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내 페이스북 타임라인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었다. 아니 실은 격렬해 눈을 가리고 읽고 싶을 정도였다. 내 견해는 주로 역사학자들의 주장과 비슷하지만 지인 중에는 박유하 교수를 지지하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두 진영에서 논의(혹은 싸움)가 깊어질수록 나 혼자 난감해지기도 한다.

이참에 나도 본격적으로 공부해보고자 정영환의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와 <황해문화>를 구매했다.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는 PDF파일로 읽기로 했다. 사려고 하니 왠지 꺼려지는...ㅎㅎㅎ 중립적 입장에서 읽으려 했는데 벌써 진영의 논리에 빠지는 것은 아닌지...

양진영의 대립이 격화되는 것을 보며, 특히 페이스북을 통한 설전은 상당히 놀라울 정도인데, 내 생각을 다시 정리해보기로 했다. 과연 나같은 개인은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학교에 근무하는 나는 어떠한 사건이든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려고 노력한다. 학교폭력이 가장 대표적이다. 가해자의 주장은 참고하는 수준이다. 위안부 문제 역시 그렇다.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과 그분들의 삶이 중요한 것이지 일본 정부의 상황을 고려해서 그들의 사과나 배상을 수용하는 것은 2차적인 문제라고 본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수용을 거부한다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 현실은 어떤가? 작년 12월 정부는 할머니들에게 귀 기울이지 않고 일방적 논리로 일본의 사과를 수용하고 할머니들에게는 통보만 해주었다.

박유하의 책은 아직 읽고 있는 중이라 언급은 피한다. 다만 이미 너무나 많은 비판 기사와 논문을 읽을 탓에 선입견이 생긴 듯하여 조금은 걱정이 된다.

학문이 현실을 떠난 존립할 수 없다면, 학문은 분명 현실 문제를 도외시할 수 없다. 하지만 그 학문이 정치색을 띠어 어느 일방을 지지하거나 옹호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경우 그 학문은 반쪽의 진실에 그칠 위험을 안게 된다. 권력의 힘에 기대 자신의 반경을 쉽게 넓히려 한다면 반대편의 강력한 저항에 필연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다. 과연 누가 그 위험한 배를 탔는지 나는 조사하러? 감독하러 간다. ㅎㅎㅎ

이런 독서 역시도 즐겁기만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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