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은 암흑시대였는가? - 중세 민음 지식의 정원 서양사편 3
박용진 지음 / 민음인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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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내게 들어와 마치 그것이 사실인냥 인식하고 있는 것은 없는가? 혹은 너무나 당연해 의심조차 하지 않는 일은? 가령 북한은 진짜 (마르크스가 주장한)공산주의식 국가일까하는 문제와 같은... 이런 문제의식과 비슷한 형태로 이 책은 내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중세의 서양은 어두컴컴한 암흑기였는지. 내가 고등학생 때 외웠던... 그런데 정말 이게 사실일까???

인간은 유아기나 청소년기 없이 청년기나 장년기로 넘어갈 수 없다. 대부분의 인간은 특정한 발달 단계를 거치면서 성장해 간다. 이는 그 인간이 살고 있는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를 시기구분이라 이름한다면 이해하기 쉽겠다. 성장의 속도가 사람마다 다르듯이 사회도 성장의 단계나 속도에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발달 단계를 거쳐야만 한단계 도약하는 것만은 사실인 듯하다. 따라서 서양에서 근대라고 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중세의 역할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나름의 의미가 있었던 셈이다. 마치 청소년기의 어떠한 경험이 청장년기의 누군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서양에서 중세는 대체로 400~500년부터 1400~1500년 사이의 약 천년을 말한다. 솔직히 이 1000년 동안 아무런 발전이 없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 않은가? 물론 중세에 대한 비판은 일정부분 수긍할만하다. 기독교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인간과 이성의 약화를 불러왔고 신 중심의 세상을 만들었으니까. 생각해보면 숨막히는 공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호이징가의 <중세의 가을>이란 책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당시에는 성행위를 불결한 것으로 간주하여 심지어 부부관계도 하지 않도록 계몽하였다고 한다. 이는 일종의 야간 통행금지를 만들었고 당국에서는 순찰조를 만들어 야간에 불켜진 집을 단속하였다고 한다. 이 얼마나 웃기고 어이없는 일인가. ㅎㅎㅎ

그런데 중세의 속살을 약간만 뒤집어 보면 미처 알지 못했던 흥미진진한 장면들도 나온다. 우선 백년전쟁을 살펴보자. 우리에게 잔다르크의 등장으로 유명한 이 전쟁은 중세 봉건제가 가진 한계에서 나온 전쟁이다. 즉 프랑스에 자신의 땅(봉토)를 가지고 있는 프랑스 출신의 영국왕은 프랑스 왕에게 충성을 맹세해야 할까 하는 데서 이 전쟁은 시작된다. 여러가지 복잡한 사정에 의해 결국 두 나라는 100년이 넘는 기간을 전쟁에 매달려야 했다. 이 전쟁 기간 동안 영국와 프랑스에서는 자국에 대한 인식(혹은 민족의식)과 애국심이 싹 텃으며 중세적 무기(갑옷을 입은 기병)에서 근대적 무기(장궁, 대포)로 군사적 변화를 경험했다. 이런 과정을 거처 지방 분권적 중세는 국왕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 집권 국가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또한 현재 대학과 의회의 모델이 되는 스콜라(성당학교)나 신분의회가 성립되어 근대로의 이행을 준비했다. 십자군 전쟁은 또 어떤가? 종교적 열정으로 시작된 이 국제전은 비록 완전한 실패로 끝났지만 상업의 발달을 견인해 지중해 무역이 부활되고 농업 중심의 사회에서 상업 중심의 사회로 중세를 이끌었다. 그리고 르네상스까지.

위와 같은 몇 가지 예를 통해 중세는 죽은 사회가 아니라 그 내부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잠재력을 가진 시대였음이 명백해 보인다. 이를 통해 근대는 이미 예비되고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책에 나오지는 않지만 중세는 왜 어두운 시대가 되고 말았을까? 바로 이어 나온 르네상스와 근대의 지식인들이 중세를 좋지 않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시대를 강조하기 위해 앞 시대를 저평가했고 이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 그런 전통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서양 중세를 무조건 부정할 수도 긍정할 수도 없다. 어쩌면 내가 보기에 두 시대는 두 가지 면이 모두 공존했던 시대가 아니었을까 싶다. 혼란스러울 수 있다. ^^

<중세 유럽은 암흑시대였을까>는 명확한 정답(혹은 결론)을 독자들에게 주지 않는다. 마이클 샌댈이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했던 것처럼 독자가 알아서 판단하라고 한다. 단지 저자는 여러가지 증거를 내세울 뿐이다. 그렇다고 결론 내리기가 어렵지는 않다. 책 속에 정답이 다 녹아 있으니까. 하지만 나처럼 모범답안을 찾는 독자들에게는 답답한 노릇이다. 정답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서 속이 후련하니까 말이다.

책은 아주 쉬운 필체로 쓰여졌다. 역사학 전문용어가 거의 없으며 있다해도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게다가 얇기까지 해서 읽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주제별로 편찬되는 책이라 내용은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보다 깊이가 있으며 전문학술서적보다는 훨씬 다가가기 쉽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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