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이레 / 1999년 8월
평점 :
절판


어린 시절 나는 애국자가 될 거라고 다짐했었다. 정부란 항상 좋은 일을 하는 곳이고 우리 모두는 정부의 지시대로 살아야 한다고 착각했었다. 그리하여 초딩 때는 투명망토를 입고 북한에 잠입해 김일성을 처단하리라는 다짐도 했었다. 착각도 이만저만하게 한 것도 아니었다. ㅎㅎ

그러던 내게 변화의 바람이 분 것은 서른이 다 되어서였다. 교육대학원에서 '민족주의'라는 것을 주제로 논문을 쓰면서 민족주의의 기원과 의미를 공부하게 되었고, 이것을 잣대로 한국의 현실을 관찰하게 되었다. 민족주의 자체에 긍정이나 부정을 담지 않고 나름 객관적 시각으로 보려했으나 연구를 하면 할수록 민족주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해졌고 이를 통해 한국 현대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것은 곧 내가 지금까지 긍정적으로 보아온 정부관에 변화가 생김을 의미하는 순간이었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를 신뢰하기 힘들 게 되었다는 것이다. 왜일까? 결국 정부가 도덕적이지 못했고 자신의 잘못을 개인에게 뒤집어 씌우거나 부당한 짓거리를 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정부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가량 명바기 정권의 4대강 사업이나 자원외교와 같은 것을.

나는 이런 상황이 깊어질수록 냉소적이고 외면해버리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소로우는 그것 가지고는 부족한 모양이었다. 머리가 아닌 행동으로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한다. 미국 정부가 노예제도를 인정하고 멕시코와 전쟁을 벌이자 그는 당시 시민의 의무였던 인두세 납부를 6년 간 거부하고 결국 유치장에 갇히게 된다. 이는 거의 적극적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내가 머리와 입으로만 비판하며 소극적 자세를 견지할 때 그는 감옥에 들어갈 준비까지 하며 온몸으로 부당한 권력에 저항한 셈이다. 이런 그의 사상은 저 멀리 인도의 간디에게까지 전해져서 '비폭력, 불복종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소심한 나는 늘 걱정한다.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하는... 그러니 행동으로는 전혀 옮기지 못한다. 몰래 할지언정.

그런데 이런 행동파 소로우가 실은 21세기형 환경운동가였다. 그의 이 책 대부분은 사실 환경과 자연에 대한 예찬 뿐이다. 책의 앞부분에만 정부 비판론을 펼칠 뿐 나머지는 자연 사랑, 특히 10월의 단풍과 사과 나무에 대한. 그의 진정한 모습은 어느 하나로 판단하기 어려울 듯하다. 자연을 사랑하지만 부당한 권력에는 당당히 맞설 것을 주장하는 시민운동가로 정의할 수 있으려나?

적어도 앞부분 '시민의 불복종'은 읽어보길 권한다. 나머지 수필 부분은 여유를 가지고 읽어도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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