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비평 117호 - 2016.겨울
역사문제연구소 엮음 / 역사비평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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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19세기 조선의 풍경이다. 지나치게 서울 중심적이고 지방에 대한 차별이 만연하였다. 이로 인해 서세동점이라는 외부의 영향에 주도적으로 대응하기 힘들게 되었다. 서울은 서울대로(개화사상이나 동도서기론), 지방은 지방대로(위정척사론) 대응함으로써 응집력 있는 힘을 보여주지 못했다. 즉 이는 조선 사회가 내외의 위기에 효율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아쉽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조선 멸망의 수순이었다.

이와 같이 19세기는 크게 보면 경향분기, 세부적으로 보면 지역적 사상 분기 현상을 보였다. 이는 지역의 균형 있는 발전과 거리가 있었다. 지나치게 서울 중심적이었고, 인적 구성으로 볼 때 노론 중심이었으며, 노론 가운데서도 안동김씨를 중심으로 한 낙론계와 시파 가문들이 중심이었다. 그들은 서울 북촌 등 일부 지역에 집중적으로 거주하면서 19세기 세도정군을 만들어냈다. 정보, 문화, 재화의 서울 집중은 지식 정보의 심한 불균형과 인재 양성 및 선발의 경향 간 불균형을 연쇄적으로 초래하였다. 이는 다시 서울과 지방의 문화적 격차 확대를 촉진하였다.
조성산, <19세기 조선의 지식인 지형>, <<역사비평>>117, 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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