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비밀편지 - 국왕의 고뇌와 통치의 기술 키워드 한국문화 2
안대회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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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이란 단어는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은 모르는 몇몇만의 비밀. 그래서 비밀은 그 단어 자체로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되기도 하고,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가장 부끄러운 치부가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래서 누구나 한 두가지쯤의 비밀을 가지고 있고 그 비밀만큼은 타인과 공유하고 싶어하지 않아한다. 비밀이 바로 그 사람의 핵심이자 근본이요, 무엇인가의 원천이고, 치부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비밀이라는 두 글자에 열광한다. 비밀이라는 단어 하나에 담긴 이중적인 의미 때문에 말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정조
우리에게 정조라는 이름은 한 시대를 움직이고자 했던 개혁군주이자 학자이며, 언제나 모든 것들에 열정을 가지고 스스로를 던져 이룩해내던 성군의 모습으로 이야기 되곤 한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몇 해 전 큰 인기를 끌었던 "이산"이라는 드라마의 영향이 남아있는 탓이겠지만, 그 보다 더 깊은 곳에는 이 시대에도 필요한, 변화를 주도할 누군가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든 것들의 개혁을 추구하고 이를 이루고자 노력했던 역사속의 정조의 모습과 부합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누군가의 모습을 역사속에서 정조라는 대상으로 찾아내었고, 그에게 현재가 원하는 이상향을 부여했으며 그를 추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바로 지금 우리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개혁군주 정조가 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우리에게 정조는 어딘지 모르게 차분하고 인자한, 그리고 언제나 강직한 지극히 선비적 인품을 가진 인물로 느껴지곤 한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자신이 믿은 바를 끝까지 이루어내고자 했던 강직한 인품, 그리고 이를 이룩해내기 위해 밤 잠도 이루지 못한채 몇날 몇일을 꼬박 새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았던 성군의 모습으로 말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정조의 모습은 없는 것인가?
하지만 그것이 정말 정조의 모든 것이었을까? 우리가 알고 기억하고자 하는 바로 그 모습이 정조의 진짜 모습이었을까? 우리는 정조를 바로 알고 있는 것일까? <정조의 비밀편지>라는 제목의 이 얇은 한권의 책은, 바로 이러한 의문을 담고 있는 책이다. 정조가 재위기간 심환지라는 조정의 인사에게 보내었던 수 많은 편지들, 어찰첩이라는 이름으로 남겨진 그 수많은 서신을 통해 공식적인 역사속에 남겨진, 혹은 우리가 그토록 추앙했던 개혁군주의 모습이 아닌, 비밀스럽고도 은밀한, 그리고 그래서 더욱 진실일 수 있는 정조의 가려져있던 모습들을 찾아보고자 한 책. 그것이 바로 <정조의 비밀편지>이다.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정조
<정조의 비밀편지>에서는 그간 우리가 알아왔던 정조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면모들을 알 수 있다. 강직하고 심지가 굳은, 그래서 어떤 면으로는 고지식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했던 정조가 아니라, 왕으로서의 공식적 입장과 개인적 입장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고,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의사를 타진하기 위해 획책을 서슴지 않은 정치성 강한 지략가. 온화하고 올곧은 품성으로 언제나 인자한 미소만을 지을 것 같은 성군의 품성이 아닌 성격이 급하고, 기분에 따라서는 막말도 불사하는 다혈질. 언제나 근엄한 카리스마를 내뿜던 군왕이기 이전에 유머러스하고 인정 많은 한명의 인간으로서의 그의 모습을 여과 없이 설명하고 보여준다. 말 그대로 비밀편지였기에 가능했던 수 없이 많은 그의 가려진 모습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역사속에 남겨진 그저 평면적인물이 아닌,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화가 날땐 화를 내고, 사람의 정을 그리워하거나 혹은 그것마저도 이용할 줄 알았던 입체적인 인물로서의 정조를 만나게 되는 기쁨은 그래서 대단히 크다.


군왕이라는 자리에 가려진 정조의 본 모습
한 나라의 군왕이라는 자리는 분명 많은 것을 요구하는 위치이다.. 그것은 단지 그 시대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역사라는 이름으로 과거를 지나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끝없이 요구되는 무게일것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 앉았던 역사적 인물들은 자신들의 위치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알고 그에 맞게 행동하기 위해 끝없이 자신을 단련했을 것이다. 역사는 그래서 그들을 한명의 사람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단지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던 군왕. 절대적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역사적 인물로서만 가치를 부여하고 그들을 기억한다. 정조 역시 역사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자리에 앉아 현재에 이르러 많은 사람들에게 개혁군주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달고 세상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공부하며 그들의 업적과 역사적 가치를 기억하지만, 우리가 잊고 있다 할지라도 한 가지 남겨지는 진실은 그들 역시 인생 하나를 살다간 인간이었다는 점이다. 역사가 기록하는 군왕으로서의 정조가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 심환지와의 어찰 350여통은, 그래서 단지 정조에게 있어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수 많은 역사적 인물들에게도 인간적 고뇌와 공포,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존재했다는 점은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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