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비평>여름과 가을호에서 `새롭게 보는 정조와 19세기`라는 주제로 기획 특집을 다루었다. `정조`라는 주제는 예나 지금이나 핫이슈임에 틀림없다. 세월이 흘러도 그에 대한 평가만 달라질뿐 그는 여전한 역사 연구의 중요 주제다. 그런 면에서 조선사에 큰 자국을 남긴 그의 역사성을 의미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근래 들어 정조에 대한 찬양일변도 주장들이 줄어들고 그 시대를 냉철하게 다시 보려는 시각들이 증가하고 있는 듯하다(백승종,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 푸른역사, 2011이 대표적이다). 개인적으로는 재밌는 현상으로 본다. 역사를 다양한 시각으로 본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흠없는 인간이 어디 있으리! 오늘 읽은 대목 중 다음 부분이 눈에 깊이 들어왔다. ˝정조가 일관되게 추진한 재상권의 강화는 그 시기에 정부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공헌하였겠지만, 높고 낮은 관인들이 서로 견제한다는 조선 정치체제의 전통을 변화시켜 고위 관원들에게 권한을 집중시킨 것이었다. 19세기 권세가들이 측근인 고위 관원들과 함께 권력을 독점하던 구조는 정조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그의 재상권 강화정책에 연결된다. 그러한 정조의 정책 속에서 당하관이 공론을 조정에 반영하던 구조와 삼사의 언론 활동은 매우 침체되었다. 19세기에도 외척 가문들이 권력을 집중시킨 배경에는 공론과 언론의 현저한 퇴조가 자리잡고 있다. 19세기 세도정치를 가능하게 한 언론의 퇴조 역시 정조의 본래 의도에 관계없이 그의 정책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오수창, <오늘날의 역사학, 정조 연간 탕평정치 및 19세기 세도정치의 삼각대화>, <<역사비평>>116, 224~225쪽에서 인용) 결국 정조의 죽음과 연이은 세도정치의 출현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즉 정조가 추진한 정책의 결과라는 점이다. 바로 여기서 정조 정치의 한계를 찾을 수 있겠다. 비록 정조의 위대함이 깍일 수 있겠으나 한 개인의 치열한 노력만으로 역사의 흐름을 되돌릴 수 없음도 깨닫게 된다. 나는 이런 점에서 역사가 재밌다. 글을 읽으며 다시 이런 생각도 든다. 언젠가 이 주장들도 다시 재해석되고 뒤집힐 날이 올 것이라는 점 말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글은 다시 쓰여지고 역사의 논쟁은 심해지리라. 답이 정해진 역사만큼이나 재미 없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나의 노년에 다시 정조 부활의 역사를 읽을지도.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