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우리 신화 - 우리 신들의 귀환을 위한 이야기 열두 마당
신동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신동흔, <살아있는 우리 신화>, 한겨레출판, 2004.

우리네 역사에서 제일 안타까웠던 부분 중에 하나가 신화 영역이었다. 그것은 그리스로마 신화에 비해 내용이 빈약하고 구조가 허술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윤기의 그리스로마신화>만 해도 5권으로 정리되어 있지만 우리가 정작 알고 있는 한국 신화들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단군신화와 고대의 신화들은 그 대표적인 예 아닐까 싶었다. 세상의 신화 중에 그리스로마 신화만 한 것은 없어 보였다. 사랑, 시기, 질투, 야망 등 다양한 주제들이 버무려진 신화는 나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최고의 주제였다. 그런데 이제 나의 머리를 때리는 흥미진진한 책을 만났다.

신동흔 교수의 이 책은 지금 증보판이 나왔을 정도로 우리의 신화를 잘 소개하고 있다. 놀랍게도 우리에게도 창세 신화가 있었다. 우주가 창조되고 인간이 사는 세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녹아 있다. 어디 물질적인 세상 뿐이랴. 삼신할미처럼 인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주관하는 신도 있고, 저주 받은 인간이 역경의 세월을 이기고 자신을 미워했던 이들을 돕는 바리대기 이야기도 나온다. 백두와 한라를 주름잡던 신들과 세상을 주름잡는 여성신들까지. 세상의 신들 중 가장 재밌는 신은 오직 그리스로마에만 있을 줄 알았는 데 그것은 착각이었다.

우리의 신들은 멀리 있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 주변에서 자신들을 알아주길 바랐지만 서양화 되어버린 우리의 시각은 그들을 인식하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의 신들을 잡신이라며 비하하고 무시했는지 모르겠다. 그리하여 그들은 더 무속화되고 주변화 되었을지도. 그리스의 신들도 알고 보면 자기네 동네의 신이었을 뿐 이 지구를 주름잡던 신은 아니었다. 우리네 신들도 철저히 우리 땅에서 우리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몰라주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신화는 단순히 신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는 신화를 만들어낸 인간의 숨은 내력이 있다. 우리는 행간에 숨어 있는 그 내력을 읽어내고 현대식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오랜 기간 인간의 염원과 바람을 신화 속에 녹여 구전 시켜온 생명의 서사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화는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이야기들을 소환해 부를 때 홀연히 우리에게 다가와 구원이 되어줄 것이다. 그냥 사라지기에는 우리 신화에는 그 속에 서린 에너지가 너무 많다. 결국엔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것이 신화와 그 속 주인공의 운명 아닐까?

재밌는 것은 육지에 비해 상대적을 좁은 제주도지만 신들의 숫자는 그에 비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신화적으로 보면 제주는 분명 신비의 땅이자 신들의 영역이었다. 이땅에 있었던 신들을 모아 숫자를 센다면 분명 그리스의 신들에 못지 않을 것이다. 그 신들을 내가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이 이땅의 불쌍한 민초들을 위해 헌신한 점은 분명하고 그들의 역사적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서구에 경도된 내 시각을 고쳐야 할 시점이다. 역시 독서란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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