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시인의 사회
N.H 클라인바움 지음, 한은주 옮김 / 서교출판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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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시인의 사회’는 미국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시에서 따온 말로써 이는 책 속에서 학생들의 비밀 써클을 의미한다. 명문대 입시를 위해서 자신의 현재를 모두 내맡긴 채 억압당하던 학생들을 위한 일종의 해방구로 작용하는 이 말은 웰튼 출신의 키팅 선생이 자신의 학창 시절 가담했던 시 낭독 비밀 서클의 이름이기도 하다. 키팅 선생은 자신의 학창 시절 학교 근처의 오래된 인디언 동굴에 친구들과 모여 고전시를 낭독하며 낭만을 키운 경험담을 학생들에게 들려준다. 그는 입시 위주의 교육에 찌든 자신의 제자들도 자신이 경험한 낭만을 알게 되길 바란다. 학생들은 키팅 선생의 가르침을 통해 같은 이름의 비밀 써클을 만들고 함께 동굴에 모여 명시를 읽으며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1950년대의 미 엘리트 고등학교를 보여주는 책이지만 독자인 내게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과 닮아 있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영화가 나온 1989년과 책이 출간된 2003년과 비교해 우리의 교육 현실은 그다지 변한 게 없음에 두번 놀라게 된다. 물론 교육계를 깊이 파들어가 학교 현장을 조사하면 변한 부분도 많지만 ‘입시‘를 지향한다는 점에서는 변한 것이 전혀 없으며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입으로는 창의력과 상상력을 들먹이지만 대입만을 바라보는 교육 현실에서 그것은 허황된 꿈일 뿐더러 사치이기도 하다. 이것은 교육 개혁을 위해 헌신하고 계신 분들에 대한 모독일 수 있어 조심스럽지만 교육 현장은 큰 틀에서 변함이 없어 보인다. 여기에 나조차도 일조하고 있다.

지금의 현실에서 보면 키팅 선생님은 평범한 교사일 수도 있다. 학생의 발전과 성장을 돕기 위해 노력하는 참교사들은 대한민국에도 수없이 많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은 입시에 의해 판가름되기 일쑤고 승진이라는 이름 하에 폄하되기도 한다. 교사의 생명인 수업과 학생상담은 이런 현실에서 좌절을 맛보기 마련이다. 사실 우리는 한국의 이런 교육 현실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여러 개혁도 추진되었지만 늘 좌절되고 그 짐은 학생들이 지고 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을 수 없이 들으며 자라왔다. 나는 속으로 다듬고 정제한 말과 글을 쓰려고 노력해 왔다. 정 맞지 않고 비난받지 않기 위해서. 나이 들면서 이런 내가 부끄러워진다. 특히나 키팅 선생님 앞에서는. 입시 부담이 덜한 중학교에 있으면서도, 승진의 욕구를 덜어냈음에도 나는 지난날의 관습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종의 관성적 교육에만 메달려 있는 것이다. 다시금 읽은 <죽은 시인의 사회>는 나를 돌아보게 하고 부끄러움을 알게 했다. 키팅 선생님은 숨막히는 학교 현실에서 학생들에게 산소와 같은 존재였다. 학생들이 깊이 숨 쉬고 정신이 맑아지려면 산소같은 선생님들이 더 늘어나야 하지 않을까? 모난 돌이 더 많아지는 학교가,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책에서 약간의 희망을 발견한 것은 키팅을 무시하던 라틴어 선생님의 변화다. 나이 지긋한 선생님이셨지만 후배 교사의 독특한 수업과 학생들의 변화를 눈여겨 보았다. 그리고 그 자신이 조금씩 틀을 깨고 변화를 시도하였다. 지금 한국에는 이런 변화들이 많다. 교육부와 교육청이란 교육행정기관보다 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이런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모든 교사가 모난 선생님이 된다면 어떨지 감히 상상해 본다.

학교를 떠나는 키팅 선생님은 가슴이 뭉클했을 것이다.
오! 캡틴! 마이 캡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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