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하는 저녁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에쿠니 가오리의 글을 좋아한다. 문장에 꾸밈이 적도 깔끔한 느낌이 들어서다. 소설이 대체로 짧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속의 이야기는 짧지 않고 오히려 긴 여운을 남겨준다. 그녀가 다루는 주제가 '사랑'에 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사랑'이 다양하여 단순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냉정과 열정사이>, <웨하스 의자>, <도쿄타워>, <빨간장화> 등을 보면 부모의 반대로 헤어진 연인들이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재결합하기도 하고, 유부남과 사랑하기도 하고, 남편과의 관계에서 권태를 느끼기도 하고, 엄마의 친구와 사랑하는 고등학생 이야기가 등장한다. 쉽게 이해되는 주제고 있지만 가슴 한켠에 심한 불편함을 안겨주는 주제도 있다. 내게는 한국식과는 다른 문제의식을 던져주는 일본 소설이 재밌다.

 

이 소설은 사랑하는 남자를 15개월에 걸쳐, 서서히 떠나보내는 여자의 시간에 관한 것이다. 그 시간동안에도 여주인공 리카는 그 남자(다케오)만을 바라보고 살아왔지만 남자의 시선은 다른 여자(하나코)에게 가 있다. 하지만 다케오의 사랑도 결국엔 실패한다. 그래서 더욱 슬픈 이야기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사랑도 남녀가 함께여야 한다. 그런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랑은 외롭다. 리카는 다케오를, 다케오는 하나코를 사랑하지만 하나코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하나코는 오히려 모든 사랑과 관심에서 벗어나고자 자살한다. 사랑은 이렇게 파국을 맞이한다. 독자인 내게 이런 관계는 불편하다. 헤어진 남자에 대한 연민을 끊을 수 없고, 그의 여자와 함께 지내야 하는 말도 안되는 일상은 독자인 내게도 힘들다.

 

쓸쓸한 뒷맛을 남기는 이 소설을 나는 왜 흥미롭게 읽은 것일까? 왜 일본 소설에 끌리는지 참...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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