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나라에 사는 여인
밀레나 아구스 지음, 김현주 옮김 / 잔(도서출판)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달나라에 사는 여인>의 원제는 프랑스어로 신장결석을 뜻하는 ‘Mal Di Pietre‘다. 소설 속 주인공이 앓고 있는 질환이기도 하지만, 그녀가 가슴 속에 내내 품고 사는 재향 군인을 만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들 둘은 신장결속을 이유로 이탈리아의 어느 요양원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달나라에 사는 여인‘이라는 별칭 역시 재향군인이 그녀에게 지어준 것이다. 이것은 지구에 사는 사람들과 다른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그녀를 잘 상징한다. 그녀의 광증, 사랑, 욕망 같은 경향들은 주변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오로지 재향군인을 빼면.

100쪽을 살짝 넘는 책이라 깊이가 없어 보였지만 영화를 먼저 본 탓인지 소설의 무대인 샤르데냐가 잘 상상되었다. 구글 검색을 통해 그곳 지도와 사진까지 확인했다. 그래서인지 풍경과 배경을 머리에 넣은 듯한 착각이 들었고 소설이 주는 느낌도 배가 되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영화와 소설은 많이 달랐다. 큰 줄거리는 닮았지만 세세한 것은 완전히 다르다고 봐도 무방했다. 영화를 봤다고 해서 소설이 그대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어서 읽는 내내 기대감을 가지게 했다.
이 소설이 가진 특이점은 화자가 주인공의 손녀딸이라는 설정이다. 주인공은 이름보다 ‘할머니‘라고 불려진다. 그래서 소설은 할머니가 손녀딸에게 해주는 할머니의 추억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손녀가 전지적 작가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방식은 꽤 신선하다. 이점이 영화와 소설을 구분하는 가장 결정적인 것이다. 영화는 할머니의 시선으로, 소설은 손녀의 시선으로. 그래서일까? 둘은 결론이 완전히 다르다. 영화에서 재향군인과의 사랑이 할머니의 망상이었다면, 소설에서 둘은 어느 정도 선을 지켰으며 할머니는 이점을 주변 사람들에게 철저히 숨겼다는 것이 다르다. 나는 둘 다 재미를 느꼈다.

<달나라에 사는 여인>은 이탈리나 샤르데냐 섬에서 일생을 보낸 한 여인의 상상적 사랑이야기다. 뜨거운 욕망을 가졌고, 찰나의 달콤한 사랑을 경험했으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 없으나 남몰래 글을 썼던 여인.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는 할머니가 숨겼던 재향군인의 편지가 소개된다. 그는 할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상상을 멈추지 마세요. 부인은 미치지 않았어요. 누가 부인에게 상상의 나래를 펴는 일이 부적절하고 사악하다고 해도 믿지 마세요. 글을 쓰세요.˝(115쪽) 즉 소설의 앞부분 이야기(대표적인 것이 할머니와 재향군인의 사랑이야기)는 할머니가 철저히 숨긴 상상의 산물이다. 가족들조차 다 속은.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장면이다. <식스센스>급 반전은 아니지만 그래서 잔잔히 다가오는 무언가가 있다. 나는 책을 덮으며 은근한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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