로도 여유와 휴식이 연상되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휴양지 중 하나이다. 이미 다녀온 이들에게는 아름다운 추억과 그곳의 자연이 만들어내는 꿈같은 시간에 대한 기억을 담은 곳이고, 아직 다녀오지 못한 사람에게도 막연히 꿈을 꾸게하는 곳 타히티. 많은 이들이 오가는 섬, 타히티가 아름다운 것은 어쩌면 그곳이 아름다운 환경을 가진 선택받은 곳이기 때문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한숨을 몰아쉬고 잠시 휴식을 꿈꾸게 하는 여유를 상징하는 '섬'이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삶에 건조해진 누군가의 무지개.
<무지개>는 타히티에 휴가차 들른 주인공이 자신의 생활의 터전인 도쿄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회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온통 타히티의 이미지로 채워진 책이지만 사실 이야기의 주를 이루는 대부분의 것들은 그녀가 생활해온 도쿄, 그 안의 그녀의 일터였던 무지개라는 이름의 레스토랑 오너와의 일들에 관한 것이다. 그녀는 가족을 누구보다 성실한 일꾼이었다. 그리고 가족을 떠나보낸 후에도 여전히 성실하고 충실한 레스토랑 직원이다.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그 곳에서 일하며 그곳을 사랑하고 늘 성실하다. 그리고 어느 날 피로로 인해 기절을 하고, 이 일로 인해 가게일을 잠시 쉬는 대신 오너의 집에서 동물들을 돌보는 일을 하기로 한다. 주인공은 오너의 집에서 일하는 동안 자주 마주치지 못하는 오너와 대화하듯 그의 손길이 머무는 곳을 느끼며 그를 이해하게 되고, 그의 처지를 애처로워하며 그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키운다. 오너 역시 그녀가 그를 이해함을 아는것처럼 그녀에게 다가가고 오너가 키우는 개와 고양이를 매개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다. 그리고 어느날 오너가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해온다. 오래전부터 사랑하고 있었노라고..

조금 지쳤을때, 마음을 기대하게 하는 어떤 것.
<무지개>에 나오는 두 남녀는, 모두가 현실의 자신의 위치에 지극히 충실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본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크고 위대한 것 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위로 받을 수 있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소박한 마음을 가진 평범한 이들이다. 누구나 자신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려 애쓰지만, 그런 노력이 가장 허탈한 순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들이 자신이 노력하는 것과 반대방향으로 달려나갈때가 아닐까? 가정이 있었던 오너에게, 자신이 노력하고 성실히 가꾸려 했던 가정이 자신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고만 있다는 사실은 그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허탈감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런 그의 마음을 위로해줄 어떤 것들을 그녀에게서 찾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과 같이 성실하고 충실하게 스스로의 일을 열심히 할 줄 아는 그녀에게서 자신을 발견하고, 그런 그녀라면 자신을 믿어줄것이라 생각하고, 위로받고 싶었던 마음이 그녀를 향한 또 다른 마음으로 변한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기대했던 것, 엇나가게 될지도 모르는 선택
오너의 집에서 집을 가꾸며 남모르게 오너를 향한 마음을 키웠던 그녀는 막상 그의 고백을 받고 그에게 분노를 표출한다. 자신이 사랑한 사람이 나를 사랑했노라 고백하는 그에게 왜 화가 났던 것일까? 아마도 자신이 바람했던 그의 모습은 충실하고 성실한, 스스로의 위치를 지켜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그런 모습이었을것이다. 하지만 그는 위로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정을 외면하고 불륜을 말한다. 그를 사랑하게 했던 마음과 원치 않은 상황에서 갈등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타히티, 무지개의 섬.
무지개는 희망의 상징이다. 동화속 찌르찌르와 미치르는 전설속의 파랑새가 있는 곳을 무지개 너머 어딘가로 생각하고 알 수 없는 그곳을 향해 떠나고, 그곳에 반드시 파랑새가 있다는 노래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희망의 송가로 여겨진다. 비가 온 후 맑은 하늘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무지개는 잠시의 어려움이 지나가면 당신에게 찬란한 아름다움이 다가오리라는 희망을 전한다. <무지개>의 주인공인 그녀 역시 힘겨운 고민을 안고 떠난 타히티여행의 마지막에서 오너와의 관계에 대한 마지막 선택을 하고 선택후 그녀에게는 <무지개>라는 이름의 희망이 떠오른다. 그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녀의 일상은 좀 더 맑고 푸르른 빛이 아닐까? 한켠에는 무지개를 껴안은 푸르른 하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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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바뀐 딸
마크 탭 외 지음, 김성웅 옮김 / 포이에마 / 2009년 9월
절판


당신에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을 어디에선가 받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저의 가족입니다..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나를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 나를 든든히 지켜준 언니나 오빠, 그리고 나의 보호와 관심을 언제나 사랑스러운 눈으로 기다리는 동생.. 그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래서 그들의 아픔은 나의 아픔보다 더욱 아프고, 그들의 기쁨은 나의 기쁨보다 더욱 기쁘다. 그들이 나의 가족이기 때문에..

사고로 죽은 딸, 사고에서 유일하게 살아난 딸

어느날 두 가족에의 딸들에게 사고가 일어난다. 학교의 버스를 타고 가던 두 가족의 딸은 교통사고를 당하고, 한 가족의 딸은 사고로 즉사를 당하고, 한 가족의 딸은 그 사고의 유일한 생존자로 살아 남는다. 그렇게 두 가족은 사랑하는 딸들의 사고 앞에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맞는다. 사고로 즉사한 한 가족의 딸은 휘트니 세락, 뉴웰 세락과 콜린 세락의 막내 딸이며 언니인 칼리와 동생인 라이자 그리고 자매와 같은 산드라와 한 가족을 이루며 모든 가족이 한 학교의 동문인, 단란하고 평화로운 가족의 일원이다. 사고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는 로라 반 린, 아버지 돈 반 린과 어머지 수지 반 린의 막내 딸이자, 언니인 리사와 오빠인 케니, 마크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가족의 즐거움이다. 세락 가족은 딸의 죽음앞에 눈물을 흘리고, 반 린의 가족은 사고 중 유일하게 살아난 막내 딸 로리를 간호하기 위해 병원으로 달려간다. 세락의 가족은 막내 딸 휘트니의 영결식을 준비하고, 반 린 가족은 로라가 다시 웃을 수 있게 간호를 시작한다.


다시 돌아온 휘트니, 먼저 하늘로 간 로라.

5주의 시간이 지난후 두 가족에게 놀랄만한 사실이 드러난다. 침상에 누워있는 여학생이 로라 반 린이 아닌 휘트니 세락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사고 후 영결식까지 마친 세락 가족에게 휘트니가 살아서 돌아오고, 5주간 온 가족이 매달려 기도하고 간호하며 눈으 을 뜨고 다시 웃어주길 바랬던 로라는 이미 죽은 사람이 되어버린다. 사고 당시 육안으로는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던 처절한 사고, 그리고 죽은 딸의 모습을 차마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던 세락 가족의 마음, 병원에서 치료를 진행하던 중에도 얼굴을 확인 할 수 없었던 로리의 상태들이 섞여 만들어낸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이야기, 그것이 바로 뒤바뀐 딸의 이야기이다..


아픔을 이겨낸 두 가족의 이야기.

<뒤바뀐 딸>에는 완벽한 행운도 완벽한 행복도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딸이 죽고, 누군가의 딸이 살아 돌아온 이야기는 다시 누군가의 딸이 살아나고, 누군가의 딸은 죽었다는 반쪽짜리 해피엔딩임과 동시에 반쪽짜리 새드무비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던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의 기쁨이 누군가의 눈물이 되었다면 어짜피 그런 이야기는 세상에 많고 많은 흔한 이야기일 뿐인데 말이다. 아마도 그것은 이 가족들이 슬픔과 아픔을 이겨내는 과정이 주는 특별함에 있을 것이다. 딸을 사고로 잃은 세락의 가족은 딸을 잃은 슬픔을 슬픔만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자신들이 믿는 종교의 힘을 빌어 안타까움과 사랑의 마음으로 남은 가족들을 위로하는 데에 사용한다. 떠나간 딸이 행복할 것이라 믿고 기도하며 남은 가족들이 슬픔에 빠지지 않도록 배려하는 힘을 발휘함으로써 떠나간 딸에 대한 마음을 달래는 세락가족은 가족을 잃었을때 끝없는 슬픔속으로 자신들을 밀어넣기만 하는 슬픔의 모습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비현실적이지만 그것이 아픔에 빠져 있는 것 보다는 나은 방법임을 느끼게 해준다고 해야할까? 살아남았다고 믿고 있었던 막내 딸 로리가 사실은 휘트니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반 린의 가족 역시 남다른 방법으로 슬픔을 이겨낸다. 그들이 로리의 상태를 기록해 나가던 블로그는 이제 로리가 아닌 휘트니의 일기가 되고 살아남은 휘트니를 자신들의 딸 로리를 보는 눈으로 바라봄으로써 로리에 대한 마음을 다독이고 세락 가족에게도 힘을 주는 배려를 보여준다.


불가능해 보일 것 같은 그들의 힘.

<뒤바뀐 딸>에 나오는 두 가족의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은 사실 우리에게는 조금 낯설다 싶을 만큼의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충분히 슬퍼하고 더 많이 아파하는 것이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에 대한 사랑을 대변하는 것이라 생각해오는 우리의 문화와는 다르다. 그들은 남은 가족들을 위로하고 남아있는 사람들과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에 대한 기억을 나눔으로써 그 슬픔을 다독이니 말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는 상처 속에 묻혀 지내는 것이 과연 그 사람을 위하는 것일까? 남아 있는 사람들은 또 남은 삶을 살아야 하는데 말이다. 어쩌면 오랜 아픔과 상처로 그 사람을 기억하는 것 보다는 그 사람과 나누었던 행복했던 기억으로 그 사람을 기억하는 것이 먼저 떠난 사람에 대한 더 좋은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뒤바뀐 딸>을 통해 해보게 된다. 세상을 먼저 떠난 그 사람도 남은 가족을 아낌없이 사랑했던 또 한명의 가족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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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거나 혹은 버리거나 in 부에노스아이레스
정은선 지음 / 예담 / 2009년 9월
품절


사람들은 일상을 살아가며 힘에 부치거나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들때 속칭 '일탈'을 꿈꾼다. 일탈에도 여러가지 모양새가 있겠지만 평범한 이들이 꿈꾸는 가장 평범한 일탈은 대부분 여행이라는 말로 형태를 갖추곤 한다. 왜 하필이면 여행일까? 어느 노래처럼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점프를 한다던지, 신도림 역안에서 스트립쇼를 한다던지 하는 말 그대로 쇼킹한 것들도 많을텐데, 왜 하필이면 여행을 떠나고 싶어하는 것일까? 아마도 내가 속하지 않은 곳, 한번도 속하지 않았던 곳에서만이 누릴 수 있는 막연한 자유에 대한 동경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도 그들을 모르기에 전혀 새로운 내가 될 수 있을것이라는 생각, 그 생각이 많은 사람들이 일탈을 꿈꿀때 여행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가장 쉬운 이유가 아닐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일탈을 노래한 그 노래에서도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할일이 쌓였을때 훌쩍 여행을' 떠나라는 것이었다.

지구의 반대편, 모든 것이 낯설고 어쩌면 두려울지 모를 그곳.
사람들은 자신의 영역이 아닌 곳에 갑자기 떨구어지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모를 두려움을 느낀다. 꼭 다른 나라가 아니라도, 말이 통하고 생긴것도 똑같은 한 나라 안에서 길 모르는 외딴 동네에만 가도 길을 잃을까 걱정하고 막연하게 공포를 느끼는 것이 사람이다. 하물며 말도 통하지 않고, 생긴것도 나와는 전혀 다른, 내가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전혀 없을 것만 같은 지구의 반대편이라면 어떨까? 길을 잃을까 걱정하는 차원을 넘어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게 되지않을까? 그런 공포를 무릎쓰고라도 선택하게 되는 지구 반대편으로의 여행. 그 여행에 각자의 사연과 이야기가 담겨 있으리라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알지 못하는 곳을 향하고 있다는 곳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한 어떤 것이 그들을 그곳으로 향하게 하고 있을지 모두가 다른 사연을 담고있지만 모두가 바라는 것은 같지 않았을까?

부에노스 아이레스, 낯설음의 그곳.
<찾거나 혹은 버리거나 in 부에노스 아이레스>에는 여러명의 사람들이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게스트 하우스인 게스트하우스OJ에 모여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던 과거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시작을 하기 위한 옷을 갈아있는 과정이 펼쳐진다. 어느날 홀연히 사라진 연인을 찾아 무작정 떠나온 OK김, 막장에 표절드라마 작가라는 오명을 쓰고 세인들의 비난을 견디지 못해 떠나온 나작가, 사랑했던 연인과 헤어지고 삶의 이유였던 사진에 대한 열정마저 되살리지 못해 좌절하는 원포토, 가족을 위해 끝없는 희생을 강요받음에 스스로를 구석으로 몰아넣었던 박벤처의 이야기가 아름다운 아르헨티나의 풍경과 함께 나지막하게 흐른다. 자신들을 격렬한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던 고국에서의 일들은 모두 잊어버리고 싶은 듯, 과거를 버리기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게스트 하우스로 걸음한 사람들. 그리고 조금은 희안하니까지 한 게스트 하우스의 주인 OJ여자의 독특한 사고방식과 행동은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고 갈곳을 잃은 듯 흔들리든 그들의 사연들은 잘 다지고 골라 평평한 땅으로 만들어내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찾거나 혹은 버리거나'가 아닌 '버리고 찾아 채우는' 여행의 의미.
<찾거나 혹은 버리거나 in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모든 이들이 낯설은 곳으로의 여행을 갈망하고 꿈꾸는 단 하나의 이유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이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나 역시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그곳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 그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스스로를 억눌렀던 과거를 버리는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새로운 나를 찾는, 어찌보면 단편적인 것들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것들을 버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나를 찾아 넣는 두가지 것들을 모두 할 수 있을것이라는 희망이라고 말한다. 찾거나 혹은 버리거나의 양자택일이 아닌, 버리고 비워낸 자리에 새로움을 가득채우는 것이 여행을 원했던 당신의 진정한 바람이라고 반문한다.

지구의 반대편이 아니라도..
책 속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가장 먼곳으로 도망을 와도 그곳 역시 또 하나의 일상일 뿐이라고, 거기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신기할 것이 하나도 없는 지루한 일상..이라고 말이다. 버리기 위해, 혹은 찾기 위해 어디로 도망을 가도 그곳에서 기다리는 것은 또 하나의 지루한 일상이라는 말은, 얼핏 어딜가나 다를바 없다는 체념섞인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본다. 어딜가나 다를 바 없는 또 하나의 일상인 그곳에서 내가 무엇인가를 버리고 찾길 원했다면 누군가는 내가 지겨워 하는 이 일상에서 다시 스스로를 버리고 찾으려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꼭 지구의 반대편이 아닐지라도 스스로를 버리고 다시 채워넣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사는 바로 이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찾거나 혹은 버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일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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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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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사랑이라는 말을 내뱉기위해 사람들은 그 안에 얼마만큼의 감정들을 한꺼번에 담고 있는 것일까? 사랑이라는 감정을 만들기 위해 도대체 얼마만큼의 깊이가 필요한 것일까? 그리고 그 사랑이 언젠가는 내 어깨에 온전히 내려앉아 영원히 함께 하리란 약속을 하는 그날이 오기는 하는 것일까? 수 많은 노래와 수 많은 영화와 수많은 책들이 사랑을 말하고 사랑을 설명하고 사랑을 그려내려고 하지만, 언제나 사람들은 사랑에 대해 궁금해하고 알고 싶어하며, 사랑을 원하고 사랑을 꿈꾼다. 사랑이란 어쩌면 어떤 말로도, 어떤 그림으로도, 어떤 선율로도 설명해낼 수 없는, 그래서 더욱 그립고 갈구하게 되는 대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을 아름다워하는 것.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못생긴 여자와 그렇지 않은 남자의 사랑 이야기이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책의 주인공인 '그'는 정확하게 잘생겼다는 설명이 나오진 않지만 탤런트 출신의 미남 아버지를 꼭 닮았다는 말을 볼때 아마도 꽤나 미남이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와 함께 책 속에 나타나는 또 한명의 남자 '요한'역시 탤런트 출신 미녀 어머니를 두었다는 설정을 볼때 아무래도 미남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은 '그'의 '어머니'와 '그녀'를 제외한다면 모두가 미남이나 미녀가 아니었던가 잠시 생각해본다. 물론 등장 인물 자체가 몇 되지 않은 탓도 있으리라. 미남인 '그'와 너무도 못생겨 사람을 얼게 만들 정도였던 '그녀'의 사랑이야기. 그것이 현실이 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몇 해 전 공전의 히트를 쳤던 '내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마저, 평소보다 좀 더 살을 찌워 나왔을 뿐, 일반인에 비해 뛰어난 미모를 가진 탤런트로 등장인물을 써야했을만큼 '미'에 대해 절대적인 가치를 두는 세상에서, 못생긴 얼굴 하나로 사람을 얼어붙게 만들 정도의 '추녀'가 사랑을 이루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아름다움이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 당연히 한번쯤은 누려야 할 감정조차 사치로 만들만큼 그토록 절대적인 것일까? 책은 그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저 보이는 아름다움은 그것일 뿐이라고, 그것은 아름다움이지만 그것만이 아름다움은 아니라고 내내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책을 읽는 동안, 아름다움 이상의 아름다움과 그것을 보는 눈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게 만들었다. 아름답지 않은 어머니를 둔 탓에 아름답지 못했으나 아름다웠던 한 여성을 사랑했던 '그'를 이해하고, 세상으로부터 아름답지 못하다고 손가락질 받았으나 사실은 너무도 아름다웠던 '그녀'를 향해 어렴풋이 애정을 쏟게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이 책의 힘이 아니었을까?

 

조용히, 그리고 강렬하게..

화려한 미사어구도, 자극적인 사건도 없다. 그저 '그'와 '그녀'의 사랑만이 있을 뿐인 책이다. 어찌보면 한없이 평범하고 지루할 수도 있었던 이 책을 한 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은, 이 책이 나를 자극하고 나를 흥분하게 만들었던 것이 아니라, 조용하고 차분하게 이해하고, 공감하고, 느끼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런 사건이 없어도, 그저 그들의 낮은 읊조림 뿐이라도, 이 책은 그것만으로 내 모습을 돌아보고, 나를 다독이고, 내 눈을 맑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래서 이 책을 오랫동안 아주 강렬하게 기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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