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도 - 그림으로 읽는 『구운몽』 키워드 한국문화 3
정병설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장바구니담기


예전에도 그랬지만 최근에는 부쩍 원작 소설을 따로 두고 이를 기초로 만들어지는 영화들을 많이 만나 볼 수 있다. 영화라는 영상매체만을 위해 만들어진 시나리오가 아닌, 소설이라는 장르로 이미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작품들, 영화만으로 처음 모습을 드러낸다면 그 신선도가 더욱 클 텐데, 왜 구태여 이미 많은 사람들이 글자를 통해 내용을 접했던 이야기들을 다시 영화라는 또 다른 매체로 만들어내는 것일까? 그리고 책을 읽은 사람들 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다시 그 이야기를 영화로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자신의 상상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바람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머릿속으로 수 없이 그렸던 장면과 모습들을 영화라는 실제 존재하는 화면으로 확인해보고 싶은 바로 그 마음 말이다.

상상을 구현해내는 매체로서의 그림.
책 속의 아름다운 이야기, 환상적인 배경, 그리고 실제로 존재하지 않기에 더욱 수 없이 많이 그리게 되는 상상들을 자신의 이야기로 만들수는 없을지라도, 눈으로 확인하고 좀 더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 그 마음은 아마도 글자가 존재하고 그 글자를 통해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졌던 시간들 속에서라면 시대를 막론하고 공통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생동감 넘치고 현실적인 화면을 보여주는 영화나 TV가 없었던 과거에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유일한 매체는 아마도 그림이었을 것이다. 그림은 그저 아름다운 것들을 지면에 그대로 옮기고 보전하기 위한 단순 기록의 매체가 아닌, 말로서는 담아내기 힘든 표현과 구현의 매체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테니 말이다.

구운몽을 그리다.
<구운몽도>는 바로 그 소설을 그림으로 그린 그림들 중 구운몽이라는 조선시대의 베스트셀러를 그려낸 그림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단순히 구운몽이라는 소설을 그림이 어떻게 표현해냈느냐에 촛점을 맞추고 있는 그저 구운몽도를 위한 책이 아니다. 소설을 매개로 하여 그림을 보는 법, 그림으로 소설을 보는 법, 여기에 소설 구운몽과 그림 구운몽도의 차이점까지 세세하고 예리하게 지적함으로서 소설로서의 구운몽과 그림으로서의 구운몽도에 각각의 가치를 부여하고 그 안에서 당시의 시대상과 문학적 혹은 미학적 가치들을 찾는 법을 소개하는 데에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데에 의의를 찾을 수 있기도 하다. 구운몽이라는 소설과 그 소설을 배경으로 그려진 구운몽도에서 같거나 혹은 다르게 나타난 표현들로 그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그들의 바람이나 환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살펴보고자 노력한 것이다.

자유를 써내려간 구운몽, 환상을 담아낸 구운몽도
구운몽은 사실 우리에게 그다지 어색한 제목의 이야기는 아니다. 학창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보았고, 단골 시험소재로 사용되었던 경력까지 가지고 있기에 대략적인 내용이나 구성등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고 잘 알려진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소설이기도 하다. 팔선녀를 만나 속세의 부귀 영화를 원한 죄로 세상으로 추방당한 성진, 그리고 그와 함께 인간세상에 나오게 된 팔선녀가 인간 세상에서 양소위와 8명의 여인으로 재회하며 속세에서 누릴 수 있는 갖은 부귀와 영화를 누려보는 인생을 얻게 되지만 모든것은 허망한 것이었고, 그 모든것이 성진의 한낱 꿈일 뿐이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성진은 그 모든것의 부질없음을 깨닫고 다시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게 된다는 구운몽의 줄거리는 학창시절에도 그랬고 현재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의 시대상을 되짚어 볼때 여러모로 충격적인 면을 가지고 있었던 이야기였다. 단지 소설이기에,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의 상상을 담아내는 소설이라는 장르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던 이 이야기는 그래서 문학사적으로도, 시대적으로도 대단히 파격적이었으리라.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가능하지 않았던 자유분방함을 글로 써내려간 것이 구운몽이었다면 그 환상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려낸 것이 바로 구운몽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구운몽도에 담긴 이상을 꿈꾸다.
책에서 언급한대로 조선시대에는 일처다부제가 가능하지도 않았고, 실제로 양소유처럼 호방하고 천재적이면서 동시에 어리숙하기 그지 없는 인물이 실존할리도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당시의 세상은 모든 것이 성별과 신분, 그리고 규약과 예절이라는 억압에 갇혀 있었던 시대였다. 때문에 모든 것은 작자인 김만중의 상상속에서 만들어진 환상이자 상상이고, 실존하지 않기에 더욱 환상적인 허구일 뿐이었을 것이다. 실제할 수 없었기에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상상. 구운몽은 바로 그 이루어지지 않을 것 만 같기에 더욱 그리게 되고, 도달할 수 없기에 더욱 애절히 바라보게 되는 것들에 대한 갈망을 담아낸 이야기 인 것이다. 그래서 일까? 구운몽을 그림으로 표현해낸 구운몽도 역시 그 환상과 상상, 그리고 애절함을 가득담은 자유분방함을 그려낸다. 소설의 내용과는 상이하게 표현된 그림들, 때로는 뒤틀리고 황당한 설정들을 그림속에 담아내어도 그것이 구운몽을 시작으로 한 것이기에 자유와 상상으로 설명되는 그림이 되는 것이다. 극락이라는 환상에서 시작하여, 현실에 내려왔으나 환상에 가까운 자유와 부귀를 누리는 양소유는 그래서 글과 그림 모두에서 사람들의 환상과 바람을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구운몽을 지은 김만중은 이 이야기를 지을 당시 유배중에 있었다고 한다. 이야기를 지은 동기에 대해서는 많은 설들이 있지만 유배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인 작가가 자신의 억눌라고 통제된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구운몽을 지었으리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설명이 될 것이다. 하지만 구운몽의 진정한 가치는 단지 그가 환상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글속에 불어넣었다는 것이나 문학적으로 뛰어난 독창성등의 가치를 지녔다는 것 보다는 그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 당시의 백성들이 꿈에서나 그렸던 소망과 교감했다는 것이 아닐까? 무엇이나 이룰 수 있고, 무엇이나 할 수 있던 양소유의 자유, 바로 그것을 원했던 그 마음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해낸 구운몽도의 가치 역시 백성들의 환상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더욱 진하게 채색하여 녹여냈다는 것은 아닐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조의 비밀편지 - 국왕의 고뇌와 통치의 기술 키워드 한국문화 2
안대회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장바구니담기


비밀이란 단어는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은 모르는 몇몇만의 비밀. 그래서 비밀은 그 단어 자체로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되기도 하고,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가장 부끄러운 치부가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래서 누구나 한 두가지쯤의 비밀을 가지고 있고 그 비밀만큼은 타인과 공유하고 싶어하지 않아한다. 비밀이 바로 그 사람의 핵심이자 근본이요, 무엇인가의 원천이고, 치부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비밀이라는 두 글자에 열광한다. 비밀이라는 단어 하나에 담긴 이중적인 의미 때문에 말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정조
우리에게 정조라는 이름은 한 시대를 움직이고자 했던 개혁군주이자 학자이며, 언제나 모든 것들에 열정을 가지고 스스로를 던져 이룩해내던 성군의 모습으로 이야기 되곤 한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몇 해 전 큰 인기를 끌었던 "이산"이라는 드라마의 영향이 남아있는 탓이겠지만, 그 보다 더 깊은 곳에는 이 시대에도 필요한, 변화를 주도할 누군가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든 것들의 개혁을 추구하고 이를 이루고자 노력했던 역사속의 정조의 모습과 부합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누군가의 모습을 역사속에서 정조라는 대상으로 찾아내었고, 그에게 현재가 원하는 이상향을 부여했으며 그를 추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바로 지금 우리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개혁군주 정조가 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우리에게 정조는 어딘지 모르게 차분하고 인자한, 그리고 언제나 강직한 지극히 선비적 인품을 가진 인물로 느껴지곤 한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자신이 믿은 바를 끝까지 이루어내고자 했던 강직한 인품, 그리고 이를 이룩해내기 위해 밤 잠도 이루지 못한채 몇날 몇일을 꼬박 새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았던 성군의 모습으로 말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정조의 모습은 없는 것인가?
하지만 그것이 정말 정조의 모든 것이었을까? 우리가 알고 기억하고자 하는 바로 그 모습이 정조의 진짜 모습이었을까? 우리는 정조를 바로 알고 있는 것일까? <정조의 비밀편지>라는 제목의 이 얇은 한권의 책은, 바로 이러한 의문을 담고 있는 책이다. 정조가 재위기간 심환지라는 조정의 인사에게 보내었던 수 많은 편지들, 어찰첩이라는 이름으로 남겨진 그 수많은 서신을 통해 공식적인 역사속에 남겨진, 혹은 우리가 그토록 추앙했던 개혁군주의 모습이 아닌, 비밀스럽고도 은밀한, 그리고 그래서 더욱 진실일 수 있는 정조의 가려져있던 모습들을 찾아보고자 한 책. 그것이 바로 <정조의 비밀편지>이다.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정조
<정조의 비밀편지>에서는 그간 우리가 알아왔던 정조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면모들을 알 수 있다. 강직하고 심지가 굳은, 그래서 어떤 면으로는 고지식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했던 정조가 아니라, 왕으로서의 공식적 입장과 개인적 입장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고,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의사를 타진하기 위해 획책을 서슴지 않은 정치성 강한 지략가. 온화하고 올곧은 품성으로 언제나 인자한 미소만을 지을 것 같은 성군의 품성이 아닌 성격이 급하고, 기분에 따라서는 막말도 불사하는 다혈질. 언제나 근엄한 카리스마를 내뿜던 군왕이기 이전에 유머러스하고 인정 많은 한명의 인간으로서의 그의 모습을 여과 없이 설명하고 보여준다. 말 그대로 비밀편지였기에 가능했던 수 없이 많은 그의 가려진 모습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역사속에 남겨진 그저 평면적인물이 아닌,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화가 날땐 화를 내고, 사람의 정을 그리워하거나 혹은 그것마저도 이용할 줄 알았던 입체적인 인물로서의 정조를 만나게 되는 기쁨은 그래서 대단히 크다.


군왕이라는 자리에 가려진 정조의 본 모습
한 나라의 군왕이라는 자리는 분명 많은 것을 요구하는 위치이다.. 그것은 단지 그 시대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역사라는 이름으로 과거를 지나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끝없이 요구되는 무게일것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 앉았던 역사적 인물들은 자신들의 위치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알고 그에 맞게 행동하기 위해 끝없이 자신을 단련했을 것이다. 역사는 그래서 그들을 한명의 사람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단지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던 군왕. 절대적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역사적 인물로서만 가치를 부여하고 그들을 기억한다. 정조 역시 역사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자리에 앉아 현재에 이르러 많은 사람들에게 개혁군주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달고 세상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공부하며 그들의 업적과 역사적 가치를 기억하지만, 우리가 잊고 있다 할지라도 한 가지 남겨지는 진실은 그들 역시 인생 하나를 살다간 인간이었다는 점이다. 역사가 기록하는 군왕으로서의 정조가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 심환지와의 어찰 350여통은, 그래서 단지 정조에게 있어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수 많은 역사적 인물들에게도 인간적 고뇌와 공포,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존재했다는 점은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러블리 본즈 - The Lovely Bones
영화
평점 :
현재상영


죽음 이후의 세상. 임사체험이라는 것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죽기 전에는 온전히 그 곳에 다녀올 수 없기에, 사람들은 그곳에 대해 가끔 호기심과 의문을 담아 이야기하곤 한다. 상상도 한다. 꿈을 꾸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상상과 꿈들은 그저 살아있는 사람들이 그려보는 환상일 뿐이다. 대부분은 산 사람들의 입장만을 반영한채 말이다. 죽은 자의 세상에 대한 살아있는 사람들의 상상은 그래서 이기적이고 편협할수밖에 없다. 우리는 살아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러블리 본즈는 14살에 이웃의 살인마에게 살해당한 한 소녀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살해당한 소녀라고 해서 그녀가 어떻게 살인당했는지 혹은 그 살인의 비밀이 어떻게 밝혀졌는지에 촛점을 맞춘 영화는 아니다. 억울하게 세상의 사랑하는 이들과 안녕을 고해야했던 소녀의 남은 꿈들과 남겨진 사람들, 그리고 죽음 이후의 죽은 이들에 대한 살아있는 자들의 바람과 상상을 더해 만들어진 영화이다. 물론 동명의 소설이 있긴 하지만 반지의 제왕을 만든 감독 피터잭슨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영상과 상상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기술이 더해져 더욱 강하고 확실하게 죽은자의 세상과 살아있는 자들의 세상, 그리고 그 안에 모두 살아 숨쉬는 사람들의 사랑과 삶에 대한 애착들을 보여준다.


[러블리 본즈]는 희생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는 유대감이나 관계의 친밀성을 의미한다고 한다. 언뜻 보기에는 주인공의 이름쯤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말았던 영화의 제목에는 수지의 죽음을 통해 다시한번 삶과 사람들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찾고 더 강한 유대로 사랑을 확인하는 재생의 의미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첫 키스 조차도 해보지 못한 순수했던 14살의 아름다운 소녀 수지 샐먼, 그리고 더 없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던 그녀의 가족들이 수지의 죽음 앞에서 아파하고 고통스러워 하며 그 고통을 이겨내고 한 단계 성숙한 관계로 거듭나는 과정을 바로 이 영화 러블리 본즈가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까? 영화는 억울하게 살해된 수지의 원한을 바로 풀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수지 이외에도 많은 아이들을 죽인 연쇄 살인범에게 완전범죄라는 특권을 주고 그들의 죽음을 영원히 비밀속에 묻어버린다. 오로지 그들의 죽음이 또 다른 사랑과 믿음에 온전한 거름이 되어주었음만을 강조하고 싶었다는 듯이 말이다. 물론 그럼에도 설명할 수 없는 방법으로 그에게 죗값을 묻긴 하지만 말이다.






러블리 본즈는 또 살아남은 자들의 관점만이 아닌, 먼저 세상을 떠난 죽은 자들의 안타까움도 담아낸 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살해당한 채로 억울함을 간직하고 자신이 가야할 곳으로 가기를 주저하는 수지의 애잔함은 그녀가 자신의 억울한 한을 풀기 위해 세상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함에도 있지만 자신의 작은 소망을 이루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자신의 가장 망설임도 놓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14살 소녀의 작은 소망이었던 사랑하는 이와의 첫키스, 그것만으로 충분했던 수지의 14살의 삶은 자신을 끝없이 사랑했던 아빠를 위해, 힘들어하는 엄마를 위해, 자신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애쓴 동생을 위해 억울함도 미련없이 버린다. 그리고 그녀를 위해 준비된 천국의 그곳으로 가게 된다.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죽어서도 사랑함을 기억하게 만드는 영화, 14살 소녀의 죽음 위에 핀 붉은 꽃처럼, 강렬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그린 영화가 바로 러블리 본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평행이론 - Parallel Lif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사람들은 운명을 늘 궁금해하며 살아간다. 경기가 나쁠수록 점성술이나 운명을 점치는 사업들이 더욱 번성한다고 하니 불안한 운명에 대한 궁금증은 시대가 어렵고 어두울수록 그 궁금증을 더하는가보다.
 



 

평행이론은 이미 알려진대로 일정한 주기를 두고 서로 다른 사람에게 동일한 인생이 반복된다는, 영화의 제목과 동일한 평행이론이라는 이론을 배경으로 시작하는 영화이다. 최연소 부장판사의 자리에 오른 김석현이 살해된 부인을 죽인 범인을 뒤쫓는 과정에서 30년전 자신처럼 최연소 부장판사의 자리에 오른 한상준과 동일한 인생의 흐름을 보인다는 일치점을 찾아내면서 남겨진 자신과 가족들의 운명을 지키기 위해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것이 전체적인 내용의 큰 가닥을 이루고 있다. 자신의 운명이 누군가의 인생의 반복이며 그 반복되는 인생이 자신이 상상할 수 없을만큼의 최악이라는 것을 알게 된 한 남자의 고통이 느껴지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적 재미라는 측면에서 볼때 평행이론은 전제가 있어야 하는 영화이다. 바로 평행이론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이론에 대한 개인적인 수용의 여부가 이 영화를 즐기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 실제로 영화를 함께 관람한 친구는 평행이론이라는 이론 자체를 불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이게 말이 되느냐는 반문을 달고 영화를 관람한 결과-_-;; 영화 전체에서 단 하나의 재미나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반면 많고 많은 사건이 일어나는 세상이니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라는 인생관을 가진 나의 경우는 평행이론이라는 이론에 대해 상당히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고, 덕분에 영화의 주요 흐름에 집중이 가능했던지라 영화의 재미를 십분 느낄 수 있었던 경우였다. 영화를 즐기기 위해선 평행이론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발심보다는 그럴수도 있다라는 약간의 유연성을 발휘하는 것이 2시간의 영화를 즐겁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될 듯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한도 - 천 년의 믿음, 그림으로 태어나다 키워드 한국문화 1
박철상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장바구니담기


역사를 연구하는 사학자들에게 역사를 연구하는 자료란 단지 실록등의 글로 적은 역사서 뿐이 아닐것이다. 한장의 그림, 한줄의 싯구, 길가에 세워져 있는 비석의 글자 하나까지도 우리의 과거를 밝히고 옛 조상들의 발걸음을 뒤쫓을 수 있는 하나의 근거이자 자료가 된다. 특히 사실 그대로에 사관의 주관을 섞어 기록했던 비교적 보이는 그대로의 기록을 남긴 역사서보다는 눈에 보이는 글귀나 사진한장은 없으나 그래서 더욱 은유적이고 당시의 분위기와 모습들을 살펴볼 수 있는 그림 한장이 풍부한 자료로서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 중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세한도의 시작, 탄생, 현재
그런 의미에서 <세한도:천년의 믿음, 그림으로 태어나다>는 바로 그 한장의 그림, 추사의 그림에 담긴 수 많은 사연들과 역사적 사실들, 그리고 그 안에 숨쉬는 추사 김정희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세한도라는 그림을 매개로 총체적으로 묶어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세한도가 만들어지기 전의 추사 김정희의 시대에 대한 이야기부터 세한도가 그려지는데에 필요했던, 혹은 자연스레 그림에 스며들었던 추사 김정희의 사상적 면모가 다듬어지는 과정, 그리고 세한도를 그리던 당시의 시대상과 함께 추사의 당시 상황, 여기에 세한도가 그려진 후 세한도가 움직여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들이 모두 한데 담겨진 이 책은 간단히 설명하자면 세한도의 출생배경부터 출생의 과정, 그리고 변화를 거쳐 현대에 이르는 모든 이야기들을 담아냈다고도 할 수 있을 듯 하다.

추사와 세한도
사실, 세한도의 작가인 김정희는 우리에게 특별한 역사적 사건이나 권력의 핵심부에 등장하는 주인공으로서 보다는 추사체로 알려진 특유의 서체를 만들어낸 서예가로서 더욱 친숙하다. 그래서 일까?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는 어딘지 조금은 어색했다. 이미 세한도라는 이름과 그 그림의 작가가 추사 김정희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세한도를 그린 그림의 작가 추사 김정희는 붓을 들고 글씨를 쓰는 서예가 추사 심정희보다는 어딘지 어색하게만 느껴지곤 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세한도라는 이름이 그토록 유명한데도 그 작가 김정희와 세한도를 한데 뭉쳐놓으면 어딘지 익숙치 않은 바로 그 이유 말이다. 아마도 중,고등학교 시절 추사라는 별호를 쓰던 김정희라는 문인에 대해 배운 정보라는 것이 바로 추사체 하나이기 때문은 아니었나 되짚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세한도:천년의 믿음, 그림으로 태어나다>는 나에게 역사를 수 놓았던 한명의 문인이 문인이라고 불리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양의 사상을 접하고 자신의 사상체계를 성립하기 위해 공을 들이며 그것을 지켜나가기 위해 몸을 내던지는지를 비로소 조금 알게 해준 값진 시작이 되어준 책이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는 곧 그 시대이며, 추사 자신이다.
그래서 일까? <세한도:천년의 믿음, 그림으로 태어나다>안에 담긴 추사의 일생과 그의 우정, 그리고 세한도의 글귀 하나하나와 나무 한그루의 가지는, 모든 것이 그 시대와 추사 자신을 설명하고자 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사실 세한도를 촬영한 책 속 수록된 도판을 살펴보면 세한도는 그림으로서의 가치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부분이 없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아닌 서예가 추사 김정희로 유명한 작가의 이력까지 더해지는 마당이니 정말 책 구절 어딘가의 한마디 처럼 '이게 정말 그 유명한 세한도??'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것. 화려한 색감으로 가득 채운 서양화나 동양화속에서도 웅장한 자연과 화려한 테크닉을 찾으려했던 내 눈엔 서너 그루의 나무와 얼기설기 대충 그린 것 같은 집 한채, 그리고 글자 이외에는 어떤 것도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함이 그토록 어색했던 것이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한도:천년의 믿음, 그림으로 태어나다>는 그 세한도 안에 공허하게 남겨진 여백과 황량한 분위기를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추사의 상황을 더해 가득 채워넣을 수 있는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세한도:천년의 믿음, 그림으로 태어나다>가 책으로서 가지는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시대와 인생을 한장의 그림에..
<세한도:천년의 믿음, 그림으로 태어나다>는 그림을 그리는 종이 한장의 선택과, 그토록 어설퍼 보이는 화풍 역시 그가 그토록 노력하여 얻어낸 결과물이었음을, 그리고 그렇기에 시대를 거슬러 세한도라는 한장의 그림이 후세에 이르른 것임을, 그래서 한장의 그림은 단지 눈에 보이는 것 화면이 아닌 그 이면의 배경과 작가의 사상이 맞물릴때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임을 세한도라는 한장의 그림과 추사의 일생, 그리고 당시의 상황을 더해 말하고 있다. 또한 우리에게 여전히 서예가 추사 김정희라는 이름으로 훨씬 더 친숙한 그의 인생을 그림을 매개로 담아냄으로써 우리가 자칫 잊거나 혹은 잘 알지 못하고 망각해버린 역사 속의 문인으로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 물론 잘 알지 못하는 우리의 역사 속에서 묻혀버린 위대한 우리의 사상가나 문인이 비단 추사 김정희만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 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무관심 속에 시간이라는 무게에 눌려 빛을 잃고 잠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세한도:천년의 믿음, 그림으로 태어나다>은 바로 그 단편적인 지식에서 벗어나 다각적인 관심과 지적 호기심으로 우리 역사를 좀 더 깊이있게 보는 방법을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세계, 그것이 현실이 아닌 단지 사람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일지라도 그 이면을 꿰뚫어 보는 눈이 있을때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충고 한마디와 함께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