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장화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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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읽는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이다. 나는 그녀의 담백한 글쓰기를 좋아했다. 비록 그녀가 그린 일본의 일상 풍경이 우리와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사람살이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그럭저럭 읽을만한 주제들을 잘 선정해 책을 쓴 것 같다. 그녀의 소설에 평범한 주인공들은 없었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어쩌면 그래서 내게 더 잘 읽혔는지 모르겠다.

 

  이 책은 10년차 부부의 일상을 그린다. 그것도 아이가 없는 부부다. 언뜻 보기에도 아이 없는 10년의 부부 생활을 무료하고 심지어 지친듯한 기색까지 보인다. 시부모를 비롯해 주위 사람들에게 친절한 여주인공 히와코. 무심하고 주위와 단절된 듯한 그녀의 남편 쇼조. 이들 부부는 언뜬 행복한 가족으로 보이지만(그렇다고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삶에 조금은 지친 히와코는 생각한다. "소죠가 곁에 없을 때 더 그립다"고. 이 말은 결국 곁에 있으면 그다지 그립지 않다는 뜻이 된다.

 

 아이 없는 결혼 10년 차의 모습은 무료하고 답답하기 조차하다. 책 내용도 그렇지만 독자로서도 어느 정도 상상이 되는 부분이었다. 이 책은 부부의 생활을 그린 것이지 불륜을 묘사한 것이 아니어서 에로스적 사랑이나 격정적 멜로같은 내용은 없다. 10년차 부부의 일상과 정신을 그리고 있어서인지 에쿠니 특유의 담백하고 깔끔한 글쓰기는 나타나지만 내용상으로는 그저 덤덤히 읽히는 수준이 되고 말았다. <냉정과 열정사이>, <도쿄타워>, <웨하스 의자> 등을 상상하면 낙담할 수도 있겠다.

 

 부부의 생활은 많은 부분에서 겉돈다. 히와코는 아내로서 충실하지만 쇼조는 무심한 성격 그대로 일관한다. 이 둘은 물과 기름처럼 잘 섞이진 않지만 서로에 대한 작은 관심이라는 끈은 놓지 않고 산다. 그래서일까? 히와코는 헤어지는 상상만하지 실천에 옮길 생각은 없다. 오히려 쇼조의 무심한 성격에 긍정적인 점을 찾고 늘 웃어준다. 쇼조 역시 그녀의 생활에 우호적이고 늘 배려한다. 이는 아이가 있는 부부일지라고 경험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오히려 이보다 못한 부부도 많으니 말이다.

 

  이 소설이 내게 무어라 말하는 바는 적었다. 내용상으로는 그간 읽었던 에쿠니의 소설 중 제일 밋밋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주제가 주제였던만큼 '부부란 무엇인가?'하는 자문을 하게 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었다. 서로 살을 맞대며 사는, 두 아이를 기르며 사는, 정신적.종교적으로 의지하며 사는, 첫사랑은 식었어도 서로의 존재 자체에 만족하며 사는 우리 부부는 잘 살고 있는지 되묻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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